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회사버스 운행 중 사고도 기사가 물어라?…“그건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

입력 2020.04.28 (11:00) 수정 2020.04.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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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몰던 기사가 사고를 냈습니다. 운행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니, 회사가 가입한 보험으로 처리하는 게 정상 절차입니다. 그런데 일부 버스회사들이 보험료 상승을 우려해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비용을 버스 기사들에게 받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십수 년 이어온 관행…가해 사고는 보험 처리 꿈도 못 꿔"

제보자인 김명석 씨는 지난 1999년, 한 종합 물류회사에 입사해 20년 가까이 사고 처리 업무만을 맡아왔습니다. 지난 2015년 10월부터는 2년 넘게 계열사인 경기도 김포의 한 버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역시 '사고 처리'업무를 맡았습니다.

김 씨는 "기사들이 사고를 내서 '가해 차량'이 되는 가해 사고가 났을 때도, 일단 보험사에 접수시키고 추후 기사들의 잘잘못을 따져야 하지만 내가 일한 곳에선 그렇지 않았다"라면서, 가해 사고가 나면 회사 측이 기사들의 사비로 사고 처리를 하도록 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제공한 사고 처리 관련 문건의 일부. 버스가 세차장에 들어서다 세차기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지만, 기사의 책임으로 생긴 사고인 것처럼 비용을 본인이 내도록 하고 ‘본인 처리’라고 적었다.김 씨가 제공한 사고 처리 관련 문건의 일부. 버스가 세차장에 들어서다 세차기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지만, 기사의 책임으로 생긴 사고인 것처럼 비용을 본인이 내도록 하고 ‘본인 처리’라고 적었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2017년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치에 해당하는 사고 처리 관련 내부 문건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업무 일지라고 표시된 이 자료에는 매일 매일 사고 내용과 처리 경과 보고가 적혀있습니다. 기사들이 낸 가해 사고나 자차 사고는 '본인 처리' 했다고 적힌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본인 처리'가 붙지 않은 가해 사과와 자차 사고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기사들이 직접 처리 비용을 부담했다고 말했습니다.

수리비는 버스회사가 운영하는 수리공장 관계자 계좌로…

이 회사와 모기업이 같은 포천의 한 시내버스회사에 근무했던 A 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A 씨는 2년 전인 2018년 1월, 버스 운행 중 눈이 내린 비탈길을 운행하다 미끄러지면서 가로등과 가로수를 들이받았습니다. 버스 수리비로 2백만 원가량이 나왔지만, 회사에서는 전적으로 A 씨에게 비용을 처리하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계좌를 줬는데, 다름 아닌 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 수리공장 관계자의 것이었습니다.

"기사들이 사고 기록·징계 두려워 '알아서' 해온 것"

이 버스회사들은 어떤 입장일까요?

김 씨가 사고처리를 담당했었던 경기도 김포의 버스회사 관계자는 "완전히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고 처리를 기사에게 떠넘기는 일 자체가 없었고, 특히 김 씨가 근무했던 2015~2017년 동안은 더더욱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겁니다.

다만, 자차 사고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고의 경우엔 징계를 받거나 사고 기록이 남아 추후에 이직이나 급여 등에서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한 기사들이 '알아서' 처리한 때도 있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A 씨가 근무했던 포천의 버스회사 관계자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간혹 회사를 통해 가해 사고 처리를 하게 되면, 버스 기사가 징계나 벌점을 받게 되니, 현장에서 피해자와 기사가 사고 처리를 하면 회사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라는 겁니다.

즉, 사고가 난지 몰랐을 때를 빼곤 모두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보험 처리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역시 기사가 '자발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A 씨 사례의 경우도 버스회사 측은 '사고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버스 기사'와 '본사의 문책을 피하려는 영업소장'이 간혹 수리 공장 관계자와 입을 맞추고 본사에 보고하지 않고 보험 처리 없이 수리비를 정산하는 때도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와 A 씨의 말은 다릅니다. "사고가 났을 땐 분명히 회사 차원의 압박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양측의 엇갈리는 입장은 수사기관이 확인해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KBS에 제보해 온 김명석 씨는 경찰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버스회사에 사고는 불가피...기사에 떠넘기면 직장 내 괴롭힘"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는 이것이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말합니다. 버스 회사가 사고처리 비용을 어떤 형태로든 버스 기사들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직장갑질119의 박다혜 변호사는 "버스 사고 자체는 버스 운전을 할 때 사업 자체에 내재한 위험 요소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회사가 원칙적으로 보험 처리를 통해 손해 배상을 해야 하고, 음주운전 등 중대한 법규 위반을 한 게 아닌 이상 기사에게 사고 처리를 맡기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직장갑질119’의 박다혜 변호사 ‘직장갑질119’의 박다혜 변호사

