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지진 발생 5분 만에 “자연 지진” 결론…어떻게 분석했을까?

입력 2020.05.12 (16:23) 수정 2020.05.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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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보니까 딱 핵실험 했네"
"자연지진인지 어떻게 안다고 그렇게 서둘러 말하지? 오늘 비 오는 것도 못 맞추는 기상청에서?"

어제(12일) 북한 평강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지진이 발생한 건 저녁 7시 45분이었습니다. 기상청은 초기에 규모 4.0이라고 발표했다가, 5분 뒤인 저녁 7시 50분, 규모를 3.8로 하향 조정하면서 "자연 지진으로 분석된다"고 통보했습니다.

댓글과 같은 의구심이 들만도 합니다. 과거 북한이 핵 실험을 할 때면 한참을 뜸을 들이다 해외 기관에서 발표한 뒤에야 인공 지진 발생 사실을 알렸던 기상청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5분 만에 '자연 지진'이라고 단정 지은 겁니다. 규모를 낮춰 재발표한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발생 26초 만에 조기 경보 발표…정밀 분석 후 규모 하향 조정

어떻게 이런 발표가 나온 걸까요? 먼저 규모를 하향 조정한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정확한 시각은 어제 저녁 7시 45분 06초입니다. 기상청이 지진 발생을 최초로 알린 것은 불과 26초 뒤인 7시 45분 32초입니다. 실제 수도권이나 강원 지역 주민들은 진동이 느껴짐과 동시에 안전 문자를 받았다는 경험담을 내놨습니다.

기상청은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덕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에는 지진이 발생한 뒤 사람의 수동 분석을 거친 뒤에야 지진 정보가 제공됐습니다. 그러나 2016년 경주 지진을 거치며 대형 지진의 경우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신속한 지진 발생 정보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입니다. 지진 조기 경보는 진동이 큰 S파가 도달하기 전에 진동은 약하지만, 속도가 빠른 P파만으로 지진 정보를 분석해 대중에 통보하는 방식입니다. S파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대피 가능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자료 제공 : 기상청자료 제공 : 기상청

기상청은 "규모 5.0 이상으로 예상되는 지진이 국내에서 발생한 경우와 국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지진이 국외에서 발생한 경우에 지진 조기 경보를 발령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남철 기상청 지진전문분석관은 "과거에는 북한 지진의 경우 조기 경보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최근 수도권 지역에 진동이 예상되는 때에도 조기 경보를 발령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밝히고, "어제 지진이 북한 지진에 대해 조기 경보가 발표된 첫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규모가 4.0에서 3.8로 하향 조정된 것은 처음 조기 경보로 제공된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지다 보니 이후 정밀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포항 지진 등에서도 조기 경보 이후 정밀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규모가 수정된 바 있습니다.

5분 만에 '자연 지진' 분석 비결은?

그렇다면 불과 5분 만에 '자연 지진'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여기에도 지진파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의 파형 차이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의 파형 차이

위 그림은 인공 지진과 자연 지진의 지진파 형태입니다. 인공 지진은 핵 실험이나 화약 폭발 등 인위적인 행위로 발생한 지진을 뜻하고, 자연 지진은 단층 운동 등 말 그대로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발생한 지진입니다.

그런데 두 지진의 지진파 형태를 보면, 자연 지진의 경우 앞서 조기 경보에서 설명한 것처럼 S파의 진폭이 P파보다 큽니다. 반면 인공 지진의 경우 P파의 진폭이 S파보다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외에도 인공 지진의 경우 폭발 시 발생하는 음파가 존재하는 등 자연 지진과 인공 지진을 구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전문가들은 지진파가 도달하는 즉시 인공 지진과 자연 지진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공 지진 발생 사실, 숨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공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기상청이나 정부가 은폐하는 것은 가능할까?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서 관측한 어제(12일) 북한 평강 지진 정보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서 관측한 어제(12일) 북한 평강 지진 정보

위 그림은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서 어제 북한 평강 지진을 관측한 결과입니다. 지진파는 지구 반대편까지도 도달해 지진계에 관측되기 때문에 핵 실험 등의 인공 지진이 발생하면 사실상 전 세계에서 발생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기상청은 핵 실험 등의 인공 지진이 발생할 경우 정부 내 정보기관의 통보 절차를 거치다 보니 언론 등에는 지연 발표해 왔습니다. 그러다 5차 핵 실험 당시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에서 북한의 인공 지진 사실을 먼저 발표한 이후로는 기상청에서도 인공 지진 사실을 즉시 통보하는 것으로 절차를 변경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시점에서 인공 지진의 발생 사실은 기술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즉시, 투명하게 공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베스트 댓글 장식한 '무조건 핵 실험설'

