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의선 만나도…G80에 삼성 배터리 넣긴 어려운 이유

입력 2020.05.14 (18:10) 수정 2020.05.14 (18: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자동차 업계 특성상 1년 남은 시점에서 신규 발주 어려워
장기적으로는 협력 체계 구축할 수 있어
현대차 입장에서 공급선 다변화 필요…‘윈-윈’ 가능
코로나19 이후 거세질 보호무역 대응 차원?

지난해 재계 합동 신년회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웃는 얼굴로 악수했다.

지난해 재계 합동 신년회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웃는 얼굴로 악수했다.

이재용-정의선의 첫 사업 관련 양자 회동…G80에 삼성 배터리 넣는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보다 2살 연상입니다. 비슷한 나이의 재벌 3세인 점 때문에 친분이 있는 것으로 재계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1, 2위 재벌의 총수인 두 사람이 공식적인 업무 협의에서 만난 것은 13일이 처음이었습니다. 두 그룹은 1990년대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 과정 등에서 선대 총수들 간에 마찰도 있었습니다. 또, 창업주나 2세와 달리 3세로 갈수록 적극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이 드뭅니다.

양대 재벌 총수의 첫 회동인 만큼 세간의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두 사람이 이날 협의한 것은 전기차 배터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내년에 출시될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80 전기차에 삼성SDI의 배터리가 들어간다"는 기사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삼성-현대차의 '전기차 동맹'이란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내년 출시 가능성이 있는 G80 전기차에 삼성 배터리를 쓴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업계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사진은 올해 출시된 G80)내년 출시 가능성이 있는 G80 전기차에 삼성 배터리를 쓴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업계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사진은 올해 출시된 G80)

"생산 1년 앞두고 삼성 배터리 신규 발주 어려워"

하지만,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하나금융투자의 송선재 연구원은 "자동차의 발주와 생산 프로세스상 1년 남은 시점에서 신규 발주를 한다는 것은 약간 난센스"라면서 "해프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동차 생산은 계획부터 실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보통 2년 남은 시점에서 부품 발주가 시작되고 1년 전에는 디자인이 확정되는데, 인제 와서 신규 주문을 발주할 가능성은 드물다는 것이죠. "총수들이 전격적으로 약속할 수는 있겠지만 의미 있는 물량은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대차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주문하지 않았던 삼성SDI의 물량을 추가로 주문해서 양산차에 당장 반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두 회사의 관계자들도 "G80에 삼성SDI 제품을 사용하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두 사람 논의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양산까지 10년

게다가 이날 두 사람이 논의한 주요 주제는 전고체(All-Solid-State) 배터리입니다. 차세대 자동차 배터리로 업계에서는 양산까지 10년쯤 걸릴 것으로 내다봅니다. 따라서 당장 내년에 이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행 배터리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전고체배터리는 현행 배터리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지금 쓰는 배터리에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액체인 전해질이 들어있습니다. 오래된 건전지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바로 전해질입니다. 전고체는 이걸 고체로 바꾼다는 것이죠. 안전성도 높일 수 있고 크기도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섬성과 현대차, 장기 협력 가능성은 있어

당장 배터리 납품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라는 지각 변동을 맞고 있습니다.

엔진과 변속기, 동력 전달 장치 등 오래된 자동차 제조업체의 특화 기술들의 가치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고 배터리가 핵심인데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업체가 아니라 배터리 업체가 만듭니다.

따라서 전기차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배터리 제조사들이 단순 납품업체가 아니라 차 시장의 헤게모니를 놓고 경쟁할 상대인 것입니다. 자동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이나 준-자율주행 등 IT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는 이유도 차별화된 기술을 그렇게라도 확보하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삼성SDI는 현대자동차의 공급선을 다변화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자동차 IT가 발달할수록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등 두 회사가 협력할 분야도 많아질 것입니다.

이는 한 차례 자동차 산업 진출에서 쓴잔을 마신 삼성으로서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삼성SDI 홍보 담당자는 "현대차에 배터리를 납품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우리 쪽은 부품 납품업체이기 때문에 결정 권한은 현대차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한국 기업 협력 강화?

이번 회동을 코로나19와 묶어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입니다. '설계는 미국, 생산은 중국' 같은 국제분업이 무너지고 자국 기업 중심의 정책들이 도입될 거란 전망입니다.

무역협회가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통상환경의 변화' 보고서도 이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규제를 늘릴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에 보건 제품이나 핵심 산업의 해외 생산이 주는 위험이 선진국의 '마스크 대란' 등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의 공장을 자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 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산 자동차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 부족으로 한국 공장까지 셧다운되는 일이 잦았습니다.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산 자동차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 부족으로 한국 공장까지 셧다운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한국 자동차 업계만 해도, 코로나19 때문에 중국산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 때문에 공장 셧다운 사태를 맞았습니다. 특정 부품 생산을 국외에 의존할 경우 비슷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사건입니다.

다가올 보호무역주의 시대는 수출에 의존해온 우리 기업에게는 새로운 시련입니다. 무역의 이점을 포기하고 한국 기업끼리 협력하라고 누군가 강요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자유 무역의 복원은 우리나라가 가장 절실한 편입니다.

