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긴장 재고조…왜 문제인가?

입력 2020.05.0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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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부활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연립정부 구성으로 다시 총리직을 맡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가 주장해온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도 재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내 긴장감도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수도인 서안 지구 라말라의 중심가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수도인 서안 지구 라말라의 중심가

요르단강의 서쪽 둔치 지역인 서안(西岸)지구는 가자 지구와 함께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 지역입니다. 취재진이 서안 지구를 방문한 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올해 초였습니다. 이스라엘 공보실에서 취재 허가를 받은 뒤 예루살렘에서 차를 타고 서안 지구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수도 라말라로 향했습니다.

깔끔했던 예루살렘의 도시 풍경은 사라지고 낙후되고 번잡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라말라의 중심부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벤츠와 아우디 같은 고급 외제 차량도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내 중심부에서는 이스라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이요? 우리 한국 사랑해요”“한국이요? 우리 한국 사랑해요”

차에서 내려 거리를 걷기 시작하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Korea'라고 대답하면 South인지 North인지 되물었습니다. 북한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터라 북한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식은 우호적인 편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한류 덕분에 'South Korea'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습니다. K-POP은 이곳에서도 인기인 듯했습니다. 한류 팬을 자처하는 여학생들도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민 인터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 팔레스타인 경제 문제 등을 물어보면 대부분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마이크만 대면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넘쳐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였습니다. 휴대폰 가게의 한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 무슨 말을 하겠소?"

분리 장벽 검문소 통과를 기다리는 팔레스타인 주민 차량들분리 장벽 검문소 통과를 기다리는 팔레스타인 주민 차량들

한 남성은 인터뷰는 사양하면서 대신 지갑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발급한 노동허가증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주민 수만 명이 분리 장벽을 넘어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그때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한 서류였습니다. 서안 지구에 일자리가 없다 보니 이스라엘 지역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괜한 말을 했다가 예루살렘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곳 주민들이 굳이 인터뷰에 응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팔레스타인이 처한 모순과 연결됩니다.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독립을 외치면서, 분리 장벽은 반대하는 걸까. 차라리 저 분리 장벽을 국경으로 삼으면 되지 않나?"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팔레스타인의 경제가 이스라엘에 예속된 상황에서 분리 장벽은 생계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차별 장벽인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테러 위협 차단을 위해 수시로 분리 장벽의 검문소를 폐쇄하는데,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출퇴근 노동자들은 일당을 날릴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분리 장벽 인근에서 연행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2017년.분리 장벽 인근에서 연행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2017년.

더 큰 문제는 이 분리 장벽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총 길이는 이제 700km가 넘습니다.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 길이의 3배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추가로 분리 장벽이 세워지는 곳은 서안 지구 내부 지역입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서안 지구는 자신들의 땅입니다. 그러니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장벽 때문에 길이 끊겨 이동도 어렵고, 지하수가 나오는 곳이 장벽에 가로막힌 곳도 있습니다. 장벽 때문에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벽 곳곳에서는 분노와 항의로 이뤄진 방화의 흔적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장벽 훼손 시도가 있을 때마다 서안 지구 마을을 급습합니다. 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장벽 주변에서 축구를 하던 어린이들이 장벽에 공을 찼다는 이유로 연행을 당한 적도 있다며 취재진에게 당시 영상을 보여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추진되는 헤브론 마을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추진되는 헤브론 마을

서안 지구 내부에 이렇게 분리 장벽이 새로 지어지는 건 이스라엘 정착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안 지구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데, 이후 이스라엘 주민들이 서안 지구에 마을을 형성해 살기 시작했고, 이를 이스라엘 정착촌이라고 부릅니다.

정착촌을 짓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일부는 성지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정착촌을 짓습니다. 헤브론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선지자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유적지 인근은 원래 팔레스타인 주민들 거주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이스라엘 정착촌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새로 들어오는 정착촌 주민들과 하루하루 갈등을 겪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일부 이스라엘 주민들은 예루살렘의 비싼 집값을 피하기 위해 정착촌에 이주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지가 상승을 노린 투자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서안 지구에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서안 지구에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

물론 이런 이스라엘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입니다. 서안 지구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제조약 오슬로 협정이 그 근거입니다. 하지만 정착촌 주민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일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돈을 주고 땅을 사들여서 집을 지은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정착촌 주민도 그랬습니다. 그는 1980년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돈을 주고 땅을 샀고, 심지어 건축도 팔레스타인 건축업자에게 맡겼다고 말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 마을에서는 이스라엘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 큰 갈등이 없었고, 이웃처럼 함께 차도 마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이가 나빠졌고, 땅을 판 팔레스타인 주민은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처형이 됐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주민은 자신의 집이 정당한 절차로 지어진 만큼 합법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서안 지구 면적은 약 5,400㎢로 제주도 면적의 3배 정도인데, 이 안에 거주하는 정착촌 주민 수도 60만 명에 이르러,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수 290만 명의 5분의 1 수준까지 늘어난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니 이스라엘로서는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정착촌을 철수시킨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가 됐습니다. 60만 명을 이주시킨다는 건 서울로 따지면 구(區) 하나 전체를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공보관은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한국어로 "골치 아파요"라고 말하며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물론 이렇게 정착촌이 늘어나는 상황을 이스라엘이 조장하거나 방조했으니, 이스라엘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들고 나온 해법은 정반대입니다.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겠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A 지역 표지판. 이스라엘 주민들은 출입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A 지역 표지판. 이스라엘 주민들은 출입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서안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현재 서안지구는 A, B, C 세 개 지역과 H(헤브론) 지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A 지역은 라말라처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관할하는 곳이고 C 지역은 이스라엘 군이 완전히 통제하는 곳입니다. B 지역은 공동 관리가 이뤄지는 절충 지역입니다. H 지역도 팔레스타인 관할과 이스라엘 관할로 다시 나뉩니다.