이러한 상황이지만, 이번 지진 관련한 대부분 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무조건 핵 실험'이 차지했습니다. '무조건 핵 실험설'은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 국민으로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의 핵 실험을 겪으면서 북한에 지진이 났다 하면 '핵 실험'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정보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장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지진이 난 북한 평강 지역은 과거 수차례 발생한 지진을 통해 단층면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얼마든지 자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수도권과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인 만큼 '무조건 핵실험설'처럼 비과학적인 접근이 아닌 이 지역의 지질 환경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정밀 분석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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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지진 발생 5분 만에 “자연 지진” 결론…어떻게 분석했을까?
    • 입력 2020-05-12 16:23:20
    • 수정2020-05-12 16:25:44
    취재K
"규모 보니까 딱 핵실험 했네" "자연지진인지 어떻게 안다고 그렇게 서둘러 말하지? 오늘 비 오는 것도 못 맞추는 기상청에서?" 어제(12일) 북한 평강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입니다. 지진이 발생한 건 저녁 7시 45분이었습니다. 기상청은 초기에 규모 4.0이라고 발표했다가, 5분 뒤인 저녁 7시 50분, 규모를 3.8로 하향 조정하면서 "자연 지진으로 분석된다"고 통보했습니다. 댓글과 같은 의구심이 들만도 합니다. 과거 북한이 핵 실험을 할 때면 한참을 뜸을 들이다 해외 기관에서 발표한 뒤에야 인공 지진 발생 사실을 알렸던 기상청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5분 만에 '자연 지진'이라고 단정 지은 겁니다. 규모를 낮춰 재발표한 것도 의심스러운 대목입니다. 발생 26초 만에 조기 경보 발표…정밀 분석 후 규모 하향 조정 어떻게 이런 발표가 나온 걸까요? 먼저 규모를 하향 조정한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정확한 시각은 어제 저녁 7시 45분 06초입니다. 기상청이 지진 발생을 최초로 알린 것은 불과 26초 뒤인 7시 45분 32초입니다. 실제 수도권이나 강원 지역 주민들은 진동이 느껴짐과 동시에 안전 문자를 받았다는 경험담을 내놨습니다. 기상청은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 덕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에는 지진이 발생한 뒤 사람의 수동 분석을 거친 뒤에야 지진 정보가 제공됐습니다. 그러나 2016년 경주 지진을 거치며 대형 지진의 경우 정확도가 떨어지더라도 신속한 지진 발생 정보의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그래서 도입한 것이 지진 조기 경보 시스템입니다. 지진 조기 경보는 진동이 큰 S파가 도달하기 전에 진동은 약하지만, 속도가 빠른 P파만으로 지진 정보를 분석해 대중에 통보하는 방식입니다. S파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대피 가능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자료 제공 : 기상청 기상청은 "규모 5.0 이상으로 예상되는 지진이 국내에서 발생한 경우와 국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지진이 국외에서 발생한 경우에 지진 조기 경보를 발령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남철 기상청 지진전문분석관은 "과거에는 북한 지진의 경우 조기 경보를 발표하지 않았지만, 최근 수도권 지역에 진동이 예상되는 때에도 조기 경보를 발령하는 것으로 방침이 바뀌었다"고 밝히고, "어제 지진이 북한 지진에 대해 조기 경보가 발표된 첫 사례"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규모가 4.0에서 3.8로 하향 조정된 것은 처음 조기 경보로 제공된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지다 보니 이후 정밀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했다는 것입니다. 과거 포항 지진 등에서도 조기 경보 이후 정밀 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규모가 수정된 바 있습니다. 5분 만에 '자연 지진' 분석 비결은? 그렇다면 불과 5분 만에 '자연 지진'이라고 분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여기에도 지진파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의 파형 차이 위 그림은 인공 지진과 자연 지진의 지진파 형태입니다. 인공 지진은 핵 실험이나 화약 폭발 등 인위적인 행위로 발생한 지진을 뜻하고, 자연 지진은 단층 운동 등 말 그대로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발생한 지진입니다. 그런데 두 지진의 지진파 형태를 보면, 자연 지진의 경우 앞서 조기 경보에서 설명한 것처럼 S파의 진폭이 P파보다 큽니다. 반면 인공 지진의 경우 P파의 진폭이 S파보다 훨씬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외에도 인공 지진의 경우 폭발 시 발생하는 음파가 존재하는 등 자연 지진과 인공 지진을 구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전문가들은 지진파가 도달하는 즉시 인공 지진과 자연 지진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공 지진 발생 사실, 숨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공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기상청이나 정부가 은폐하는 것은 가능할까?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서 관측한 어제(12일) 북한 평강 지진 정보 위 그림은 유럽지중해지진센터(EMSC)에서 어제 북한 평강 지진을 관측한 결과입니다. 지진파는 지구 반대편까지도 도달해 지진계에 관측되기 때문에 핵 실험 등의 인공 지진이 발생하면 사실상 전 세계에서 발생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기상청은 핵 실험 등의 인공 지진이 발생할 경우 정부 내 정보기관의 통보 절차를 거치다 보니 언론 등에는 지연 발표해 왔습니다. 그러다 5차 핵 실험 당시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에서 북한의 인공 지진 사실을 먼저 발표한 이후로는 기상청에서도 인공 지진 사실을 즉시 통보하는 것으로 절차를 변경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시점에서 인공 지진의 발생 사실은 기술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즉시, 투명하게 공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입니다. 베스트 댓글 장식한 '무조건 핵 실험설' 이러한 상황이지만, 이번 지진 관련한 대부분 기사의 베스트 댓글은 '무조건 핵 실험'이 차지했습니다. '무조건 핵 실험설'은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물론 우리 국민으로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의 핵 실험을 겪으면서 북한에 지진이 났다 하면 '핵 실험'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아니면 말고' 식의 정보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장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지진이 난 북한 평강 지역은 과거 수차례 발생한 지진을 통해 단층면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얼마든지 자연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수도권과도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인 만큼 '무조건 핵실험설'처럼 비과학적인 접근이 아닌 이 지역의 지질 환경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정밀 분석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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