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전입신고’와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입력 2020.04.28 (11:18) 수정 2020.04.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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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기 빛' 같았던 재난지원금

프리랜서 영어 강사 윤혜경 씨는 지난 2월 대전에서 과외 교습소를 열었습니다. 18년 동안 문화센터와 개인 가정에서 '메뚜기' 강의를 해 왔던 터라, 감회도 남달랐습니다. 전단지를 막 돌리기 시작할 때쯤,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했습니다. 그러더니 곧 휴업권고가 떨어졌습니다. 문의 전화는커녕, 이미 등록했던 학생들도 떠나갔습니다.

두 달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월세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안 됐기 때문입니다. 80만 원짜리 월세가 두 달간 연체되자마자 임대인이 계약서 조항을 들어 계약 해지를 요구했습니다. 위약금인 세 달 치 월세까지 더해서 모두 400만 원은 보증금에서 제했습니다. 윤 씨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대전을 떠나 차로 30분 거리의 충남 금산군으로 이사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이 다쳐 일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신용대출 연체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카드 값이 밀리고 전기와 가스를 끊겠다며 독촉장이 날아들 때 쯤, 긴급생활안정자금을 준다는 현수막을 발견했습니다. "숨이 넘어가겠다 싶었는데, 한 줄기 빛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윤 씨는 말했습니다.

■ '전입신고일' 못 맞춰 대상자에서 누락

당장 전화로 문의했습니다. '가구별 기준중위 소득 120% 이하'라는 소득 기준에도 맞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근로 형태도 충족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막혔습니다. 바로 전입신고일 기준입니다.

윤 씨는 3월 8일 충남 금산군으로 전입신고를 했는데, 충청남도의 경우 '2020년 1월 31일 이전에 충청남도 내에 주소지를 둔 주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원래 살던 곳에 물어보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대전의 경우는 또 달라서, '2020년 3월 24일 기준부터 현재까지 대전에 주민등록을 둔 시민'이 대상이었습니다. 3월 8일에 대전에서 전출한 윤 씨는 이번에도 지원 대상에서 비껴갔습니다.

■ 지자체 사업… 대상과 기준은 제각각

이런 일이 발생한 건 현재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이 대개 각 자치단체별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자치단체별로 재난긴급생활비', '긴급생활안정지원금', '재난기본소득' 등 이름도 조금씩 다른 건 그 때문입니다. 대상과 기준도 조금씩 다릅니다.

가령 윤 씨가 살던 대전의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게 가구원 수에 따라 30만 원에서 56만 원까지 지원합니다. 전입신고 기준일은 3월 24일인데, 이 사업의 계획을 수립한 날짜를 기준 삼았습니다. 근로 여부는 따지지 않습니다.

반면 윤 씨가 이사 간 충남의 '긴급생활안정자금'은 실직·휴직한 근로자,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직한 시점(2월 또는 3월)을 따지게 되고, 전입신고일은 그보다 이른 1월 31일로 정해졌습니다. 충남도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도 지원하고 있는데, 이 경우 공고일인 4월 3일을 기준으로, 영업장의 주소지와 대표자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모두 따집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자치단체마다 다르다는 점은 경기도를 보면 더 확실히 드러납니다. 이름부터 '재난기본소득'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붙인 만큼, 소득이나 업종의 제한 없이 전 도민을 대상으로 하고, 외국인 대상 지원도 추진중입니다. 다만 3월 23일 이전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합니다.

■ 주민등록은 '공증'…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 세우는 방법도

지역별 주민센터나 구청 등에는 윤 씨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게 접수된다고 합니다. 각 지역의 인터넷 카페에도 이 같은 고민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2월 한달 동안 광역시·도 사이를 이동한 인구는 27만 5천 명이 넘는 만큼, 이 사각지대에 걸리는 인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동전의 양면'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치단체의 재원이 직접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자치단체의 경영에 도움을 주거나 주민으로서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에게 배타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를 '공증'할 수 있는 사람, 즉 주민등록을 둔 사람한테만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방자치제도의 원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법령용어로서 지방자치는 '일정한 지역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부담과 책임으로 처리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됩니다. (법제처·한국법제연구원, 「법령용어사례집」)

하지만 성격이 어느 정도 비슷한 지원금이라면, 시행 전에 자치단체별로 어느 정도 조율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김환철 경민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상황에 따라 지급 기준이나 시행 날짜를 두고 자치단체끼리 협약을 하거나, 광역자치단체가 '컨트롤타워'가 돼서 기준을 조율하는 방법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코로나19 사태로 매우 급하기도 했고 재난지원금을 전국 규모로 시행했던 전례가 없어 조금 허점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행정안전부가 전국적인 기준이나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자체별로 따질 수 있게 하향식으로 지침을 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서 윤혜경 씨는 지금대로라면 '긴급'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더딘' 재난지원금이라고 말했다가, 더디더라도 받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고쳐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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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4-28 11:18:58
    • 수정2020-04-28 11:19:04
    취재후·사건후
■ '한 줄기 빛' 같았던 재난지원금

프리랜서 영어 강사 윤혜경 씨는 지난 2월 대전에서 과외 교습소를 열었습니다. 18년 동안 문화센터와 개인 가정에서 '메뚜기' 강의를 해 왔던 터라, 감회도 남달랐습니다. 전단지를 막 돌리기 시작할 때쯤, '코로나19'가 갑자기 확산했습니다. 그러더니 곧 휴업권고가 떨어졌습니다. 문의 전화는커녕, 이미 등록했던 학생들도 떠나갔습니다.

