[팩트체크K] “뜨거운 파인애플 물의 놀라운 효능”…알고 보니

입력 2020.04.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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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파인애플 물이 암세포를 죽인다!"

한 시청자께서 KBS 취재진에 사실확인을 요청한 내용입니다. 인터넷 블로그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는 건강정보인데요. 얇게 자른 파인애플 2~3조각을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매일 마시면 암을 고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낭종이나 종양을 제거하고 세균과 독소를 죽이는 효능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베이징 육군종합병원의 천희렌 교수가 이 방법을 권장했는데, 의학계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된 효과적인 암 치료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내용,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카카오톡 공유 글(좌)과 인터넷 블로그 글(우) 갈무리.카카오톡 공유 글(좌)과 인터넷 블로그 글(우) 갈무리.

천희렌 교수는 실존 인물, 하지만...

해당 방법을 권장한 것으로 지목된 육군종합병원의 천희렌(Chen Huiren) 교수는 혈액학과에 근무한 실존 인물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관련 내용을 연구한 적도 없고 권장한 적은 더더욱 없다."며 정보 글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명성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입장문이 나온 게 벌써 2년(2018년 3월)이 넘었습니다. 2년 전 본인이 아니라고 입장문까지 낸 내용이 지금까지도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인 것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2년 전 발표된 입장문(현지 매체가 보도)2년 전 발표된 입장문(현지 매체가 보도)

당시 여러 중국 매체가 천 교수의 입장문을 기사로도 전했는데요.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천 교수의 이름으로 여러 정보가 돌았다는 건데요. 처음엔 뜨거운 레모네이드였던 것이 이후 중국배로, 그게 또 여주(비터멜론)로 '종목'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국에서 파인애플로 '진화'한 셈입니다.

중국 매체도 당시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정보 글에서 언급된 "알칼리성 물이 몸에 좋다"거나 "뜨거운 레모네이드가 암세포를 죽인다"는 등의 내용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의 효능은 어떨까?

글의 출처가 조작된 것이어서 이미 신빙성을 잃었지만, 혹시 모르겠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의 효능이 전혀 없는 걸까요?

식품안전정보원이 제공하는 파인애플의 주요 영양소에는 비타민과 브로멜린(Bromelin)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있습니다. 파인애플을 넣은 고기 요리가 부드러운 건 브로멜린의 작용 때문이죠. 바로 이 브로멜린이 과학적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물질입니다.

브로멜린의 효능에 대한 여러 논문을 살펴본 결과, 어느 정도의 함암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펩타이드 연구 및 치료학의 국제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신선한 파인애플 주스에 들어있는 브로멜린이 난소암과 결장암 세포주에 대해 억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양 및 대사」 학술지에 실린 다른 논문에선 생쥐의 종양 세포에 파인애플 식초를 넣었더니 종양세포의 사멸을 유도했고 염증과 전이의 정도를 낮춰 암 진행을 지연시키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만 이들 연구는 실험실에서 세포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여서 인체에 대해서도 동일한 효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설립된 지 130년이 넘은 뉴욕의 암 치료·연구기관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는 홈페이지 내 의학정보란에서 브로멜린이 일부 항염 효과가 있지만, 인체에서의 항암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부작용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해당 연구결과들이 대개 세포 수준의 연구여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개연성을 갖는지는 알 수가 없다."면서 "비타민 함량이 많은 파인애플을 유익한 음식의 하나로 먹을 정도이지, 입증되지 않은 효능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브로멜린은 열을 가하면 파괴됩니다. 식품안전정보원은 파인애플을 통조림으로 만들 때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브로멜린이 파괴되기 때문에 통조림 파인애플을 불고기 잴 때 사용해도 고기가 연해지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보 글은 파인애플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브로멜린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파괴한 뒤 먹으라는 셈인데, 그래서 더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결론]

"뜨거운 파인애플 물이 암세포를 죽인다!" → 사실 아님.
항암 효과에 대한 기대 없이 파인애플 생과일을 먹는 게 여러모로 도움.