이 가운데 정착촌이 들어선 곳은 이스라엘군이 통제하는 C 지역과 일부 H 지역입니다. C 지역의 면적은 서안지구 전체 면적의 60%에 이릅니다. 따라서 정착촌 합병이 이뤄지면 C 지역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서안 지구 지도. 이스라엘 정착촌은 대부분 C 지역에 있다서안 지구 지도. 이스라엘 정착촌은 대부분 C 지역에 있다

물론 이스라엘은 C 지역 정착촌을 합병하는 대가로 다른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타인에 내어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영토 교환'입니다. 이스라엘 내 일부 진보적 인사들도 영토 교환을 주장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평화 구상에도 영토 교환 방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이런 영토 교환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토의 경계선이 울퉁불퉁 이상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으니 교통과 통신 등의 인프라를 발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구멍 난 치즈 같은 영토로 어떻게 나라를 만드느냐"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이라는 규탄만 되풀이하며 실질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예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26일 "몇 달 후 우리는 시오니즘의 또 다른 역사적 순간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정적인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와 연립정부 합의안을 타결했는데, 이 합의안에 따르면 올해 7월 1일부터 이스라엘 의회와 정부는 서안 지구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 법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법적 절차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위해 한때 협력 관계를 구축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다시 정면 대결 태세로 전환했습니다. 올해 여름, 온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의 먹구름이 걷히더라도, 팔레스타인의 하늘은 더 어두워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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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4 09:13:10
    특파원 리포트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부활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연립정부 구성으로 다시 총리직을 맡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네타냐후 총리가 주장해온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도 재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내 긴장감도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수도인 서안 지구 라말라의 중심가
요르단강의 서쪽 둔치 지역인 서안(西岸)지구는 가자 지구와 함께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 지역입니다. 취재진이 서안 지구를 방문한 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인 올해 초였습니다. 이스라엘 공보실에서 취재 허가를 받은 뒤 예루살렘에서 차를 타고 서안 지구 안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임시 행정수도 라말라로 향했습니다.

깔끔했던 예루살렘의 도시 풍경은 사라지고 낙후되고 번잡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라말라의 중심부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벤츠와 아우디 같은 고급 외제 차량도 간간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내 중심부에서는 이스라엘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이요? 우리 한국 사랑해요”
차에서 내려 거리를 걷기 시작하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에 'Korea'라고 대답하면 South인지 North인지 되물었습니다. 북한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터라 북한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식은 우호적인 편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한류 덕분에 'South Korea'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습니다. K-POP은 이곳에서도 인기인 듯했습니다. 한류 팬을 자처하는 여학생들도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민 인터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 문제, 팔레스타인 경제 문제 등을 물어보면 대부분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마이크만 대면 이스라엘을 강하게 비판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넘쳐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였습니다. 휴대폰 가게의 한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 무슨 말을 하겠소?"

분리 장벽 검문소 통과를 기다리는 팔레스타인 주민 차량들
한 남성은 인터뷰는 사양하면서 대신 지갑에서 서류를 한 장 꺼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발급한 노동허가증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주민 수만 명이 분리 장벽을 넘어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그때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한 서류였습니다. 서안 지구에 일자리가 없다 보니 이스라엘 지역에서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괜한 말을 했다가 예루살렘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곳 주민들이 굳이 인터뷰에 응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팔레스타인이 처한 모순과 연결됩니다. "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독립을 외치면서, 분리 장벽은 반대하는 걸까. 차라리 저 분리 장벽을 국경으로 삼으면 되지 않나?"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알고 보면 팔레스타인의 경제가 이스라엘에 예속된 상황에서 분리 장벽은 생계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차별 장벽인 셈입니다. 이스라엘은 테러 위협 차단을 위해 수시로 분리 장벽의 검문소를 폐쇄하는데,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출퇴근 노동자들은 일당을 날릴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분리 장벽 인근에서 연행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 2017년.
더 큰 문제는 이 분리 장벽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총 길이는 이제 700km가 넘습니다.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 길이의 3배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추가로 분리 장벽이 세워지는 곳은 서안 지구 내부 지역입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서안 지구는 자신들의 땅입니다. 그러니 분리 장벽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분노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장벽 때문에 길이 끊겨 이동도 어렵고, 지하수가 나오는 곳이 장벽에 가로막힌 곳도 있습니다. 장벽 때문에 경작지를 잃은 농민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장벽 곳곳에서는 분노와 항의로 이뤄진 방화의 흔적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은 장벽 훼손 시도가 있을 때마다 서안 지구 마을을 급습합니다. 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장벽 주변에서 축구를 하던 어린이들이 장벽에 공을 찼다는 이유로 연행을 당한 적도 있다며 취재진에게 당시 영상을 보여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추진되는 헤브론 마을
서안 지구 내부에 이렇게 분리 장벽이 새로 지어지는 건 이스라엘 정착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안 지구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데, 이후 이스라엘 주민들이 서안 지구에 마을을 형성해 살기 시작했고, 이를 이스라엘 정착촌이라고 부릅니다.

