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양형위 6시간 ‘격론’…‘디지털 성범죄’ 처벌 얼마나 세질까?

입력 2020.04.23 (08:00) 수정 2020.04.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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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n번방 사건'처럼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해 음란물을 제작(수출·입 포함)한 사람에겐 법원이 최대 13년의 징역형까지 선고하는 게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지난 20일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고, 위와 같은 내용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초안을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양형기준이란 판사들이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할 수 있는 형량의 가이드라인을 말합니다.

양형위는 이날 디지털 성범죄군의 대표 범죄인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범죄에 대해 전문위원들이 검토한 양형기준 초안을 두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 양형위 "디지털성범죄, 징역 최대 13년 가능하게" 양형기준 검토

KBS가 취재한 대법원 양형위원회 회의 내용에 따르면, 양형위는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해 음란물을 제작하는 범죄와 관련해 양형기준 기본영역을 징역 5년에서 9년형(기본영역)으로, 감경요소가 있어 형을 낮추는 경우(감경영역) 징역 2년에서 6년형, 여러 사정을 들어 피고인을 무겁게 처벌하는 경우(가중영역) 징역 9년형에서 최대 13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이날 열린 양형위에선 양형기준을 기존 판례보다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습니다. 당초 전문위원들이 위원회에 올린 양형기준(기본영역)은 징역 4년에서 8년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형위원들은 "신체접촉 성범죄보다 디지털 성범죄를 가볍게 볼 우려가 있다"거나 "피해자들이 광범위한 영구적 인격 피해를 입은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기본영역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동시에 끌어올렸습니다. 결국 양형위는 기본 양형기준을 △징역 4~8년 △징역 5~8년 △징역 5~9년으로 정하는 안을 두고 표결에 부쳤고, 절대 다수가 징역 5~9년형 안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양형위는 논의 중간에 가중영역 상한에 '무기징역'을 삽입하는 안건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청소년보호법 제11조는 개인적 법익이 아닌 사회적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점, 무기징역이 양형기준에 포함된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인으로 2인 이상 살해하는 '극단적 인명경시살인' 등에 불과한데 이를 청소년보호법 11조와 비교 가능하냐는 점 등의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앞서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군의 대표 범죄는 법정형, 사회적 관심도 등을 고려하여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로 보고, 이에 따라 대유형 1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로, 대유형 2를 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로, 대유형 3을 통신매체이용음란 범죄로 각 설정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기본 양형기준인 징역 5년에서 9년, 얼마나 무거운 걸까

그 동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어 판사들마다 선고형에 제각각 차이가 나거나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 양형기준 초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형량(기본영역, 징역 5년~9년형 기준)은 생각보다 높은 형입니다. 시행 중인 성범죄 양형기준과 임의로 비교하면, 기본영역을 기준으로 13세 이상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일반강간죄(징역 2년 6월~5년)나 주거침입 강간, 특수강간죄(징역 5년~8년)보다 높은 양형기준입니다.

죄질이 극악한 13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강도강간(징역 8년~12년)이나 강간치사(징역 11년~14년)보단 낮습니다.

■ 법률용어 아닌 '디지털 성범죄'…"그대로 유지" "변경해야" 의견 팽팽

이날 양형위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해당 죄목을 그대로 쓸 것인지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앞선 회의에선 '디지털 성범죄'라는 단어가 '카메라 등 이용촬영 성범죄'를 포함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란 단어에 위원 대부분이 회의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위원 대다수가 다른 죄목으로 대체하는 것을 지지했지만, 이번에 개최된 양형위 회의 직전 'n번방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이날 '디지털 성범죄'라는 죄목 자체를 유지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말이 법률용어는 아니지만 현재 다수가 쓰고 있고, 신종 범죄가 등장하는 경우를 대비해 확장성 있는 죄목을 쓰는 것도 무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각에선 '통신매체카메라등이용성범죄'라는 죄목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떻냐는 안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형위는 디지털성범죄라는 죄목을 그대로 쓸지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양형위는 중간에 쉬는 시간을 5분 가졌을 뿐, 오후 3시부터 9시 가까이 되도록 5시간이 넘도록 격론을 벌였습니다. 고성이 오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양형위는 오는 5월 18일 한 차례 더 논의를 거쳐 '디지털 성범죄'라는 죄목을 계속 쓸지 여부와 양형기준 초안을 확정·의결하고, 1개월 정도의 의견조회를 거쳐 6월 중 공청회를 개최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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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양형위 6시간 ‘격론’…‘디지털 성범죄’ 처벌 얼마나 세질까?
    • 입력 2020-04-23 08:00:07
    • 수정2020-04-23 08:00:13
    취재후·사건후
앞으로 'n번방 사건'처럼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해 음란물을 제작(수출·입 포함)한 사람에겐 법원이 최대 13년의 징역형까지 선고하는 게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지난 20일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고, 위와 같은 내용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초안을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양형기준이란 판사들이 형을 선고할 때 참고할 수 있는 형량의 가이드라인을 말합니다.