두 달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월세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가늠조차 안 됐기 때문입니다. 80만 원짜리 월세가 두 달간 연체되자마자 임대인이 계약서 조항을 들어 계약 해지를 요구했습니다. 위약금인 세 달 치 월세까지 더해서 모두 400만 원은 보증금에서 제했습니다. 윤 씨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대전을 떠나 차로 30분 거리의 충남 금산군으로 이사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이 다쳐 일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신용대출 연체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카드 값이 밀리고 전기와 가스를 끊겠다며 독촉장이 날아들 때 쯤, 긴급생활안정자금을 준다는 현수막을 발견했습니다. "숨이 넘어가겠다 싶었는데, 한 줄기 빛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윤 씨는 말했습니다.

■ '전입신고일' 못 맞춰 대상자에서 누락

당장 전화로 문의했습니다. '가구별 기준중위 소득 120% 이하'라는 소득 기준에도 맞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근로 형태도 충족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막혔습니다. 바로 전입신고일 기준입니다.

윤 씨는 3월 8일 충남 금산군으로 전입신고를 했는데, 충청남도의 경우 '2020년 1월 31일 이전에 충청남도 내에 주소지를 둔 주민'만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원래 살던 곳에 물어보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대전의 경우는 또 달라서, '2020년 3월 24일 기준부터 현재까지 대전에 주민등록을 둔 시민'이 대상이었습니다. 3월 8일에 대전에서 전출한 윤 씨는 이번에도 지원 대상에서 비껴갔습니다.

■ 지자체 사업… 대상과 기준은 제각각

이런 일이 발생한 건 현재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이 대개 각 자치단체별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자치단체별로 재난긴급생활비', '긴급생활안정지원금', '재난기본소득' 등 이름도 조금씩 다른 건 그 때문입니다. 대상과 기준도 조금씩 다릅니다.

가령 윤 씨가 살던 대전의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게 가구원 수에 따라 30만 원에서 56만 원까지 지원합니다. 전입신고 기준일은 3월 24일인데, 이 사업의 계획을 수립한 날짜를 기준 삼았습니다. 근로 여부는 따지지 않습니다.

반면 윤 씨가 이사 간 충남의 '긴급생활안정자금'은 실직·휴직한 근로자,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직한 시점(2월 또는 3월)을 따지게 되고, 전입신고일은 그보다 이른 1월 31일로 정해졌습니다. 충남도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도 지원하고 있는데, 이 경우 공고일인 4월 3일을 기준으로, 영업장의 주소지와 대표자의 주민등록 주소지를 모두 따집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 자치단체마다 다르다는 점은 경기도를 보면 더 확실히 드러납니다. 이름부터 '재난기본소득'으로 '기본소득' 개념을 붙인 만큼, 소득이나 업종의 제한 없이 전 도민을 대상으로 하고, 외국인 대상 지원도 추진중입니다. 다만 3월 23일 이전에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합니다.

■ 주민등록은 '공증'…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 세우는 방법도

지역별 주민센터나 구청 등에는 윤 씨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게 접수된다고 합니다. 각 지역의 인터넷 카페에도 이 같은 고민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2월 한달 동안 광역시·도 사이를 이동한 인구는 27만 5천 명이 넘는 만큼, 이 사각지대에 걸리는 인원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지만, '동전의 양면'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치단체의 재원이 직접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자치단체의 경영에 도움을 주거나 주민으로서 의무를 부담하는 사람에게 배타적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를 '공증'할 수 있는 사람, 즉 주민등록을 둔 사람한테만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방자치제도의 원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법령용어로서 지방자치는 '일정한 지역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의 부담과 책임으로 처리해 나가는 것'이라고 규정됩니다. (법제처·한국법제연구원, 「법령용어사례집」)

하지만 성격이 어느 정도 비슷한 지원금이라면, 시행 전에 자치단체별로 어느 정도 조율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김환철 경민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상황에 따라 지급 기준이나 시행 날짜를 두고 자치단체끼리 협약을 하거나, 광역자치단체가 '컨트롤타워'가 돼서 기준을 조율하는 방법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코로나19 사태로 매우 급하기도 했고 재난지원금을 전국 규모로 시행했던 전례가 없어 조금 허점들이 있었던 것 같다"며 "행정안전부가 전국적인 기준이나 원칙을 정하고 그것을 지자체별로 따질 수 있게 하향식으로 지침을 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마지막 부분에서 윤혜경 씨는 지금대로라면 '긴급'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더딘' 재난지원금이라고 말했다가, 더디더라도 받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고쳐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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