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조혜연 9단 스토킹 피해 고백 이후…2차 가해 시작

입력 2020.05.05 (07:00) 수정 2020.05.0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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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프로기사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주배' 대회에서 지난달 여성 기사로는 최초로 우승한 조혜연 9단,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부터 여자 프로기사 최초 600승 달성 등 다수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조혜연 기사는 사실 지난 1년간 스토킹에 시달려왔습니다.

알지 못하는 남성이 운영 중인 바둑학원에 와 난동을 부리고, 학원 앞에서 소리 지르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쏟아냈습니다. 자신과 혼인한 사이라는 거짓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이 남성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조 기사는 언론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KBS는 조혜연 기사의 이런 사연을 담아 지난달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연관기사][단독]바둑여제 조혜연 9단, 1년간 스토킹…“하루하루 지옥” (2020.04.24. KBS1TV 뉴스9)

이후 수많은 언론에서도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조혜연 기사의 삶은 안정을 되찾았을까요?

■ 나흘 만에 검찰 송치..."언론 보도 이후 수사가 급진전"

KBS 뉴스를 통해 조 기사의 사연이 보도된 지난달 24일 오후, A 씨는 바둑학원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조혜연 기사는 즉각 경찰에 신고했고, A 씨는 임의 동행해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 기사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신고했기 때문에 적당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남성은 당일 밤 9시쯤 다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A 씨는 그 즉시 바둑학원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경찰서와 바둑학원은 100여 m 남짓, 1~2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뛰어온 그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겁에 질린 조 기사는 경찰에 또 신고했고, 그제야 재차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4월 24일 경찰 조사 마친 뒤 다시 바둑학원을 찾아온 A 씨. 조혜연 기사가 직접 촬영했다.4월 24일 경찰 조사 마친 뒤 다시 바둑학원을 찾아온 A 씨. 조혜연 기사가 직접 촬영했다.

이후 수사는 신속히 진행됐습니다. 경찰은 다음날인 25일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26일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28일 경찰은 A 씨에 대해 협박, 업무방해, 명예훼손,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 기사의 10번에 걸친 신고 끝에 이뤄진 결과입니다. 언론보도 이후 이틀 뒤 구속됐고, 나흘 만에 검찰에 송치된 겁니다.

조 기사는 "신고할 때마다 물리적인 피해가 없다는 식의 이유로 제대로 경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언론 보도 이후 갑자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경찰 수사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 "스토킹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보도 이후 시작된 2차 가해

이런 수사 상황은 언론에 시시각각 보도됐습니다. 다수의 언론사에서도 조혜연 기사의 피해 사실을 조명하며, 집중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조혜연 기사는 생각지 않은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 바둑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한 바둑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

한 바둑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예뻐서 스토킹한 것은 절대 아니다.", "조혜연을 대상으로 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등의 내용입니다. 피해자의 외모를 지적하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등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찾고,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런 말들은 스토킹 피해자를 향한 전형적인 2차 가해입니다.

악성 댓글을 남긴 사람은 다수였습니다. 허무맹랑한 글들이 계속 올라오자 조 기사는 이중 수차례에 걸쳐 지속해서 글을 남긴 1명을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고소했습니다. 한 번씩 악성 댓글을 남기는 경우는 고소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계속 글을 남기는 것은 너무 악의적이라 넘어갈 수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조 기사는 "이런 악플이 스토킹 가해자를 고소한 것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토킹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런 글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다, 스토킹 사건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 "언제 다시 찾아올지 두려워"...'스토킹 처벌법'은 국회 계류 중

스토킹 가해자가 구속되면서 현재 조 기사는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문을 열고 학원을 운영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조 기사는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며 "원생에게까지 피해가 간 만큼 더 조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일부 악의적인 글들이 올라왔지만, 조 기사의 고통에 공감하고, 용기 있는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조혜연 기사가 올린 청와대 국민 청원. 5월 4일 오후 기준 1만 1천여 명이 참여했다. 조혜연 기사가 올린 청와대 국민 청원. 5월 4일 오후 기준 1만 1천여 명이 참여했다.

보도 당시 천여 명의 동의를 받은 국민 청원은 어제(4일) 오후 기준으로 1만 1천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습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습니다.

매년 스토킹 범죄는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스토킹 관련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단순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경범죄로 여겨 고작 1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게 현실입니다. 조 기사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이유도 스토킹 처벌법이 지정되는 데 이번 사건이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미약한 처벌이 계속되는 한 스토킹 범죄를 근절하긴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처벌법은 계류 중입니다. 이 때문에 조 기사 역시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프로기사 생활을 하는 조 기사는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학원을 운영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아직 현역 바둑 기사로 활동하기 때문에 바둑 대국 일정도 모두 외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A 씨가 출소 이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조 기사를 찾아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A 씨가 구속됐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났다고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 기사는 "A 씨가 언제 출소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출소한 이후가 더 큰 문제"라며 "경찰에 신고할 때마다 찾아와서 분노를 터뜨리던 사람인데 출소한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이 역시 차츰 종료될 겁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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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조혜연 9단 스토킹 피해 고백 이후…2차 가해 시작
    • 입력 2020-05-05 07:00:22
    • 수정2020-05-05 11:04:53
    취재후·사건후
남녀 프로기사들이 실력을 겨루는 '대주배' 대회에서 지난달 여성 기사로는 최초로 우승한 조혜연 9단,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부터 여자 프로기사 최초 600승 달성 등 다수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조혜연 기사는 사실 지난 1년간 스토킹에 시달려왔습니다.

