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보도자료 재탕…농촌진흥청의 설명 이해되시나요?

입력 2020.05.0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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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인 어제(5일) 오전 11시 20분쯤, 기자에게 한 통의 보도자료 이메일이 왔습니다. 제목은,

<농진청>자급률 1.2%...자급률 높일 국산 밀 삼총사가 떴다

이메일을 열어봤습니다. 보도자료의 소제목에는

- 세계 최초 소화장해와 알레르기 없는 밀 품종 개발
- 항산화 효과 10배 높은 밀과 빵용 밀 품종도 선봬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보도자료의 비교적 앞머리엔 "농촌진흥청은 세계 최초로 '금강'과 '올그루'를 이용해 전통적인 교배방법으로 알레르기 유발물질인 글루텐을 제거한 '오프리' 품종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 해외 특허를 출원했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 당연히 '아, 이번에 농촌진흥청에서 세계 최초로 글루텐을 제거한 밀 품종, 오프리를 개발했구나'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뉴스의 주제가 되겠죠?

그런데 곧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KBS 뉴스 사이트에서 '글루텐'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위 보도자료와 똑같은 내용의 뉴스가 확인됩니다.

'글루텐' 알레르기 없는 밀 품종 세계 최초 개발 <입력 2018.10.24 (19:27)>

뉴스 내용을 보니 이번 보도자료와 같았습니다. 글루텐을 제거한 '오프리'라는 품종 이름까지 같았으니까요. 당시의 앵커멘트를 보면, "이런 소화 장애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밀 품종이, 유전자 변형이 아닌 인공교배 방법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습니다"로 2018년, 그러니까 2년 전에 개발된 것으로 이번 보도자료와 동일함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에서도 아래와 같이 2018년 10월 25일에 '글루텐을 제거한 오프리가 개발됐다'는 보도자료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홈페이지 캡처농촌진흥청 홈페이지 캡처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르고 이번에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고 뉴스를 했으면 어떻게 할까 싶은 아찔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농촌진흥청 측에 어떻게 된 일인지 취재했습니다. 농촌진흥청 측은 "(오프리를 앞머리에 넣는 대신) 사실 최근 개발된 품종의 내용으로 보도자료가 나갔어야 했다"며 "보도자료가 지금 개발된 것처럼 써졌다"는 기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보도자료는 오프리가 핵심이 아니었다"며 "이번 보도자료에는 밀을 먹으면 아토피가 걱정인 사람들을 위해 밀 신품종에 대한 시범단지도 진행되고 있고, 또한 제품도 개발되고 있다고 그렇게 썼어야 했는데, (오프리를 보도자료 제일 앞에 썼는데) 오프리 내용을 뒤로 보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번 보도자료에선 오프리 외에도 또 하나 국내 최초로 개발됐다고 한 게 있었지만, 오프리처럼 몇 년 전에 최초 개발된 것이 있었습니다. 이번 보도자료에는 "농촌진흥청은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등 건강 기능성 성분이 풍부한 검은색 밀 품종인 '아리흑'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도 농촌진흥청의 자세한 설명을 다시 들어보니, 아리흑은 2017년에 개발돼 현재는 상품화를 위해 50헥타르에 이르는 시범단지에서 이미 시범 재배 중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번 보도자료에서 소개된 오프리와 아리흑은 몇 년 전 개발된 것이고, 이 두 품종과 함께 소개된 황금밀만 올해 초에 최초 개발된 것으로 그나마 '최신'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보도자료 재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번 상황을 보면서 지금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되지만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라, 즉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것이어서 쉽게 쓰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일처럼 무슨 일이 있든,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모든 뉴스는 '기자의 책임'이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함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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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년 전 보도자료 재탕…농촌진흥청의 설명 이해되시나요?
    • 입력 2020-05-06 11:36:27
    취재K
어린이날인 어제(5일) 오전 11시 20분쯤, 기자에게 한 통의 보도자료 이메일이 왔습니다. 제목은,

<농진청>자급률 1.2%...자급률 높일 국산 밀 삼총사가 떴다

이메일을 열어봤습니다. 보도자료의 소제목에는

- 세계 최초 소화장해와 알레르기 없는 밀 품종 개발
- 항산화 효과 10배 높은 밀과 빵용 밀 품종도 선봬

이렇게 돼 있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보도자료의 비교적 앞머리엔 "농촌진흥청은 세계 최초로 '금강'과 '올그루'를 이용해 전통적인 교배방법으로 알레르기 유발물질인 글루텐을 제거한 '오프리' 품종을 개발해 국내는 물론 해외 특허를 출원했다."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 당연히 '아, 이번에 농촌진흥청에서 세계 최초로 글루텐을 제거한 밀 품종, 오프리를 개발했구나'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이게 뉴스의 주제가 되겠죠?

그런데 곧 뭔가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KBS 뉴스 사이트에서 '글루텐'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위 보도자료와 똑같은 내용의 뉴스가 확인됩니다.

'글루텐' 알레르기 없는 밀 품종 세계 최초 개발 <입력 2018.10.24 (19:27)>

뉴스 내용을 보니 이번 보도자료와 같았습니다. 글루텐을 제거한 '오프리'라는 품종 이름까지 같았으니까요. 당시의 앵커멘트를 보면, "이런 소화 장애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밀 품종이, 유전자 변형이 아닌 인공교배 방법으로는 처음으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습니다"로 2018년, 그러니까 2년 전에 개발된 것으로 이번 보도자료와 동일함을 확인했습니다.

현재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에서도 아래와 같이 2018년 10월 25일에 '글루텐을 제거한 오프리가 개발됐다'는 보도자료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홈페이지 캡처
솔직히 황당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을 모르고 이번에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고 뉴스를 했으면 어떻게 할까 싶은 아찔한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농촌진흥청 측에 어떻게 된 일인지 취재했습니다. 농촌진흥청 측은 "(오프리를 앞머리에 넣는 대신) 사실 최근 개발된 품종의 내용으로 보도자료가 나갔어야 했다"며 "보도자료가 지금 개발된 것처럼 써졌다"는 기자의 말에 "동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보도자료는 오프리가 핵심이 아니었다"며 "이번 보도자료에는 밀을 먹으면 아토피가 걱정인 사람들을 위해 밀 신품종에 대한 시범단지도 진행되고 있고, 또한 제품도 개발되고 있다고 그렇게 썼어야 했는데, (오프리를 보도자료 제일 앞에 썼는데) 오프리 내용을 뒤로 보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번 보도자료에선 오프리 외에도 또 하나 국내 최초로 개발됐다고 한 게 있었지만, 오프리처럼 몇 년 전에 최초 개발된 것이 있었습니다. 이번 보도자료에는 "농촌진흥청은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등 건강 기능성 성분이 풍부한 검은색 밀 품종인 '아리흑'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고 돼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도 농촌진흥청의 자세한 설명을 다시 들어보니, 아리흑은 2017년에 개발돼 현재는 상품화를 위해 50헥타르에 이르는 시범단지에서 이미 시범 재배 중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번 보도자료에서 소개된 오프리와 아리흑은 몇 년 전 개발된 것이고, 이 두 품종과 함께 소개된 황금밀만 올해 초에 최초 개발된 것으로 그나마 '최신'내용이었습니다.

이른바 '보도자료 재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번 상황을 보면서 지금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되지만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라, 즉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것이어서 쉽게 쓰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일처럼 무슨 일이 있든,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 모든 뉴스는 '기자의 책임'이라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함을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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