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친딸 “아빠가 그랬어요”→“미워서 거짓말” 성추행 진실은?

입력 2020.05.1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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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10살이던 바다(가명)는 아빠가 몸을 만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빠의 행동은 심해졌고, 13살이던 2017년에야 아빠의 행동이 성폭력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다는 친구와 상담 교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피해 내용이 통보되면서 수사가 시작돼 아버지 A씨는 강제추행과 유사성행위,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아빠가 그랬어요"→"미워서 거짓말 했어요"

바다는 2018년 수사기관에 출석해 아빠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아빠가 성추행 당시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마라, 이거 말하면 아빠 감방간다"고 말했다며 대화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했고, "뭔가 몸을 더럽히는 것 같고 수치심도 느껴져 울었다"는 진술을 하는 등 사건 당시 느꼈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1심 재판이 시작되자 모든게 거짓말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아빠가 자신을 혼내자 아빠가 너무 미워서 학교 선생님 등에게 "아빠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또, '아빠가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허위로 진술했는데 이는 거짓'이라는 취지의 서면 진술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아빠 A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강제추행 등의 혐의는 모두 무죄로 봤고, 폭언을 한 아동학대 혐의만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바다가 법정에 출석해 진술을 번복한 점과 진술서를 직접 작성해 제출한 점, 바다의 엄마와 오빠도 '아빠가 자주 욕설을 하지만 그런 범행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다'라며 진술하고 있는 점, 아빠 역시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즉, 유일한 직접 증거인 바다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고, 달리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왜 말을 바꿨을까?

바다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정신과 진료의사는 2심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바다와 면담한 내용을 증언했습니다. "바다에게 성폭행 당한 일을 물어보았을 때 바다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한 적은 없으며 그와 같은 일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는지를 물어보면 '얘기는 못하겠다'"는 태도였음을 밝혔습니다.

또, "바다가 1심 재판에 갔다 온 것은 엄마가 바다에게 (아빠가 성폭행 한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얘기를 하라고 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라고 얘기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특히 "가족들이 눈치를 많이 주었다"며 "할머니는 아빠를 빨리 꺼내야 한다고 욕하고, 엄마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우니 정말 아빠가 그런 것이 맞느냐며 재차 묻고, 못 믿겠으니 그런 일이 없다고 하라고 해서 진술서도 쓴 것" 이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바다는 앞서 학교 친구에게도 '내가 아빠한테 성폭력 당했거든', '엄마가 아빠 교도소에서 꺼내려고 나한테 거짓말 하래' 라는 내용의 카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바다의 엄마는 구속된 아빠 A 씨를 접견해 바다를 설득하고 있음을 직접 내비쳤습니다. "아빠 구속은 아니고 다른 벌로 해줘라", "니가 말 한마디만 좋게 해주면 아빠가 구속 안되어도 되지 않냐" 등의 말로 바다를 설득해 보겠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바다에게 울면서 부탁을 했어. 스쳤다고만 해라 이렇게 해주면 안되겠니 했더니 그렇게 해준대"라는 취지의 말을 아빠에게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가족들의 압박과 회유로 '번복'...초기 진술 신빙성 인정"

결국 2심 법원은 아빠 A 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바다의 수사기관 진술을 보면, 경험한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 포함돼 있고, 아빠를 무고하기 위해 실제 경험하지 않은 피해 사실을 허위로 진술할 동기나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바다가 진술을 번복한 동기에 대해서는 아빠 A 씨의 구속을 면하기 위한 가족들의 압박과 회유가 작용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 역시 "친족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하였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여서는 안 된다"며 2심 재판부와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특히 "친족에 의한 성범죄를 당했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내용 자체의 신빙성 인정 여부와 함께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나 이유,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해 어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와 경위 등을 더하여 보면, 피해자의 번복된 법정 진술은 믿을 수 없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신빙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며 아빠 A 씨에 대해 징역 3년형을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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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살 친딸 “아빠가 그랬어요”→“미워서 거짓말” 성추행 진실은?
    • 입력 2020-05-14 13:40:06
    취재K
2014년 여름, 10살이던 바다(가명)는 아빠가 몸을 만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아빠의 행동은 심해졌고, 13살이던 2017년에야 아빠의 행동이 성폭력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바다는 친구와 상담 교사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피해 내용이 통보되면서 수사가 시작돼 아버지 A씨는 강제추행과 유사성행위,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아빠가 그랬어요"→"미워서 거짓말 했어요"

