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 동상이몽①] 국민청원 390만 명…이수정·천종호에 묻다

입력 2020.05.15 (17:24) 수정 2020.05.1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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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흉악범죄가 언론에 조명될 때마다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년법'입니다. 지난 3월, 배달일에 나선 대학 새내기의 목숨을 앗아간 '렌터카 사망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 모두 미성년자였습니다. 더군다나 렌터카를 운전한 중학생이 소년법상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에 해당해서 형사처벌을 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는데요.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청와대 답변을 앞두고 국민들이 바라는 소년법은 어떤 건지, 그리고 소년법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모색해 봤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한 2017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소년법과 관련한 청원 건수는 모두 1,935건입니다. 내용이 똑같은 중복 청원은 제외했고, 청소년을 술이나 담배와 같은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청소년보호법 역시 제외했습니다.

한 명이 여러 개의 청원에 동의의 뜻을 표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소년법 관련 청원에 참여한 국민 수는 390만 명을 넘었습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 답변을 이미 받았거나 기다리고 있는 청원도 11건입니다.


■뜨거운 국민 청원 "가해자 보호하는 법 고치자"

소년법을 아예 없애서 성인과 똑같이 처벌하자는 '폐지'가 1,505건입니다. 동의 인원도 71만 명을 넘었습니다. 소년법 조항을 바꿔서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 연령 범위를 낮추자, 특정 강력범죄에는 소년법 적용하지 말자, 최대 15년으로 돼 있는 형량을 높이자 등의 '개정' 청원은 421건이었습니다. 이름을 올린 국민들은 318만 명을 넘습니다.

천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 56건을 추려서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봤습니다. 소년법을 폐지하자 18건, 개정하자는 청원이 33건이었습니다. 개정하자는 청원 가운데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24건입니다. 여기에는 4대 강력범죄에는 적용하지 말자, 소년원 처분 없애자, 부모도 처벌해야 한다 등의 제안도 나왔습니다.

결국 청소년 흉악범죄를 계기로 촉발된 청원은 처벌 강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한 살 낮추는 겁니다. 촉법소년 범주를 좁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만 13살,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아이들도 형사법정에 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 13세 흉악범죄 많아졌을까?

촉법소년은 경찰의 수사를 받은 뒤 모두 가정법원으로 송치하게 돼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렇게 송치된 인원이 2017년 7,533명에서 2018년 7,364명으로 다소 줄었습니다. 만 13세는 2017년 4,637명에서 4,843명으로 늘었고, 전체 가운데 비율도 2017년보다 4%가량 늘었습니다. 하지만 만 13세의 범죄 혐의가 어떤 건지, 강력범죄 비율이 실제 높아진 건지는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 않아 알 수 없었습니다.

2018년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낸 4대 흉악범죄(살인, 강도, 강간·추행, 방화)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450명이었습니다. 2017년은 447명입니다. 흉악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해 전체의 5% 내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건 절도, 폭력이었습니다.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낮추게 되면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검사의 판단에 따라 기소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소년 재범과 흉포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고, 낙인 효과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수정 교수는 소년범의 범죄가 n번방 같은 흉악범죄로 만성화되기 전에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소년범들에게는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성인과 같은 구금의 형태로 격리한 뒤 전혀 갱생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사회로 돌려보낸다면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소년범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대부분 사회와 교육, 가정의 방치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소년범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과연 재범을 막을 수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가정법원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는 연령 낮추기는 미봉책이라고 말합니다. 만 13세로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춘 뒤 만약 만 12세가 흉악범죄를 저지른다면 또 연령 낮추기가 해법이 될 수 있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만 13세 아이들에게 공직 취임 제약 등 중대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년법을 연구하는 박성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소년 강력범죄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연쇄적으로 성인 강력범죄자의 형벌 상향 등 형법 체계의 마비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또,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국민들의 처벌 요구 수위가 달라진다는 해외 논문을 소개하며 선정적 보도를 하는 미디어의 책임도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뜨거운 여론과 피해자의 끔찍한 고통을 모르지 않습니다. 흉악범죄 처벌에 대해서는 처벌을 포함한 다른 방법을 고민하더라도 촉법소년 연령 범위를 한 살 줄이는 것이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소년사법제도의 근본적 변화 방향을 고민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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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법 동상이몽①] 국민청원 390만 명…이수정·천종호에 묻다
    • 입력 2020-05-15 17:24:22
    • 수정2020-05-15 22:13:23
    취재K
청소년들의 흉악범죄가 언론에 조명될 때마다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소년법'입니다. 지난 3월, 배달일에 나선 대학 새내기의 목숨을 앗아간 '렌터카 사망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 모두 미성년자였습니다. 더군다나 렌터카를 운전한 중학생이 소년법상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에 해당해서 형사처벌을 면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는데요.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했습니다. 청와대 답변을 앞두고 국민들이 바라는 소년법은 어떤 건지, 그리고 소년법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모색해 봤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시작한 2017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소년법과 관련한 청원 건수는 모두 1,935건입니다. 내용이 똑같은 중복 청원은 제외했고, 청소년을 술이나 담배와 같은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청소년보호법 역시 제외했습니다.

