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조등 켜서 발언권 요청한다, 재건축 ‘드라이브 스루’ 총회

입력 2020.04.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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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시는 분은 비상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안건에 대한 발언권을 얻고 싶으신 분은 전조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오늘(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에서 정비 사업으로는 최초로 차에 탑승한 채 안건을 의결하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조합 총회가 열렸습니다.

지난달 30일 개포중학교에서 총회를 열기로 했다가 코로나19 확산 상황과 서울시와 국토부의 만류로 계획을 한 차례 미룬 바 있는데, 이번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잘 지켜진다면 드라이브 스루 형식의 총회까지는 막을 명분이 없다며 사실상 허락해 준 겁니다.

아침 일찍부터 단지 공터 진입로에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긴 차량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은 차에 탑승한 채 총회장으로 입장했고, 온 순서에 따라 방역복을 입은 진행 요원들이 신분증을 확인한 뒤 서면 동의서를 한 장씩 나눠줬습니다.


차를 이용하지 못한 조합원들은 입구에서 체온 측정을 하고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앞뒤, 좌우로 1m씩 떨어진 의자에 착석해 참석했습니다. 애초에는 1인용 텐트를 조합 측에서 나눠주기로 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취재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합 관계자는 "차량 없이 참석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연단 앞에 1인용 텐트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개원초등학교 내에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포주공1단지의 전체 조합원은 5,132명으로, 이번 총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전체 조합원이 20%인 1,027명 이상이 현장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날 총회 현장에는 1,300명 이상의 조합원이 참석해 총회 개최 요건은 충족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에 예정보다 30분가량 시작이 늦어져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조합장이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건을 모두 상정하고 동의하면 비상등을, 발언권을 얻고 싶으면 전조등을 켜서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배인연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장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것은 재건축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마지막 관문인 관리처분변경총회를 마치면 신속히 인가를 받고 착공신고를 거쳐 6월 말에는 일반 분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차에서 내릴 필요 없이 조합 측이 중계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 가능했습니다. 안건 설명이 끝나자, 사륜 오토바이를 탄 진행 요원들이 하나둘 투표용지를 걷었습니다. 이날 동원된 사륜 오토바이는 50여 대 정도였습니다.

한 조합원은 "코로나 이후 다양한 드라이브 스루가 많아졌는데 재건축 조합 총회를 드라이브 스루로 하는 건 난생처음"이라면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진행되다 보니 대면 접촉할 일이 없어 안전한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전국 첫 번째 시도인 만큼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이 무색하게 조합원 대부분이 차 밖으로 나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고, 용지를 받지 못해 차에서 나와 줄을 서다가 진행 요원과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한 조합원은 "안내를 받고 주차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진행 요원이 오지 않았다"며 "날씨도 더운데 투표용지조차 받지 못하고 차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재건축 재개발 조합의 총회도 드라이브 스루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조합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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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전조등 켜서 발언권 요청한다, 재건축 ‘드라이브 스루’ 총회
    • 입력 2020-04-28 18:54:58
    취재K
"동의하시는 분은 비상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안건에 대한 발언권을 얻고 싶으신 분은 전조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오늘(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에서 정비 사업으로는 최초로 차에 탑승한 채 안건을 의결하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조합 총회가 열렸습니다.

지난달 30일 개포중학교에서 총회를 열기로 했다가 코로나19 확산 상황과 서울시와 국토부의 만류로 계획을 한 차례 미룬 바 있는데, 이번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잘 지켜진다면 드라이브 스루 형식의 총회까지는 막을 명분이 없다며 사실상 허락해 준 겁니다.

아침 일찍부터 단지 공터 진입로에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긴 차량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조합원들은 차에 탑승한 채 총회장으로 입장했고, 온 순서에 따라 방역복을 입은 진행 요원들이 신분증을 확인한 뒤 서면 동의서를 한 장씩 나눠줬습니다.


차를 이용하지 못한 조합원들은 입구에서 체온 측정을 하고 이상이 없는 경우에만 앞뒤, 좌우로 1m씩 떨어진 의자에 착석해 참석했습니다. 애초에는 1인용 텐트를 조합 측에서 나눠주기로 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취재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합 관계자는 "차량 없이 참석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연단 앞에 1인용 텐트를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비용 문제 등을 고려해 개원초등학교 내에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개포주공1단지의 전체 조합원은 5,132명으로, 이번 총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전체 조합원이 20%인 1,027명 이상이 현장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날 총회 현장에는 1,300명 이상의 조합원이 참석해 총회 개최 요건은 충족했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에 예정보다 30분가량 시작이 늦어져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조합장이 연단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건을 모두 상정하고 동의하면 비상등을, 발언권을 얻고 싶으면 전조등을 켜서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배인연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장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것은 재건축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마지막 관문인 관리처분변경총회를 마치면 신속히 인가를 받고 착공신고를 거쳐 6월 말에는 일반 분양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차에서 내릴 필요 없이 조합 측이 중계하는 유튜브 방송을 보면 가능했습니다. 안건 설명이 끝나자, 사륜 오토바이를 탄 진행 요원들이 하나둘 투표용지를 걷었습니다. 이날 동원된 사륜 오토바이는 50여 대 정도였습니다.

한 조합원은 "코로나 이후 다양한 드라이브 스루가 많아졌는데 재건축 조합 총회를 드라이브 스루로 하는 건 난생처음"이라면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진행되다 보니 대면 접촉할 일이 없어 안전한 것 같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전국 첫 번째 시도인 만큼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이 무색하게 조합원 대부분이 차 밖으로 나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었고, 용지를 받지 못해 차에서 나와 줄을 서다가 진행 요원과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한 조합원은 "안내를 받고 주차한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진행 요원이 오지 않았다"며 "날씨도 더운데 투표용지조차 받지 못하고 차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재건축 재개발 조합의 총회도 드라이브 스루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 총회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조합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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