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미투는 공적사안, 비평 허용해야”…‘내부고발자’ 고소한 남정숙 패소

입력 2020.05.05 (07:00) 수정 2020.05.0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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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직 시절 동료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미투 관련 단체를 조직한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자신을 비판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재판장 이광영)는 남정숙 전 교수와 전국미투생존자연대(이하 미투연대)가 성폭력 피해자 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남 전 교수는 2018년 2월 'JTBC 뉴스룸'에서 실명 인터뷰를 통해 동료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 사실을 알렸고, 같은 해 3월 성폭력 피해자들이 서로 돕는 모임인 미투연대를 발족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이자 미투연대 설립 당시부터 회원으로 활동하던 A 씨는 2018년 7월 미투연대를 탈퇴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 전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에 대해 미투연대 회원들이 A 씨를 공격하는 반박 게시글을 올리면서 양측 사이에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A 씨는 "남 전 교수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거나 회원들에게 회비를 걷는 등 재정을 확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회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조직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만 힘쓴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페이스북 게시글과 댓글을 작성했습니다.

또 "남 전 교수가 미투연대 회원이었던 내게 폭언과 협박을 하고, 질병 수준의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묘사하고 인신공격을 했다", "남 전 교수는 반(反)성폭력운동에 대한 철학과 전문성이 없고 단체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으며 미투연대를 사조직처럼 운영했다"는 등의 글도 페이스북에 게재했습니다.

A 씨의 지인인 성폭력 피해자 B 씨와 C 씨도 남 전 교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페이스북에 A 씨의 게시글을 공유하고 남 전 교수와 미투연대를 비판하는 댓글을 썼습니다.

이에 남 전 교수는 2018년 8월 A 씨 등을 모욕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이듬해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됐고 항고도 기각됐습니다. 남 전 교수는 이후 A 씨 등을 상대로 자신과 연대 측에 위자료 각 1억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의 게시글이 대부분 객관적 사실과 합치해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B 씨와 C 씨의 글도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재정확대에 주된 관심, 회원의 노동력 착취' 등 (A 씨 게시글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남 전 교수와 미투연대 회원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보면, A 씨의 지적처럼 미투연대가 운영자금 모금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미투연대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펀딩을 진행한 점, ▲수익 창출을 위해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졌다고 지적받은 정치 유튜버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점, ▲회원들이 받은 손해배상금의 10% 상당을 성공보수로 받는 방안을 논의한 점, ▲회원들의 상근 근무를 논의한 점 등을 볼 때 "A 씨 발언의 중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이를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미투연대가 처음에는 서로를 '돕는' 것으로 시작했더라도 개별 회원으로서는 과도한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느낄 여지가 있을 수 있고 도움의 정도와 횟수 등에 관한 이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A 씨는 미투연대 활동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탈퇴에 이르렀다"고 밝혔습니다.

A 씨가 '남 전 교수에게 인신공격을 당했다'는 취지로 작성한 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실제로 미투연대 회원들이 A 씨의 페이스북에 찾아와 공격적인 댓글과 메시지를 작성했고 이러한 행동은 폭언, 협박, 인신공격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 외의 다른 회원들도 같은 문제로 미투연대를 탈퇴하기도 했으며, A 씨가 미투연대의 상황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외부에 알린 것으로 보이는 점 등도 고려됐습니다.

특히 미투운동과 피해자들의 연대활동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A 씨가 회계정보 공개 등 남 전 교수의 논리적인 답변을 구하는 과정에서 해당 글을 작성했다는 점을 볼 때 A 씨 행위는 공익을 위한 것이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B 씨와 C 씨의 글에 대해서도 "남 전 교수가 미투연대를 통해 수행하던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은 2018년 무렵 촉발된 미투운동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한 의견 표명은 사회의 여론 형성과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의견표명의 자유가 비교적 넓게 허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비영리단체가 피해자들을 언론에 노출시켜 자금을 마련했는지, 그 자금의 집행이 어떤지, 피해자 지원 외 수익사업도 수행하는지, 회원들의 피해배상금을 미투연대가 지급받는지 등은 공적인 것으로 중요한 사안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한 의혹 제기와 비평 등은 비교적 넓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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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5 07:00:22
    • 수정2020-05-05 07:19:54
    사회
대학 재직 시절 동료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뒤 미투 관련 단체를 조직한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자신을 비판한 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재판장 이광영)는 남정숙 전 교수와 전국미투생존자연대(이하 미투연대)가 성폭력 피해자 3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남 전 교수는 2018년 2월 'JTBC 뉴스룸'에서 실명 인터뷰를 통해 동료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는 피해 사실을 알렸고, 같은 해 3월 성폭력 피해자들이 서로 돕는 모임인 미투연대를 발족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이자 미투연대 설립 당시부터 회원으로 활동하던 A 씨는 2018년 7월 미투연대를 탈퇴하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 전 교수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에 대해 미투연대 회원들이 A 씨를 공격하는 반박 게시글을 올리면서 양측 사이에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A 씨는 "남 전 교수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거나 회원들에게 회비를 걷는 등 재정을 확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회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조직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만 힘쓴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페이스북 게시글과 댓글을 작성했습니다.