알지 못하는 남성이 운영 중인 바둑학원에 와 난동을 부리고, 학원 앞에서 소리 지르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도 쏟아냈습니다. 자신과 혼인한 사이라는 거짓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이 남성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조 기사는 언론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KBS는 조혜연 기사의 이런 사연을 담아 지난달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연관기사][단독]바둑여제 조혜연 9단, 1년간 스토킹…“하루하루 지옥” (2020.04.24. KBS1TV 뉴스9)

이후 수많은 언론에서도 보도가 잇따랐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조혜연 기사의 삶은 안정을 되찾았을까요?

■ 나흘 만에 검찰 송치..."언론 보도 이후 수사가 급진전"

KBS 뉴스를 통해 조 기사의 사연이 보도된 지난달 24일 오후, A 씨는 바둑학원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조혜연 기사는 즉각 경찰에 신고했고, A 씨는 임의 동행해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 기사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신고했기 때문에 적당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남성은 당일 밤 9시쯤 다시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A 씨는 그 즉시 바둑학원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경찰서와 바둑학원은 100여 m 남짓, 1~2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입니다.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부리나케 뛰어온 그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겁에 질린 조 기사는 경찰에 또 신고했고, 그제야 재차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4월 24일 경찰 조사 마친 뒤 다시 바둑학원을 찾아온 A 씨. 조혜연 기사가 직접 촬영했다.
이후 수사는 신속히 진행됐습니다. 경찰은 다음날인 25일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26일 영장이 발부돼 구속됐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인 28일 경찰은 A 씨에 대해 협박, 업무방해, 명예훼손,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북부지방검찰청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 기사의 10번에 걸친 신고 끝에 이뤄진 결과입니다. 언론보도 이후 이틀 뒤 구속됐고, 나흘 만에 검찰에 송치된 겁니다.

조 기사는 "신고할 때마다 물리적인 피해가 없다는 식의 이유로 제대로 경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언론 보도 이후 갑자기 수사가 빠르게 진행됐다"며 경찰 수사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 "스토킹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보도 이후 시작된 2차 가해

이런 수사 상황은 언론에 시시각각 보도됐습니다. 다수의 언론사에서도 조혜연 기사의 피해 사실을 조명하며, 집중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조혜연 기사는 생각지 않은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 바둑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
한 바둑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예뻐서 스토킹한 것은 절대 아니다.", "조혜연을 대상으로 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등의 내용입니다. 피해자의 외모를 지적하거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등 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찾고, 피해자와 가해자 간의 관계를 의심하는 이런 말들은 스토킹 피해자를 향한 전형적인 2차 가해입니다.

악성 댓글을 남긴 사람은 다수였습니다. 허무맹랑한 글들이 계속 올라오자 조 기사는 이중 수차례에 걸쳐 지속해서 글을 남긴 1명을 서울 동대문경찰서에 고소했습니다. 한 번씩 악성 댓글을 남기는 경우는 고소하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계속 글을 남기는 것은 너무 악의적이라 넘어갈 수 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조 기사는 "이런 악플이 스토킹 가해자를 고소한 것과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토킹 범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런 글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다, 스토킹 사건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 "언제 다시 찾아올지 두려워"...'스토킹 처벌법'은 국회 계류 중

스토킹 가해자가 구속되면서 현재 조 기사는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문을 열고 학원을 운영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조 기사는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며 "원생에게까지 피해가 간 만큼 더 조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일부 악의적인 글들이 올라왔지만, 조 기사의 고통에 공감하고, 용기 있는 행동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조혜연 기사가 올린 청와대 국민 청원. 5월 4일 오후 기준 1만 1천여 명이 참여했다.
보도 당시 천여 명의 동의를 받은 국민 청원은 어제(4일) 오후 기준으로 1만 1천 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습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분하고 있습니다.

매년 스토킹 범죄는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스토킹 관련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단순 '지속적 괴롭힘'이라는 경범죄로 여겨 고작 1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게 현실입니다. 조 기사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이유도 스토킹 처벌법이 지정되는 데 이번 사건이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미약한 처벌이 계속되는 한 스토킹 범죄를 근절하긴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처벌법은 계류 중입니다. 이 때문에 조 기사 역시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프로기사 생활을 하는 조 기사는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학원을 운영하는 중입니다. 게다가 아직 현역 바둑 기사로 활동하기 때문에 바둑 대국 일정도 모두 외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A 씨가 출소 이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조 기사를 찾아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A 씨가 구속됐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났다고 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 기사는 "A 씨가 언제 출소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출소한 이후가 더 큰 문제"라며 "경찰에 신고할 때마다 찾아와서 분노를 터뜨리던 사람인데 출소한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운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고 있지만, 이 역시 차츰 종료될 겁니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명확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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