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유실된 해양관측 장비, 美 해안서 발견…어떤 사연이?

입력 2020.04.29 (15:3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도시노 곶 주변 해안가를 거닐던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한 직원이 낯선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삼각대로 둘러싸인 지름 70cm 정도 구형의 물체에는 놀랍게도 한글 문구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직원은 한국인 동료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수소문 끝에 괴물체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2014년 7월 제주 서귀포 남쪽 해상에서 유실된 기상청 해양관측 장비(파고 부이)였습니다.

2014년 태풍 '나크리' 북상 때 유실

5년 8개월, 날짜로는 2천 여일 만에 발견된 이 장비는 어쩌다 태평양 건너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발견된 걸까요? 실종 당시의 상황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실종 당시 기록은 기상청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관측 장비인 만큼 관측 기록과 자신의 상태를 통신을 통해 매시간 전송하기 때문이죠.

 2014년 7월 31일 ~ 8월 1일 서귀포 파고부이 유실 경로 정보 2014년 7월 31일 ~ 8월 1일 서귀포 파고부이 유실 경로 정보

2014년 7월 31일 아침까지만 해도 이 장비는 자신이 머물던 서귀포시 남쪽 바다에서 파고와 수온을 측정하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11시 무렵 이상 신호가 감지됩니다. 부이가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다음 날인 8월 1일 오전 부이는 더욱 서쪽으로 이동해 제주 남서쪽 해상을 표류합니다. 그러다 점차 북서쪽으로 이동해 같은 날 밤 8시쯤 제주 고산에서 13km 북서쪽 해상에서 교신이 끊겼습니다. 그 뒤 소식이 없던 서귀포 부이가 2천여 일 만에 미국 서쪽 해안가에서 발견된 겁니다.

한 곳에 고정돼 파고를 관측하던 이 부이는 어쩌다 망망대해를 헤매게 된 걸까? 기상청은 당시 서해를 향해 북상하던 12호 태풍 '나크리'에 간접 원인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태풍 북상 소식에 서둘러 피항하던 선박이 부이의 고정 장치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해류 따라 제주→동해→북태평양→캘리포니아 이동 추정

고정 장치를 잃은 부이는 해류에 실려 긴 여행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신이 끊겨 정확한 경로를 알 수는 없지만, 기상청은 부이가 동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유승협 기상청 해양기상과장은 "몇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부이가 대마난류를 따라 대한해협을 통과해 동해를 거친 뒤 일본 홋카이도 섬 부근 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 주변 해류 모식도. [자료 : 국립해양조사원]한반도 주변 해류 모식도. [자료 : 국립해양조사원]


태평양 아열대 순환 해류 모식도. [자료 : 기상청]태평양 아열대 순환 해류 모식도. [자료 : 기상청]

북태평양에 진출한 부이는 구로시오 해류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해류를 따라 마침내 미국 서부 해안에 도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5년 8개월 만에 도착…일본 원전 오염수 확산 시간과 비슷

이번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일본 원전 오염수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부이가 유실되기 1년 전인 2013년, 해양수산부는 일본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한반도 영향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확산 속도 계산을 자문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일본 후쿠시마에서 오염수가 미국 연안에 도달하기까지 5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서귀포 파고 부이가 미 서부 해안에 도달 직후 발견된 것이라면 이 같은 계산이 대략 들어맞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귀포에서 유실된 지 5년 8개월 만에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하루 약 4.4km의 속도로 제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 9,065km의 태평양을 횡단했을 때 걸리는 시간입니다.

