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은 시체 수장할 수 있다”…우리나라 선원법 살펴보니

입력 2020.05.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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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선박에서 인도네시아 선원이 수장되는 모습이 촬영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외국인 선원의 인권 유린 실태가 도마에 오르며 국제 문제로도 번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 선원법에 '수장(水葬)'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선장은 요건을 갖출 경우 시체를 수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원법은 선장이 시체를 수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주요 국가 가운데 일본과 한국에만 수장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고 하는데요. 선원법 제17조는 항해 중 선박에 있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해양수산부령'에 따라 수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수장 요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선원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선박이 공해 상에 있고,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하며(감염병 사망은 예외), 위생상 시체를 선내에 보존할 수 없거나 선박에 시체를 싣고 입항을 금지하는 항에 입항 예정일 때, 또 의사가 승선한 선박인 경우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뒤여야 합니다. 감염병으로 사망한 경우 의사나 의료관리자가 적절한 소독을 실시한 이후에만 수장이 가능합니다.

의사가 없어 사망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때에는 "선장이 사망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해수부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선원법은 3일 이상 국제 항해에 종사하는 선박의 최대 승선인원이 100명 이상일 경우 의사를 승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장이 수장을 진행할 경우, 유품을 보관해야 하며, 상당한 의식을 갖추되 시체가 떠오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요. 이를 지키지 않으면 선원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과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위 요건을 모두 충족했을 때에만 수장을 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정서상으로도 수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최근 보고된 수장 관련 논의 '아덴만 작전 해적 시신'

현재 수장과 관련한 통계는 없는데요. 해수부 관계자는 "가장 최근 수장 관련 논의가 공식적으로 오간 건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해적 시신 수장 여부를 검토했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아덴만 해상에서 구조하는 과정에서 해적의 시신이 발생했는데요. 당시 수장이 검토됐지만, 정부 간 시신을 인계하는 것으로 협의가 이뤄졌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관련 협회나 선원 노조 관련 관계자에게 수장 사례가 있는지 물은 적이 있지만, 실제 사례는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민혁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교육홍보국 대리 역시 "관련 전문가들에게 문의했으나 현재까지 수장과 관련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김영모 한국선장포럼 사무총장도 "관련 단체 등에 문의해봤지만, 수장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과거와 달리 해상 교통이 발달했고, 냉장과 냉동 장비가 갖춰지면서 수장은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형법상 시신을 관리하지 않을 경우 유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설사 선장의 권한이라 해도 수장 행위는 있을 수 없다"며 "승선 고용 계약서에도 수장에 대한 부분을 조건에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거리 항해에서 비롯된 법 조항

창원지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선원법 해설서'를 쓴 권창영 변호사는 '수장' 조항이 역사적 연혁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합니다. 권 변호사는 "냉장시설이 없던 과거 범선에서 장거리 항해를 하며 사고가 난 경우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이 없었고, 전염병 등의 문제로 수장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권 변호사는 "시체를 돛에 사용되는 천인 범포(帆布)로 감싸고, 다시 국기로 감싼 후 시체가 뜨지 않도록 선미에서 명복을 빈 뒤, 장발 기적을 불고 수장 지점을 3번 도는 것이 관례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영미권은 해양문화이기 때문에 수장을 영예로운 매장 방법으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권으로 유족이 사체를 수습해 매립하는 육상 문화이기 때문에 국가별로 수장에 대한 인식 역시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1962년 선원법이 제정될 때부터 수장 관련 내용이 있었다"며 "삭제 여부 등은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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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09 08:04:58
    취재K
최근 중국 선박에서 인도네시아 선원이 수장되는 모습이 촬영돼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외국인 선원의 인권 유린 실태가 도마에 오르며 국제 문제로도 번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우리나라 선원법에 '수장(水葬)'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선장은 요건을 갖출 경우 시체를 수장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선원법은 선장이 시체를 수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주요 국가 가운데 일본과 한국에만 수장과 관련한 조항이 있다고 하는데요. 선원법 제17조는 항해 중 선박에 있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해양수산부령'에 따라 수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수장 요건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선원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선박이 공해 상에 있고, 사망 후 24시간이 지나야 하며(감염병 사망은 예외), 위생상 시체를 선내에 보존할 수 없거나 선박에 시체를 싣고 입항을 금지하는 항에 입항 예정일 때, 또 의사가 승선한 선박인 경우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뒤여야 합니다. 감염병으로 사망한 경우 의사나 의료관리자가 적절한 소독을 실시한 이후에만 수장이 가능합니다.

의사가 없어 사망 여부를 판단하지 못할 때에는 "선장이 사망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해수부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선원법은 3일 이상 국제 항해에 종사하는 선박의 최대 승선인원이 100명 이상일 경우 의사를 승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만약 선장이 수장을 진행할 경우, 유품을 보관해야 하며, 상당한 의식을 갖추되 시체가 떠오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요. 이를 지키지 않으면 선원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천만 원 이하의 벌금과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위 요건을 모두 충족했을 때에만 수장을 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정서상으로도 수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최근 보고된 수장 관련 논의 '아덴만 작전 해적 시신'

현재 수장과 관련한 통계는 없는데요. 해수부 관계자는 "가장 최근 수장 관련 논의가 공식적으로 오간 건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해적 시신 수장 여부를 검토했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2011년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아덴만 해상에서 구조하는 과정에서 해적의 시신이 발생했는데요. 당시 수장이 검토됐지만, 정부 간 시신을 인계하는 것으로 협의가 이뤄졌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관련 협회나 선원 노조 관련 관계자에게 수장 사례가 있는지 물은 적이 있지만, 실제 사례는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박민혁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교육홍보국 대리 역시 "관련 전문가들에게 문의했으나 현재까지 수장과 관련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김영모 한국선장포럼 사무총장도 "관련 단체 등에 문의해봤지만, 수장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과거와 달리 해상 교통이 발달했고, 냉장과 냉동 장비가 갖춰지면서 수장은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사무총장은 "형법상 시신을 관리하지 않을 경우 유기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설사 선장의 권한이라 해도 수장 행위는 있을 수 없다"며 "승선 고용 계약서에도 수장에 대한 부분을 조건에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거리 항해에서 비롯된 법 조항

창원지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 '선원법 해설서'를 쓴 권창영 변호사는 '수장' 조항이 역사적 연혁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합니다. 권 변호사는 "냉장시설이 없던 과거 범선에서 장거리 항해를 하며 사고가 난 경우 시신을 안전하게 보관할 방법이 없었고, 전염병 등의 문제로 수장이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권 변호사는 "시체를 돛에 사용되는 천인 범포(帆布)로 감싸고, 다시 국기로 감싼 후 시체가 뜨지 않도록 선미에서 명복을 빈 뒤, 장발 기적을 불고 수장 지점을 3번 도는 것이 관례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영미권은 해양문화이기 때문에 수장을 영예로운 매장 방법으로 보지만,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권으로 유족이 사체를 수습해 매립하는 육상 문화이기 때문에 국가별로 수장에 대한 인식 역시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해수부 관계자는 "1962년 선원법이 제정될 때부터 수장 관련 내용이 있었다"며 "삭제 여부 등은 아직 논의된 바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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