양형위는 이날 디지털 성범죄군의 대표 범죄인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범죄에 대해 전문위원들이 검토한 양형기준 초안을 두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 양형위 "디지털성범죄, 징역 최대 13년 가능하게" 양형기준 검토

KBS가 취재한 대법원 양형위원회 회의 내용에 따르면, 양형위는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해 음란물을 제작하는 범죄와 관련해 양형기준 기본영역을 징역 5년에서 9년형(기본영역)으로, 감경요소가 있어 형을 낮추는 경우(감경영역) 징역 2년에서 6년형, 여러 사정을 들어 피고인을 무겁게 처벌하는 경우(가중영역) 징역 9년형에서 최대 13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의견을 조율했습니다.

이날 열린 양형위에선 양형기준을 기존 판례보다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습니다. 당초 전문위원들이 위원회에 올린 양형기준(기본영역)은 징역 4년에서 8년이었습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에서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는 점이 반영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형위원들은 "신체접촉 성범죄보다 디지털 성범죄를 가볍게 볼 우려가 있다"거나 "피해자들이 광범위한 영구적 인격 피해를 입은 점" 등을 이유로 들어 기본영역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동시에 끌어올렸습니다. 결국 양형위는 기본 양형기준을 △징역 4~8년 △징역 5~8년 △징역 5~9년으로 정하는 안을 두고 표결에 부쳤고, 절대 다수가 징역 5~9년형 안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양형위는 논의 중간에 가중영역 상한에 '무기징역'을 삽입하는 안건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확정이 되진 않았습니다. 청소년보호법 제11조는 개인적 법익이 아닌 사회적 법익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점, 무기징역이 양형기준에 포함된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인으로 2인 이상 살해하는 '극단적 인명경시살인' 등에 불과한데 이를 청소년보호법 11조와 비교 가능하냐는 점 등의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앞서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군의 대표 범죄는 법정형, 사회적 관심도 등을 고려하여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로 보고, 이에 따라 대유형 1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범죄로, 대유형 2를 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로, 대유형 3을 통신매체이용음란 범죄로 각 설정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 기본 양형기준인 징역 5년에서 9년, 얼마나 무거운 걸까

그 동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별도의 양형기준이 없어 판사들마다 선고형에 제각각 차이가 나거나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이번에 양형기준 초안으로 검토되고 있는 형량(기본영역, 징역 5년~9년형 기준)은 생각보다 높은 형입니다. 시행 중인 성범죄 양형기준과 임의로 비교하면, 기본영역을 기준으로 13세 이상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일반강간죄(징역 2년 6월~5년)나 주거침입 강간, 특수강간죄(징역 5년~8년)보다 높은 양형기준입니다.

죄질이 극악한 13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강도강간(징역 8년~12년)이나 강간치사(징역 11년~14년)보단 낮습니다.

■ 법률용어 아닌 '디지털 성범죄'…"그대로 유지" "변경해야" 의견 팽팽

이날 양형위는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해당 죄목을 그대로 쓸 것인지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앞선 회의에선 '디지털 성범죄'라는 단어가 '카메라 등 이용촬영 성범죄'를 포함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이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란 단어에 위원 대부분이 회의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위원 대다수가 다른 죄목으로 대체하는 것을 지지했지만, 이번에 개최된 양형위 회의 직전 'n번방 사건'이 터져나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이날 '디지털 성범죄'라는 죄목 자체를 유지하는 것도 무방하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말이 법률용어는 아니지만 현재 다수가 쓰고 있고, 신종 범죄가 등장하는 경우를 대비해 확장성 있는 죄목을 쓰는 것도 무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각에선 '통신매체카메라등이용성범죄'라는 죄목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떻냐는 안을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형위는 디지털성범죄라는 죄목을 그대로 쓸지 결론을 내지 못했습니다.

양형위는 중간에 쉬는 시간을 5분 가졌을 뿐, 오후 3시부터 9시 가까이 되도록 5시간이 넘도록 격론을 벌였습니다. 고성이 오가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양형위는 오는 5월 18일 한 차례 더 논의를 거쳐 '디지털 성범죄'라는 죄목을 계속 쓸지 여부와 양형기준 초안을 확정·의결하고, 1개월 정도의 의견조회를 거쳐 6월 중 공청회를 개최할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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