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선관위 ‘비공개’ 출장보고서 “비엔나 아닌 멜랑쥐 커피”

입력 2020.05.08 (07:00) 수정 2020.05.0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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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외연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외연수의 상당수가 사실상 외유성 해외출장이라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특히 일부 출장의 경우는 사실상 해외 관광 수준이었는데 아예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 유럽 여행을 한 경우도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비엔나 커피 아니고 멜랑쥐 커피”…패키지 여행이 선관위 국외연수?


실제로 국외연수 보고서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여행 블로그나 학생 견학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일정과 방문 후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 연수 보고서는 2017년 경기도 선관위 직원 7명이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국외연수'를 다녀와 작성한 겁니다. 출장 목적은 '유럽 선진국가의 정치·선거제도 경험을 통한 국제 경쟁력 확보'. 하지만 거창한 출장 목적에 달리 방문지는 모두 관광 명소였습니다.

이듬해인 2018년에도 경기도 선관위 직원 6명은 영국과 이탈리아를 갔습니다. 이번엔 이탈리아를 먼저 가고 영국을 그다음에 갔을 뿐이지 대부분의 일정이 같았습니다. 다만 딱 하루 이탈리아 의회를 찾아 방문 담당 직원을 잠시 만났습니다.


확인해 봤더니 이 두 번의 국외 연수는 '유럽 패키지여행'였습니다. 선관위 공무원들이 여행사 패키지여행 상품에 가입해 유럽 여행을 하고 국외 연수를 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겁니다. 2018년에 이탈리아 의회 방문 일정은 패키지여행 중 '자유시간'에 끼워 넣은 것이었습니다.

■ 정보공개청구로 드러난 외유성 국외 연수

KBS가 비공개된 선관위 국외 출장 결과보고서 최근 5년 치(2015~2019년)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했습니다. 5년간 선관위의 국외 출장은 모두 334건. 이 중 95건은 '직원 역량 강화 연수'입니다.

연수 대상 선발은 2가지 경로로 이뤄집니다. 시·도 선관위가 실적 우수 직원들을 추천하는 '추천제'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팀을 짜 지원하는 '공모제'입니다. 추천제로 선발된 이들에겐 1인당 250만 원, 공모제로 선발된 이들에겐 1인당 150만 원이 지급됩니다. 일부 개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긴 하지만 엄연히 세금이 투입되는 공무원 국외연수입니다.


하지만 직원 역량 강화 연수 상당수에서 외유성 일정이 확인됩니다.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국외연수를 보낸 2018년 역량 강화 연수 결과보고서를 모두 분석해봤습니다. 10일 내외 일정 중에 현지 기관 방문을 1~2번 한 경우가 전체 26개 팀 중 18개 팀. 현지 기관 1~2곳 방문하고 나머지 일정은 대부분 현지 문화탐방이란 명목으로 관광을 했습니다. 7팀은 아예 기관 방문을 단 한 곳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엔나가 아니라 멜랑쥐 커피가 올바른 표현"…황당한 연수 보고서

연수의 초점이 업무가 아니라 관광이다 보니 결과보고서 가운데 황당한 내용도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일부 보고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용을 짜깁기하기도 했습니다. 한 표절 검증 프로그램으로 역량 강화 국외연수 결과보고서 95건을 검사해보니 표절률이 50%가 넘는 보고서가 16건이나 됐습니다.

이러려고 출장 보고서 비공개했나?

선관위 직원들의 외유성 출장이 그동안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출장 후 작성한 결과 보고서를 외부에 비공개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과 행정부 공무원들은 과거 외유성 출장이 문제가 되자 이제는 결과 보고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국외 출장 후 결과 보고서를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는 내부 전산망에만 등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선관위 직원들의 외유성 출장은 과거에도 문제가 됐습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강창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 2003년 중앙선관위는 약 8,5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직원들의 '중국 및 아시아 시찰'을 실시했는데, 정작 일정은 해외기관 방문이 아닌 각국 문화체험으로 대신했다"고 지적한 겁니다. 이후로도 선관위 직원들의 외유성 출장은 종종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선관위는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온 겁니다. 출장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세부기준도 지난해 감사원 지적 이후에야 만들었습니다.


선관위 "올해도 역량 강화 연수 계획 있어"

선관위는 올해도 직원 역량 강화 연수에 2억 4천8백만 원을 배정했습니다. 선관위는 "코로나19 추이를 살펴 하반기에 연수 시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이 역량 강화 연수 일정에 외유성 활동이 많다고 지적하자 선관위 관계자는 "예전에 그런 관광성 방문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런 식으로 운영 안 되도록 시정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선관위는 '역량 강화 연수'와 별도로 해마다 해외에서 선거가 열리면 '선거 참관' 명목으로 직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량 강화 연수의 취지에 부합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해외여행이 이미 대중화된 지금, 세금을 투입해 '직원 역량 강화 연수'를 보내는 게 적절한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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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선관위 ‘비공개’ 출장보고서 “비엔나 아닌 멜랑쥐 커피”
    • 입력 2020-05-08 07:00:55
    • 수정2020-05-08 09:44:02
    취재후
KBS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국외연수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외연수의 상당수가 사실상 외유성 해외출장이라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특히 일부 출장의 경우는 사실상 해외 관광 수준이었는데 아예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 유럽 여행을 한 경우도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연관기사] [단독] “비엔나 커피 아니고 멜랑쥐 커피”…패키지 여행이 선관위 국외연수?