'기사들이 알아서 했고, 일종의 관행'이라는 버스회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박 변호사는 "기사들은 해고와 같은 징계 위협을 받을 수 있어 회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박 변호사는 각각의 사고 사례 별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노사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현재도 버스 사고 비용을 기사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단체협약으로 못 하게 돼 있지만 내용이 두루뭉술하다보니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단체협약 등 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버스회사들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관행'의 이름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아닌, 보다 강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박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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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회사버스 운행 중 사고도 기사가 물어라?…“그건 ‘직장 내 괴롭힘’이에요”
    • 입력 2020-04-28 11:00:10
    • 수정2020-04-28 11:00:18
    취재후·사건후
버스를 몰던 기사가 사고를 냈습니다. 운행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이니, 회사가 가입한 보험으로 처리하는 게 정상 절차입니다. 그런데 일부 버스회사들이 보험료 상승을 우려해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비용을 버스 기사들에게 받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십수 년 이어온 관행…가해 사고는 보험 처리 꿈도 못 꿔"

제보자인 김명석 씨는 지난 1999년, 한 종합 물류회사에 입사해 20년 가까이 사고 처리 업무만을 맡아왔습니다. 지난 2015년 10월부터는 2년 넘게 계열사인 경기도 김포의 한 버스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역시 '사고 처리'업무를 맡았습니다.

김 씨는 "기사들이 사고를 내서 '가해 차량'이 되는 가해 사고가 났을 때도, 일단 보험사에 접수시키고 추후 기사들의 잘잘못을 따져야 하지만 내가 일한 곳에선 그렇지 않았다"라면서, 가해 사고가 나면 회사 측이 기사들의 사비로 사고 처리를 하도록 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제공한 사고 처리 관련 문건의 일부. 버스가 세차장에 들어서다 세차기가 탈선하는 사고가 났지만, 기사의 책임으로 생긴 사고인 것처럼 비용을 본인이 내도록 하고 ‘본인 처리’라고 적었다.
김 씨는 취재진에게 2017년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치에 해당하는 사고 처리 관련 내부 문건을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업무 일지라고 표시된 이 자료에는 매일 매일 사고 내용과 처리 경과 보고가 적혀있습니다. 기사들이 낸 가해 사고나 자차 사고는 '본인 처리' 했다고 적힌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 씨는 '본인 처리'가 붙지 않은 가해 사과와 자차 사고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기사들이 직접 처리 비용을 부담했다고 말했습니다.

수리비는 버스회사가 운영하는 수리공장 관계자 계좌로…

이 회사와 모기업이 같은 포천의 한 시내버스회사에 근무했던 A 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습니다.

A 씨는 2년 전인 2018년 1월, 버스 운행 중 눈이 내린 비탈길을 운행하다 미끄러지면서 가로등과 가로수를 들이받았습니다. 버스 수리비로 2백만 원가량이 나왔지만, 회사에서는 전적으로 A 씨에게 비용을 처리하도록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계좌를 줬는데, 다름 아닌 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버스 수리공장 관계자의 것이었습니다.

"기사들이 사고 기록·징계 두려워 '알아서' 해온 것"

이 버스회사들은 어떤 입장일까요?

김 씨가 사고처리를 담당했었던 경기도 김포의 버스회사 관계자는 "완전히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고 처리를 기사에게 떠넘기는 일 자체가 없었고, 특히 김 씨가 근무했던 2015~2017년 동안은 더더욱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겁니다.

다만, 자차 사고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사고의 경우엔 징계를 받거나 사고 기록이 남아 추후에 이직이나 급여 등에서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한 기사들이 '알아서' 처리한 때도 있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A 씨가 근무했던 포천의 버스회사 관계자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습니다. "간혹 회사를 통해 가해 사고 처리를 하게 되면, 버스 기사가 징계나 벌점을 받게 되니, 현장에서 피해자와 기사가 사고 처리를 하면 회사가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라는 겁니다.

즉, 사고가 난지 몰랐을 때를 빼곤 모두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보험 처리를 했다는 주장입니다. 역시 기사가 '자발적으로' 처리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A 씨 사례의 경우도 버스회사 측은 '사고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버스 기사'와 '본사의 문책을 피하려는 영업소장'이 간혹 수리 공장 관계자와 입을 맞추고 본사에 보고하지 않고 보험 처리 없이 수리비를 정산하는 때도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와 A 씨의 말은 다릅니다. "사고가 났을 땐 분명히 회사 차원의 압박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양측의 엇갈리는 입장은 수사기관이 확인해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KBS에 제보해 온 김명석 씨는 경찰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버스회사에 사고는 불가피...기사에 떠넘기면 직장 내 괴롭힘"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는 이것이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말합니다. 버스 회사가 사고처리 비용을 어떤 형태로든 버스 기사들에게 떠넘겨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직장갑질119의 박다혜 변호사는 "버스 사고 자체는 버스 운전을 할 때 사업 자체에 내재한 위험 요소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회사가 원칙적으로 보험 처리를 통해 손해 배상을 해야 하고, 음주운전 등 중대한 법규 위반을 한 게 아닌 이상 기사에게 사고 처리를 맡기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직장갑질119’의 박다혜 변호사
'기사들이 알아서 했고, 일종의 관행'이라는 버스회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박 변호사는 "기사들은 해고와 같은 징계 위협을 받을 수 있어 회사가 부당한 요구를 하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박 변호사는 각각의 사고 사례 별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노사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현재도 버스 사고 비용을 기사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단체협약으로 못 하게 돼 있지만 내용이 두루뭉술하다보니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단체협약 등 제도적인 정비와 함께, 버스회사들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관행'의 이름으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 아닌, 보다 강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박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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