한 명이 여러 개의 청원에 동의의 뜻을 표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소년법 관련 청원에 참여한 국민 수는 390만 명을 넘었습니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청와대 답변을 이미 받았거나 기다리고 있는 청원도 11건입니다.


■뜨거운 국민 청원 "가해자 보호하는 법 고치자"

소년법을 아예 없애서 성인과 똑같이 처벌하자는 '폐지'가 1,505건입니다. 동의 인원도 71만 명을 넘었습니다. 소년법 조항을 바꿔서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 연령 범위를 낮추자, 특정 강력범죄에는 소년법 적용하지 말자, 최대 15년으로 돼 있는 형량을 높이자 등의 '개정' 청원은 421건이었습니다. 이름을 올린 국민들은 318만 명을 넘습니다.

천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 56건을 추려서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봤습니다. 소년법을 폐지하자 18건, 개정하자는 청원이 33건이었습니다. 개정하자는 청원 가운데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24건입니다. 여기에는 4대 강력범죄에는 적용하지 말자, 소년원 처분 없애자, 부모도 처벌해야 한다 등의 제안도 나왔습니다.

결국 청소년 흉악범죄를 계기로 촉발된 청원은 처벌 강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촉법소년 연령 상한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한 살 낮추는 겁니다. 촉법소년 범주를 좁히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만 13살, 그러니까 중학교 1학년 아이들도 형사법정에 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만 13세 흉악범죄 많아졌을까?

촉법소년은 경찰의 수사를 받은 뒤 모두 가정법원으로 송치하게 돼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렇게 송치된 인원이 2017년 7,533명에서 2018년 7,364명으로 다소 줄었습니다. 만 13세는 2017년 4,637명에서 4,843명으로 늘었고, 전체 가운데 비율도 2017년보다 4%가량 늘었습니다. 하지만 만 13세의 범죄 혐의가 어떤 건지, 강력범죄 비율이 실제 높아진 건지는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 않아 알 수 없었습니다.

2018년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낸 4대 흉악범죄(살인, 강도, 강간·추행, 방화)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450명이었습니다. 2017년은 447명입니다. 흉악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해 전체의 5% 내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건 절도, 폭력이었습니다.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낮추게 되면 범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검사의 판단에 따라 기소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소년 재범과 흉포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고, 낙인 효과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수정 교수는 소년범의 범죄가 n번방 같은 흉악범죄로 만성화되기 전에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소년범들에게는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성인과 같은 구금의 형태로 격리한 뒤 전혀 갱생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사회로 돌려보낸다면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소년범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대부분 사회와 교육, 가정의 방치가 있는데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소년범에게 책임을 묻는 일이 과연 재범을 막을 수 있겠냐고 말했습니다.


가정법원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는 연령 낮추기는 미봉책이라고 말합니다. 만 13세로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낮춘 뒤 만약 만 12세가 흉악범죄를 저지른다면 또 연령 낮추기가 해법이 될 수 있느냐고 기자에게 반문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은 만 13세 아이들에게 공직 취임 제약 등 중대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년법을 연구하는 박성훈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소년 강력범죄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연쇄적으로 성인 강력범죄자의 형벌 상향 등 형법 체계의 마비로 귀결된다고 말합니다. 또,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했을 경우 국민들의 처벌 요구 수위가 달라진다는 해외 논문을 소개하며 선정적 보도를 하는 미디어의 책임도 언급했습니다.

전문가들도 뜨거운 여론과 피해자의 끔찍한 고통을 모르지 않습니다. 흉악범죄 처벌에 대해서는 처벌을 포함한 다른 방법을 고민하더라도 촉법소년 연령 범위를 한 살 줄이는 것이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소년사법제도의 근본적 변화 방향을 고민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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