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정규직 되려 열심히 했는데…” 먼저 해고된 호텔 비정규직

입력 2020.05.05 (07:00) 수정 2020.05.0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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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그나마 다행이에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게 됐으니까요."

취재진과 인터뷰했던 호텔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한 말입니다.

자신들은 노조에 가입된 정규직이라 정부와 회사가 부담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서 3월부터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규직이 아니라 지원금은커녕 당장 회사에서 해고된 경우가 흔하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호텔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 비정규직 호텔 조리사 "안정된 직장을 가질 기회였는데…"

김○○ 씨는 서울 명동의 중소형 호텔에서 2년 동안 비정규직 조리사로 일했습니다.

김 씨는 일한 지 만 2년이 되는 올 4월, 무기계약직 전환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호텔이 잠시 영업을 중단하면서 계약은 종료됐습니다.

회사는 '회사가 어렵다. 계약이 어렵게 됐다.'라면서 계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이 받는 '고용유지지원금'도 남의 일이었습니다. 계약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회사가 답했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운 좋게 한 음식업체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호텔에서 해고될 당시 많이 암담했다고 합니다.

김○○ / 호텔 비정규직 조리사
"비정규직으로서 많이 억울하죠, 무기계약직되려고 열심히 했는데….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 정직원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그 기회를 놓치니 마음이 아파요. 생각보다 많이요."
"저와 같이 계약이 끝난 비정규직 분들 중에 저는 다시 취업을 해서 운이 좋은 편이에요. 태반이 일을 못 구하셨어요."


김 씨가 호텔에서 조리한 음식들.김 씨가 호텔에서 조리한 음식들.

호텔 연회장 비정규직 "6~7년을 일해도 일회용 취급했어요"

서○○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6년 동안 5성급 호텔 연회장에서 일했습니다. 음식 서빙부터 테이블 세팅, 연회장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서 씨는 고용계약서를 짧으면 하루, 길면 1주일마다 쓰는 아르바이트 신분이었습니다.

올 3월 코로나19로 호텔 운영이 어렵게 되자 서 씨도 더 일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설명도 없었습니다.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서 씨와 같은 알바생에게 고용유지지원금 등의 이야기는 논의조차 될 수 없었습니다. 서 씨는 실업에 대해 어떤 건의를 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서○○ / 호텔 아르바이트 노동자
"3월에 호텔에서 일이 없다고 장·단기 아르바이트 전부 일시에 계약 취소하고 내보냈어요."
"제가 장기와 단기 알바 형태로 일했지만 역할은 거의 직원이었고, 직원처럼 일했어요. 하지만 회사는 6~7년을 일해도 여전히 일회용처럼 취급했어요."

서 씨는 이후 음식점 서빙부터 택배, 콜센터 등의 분야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한달이 지난 시점에 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쉬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서 씨는 말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나아져도 호텔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털어놨습니다.

서○○ / 호텔 아르바이트 노동자
"47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업체 35곳은 제 이력서를 아예 열어보지 않아 '미열람'이라고 뜨더라고요. 일 구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가 봐요"
"이제는 호텔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정규직으로 넘어간 사례가 거의 없거든요."

[연관기사] 호텔엔 웃는 얼굴…“속사정 알면 씁쓸하죠” (KBS 1TV 뉴스9 2020.4.30)

서울의 한 호텔의 전경. 빈 객실의 조명을 이용한 '웃는 얼굴'을 표현.서울의 한 호텔의 전경. 빈 객실의 조명을 이용한 '웃는 얼굴'을 표현.

■인건비 줄이려는 호텔업계…비정규직들은 보호 사각지대

전문가들은 정규직을 적게 뽑아 인건비를 줄이려는 호텔 업계 추세와 코로나19 사태로 영업 중단이 겹치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진수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호텔 경비나 청소 등을 외주를 줬는데, 지금은 마케팅 업무까지 외부로 파견·용역업체를 주는 경우도 있다."라면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쉽게 구조조정이 가능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비정규직들이 가장 타격을 받게 됐다."라고 진단했습니다.

파견·용역 업체, 계약직 등 비정규직들은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특별지원도 받기 어렵습니다.

강병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직실장은 "갈수록 호텔의 정직원 비율 자체가 줄었다. 호텔이 특별고용 지원업종으로 선정돼 혜택을 보지만. 파견업체 소속은 도소매업 등으로 분류돼 고용유지지원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올 3월, 호텔이 포함된 관광숙박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했습니다. 특별고용지원 대상이 되면 정부로부터 휴업과 휴직 수당의 90%까지 지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파견·용역 업체와 단기 고용 노동자들은 그 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호텔 사업은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에 먼저 타격을 받지만, 몇 달 전에 예약하는 특성상 경기 회복은 느린 편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약한 취약한 위치인 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 타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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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정규직 되려 열심히 했는데…” 먼저 해고된 호텔 비정규직
    • 입력 2020-05-05 07:00:22
    • 수정2020-05-05 11:37:05
    취재후·사건후
"저희는 그나마 다행이에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게 됐으니까요."

