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로 성착취물 받아 낸 10대…만지지 않아도 ‘강제추행’

입력 2020.04.23 (14:14) 수정 2020.04.2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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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조주빈 사건과 유사한,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받아내는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가해자가 10대 여성청소년입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이 사건을 수사해 지난 21일 피의자인 10대 A 양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A 양의 혐의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과 강요 등입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알게 된 10대 여성 청소년에게 알몸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해 받아낸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성착취물을 받아낸 혐의입니다. A 양과 피해 여성은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사이'라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이런 범죄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 신체 접촉 없더라도 '강제추행' 적용?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던 A 양에게 경찰이 적용한 혐의가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강제추행' 혐의입니다. 경찰은 "신체 접촉이 없더라도 피해자를 협박해 음란 행위를 강요했다면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제추행죄'라고 하면, 상대의 신체를 강제로 만지는 범죄를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하는 것'을 뜻하고, 추행은 법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법 어디에도 '신체 접촉'과 관련된 표현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신체 접촉'이 아니더라도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대법원 "피해자를 도구 삼아 영상물 만들어 받았다면, 강제추행"

대법원 판례를 보죠. 대법원은 2018년 2월,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만난 피해자들을 협박해 나체 사진과 음란 행위가 담긴 영상물을 받아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 대해 '강제추행'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남성은 애초 청소년성보호법 위반과 강제추행, 강요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2심 법원은 강제 추행을 빼고, 나머지 혐의만 성립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직접 접촉이 없었더라도 강제추행죄의 적용이 가능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를 도구 삼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했다면 '강제추행죄의 간접정범'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간접정범이란, 범죄 의사가 없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해 행하는 범죄나 범인을 뜻합니다.

쉽게 풀어보면 사이버상에서 피해자를 협박해 '피해자 스스로 만든 성착취물'을 받았다면, 가해자를 '간접적으로 강제추행 한 범인'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디지털 성범죄의 '성인 피해자'에게 큰 의미"

이런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이용한 사이버 성폭력에 강제추행죄 적용 가능을 적시한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냈고, 일부 법률 관련 저널엔 '강제추행죄의 성립 범위를 넓힌 판결'이라는 평가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박수진 변호사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은 특히 디지털 성범죄의 '성인 피해자'에게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사이버상에서 협박으로 성착취물을 받아낸 사건의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 협박이나 강요죄 등 형법상 일반 범죄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있지만, 이는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의 신체'를 찍은 경우만 처벌할 수 있어 적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처럼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 성인 피해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도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기에 더욱 의미 있습니다. 앞서 지난 13일 검찰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강제추행 등 14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는데요. 앞으로 유사 n번방 관련 사건에서도 강제추행죄 적용이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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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신저로 성착취물 받아 낸 10대…만지지 않아도 ‘강제추행’
    • 입력 2020-04-23 14:14:51
    • 수정2020-04-23 14:40:56
    취재K
'박사방' 조주빈 사건과 유사한, 미성년자를 협박해 성착취물을 받아내는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가해자가 10대 여성청소년입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이 사건을 수사해 지난 21일 피의자인 10대 A 양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A 양의 혐의는 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과 강요 등입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알게 된 10대 여성 청소년에게 알몸 사진을 보내라고 요구해 받아낸 뒤,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성착취물을 받아낸 혐의입니다. A 양과 피해 여성은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사이'라고 경찰은 설명했습니다. 이런 범죄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 신체 접촉 없더라도 '강제추행' 적용?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던 A 양에게 경찰이 적용한 혐의가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강제추행' 혐의입니다. 경찰은 "신체 접촉이 없더라도 피해자를 협박해 음란 행위를 강요했다면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제추행죄'라고 하면, 상대의 신체를 강제로 만지는 범죄를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추행하는 것'을 뜻하고, 추행은 법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법 어디에도 '신체 접촉'과 관련된 표현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신체 접촉'이 아니더라도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대법원 "피해자를 도구 삼아 영상물 만들어 받았다면, 강제추행"

대법원 판례를 보죠. 대법원은 2018년 2월,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만난 피해자들을 협박해 나체 사진과 음란 행위가 담긴 영상물을 받아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 대해 '강제추행'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남성은 애초 청소년성보호법 위반과 강제추행, 강요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2심 법원은 강제 추행을 빼고, 나머지 혐의만 성립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직접 접촉이 없었더라도 강제추행죄의 적용이 가능하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를 도구 삼아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했다면 '강제추행죄의 간접정범'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간접정범이란, 범죄 의사가 없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용해 행하는 범죄나 범인을 뜻합니다.

쉽게 풀어보면 사이버상에서 피해자를 협박해 '피해자 스스로 만든 성착취물'을 받았다면, 가해자를 '간접적으로 강제추행 한 범인'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 "디지털 성범죄의 '성인 피해자'에게 큰 의미"

이런 대법원의 판결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를 이용한 사이버 성폭력에 강제추행죄 적용 가능을 적시한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문을 냈고, 일부 법률 관련 저널엔 '강제추행죄의 성립 범위를 넓힌 판결'이라는 평가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박수진 변호사는 "2018년 대법원 판결은 특히 디지털 성범죄의 '성인 피해자'에게 의미 있다"고 말합니다. 사이버상에서 협박으로 성착취물을 받아낸 사건의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 협박이나 강요죄 등 형법상 일반 범죄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있지만, 이는 의사에 반해 '다른 사람의 신체'를 찍은 경우만 처벌할 수 있어 적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처럼 강제추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면, 성인 피해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도 '성범죄'로 처벌할 수 있기에 더욱 의미 있습니다. 앞서 지난 13일 검찰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강제추행 등 14개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는데요. 앞으로 유사 n번방 관련 사건에서도 강제추행죄 적용이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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