또 "남 전 교수가 미투연대 회원이었던 내게 폭언과 협박을 하고, 질병 수준의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묘사하고 인신공격을 했다", "남 전 교수는 반(反)성폭력운동에 대한 철학과 전문성이 없고 단체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으며 미투연대를 사조직처럼 운영했다"는 등의 글도 페이스북에 게재했습니다.

A 씨의 지인인 성폭력 피해자 B 씨와 C 씨도 남 전 교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자신들의 페이스북에 A 씨의 게시글을 공유하고 남 전 교수와 미투연대를 비판하는 댓글을 썼습니다.

이에 남 전 교수는 2018년 8월 A 씨 등을 모욕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이듬해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됐고 항고도 기각됐습니다. 남 전 교수는 이후 A 씨 등을 상대로 자신과 연대 측에 위자료 각 1억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의 게시글이 대부분 객관적 사실과 합치해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B 씨와 C 씨의 글도 공적 사안에 대한 의견 개진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우선 "'재정확대에 주된 관심, 회원의 노동력 착취' 등 (A 씨 게시글이) 타인의 사회적 평가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남 전 교수와 미투연대 회원들이 주고받은 카카오톡, 텔레그램 메시지 등을 보면, A 씨의 지적처럼 미투연대가 운영자금 모금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는 점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미투연대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펀딩을 진행한 점, ▲수익 창출을 위해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졌다고 지적받은 정치 유튜버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점, ▲회원들이 받은 손해배상금의 10% 상당을 성공보수로 받는 방안을 논의한 점, ▲회원들의 상근 근무를 논의한 점 등을 볼 때 "A 씨 발언의 중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전체적으로 이를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재판부는 "미투연대가 처음에는 서로를 '돕는' 것으로 시작했더라도 개별 회원으로서는 과도한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느낄 여지가 있을 수 있고 도움의 정도와 횟수 등에 관한 이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로 A 씨는 미투연대 활동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탈퇴에 이르렀다"고 밝혔습니다.

A 씨가 '남 전 교수에게 인신공격을 당했다'는 취지로 작성한 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실제로 미투연대 회원들이 A 씨의 페이스북에 찾아와 공격적인 댓글과 메시지를 작성했고 이러한 행동은 폭언, 협박, 인신공격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A 씨 외의 다른 회원들도 같은 문제로 미투연대를 탈퇴하기도 했으며, A 씨가 미투연대의 상황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외부에 알린 것으로 보이는 점 등도 고려됐습니다.

특히 미투운동과 피해자들의 연대활동이 공적 관심사에 해당하고, A 씨가 회계정보 공개 등 남 전 교수의 논리적인 답변을 구하는 과정에서 해당 글을 작성했다는 점을 볼 때 A 씨 행위는 공익을 위한 것이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B 씨와 C 씨의 글에 대해서도 "남 전 교수가 미투연대를 통해 수행하던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은 2018년 무렵 촉발된 미투운동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은 공공성, 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한 의견 표명은 사회의 여론 형성과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의견표명의 자유가 비교적 넓게 허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비영리단체가 피해자들을 언론에 노출시켜 자금을 마련했는지, 그 자금의 집행이 어떤지, 피해자 지원 외 수익사업도 수행하는지, 회원들의 피해배상금을 미투연대가 지급받는지 등은 공적인 것으로 중요한 사안에 해당한다"며 "이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에 기초한 의혹 제기와 비평 등은 비교적 넓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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