취재지원: 노수아 / 팩트체크 인턴 기자(xooah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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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K] “뜨거운 파인애플 물의 놀라운 효능”…알고 보니
    • 입력 2020-04-20 19:20:15
    팩트체크K
"뜨거운 파인애플 물이 암세포를 죽인다!"

한 시청자께서 KBS 취재진에 사실확인을 요청한 내용입니다. 인터넷 블로그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는 건강정보인데요. 얇게 자른 파인애플 2~3조각을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매일 마시면 암을 고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낭종이나 종양을 제거하고 세균과 독소를 죽이는 효능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베이징 육군종합병원의 천희렌 교수가 이 방법을 권장했는데, 의학계에서 가장 최근에 개발된 효과적인 암 치료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내용,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카카오톡 공유 글(좌)과 인터넷 블로그 글(우) 갈무리.
천희렌 교수는 실존 인물, 하지만...

해당 방법을 권장한 것으로 지목된 육군종합병원의 천희렌(Chen Huiren) 교수는 혈액학과에 근무한 실존 인물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관련 내용을 연구한 적도 없고 권장한 적은 더더욱 없다."며 정보 글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도용해 명성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입장문이 나온 게 벌써 2년(2018년 3월)이 넘었습니다. 2년 전 본인이 아니라고 입장문까지 낸 내용이 지금까지도 인터넷 공간에서 사실인 것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2년 전 발표된 입장문(현지 매체가 보도)
당시 여러 중국 매체가 천 교수의 입장문을 기사로도 전했는데요.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발견됩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천 교수의 이름으로 여러 정보가 돌았다는 건데요. 처음엔 뜨거운 레모네이드였던 것이 이후 중국배로, 그게 또 여주(비터멜론)로 '종목'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한국에서 파인애플로 '진화'한 셈입니다.

중국 매체도 당시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정보 글에서 언급된 "알칼리성 물이 몸에 좋다"거나 "뜨거운 레모네이드가 암세포를 죽인다"는 등의 내용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의 효능은 어떨까?

글의 출처가 조작된 것이어서 이미 신빙성을 잃었지만, 혹시 모르겠습니다. 뜨거운 파인애플 물의 효능이 전혀 없는 걸까요?

식품안전정보원이 제공하는 파인애플의 주요 영양소에는 비타민과 브로멜린(Bromelin)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있습니다. 파인애플을 넣은 고기 요리가 부드러운 건 브로멜린의 작용 때문이죠. 바로 이 브로멜린이 과학적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는 물질입니다.

브로멜린의 효능에 대한 여러 논문을 살펴본 결과, 어느 정도의 함암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펩타이드 연구 및 치료학의 국제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신선한 파인애플 주스에 들어있는 브로멜린이 난소암과 결장암 세포주에 대해 억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양 및 대사」 학술지에 실린 다른 논문에선 생쥐의 종양 세포에 파인애플 식초를 넣었더니 종양세포의 사멸을 유도했고 염증과 전이의 정도를 낮춰 암 진행을 지연시키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다만 이들 연구는 실험실에서 세포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여서 인체에 대해서도 동일한 효능을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설립된 지 130년이 넘은 뉴욕의 암 치료·연구기관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는 홈페이지 내 의학정보란에서 브로멜린이 일부 항염 효과가 있지만, 인체에서의 항암 효과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부작용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해당 연구결과들이 대개 세포 수준의 연구여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개연성을 갖는지는 알 수가 없다."면서 "비타민 함량이 많은 파인애플을 유익한 음식의 하나로 먹을 정도이지, 입증되지 않은 효능을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브로멜린은 열을 가하면 파괴됩니다. 식품안전정보원은 파인애플을 통조림으로 만들 때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브로멜린이 파괴되기 때문에 통조림 파인애플을 불고기 잴 때 사용해도 고기가 연해지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보 글은 파인애플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브로멜린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파괴한 뒤 먹으라는 셈인데, 그래서 더 신빙성이 떨어집니다.

[결론]

"뜨거운 파인애플 물이 암세포를 죽인다!" → 사실 아님.
항암 효과에 대한 기대 없이 파인애플 생과일을 먹는 게 여러모로 도움.


취재지원: 노수아 / 팩트체크 인턴 기자(xooah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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