정착촌을 짓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일부는 성지를 지키겠다는 생각에 정착촌을 짓습니다. 헤브론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선지자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유적지 인근은 원래 팔레스타인 주민들 거주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이스라엘 정착촌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새로 들어오는 정착촌 주민들과 하루하루 갈등을 겪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일부 이스라엘 주민들은 예루살렘의 비싼 집값을 피하기 위해 정착촌에 이주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지가 상승을 노린 투자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서안 지구에 들어선 이스라엘 정착촌
물론 이런 이스라엘 정착촌은 국제법상 불법입니다. 서안 지구를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할 땅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제조약 오슬로 협정이 그 근거입니다. 하지만 정착촌 주민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일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돈을 주고 땅을 사들여서 집을 지은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정착촌 주민도 그랬습니다. 그는 1980년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돈을 주고 땅을 샀고, 심지어 건축도 팔레스타인 건축업자에게 맡겼다고 말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 마을에서는 이스라엘 주민과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 큰 갈등이 없었고, 이웃처럼 함께 차도 마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사이가 나빠졌고, 땅을 판 팔레스타인 주민은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처형이 됐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주민은 자신의 집이 정당한 절차로 지어진 만큼 합법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게다가 서안 지구 면적은 약 5,400㎢로 제주도 면적의 3배 정도인데, 이 안에 거주하는 정착촌 주민 수도 60만 명에 이르러,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 수 290만 명의 5분의 1 수준까지 늘어난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니 이스라엘로서는 국제사회가 불법으로 규정한 정착촌을 철수시킨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가 됐습니다. 60만 명을 이주시킨다는 건 서울로 따지면 구(區) 하나 전체를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공보관은 이 문제를 설명하면서 한국어로 "골치 아파요"라고 말하며 머리를 쥐어짰습니다.

물론 이렇게 정착촌이 늘어나는 상황을 이스라엘이 조장하거나 방조했으니, 이스라엘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들고 나온 해법은 정반대입니다. 정착촌을 이스라엘 영토로 합병하겠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A 지역 표지판. 이스라엘 주민들은 출입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서안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현재 서안지구는 A, B, C 세 개 지역과 H(헤브론) 지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A 지역은 라말라처럼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관할하는 곳이고 C 지역은 이스라엘 군이 완전히 통제하는 곳입니다. B 지역은 공동 관리가 이뤄지는 절충 지역입니다. H 지역도 팔레스타인 관할과 이스라엘 관할로 다시 나뉩니다.

이 가운데 정착촌이 들어선 곳은 이스라엘군이 통제하는 C 지역과 일부 H 지역입니다. C 지역의 면적은 서안지구 전체 면적의 60%에 이릅니다. 따라서 정착촌 합병이 이뤄지면 C 지역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스라엘로 통합될 수 있습니다.

서안 지구 지도. 이스라엘 정착촌은 대부분 C 지역에 있다
물론 이스라엘은 C 지역 정착촌을 합병하는 대가로 다른 이스라엘 땅을 팔레스타인에 내어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영토 교환'입니다. 이스라엘 내 일부 진보적 인사들도 영토 교환을 주장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평화 구상에도 영토 교환 방안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으로서는 이런 영토 교환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토의 경계선이 울퉁불퉁 이상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으니 교통과 통신 등의 인프라를 발전시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구멍 난 치즈 같은 영토로 어떻게 나라를 만드느냐"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정착촌이 불법이라는 규탄만 되풀이하며 실질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아예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을 찬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달 26일 "몇 달 후 우리는 시오니즘의 또 다른 역사적 순간을 축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정적인 베니 간츠 청백당 대표와 연립정부 합의안을 타결했는데, 이 합의안에 따르면 올해 7월 1일부터 이스라엘 의회와 정부는 서안 지구 이스라엘 정착촌 합병 법안을 표결에 부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법적 절차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코로나19 공동 대응을 위해 한때 협력 관계를 구축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다시 정면 대결 태세로 전환했습니다. 올해 여름, 온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의 먹구름이 걷히더라도, 팔레스타인의 하늘은 더 어두워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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