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40주년 다시 쓰는 검시 기록]① 최초 총상 사망자는 고 김안부 씨였다

입력 2020.05.15 (18:07) 수정 2020.05.17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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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KBS광주방송총국은 희생자 165명의 검시 관련 기록을 다시 살피는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5월 기획보도한 '5.18 학살보고서'의 시즌 2인 셈입니다.

2019년 기획 '학살보고서'는 '시위와 군의 진압' 사이에 벌어진 불가피한 사상자 발생이라는 막연한 추정을 되짚어보는 보도였습니다. 사망자 사망 경위를 추적하고 검시 내용을 확인하며 사망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취재팀은 사망자 상당수가 '진압이 아닌 학살' 행위에 의해 희생됐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무자비한 폭행으로 숨진 말 못하는 장애인, 대검에 머리를 찔려 두개골이 깨진 택시기사, 한 몸에 13발의 총상을 입은 여성, 부상자를 야산으로 끌고 가 처형하듯 총을 쏜 사례까지...

시즌 2에선 검시 기록에 남은 또 다른 흔적과 의미를 추적합니다.

다시 쓰는 검시기록 Ⅱ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전두환 씨는 회고록을 통해 광주에서의 집단 발포는 무장한 시민군으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 발동 차원'이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민간인 희생자 수는 공식 기록에 따르면 백 예순다섯 명. 그렇다면 이들의 사망 원인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취재팀은 이 기록들을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취재팀은 당시 보안사와 검찰, 병원 기록 등 검시 관련 모든 자료를 모았습니다. 또 사망 당시 목격자나 가족들의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타박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고 김안부 씨의 기록이었습니다.

고 김안부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1980년 5월 19일 밤 10시. 이튿날인 새벽 광주 옛 전남양조장 공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김안부 씨는 홀어머니와 아내, 아홉 살 아들과 갓 돌이 지난 막내딸 등 일곱 식구의 생계를 짊어진 36살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아내 김말옥 씨는 남편의 시신을 목격했던 당시를 잊지 못합니다. 김말옥 씨(故 김안부 씨 처)는 "(죽은)애기 아빠가 장난하는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돌아가셔 버리니까. 나도 우리 아저씨를 보듬고 나도 기절을 해버렸어요."라고 회상합니다.


검찰이 남긴 김안부 씨 사인은 '타박상'입니다. 유족 역시 이 기록을 바탕으로 40년 가까이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팀이 확인한 전남대 의대의 사체 검안서에는 뇌에 출혈이 발생하거나 손상되는 '뇌좌상'을 사인으로 봤습니다. 머릿속에 총탄이 박힌 이른바 '맹관총상'이 인정된다며 가로세로 1㎝의 사입구, 즉 총탄이 들어간 구멍의 크기까지 기록했습니다.


5·18 당시 검안의였던 문형배 원장은 "(1×1㎝ 사입구는) 총상이 아니면 그런 흔적이 나올 수가 없죠… 두부의 타박상에 의해서 사망을 했다면 두개골이 완전히 파괴가 되고 부서질 정도가 돼야 하고…"라며 직접 사입구를 자로 재서 기록했다고 증언합니다. 군이 작성한 검시 참여 결과 보고에는 김 씨의 사망 원인을 '두부 맹관상'이라고 기재했다가 선을 긋고 '타박사'로 고친 내용이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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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40주년 다시 쓰는 검시 기록]① 최초 총상 사망자는 고 김안부 씨였다
    • 입력 2020-05-15 18:07:42
    • 수정2020-05-17 07:08:23
    취재K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앞두고 KBS광주방송총국은 희생자 165명의 검시 관련 기록을 다시 살피는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지난해 5월 기획보도한 '5.18 학살보고서'의 시즌 2인 셈입니다.

2019년 기획 '학살보고서'는 '시위와 군의 진압' 사이에 벌어진 불가피한 사상자 발생이라는 막연한 추정을 되짚어보는 보도였습니다. 사망자 사망 경위를 추적하고 검시 내용을 확인하며 사망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취재팀은 사망자 상당수가 '진압이 아닌 학살' 행위에 의해 희생됐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무자비한 폭행으로 숨진 말 못하는 장애인, 대검에 머리를 찔려 두개골이 깨진 택시기사, 한 몸에 13발의 총상을 입은 여성, 부상자를 야산으로 끌고 가 처형하듯 총을 쏜 사례까지...

시즌 2에선 검시 기록에 남은 또 다른 흔적과 의미를 추적합니다.

다시 쓰는 검시기록 Ⅱ

"5·18 사태는 폭동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전두환 씨는 회고록을 통해 광주에서의 집단 발포는 무장한 시민군으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 발동 차원'이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숨진 민간인 희생자 수는 공식 기록에 따르면 백 예순다섯 명. 그렇다면 이들의 사망 원인은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요. 취재팀은 이 기록들을 꼼꼼히 들여다봤습니다.


취재팀은 당시 보안사와 검찰, 병원 기록 등 검시 관련 모든 자료를 모았습니다. 또 사망 당시 목격자나 가족들의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타박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고 김안부 씨의 기록이었습니다.

고 김안부 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1980년 5월 19일 밤 10시. 이튿날인 새벽 광주 옛 전남양조장 공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김안부 씨는 홀어머니와 아내, 아홉 살 아들과 갓 돌이 지난 막내딸 등 일곱 식구의 생계를 짊어진 36살의 평범한 가장이었습니다.

아내 김말옥 씨는 남편의 시신을 목격했던 당시를 잊지 못합니다. 김말옥 씨(故 김안부 씨 처)는 "(죽은)애기 아빠가 장난하는가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돌아가셔 버리니까. 나도 우리 아저씨를 보듬고 나도 기절을 해버렸어요."라고 회상합니다.


검찰이 남긴 김안부 씨 사인은 '타박상'입니다. 유족 역시 이 기록을 바탕으로 40년 가까이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재팀이 확인한 전남대 의대의 사체 검안서에는 뇌에 출혈이 발생하거나 손상되는 '뇌좌상'을 사인으로 봤습니다. 머릿속에 총탄이 박힌 이른바 '맹관총상'이 인정된다며 가로세로 1㎝의 사입구, 즉 총탄이 들어간 구멍의 크기까지 기록했습니다.


5·18 당시 검안의였던 문형배 원장은 "(1×1㎝ 사입구는) 총상이 아니면 그런 흔적이 나올 수가 없죠… 두부의 타박상에 의해서 사망을 했다면 두개골이 완전히 파괴가 되고 부서질 정도가 돼야 하고…"라며 직접 사입구를 자로 재서 기록했다고 증언합니다. 군이 작성한 검시 참여 결과 보고에는 김 씨의 사망 원인을 '두부 맹관상'이라고 기재했다가 선을 긋고 '타박사'로 고친 내용이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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