바다는 2018년 수사기관에 출석해 아빠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아빠가 성추행 당시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지 마라, 이거 말하면 아빠 감방간다"고 말했다며 대화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했고, "뭔가 몸을 더럽히는 것 같고 수치심도 느껴져 울었다"는 진술을 하는 등 사건 당시 느꼈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1심 재판이 시작되자 모든게 거짓말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아빠가 자신을 혼내자 아빠가 너무 미워서 학교 선생님 등에게 "아빠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다. 또, '아빠가 반성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허위로 진술했는데 이는 거짓'이라는 취지의 서면 진술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아빠 A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강제추행 등의 혐의는 모두 무죄로 봤고, 폭언을 한 아동학대 혐의만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바다가 법정에 출석해 진술을 번복한 점과 진술서를 직접 작성해 제출한 점, 바다의 엄마와 오빠도 '아빠가 자주 욕설을 하지만 그런 범행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다'라며 진술하고 있는 점, 아빠 역시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습니다.

즉, 유일한 직접 증거인 바다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은 그대로 믿기 어렵고, 달리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왜 말을 바꿨을까?

바다가 입원해 치료를 받았던 정신과 진료의사는 2심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바다와 면담한 내용을 증언했습니다. "바다에게 성폭행 당한 일을 물어보았을 때 바다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한 적은 없으며 그와 같은 일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는지를 물어보면 '얘기는 못하겠다'"는 태도였음을 밝혔습니다.

또, "바다가 1심 재판에 갔다 온 것은 엄마가 바다에게 (아빠가 성폭행 한 것이) 사실이 아니었다라고 얘기를 하라고 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라고 얘기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특히 "가족들이 눈치를 많이 주었다"며 "할머니는 아빠를 빨리 꺼내야 한다고 욕하고, 엄마는 경제적 사정이 어려우니 정말 아빠가 그런 것이 맞느냐며 재차 묻고, 못 믿겠으니 그런 일이 없다고 하라고 해서 진술서도 쓴 것" 이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바다는 앞서 학교 친구에게도 '내가 아빠한테 성폭력 당했거든', '엄마가 아빠 교도소에서 꺼내려고 나한테 거짓말 하래' 라는 내용의 카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바다의 엄마는 구속된 아빠 A 씨를 접견해 바다를 설득하고 있음을 직접 내비쳤습니다. "아빠 구속은 아니고 다른 벌로 해줘라", "니가 말 한마디만 좋게 해주면 아빠가 구속 안되어도 되지 않냐" 등의 말로 바다를 설득해 보겠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바다에게 울면서 부탁을 했어. 스쳤다고만 해라 이렇게 해주면 안되겠니 했더니 그렇게 해준대"라는 취지의 말을 아빠에게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가족들의 압박과 회유로 '번복'...초기 진술 신빙성 인정"

결국 2심 법원은 아빠 A 씨의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바다의 수사기관 진술을 보면, 경험한 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 포함돼 있고, 아빠를 무고하기 위해 실제 경험하지 않은 피해 사실을 허위로 진술할 동기나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바다가 진술을 번복한 동기에 대해서는 아빠 A 씨의 구속을 면하기 위한 가족들의 압박과 회유가 작용했다고 봤습니다.

대법원 역시 "친족으로부터 성범죄를 당하였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함부로 배척하여서는 안 된다"며 2심 재판부와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특히 "친족에 의한 성범죄를 당했다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 가족들의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등으로 인해 번복되거나 불분명해질 수 있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법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 내용 자체의 신빙성 인정 여부와 함께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나 이유, 경위 등을 충분히 심리해 어느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된 동기와 경위 등을 더하여 보면, 피해자의 번복된 법정 진술은 믿을 수 없고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을 신빙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에 잘못이 없다"며 아빠 A 씨에 대해 징역 3년형을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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