취재진과 인터뷰했던 호텔 노동자들이 공통으로 한 말입니다.

자신들은 노조에 가입된 정규직이라 정부와 회사가 부담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서 3월부터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정규직이 아니라 지원금은커녕 당장 회사에서 해고된 경우가 흔하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회사에서 쫓겨난 호텔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 비정규직 호텔 조리사 "안정된 직장을 가질 기회였는데…"

김○○ 씨는 서울 명동의 중소형 호텔에서 2년 동안 비정규직 조리사로 일했습니다.

김 씨는 일한 지 만 2년이 되는 올 4월, 무기계약직 전환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호텔이 잠시 영업을 중단하면서 계약은 종료됐습니다.

회사는 '회사가 어렵다. 계약이 어렵게 됐다.'라면서 계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이 받는 '고용유지지원금'도 남의 일이었습니다. 계약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고 회사가 답했기 때문입니다.

김 씨는 운 좋게 한 음식업체에 취직할 수 있었지만, 호텔에서 해고될 당시 많이 암담했다고 합니다.

김○○ / 호텔 비정규직 조리사
"비정규직으로서 많이 억울하죠, 무기계약직되려고 열심히 했는데…. 안정된 직장을 갖기 위해 정직원보다 더 열심히 일했지만 그 기회를 놓치니 마음이 아파요. 생각보다 많이요."
"저와 같이 계약이 끝난 비정규직 분들 중에 저는 다시 취업을 해서 운이 좋은 편이에요. 태반이 일을 못 구하셨어요."


김 씨가 호텔에서 조리한 음식들.
호텔 연회장 비정규직 "6~7년을 일해도 일회용 취급했어요"

서○○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6년 동안 5성급 호텔 연회장에서 일했습니다. 음식 서빙부터 테이블 세팅, 연회장 관리 등의 업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서 씨는 고용계약서를 짧으면 하루, 길면 1주일마다 쓰는 아르바이트 신분이었습니다.

올 3월 코로나19로 호텔 운영이 어렵게 되자 서 씨도 더 일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설명도 없었습니다. 고용계약서를 쓰지 않았을 뿐입니다.

서 씨와 같은 알바생에게 고용유지지원금 등의 이야기는 논의조차 될 수 없었습니다. 서 씨는 실업에 대해 어떤 건의를 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서○○ / 호텔 아르바이트 노동자
"3월에 호텔에서 일이 없다고 장·단기 아르바이트 전부 일시에 계약 취소하고 내보냈어요."
"제가 장기와 단기 알바 형태로 일했지만 역할은 거의 직원이었고, 직원처럼 일했어요. 하지만 회사는 6~7년을 일해도 여전히 일회용처럼 취급했어요."

서 씨는 이후 음식점 서빙부터 택배, 콜센터 등의 분야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한달이 지난 시점에 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료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쉬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서 씨는 말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나아져도 호텔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털어놨습니다.

서○○ / 호텔 아르바이트 노동자
"47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업체 35곳은 제 이력서를 아예 열어보지 않아 '미열람'이라고 뜨더라고요. 일 구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런가 봐요"
"이제는 호텔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정규직으로 넘어간 사례가 거의 없거든요."

[연관기사] 호텔엔 웃는 얼굴…“속사정 알면 씁쓸하죠” (KBS 1TV 뉴스9 2020.4.30)

서울의 한 호텔의 전경. 빈 객실의 조명을 이용한 '웃는 얼굴'을 표현.
■인건비 줄이려는 호텔업계…비정규직들은 보호 사각지대

전문가들은 정규직을 적게 뽑아 인건비를 줄이려는 호텔 업계 추세와 코로나19 사태로 영업 중단이 겹치면서 이같은 현상이 나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진수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호텔 경비나 청소 등을 외주를 줬는데, 지금은 마케팅 업무까지 외부로 파견·용역업체를 주는 경우도 있다."라면서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쉽게 구조조정이 가능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비정규직들이 가장 타격을 받게 됐다."라고 진단했습니다.

파견·용역 업체, 계약직 등 비정규직들은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특별지원도 받기 어렵습니다.

강병찬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조직실장은 "갈수록 호텔의 정직원 비율 자체가 줄었다. 호텔이 특별고용 지원업종으로 선정돼 혜택을 보지만. 파견업체 소속은 도소매업 등으로 분류돼 고용유지지원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는 올 3월, 호텔이 포함된 관광숙박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했습니다. 특별고용지원 대상이 되면 정부로부터 휴업과 휴직 수당의 90%까지 지원받게 됩니다. 하지만 파견·용역 업체와 단기 고용 노동자들은 그 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호텔 사업은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에 먼저 타격을 받지만, 몇 달 전에 예약하는 특성상 경기 회복은 느린 편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약한 취약한 위치인 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제 타격을 가장 크게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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