실제로 국외연수 보고서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면, 여행 블로그나 학생 견학 프로그램에서 볼 법한 일정과 방문 후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위 연수 보고서는 2017년 경기도 선관위 직원 7명이 '직원 역량 강화를 위한 국외연수'를 다녀와 작성한 겁니다. 출장 목적은 '유럽 선진국가의 정치·선거제도 경험을 통한 국제 경쟁력 확보'. 하지만 거창한 출장 목적에 달리 방문지는 모두 관광 명소였습니다.

이듬해인 2018년에도 경기도 선관위 직원 6명은 영국과 이탈리아를 갔습니다. 이번엔 이탈리아를 먼저 가고 영국을 그다음에 갔을 뿐이지 대부분의 일정이 같았습니다. 다만 딱 하루 이탈리아 의회를 찾아 방문 담당 직원을 잠시 만났습니다.


확인해 봤더니 이 두 번의 국외 연수는 '유럽 패키지여행'였습니다. 선관위 공무원들이 여행사 패키지여행 상품에 가입해 유럽 여행을 하고 국외 연수를 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겁니다. 2018년에 이탈리아 의회 방문 일정은 패키지여행 중 '자유시간'에 끼워 넣은 것이었습니다.

■ 정보공개청구로 드러난 외유성 국외 연수

KBS가 비공개된 선관위 국외 출장 결과보고서 최근 5년 치(2015~2019년)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했습니다. 5년간 선관위의 국외 출장은 모두 334건. 이 중 95건은 '직원 역량 강화 연수'입니다.

연수 대상 선발은 2가지 경로로 이뤄집니다. 시·도 선관위가 실적 우수 직원들을 추천하는 '추천제'와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팀을 짜 지원하는 '공모제'입니다. 추천제로 선발된 이들에겐 1인당 250만 원, 공모제로 선발된 이들에겐 1인당 150만 원이 지급됩니다. 일부 개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긴 하지만 엄연히 세금이 투입되는 공무원 국외연수입니다.


하지만 직원 역량 강화 연수 상당수에서 외유성 일정이 확인됩니다.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국외연수를 보낸 2018년 역량 강화 연수 결과보고서를 모두 분석해봤습니다. 10일 내외 일정 중에 현지 기관 방문을 1~2번 한 경우가 전체 26개 팀 중 18개 팀. 현지 기관 1~2곳 방문하고 나머지 일정은 대부분 현지 문화탐방이란 명목으로 관광을 했습니다. 7팀은 아예 기관 방문을 단 한 곳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엔나가 아니라 멜랑쥐 커피가 올바른 표현"…황당한 연수 보고서

연수의 초점이 업무가 아니라 관광이다 보니 결과보고서 가운데 황당한 내용도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일부 보고서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용을 짜깁기하기도 했습니다. 한 표절 검증 프로그램으로 역량 강화 국외연수 결과보고서 95건을 검사해보니 표절률이 50%가 넘는 보고서가 16건이나 됐습니다.

이러려고 출장 보고서 비공개했나?

선관위 직원들의 외유성 출장이 그동안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출장 후 작성한 결과 보고서를 외부에 비공개하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과 행정부 공무원들은 과거 외유성 출장이 문제가 되자 이제는 결과 보고서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국외 출장 후 결과 보고서를 전 직원이 열람할 수 있는 내부 전산망에만 등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선관위 직원들의 외유성 출장은 과거에도 문제가 됐습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강창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지난 2003년 중앙선관위는 약 8,5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직원들의 '중국 및 아시아 시찰'을 실시했는데, 정작 일정은 해외기관 방문이 아닌 각국 문화체험으로 대신했다"고 지적한 겁니다. 이후로도 선관위 직원들의 외유성 출장은 종종 문제가 됐습니다. 하지만 선관위는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온 겁니다. 출장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세부기준도 지난해 감사원 지적 이후에야 만들었습니다.


선관위 "올해도 역량 강화 연수 계획 있어"

선관위는 올해도 직원 역량 강화 연수에 2억 4천8백만 원을 배정했습니다. 선관위는 "코로나19 추이를 살펴 하반기에 연수 시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취재진이 역량 강화 연수 일정에 외유성 활동이 많다고 지적하자 선관위 관계자는 "예전에 그런 관광성 방문이 있었는지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런 식으로 운영 안 되도록 시정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선관위는 '역량 강화 연수'와 별도로 해마다 해외에서 선거가 열리면 '선거 참관' 명목으로 직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량 강화 연수의 취지에 부합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겁니다. 해외여행이 이미 대중화된 지금, 세금을 투입해 '직원 역량 강화 연수'를 보내는 게 적절한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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