하지만, 자유무역 회복이 지체되는 동안 국내 기업들 사이에 협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앞으로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한 세대 전 자동차 진출을 둘러싼 악연을 끊고 두 기업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이재용-정의선 만나도…G80에 삼성 배터리 넣긴 어려운 이유
    • 입력 2020-05-14 18:10:39
    • 수정2020-05-14 18:45:44
    취재K
자동차 업계 특성상 1년 남은 시점에서 신규 발주 어려워<br />장기적으로는 협력 체계 구축할 수 있어<br />현대차 입장에서 공급선 다변화 필요…‘윈-윈’ 가능<br />코로나19 이후 거세질 보호무역 대응 차원?

지난해 재계 합동 신년회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웃는 얼굴로 악수했다.

이재용-정의선의 첫 사업 관련 양자 회동…G80에 삼성 배터리 넣는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보다 2살 연상입니다. 비슷한 나이의 재벌 3세인 점 때문에 친분이 있는 것으로 재계에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1, 2위 재벌의 총수인 두 사람이 공식적인 업무 협의에서 만난 것은 13일이 처음이었습니다. 두 그룹은 1990년대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 과정 등에서 선대 총수들 간에 마찰도 있었습니다. 또, 창업주나 2세와 달리 3세로 갈수록 적극적으로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이 드뭅니다.

양대 재벌 총수의 첫 회동인 만큼 세간의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두 사람이 이날 협의한 것은 전기차 배터리였습니다. 이 때문에 "내년에 출시될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G80 전기차에 삼성SDI의 배터리가 들어간다"는 기사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삼성-현대차의 '전기차 동맹'이란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내년 출시 가능성이 있는 G80 전기차에 삼성 배터리를 쓴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업계는 회의적인 시각이다. (사진은 올해 출시된 G80)
"생산 1년 앞두고 삼성 배터리 신규 발주 어려워"

하지만, 업계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하나금융투자의 송선재 연구원은 "자동차의 발주와 생산 프로세스상 1년 남은 시점에서 신규 발주를 한다는 것은 약간 난센스"라면서 "해프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동차 생산은 계획부터 실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보통 2년 남은 시점에서 부품 발주가 시작되고 1년 전에는 디자인이 확정되는데, 인제 와서 신규 주문을 발주할 가능성은 드물다는 것이죠. "총수들이 전격적으로 약속할 수는 있겠지만 의미 있는 물량은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현대차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동안 주문하지 않았던 삼성SDI의 물량을 추가로 주문해서 양산차에 당장 반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두 회사의 관계자들도 "G80에 삼성SDI 제품을 사용하긴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두 사람 논의한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양산까지 10년

게다가 이날 두 사람이 논의한 주요 주제는 전고체(All-Solid-State) 배터리입니다. 차세대 자동차 배터리로 업계에서는 양산까지 10년쯤 걸릴 것으로 내다봅니다. 따라서 당장 내년에 이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고체배터리는 현행 배터리의 크기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사진 제공 : 삼성전자]
지금 쓰는 배터리에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는 액체인 전해질이 들어있습니다. 오래된 건전지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바로 전해질입니다. 전고체는 이걸 고체로 바꾼다는 것이죠. 안전성도 높일 수 있고 크기도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섬성과 현대차, 장기 협력 가능성은 있어

당장 배터리 납품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세계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라는 지각 변동을 맞고 있습니다.

엔진과 변속기, 동력 전달 장치 등 오래된 자동차 제조업체의 특화 기술들의 가치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전기차의 구조는 매우 간단하고 배터리가 핵심인데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업체가 아니라 배터리 업체가 만듭니다.

따라서 전기차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배터리 제조사들이 단순 납품업체가 아니라 차 시장의 헤게모니를 놓고 경쟁할 상대인 것입니다. 자동차 업체들이 자율주행이나 준-자율주행 등 IT 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는 이유도 차별화된 기술을 그렇게라도 확보하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삼성SDI는 현대자동차의 공급선을 다변화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자동차 IT가 발달할수록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등 두 회사가 협력할 분야도 많아질 것입니다.

이는 한 차례 자동차 산업 진출에서 쓴잔을 마신 삼성으로서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삼성SDI 홍보 담당자는 "현대차에 배터리를 납품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우리 쪽은 부품 납품업체이기 때문에 결정 권한은 현대차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한국 기업 협력 강화?

이번 회동을 코로나19와 묶어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입니다. '설계는 미국, 생산은 중국' 같은 국제분업이 무너지고 자국 기업 중심의 정책들이 도입될 거란 전망입니다.

무역협회가 발표한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통상환경의 변화' 보고서도 이 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각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규제를 늘릴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에 보건 제품이나 핵심 산업의 해외 생산이 주는 위험이 선진국의 '마스크 대란' 등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의 공장을 자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 정책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국산 자동차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 부족으로 한국 공장까지 셧다운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한국 자동차 업계만 해도, 코로나19 때문에 중국산 부품인 '와이어링 하니스' 때문에 공장 셧다운 사태를 맞았습니다. 특정 부품 생산을 국외에 의존할 경우 비슷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사건입니다.

다가올 보호무역주의 시대는 수출에 의존해온 우리 기업에게는 새로운 시련입니다. 무역의 이점을 포기하고 한국 기업끼리 협력하라고 누군가 강요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자유 무역의 복원은 우리나라가 가장 절실한 편입니다.

하지만, 자유무역 회복이 지체되는 동안 국내 기업들 사이에 협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앞으로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한 세대 전 자동차 진출을 둘러싼 악연을 끊고 두 기업이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