2012년 독일 킬 해양과학연구소가 공개한 일본 원전 오염수(세슘-137)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2012년 독일 킬 해양과학연구소가 공개한 일본 원전 오염수(세슘-137)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

그동안 해외에서도 일본의 원전 오염수가 미국 서부 연안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연구는 여러 차례 제기돼 왔습니다. 독일 킬 해양과학연구소는 동일본대지진 1년 뒤인 2012년 일본의 원전 오염수가 5~6년 뒤에는 북태평양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처리하기 어려워진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6년 전 태풍에 유실됐던 해양관측 장비가 뜻하지 않게 원전 오염수의 전 세계적인 위험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셈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6년 전 유실된 해양관측 장비, 美 해안서 발견…어떤 사연이?
    • 입력 2020-04-29 15:34:17
    취재K
지난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도시노 곶 주변 해안가를 거닐던 스크립스 해양연구소의 한 직원이 낯선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삼각대로 둘러싸인 지름 70cm 정도 구형의 물체에는 놀랍게도 한글 문구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 직원은 한국인 동료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수소문 끝에 괴물체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2014년 7월 제주 서귀포 남쪽 해상에서 유실된 기상청 해양관측 장비(파고 부이)였습니다.

2014년 태풍 '나크리' 북상 때 유실

5년 8개월, 날짜로는 2천 여일 만에 발견된 이 장비는 어쩌다 태평양 건너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발견된 걸까요? 실종 당시의 상황부터 확인해 봤습니다.

실종 당시 기록은 기상청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관측 장비인 만큼 관측 기록과 자신의 상태를 통신을 통해 매시간 전송하기 때문이죠.

 2014년 7월 31일 ~ 8월 1일 서귀포 파고부이 유실 경로 정보
2014년 7월 31일 아침까지만 해도 이 장비는 자신이 머물던 서귀포시 남쪽 바다에서 파고와 수온을 측정하는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전 11시 무렵 이상 신호가 감지됩니다. 부이가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다음 날인 8월 1일 오전 부이는 더욱 서쪽으로 이동해 제주 남서쪽 해상을 표류합니다. 그러다 점차 북서쪽으로 이동해 같은 날 밤 8시쯤 제주 고산에서 13km 북서쪽 해상에서 교신이 끊겼습니다. 그 뒤 소식이 없던 서귀포 부이가 2천여 일 만에 미국 서쪽 해안가에서 발견된 겁니다.

한 곳에 고정돼 파고를 관측하던 이 부이는 어쩌다 망망대해를 헤매게 된 걸까? 기상청은 당시 서해를 향해 북상하던 12호 태풍 '나크리'에 간접 원인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태풍 북상 소식에 서둘러 피항하던 선박이 부이의 고정 장치를 훼손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해류 따라 제주→동해→북태평양→캘리포니아 이동 추정

고정 장치를 잃은 부이는 해류에 실려 긴 여행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통신이 끊겨 정확한 경로를 알 수는 없지만, 기상청은 부이가 동해를 거쳐 태평양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유승협 기상청 해양기상과장은 "몇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부이가 대마난류를 따라 대한해협을 통과해 동해를 거친 뒤 일본 홋카이도 섬 부근 해협을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 주변 해류 모식도. [자료 : 국립해양조사원]

태평양 아열대 순환 해류 모식도. [자료 : 기상청]
북태평양에 진출한 부이는 구로시오 해류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해류를 따라 마침내 미국 서부 해안에 도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5년 8개월 만에 도착…일본 원전 오염수 확산 시간과 비슷

이번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일본 원전 오염수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부이가 유실되기 1년 전인 2013년, 해양수산부는 일본 원전 방사능 오염수의 한반도 영향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확산 속도 계산을 자문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일본 후쿠시마에서 오염수가 미국 연안에 도달하기까지 5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서귀포 파고 부이가 미 서부 해안에 도달 직후 발견된 것이라면 이 같은 계산이 대략 들어맞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귀포에서 유실된 지 5년 8개월 만에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하루 약 4.4km의 속도로 제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 9,065km의 태평양을 횡단했을 때 걸리는 시간입니다.

2012년 독일 킬 해양과학연구소가 공개한 일본 원전 오염수(세슘-137) 확산 시뮬레이션 결과
그동안 해외에서도 일본의 원전 오염수가 미국 서부 연안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연구는 여러 차례 제기돼 왔습니다. 독일 킬 해양과학연구소는 동일본대지진 1년 뒤인 2012년 일본의 원전 오염수가 5~6년 뒤에는 북태평양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는 더 이상 처리하기 어려워진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6년 전 태풍에 유실됐던 해양관측 장비가 뜻하지 않게 원전 오염수의 전 세계적인 위험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셈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