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그날의 기억…‘주먹밥’의 재발견

입력 2020.05.18 (08:17) 수정 2020.05.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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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로 간 '택시 운전사' 김만섭, 뒷 좌석엔 통금 전 광주에 도착한다면 10만 원을 준다는 외국인 손님이 있습니다.

이들의 눈에 비친 광주는 혼란 그 자쳅니다.

시위는 격렬했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학생들은 무장한 계엄군과 대치 중입니다.

숨가쁘게 도착한 광주역. 한 시민이 쫓아와 무언가를 건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디 쪼매 드쇼. (고맙습니다.)"]

["하나 잡숴, 나도 땡큐라 땡큐."]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시민이 건넨 건 다름 아닌 주먹밥입니다.

["전라도 음식이 최고라더니. 별 거 안넣었구만. 간이 딱 맞다."]

만섭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촬영 중 가장 슬펐던 장면으로 음식점에서 주먹밥 먹던 이 장면을 꼽았습니다.

["맛있네...맛있어."]

관객 천2백만 명이 본 영화 '택시 운전사' 속의 주먹밥은 40년 전 광주 거리에 실제 등장했던, 역사의 단면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도로를 통제하며 광주를 고립시키자, 당장 먹을 게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금남로 주변 재래 시장 상인을 비롯해 주부들이 나섰습니다.

저마다 집에 있는 쌀을 들고 나왔습니다.

골목에 커다란 솥을 걸고 밥을 짓기 시작합니다.

흰 쌀밥에 소금 간,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주먹밥을 자식 같고 동생 같은 시민군에게 전했습니다.

한 톨 한 톨의 밥알이 모여 주먹밥이 되듯 주먹밥을 통한 나눔과 연대가 이뤄진 것입니다.

그 때 이후 주먹밥은 5월 광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됐습니다.

'5월 광주'를 다룬 벽화와 그림에 밥 짓는 모습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주에는 조금 특별한 버스가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을 지나는 '518번' 버스입니다.

이 버스의 정차지 중 하나 광주 대인시장입니다.

시민군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상인들이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던 그 때 그 현장입니다.

40년 간 채소 장사를 하는 하문순 씨, 하 씨 기억 저편엔 지금도 스러져가던 학생들 모습이 있습니다.

[하문순/72세/대인시장 상인 : "야야, 우리 학생들 다 죽는다, 최루탄만 먹고 쓰러진다, 얼른 돈 걷어라... 그래서 지금 돌아가신 노인들이 다니면서 3천 원도 걷고 2천 원도 걷고 5천 원도 걷고..."]

이렇게 광주의 기억은 5.18 당시 눈물 젖은 주먹밥과 맞닿아 있습니다.

올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행사 엠블럼은 '오월 주먹밥'입니다.

40년 전 광주의 주먹밥은 단순한 흰 쌀밥 덩어리의 형상이었지만, 지금은 맛도, 디자인도 다양해졌습니다.

광주 광산동의 이 주먹밥 전문 식당 메뉴 한 번 볼까요,

무등산 나물 주먹밥 돈가스 주먹밥 등 종류만 16가지인데, 가격은 5.18 의미를 담아 '518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주먹밥은 화사한 꽃으로 변신했네요.

시민공모전 대상 수상작 '오월의 꽃'입니다.

다섯까지 맛과 색깔로 광주의 오월을 표현했습니다.

5월 이맘 때면, 옛 '망월동' 가는 길엔 새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핍니다.

'이밥'(흰 쌀밥)이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나무죠,

꽃잎이 마치 뜸 잘든 하얀 밥알처럼 생겼다 해서 이팝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광주에서는 이 꽃을 보며 '주먹밥'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근엔 주먹밥이 아닌 주먹빵도 등장했습니다.

광주 광산구 주민들이 설립한 마을공동체에서 선보인 ‘오월의 주먹빵’입니다.

빵 포장지에는 40년 전 계엄군에 의해 봉쇄됐던 그날의 사연들이 새겨졌습니다.

'쫓아오는 공수 부대를 피해 건물 이층 미용실로 뛰어들었다. 미용실 주인은 "내 아들이다"라고 공수 부대를 쫓아내고 수협건물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국군통합병원 원장이 산소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산소를 구해 기동순찰대원과 함께 무장을 한 채 들어가 산소통을 넘겨주고 돌아왔다.'

광주의 주먹밥 심성은 이번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또 한번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병상이 부족해 애가 탈대로 타던 대구에 선뜻 병상을 내준 곳 광주였죠,

광주 시민들은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이 떠날 때 주먹밥을 지었습니다.

빨리 나으시라, 허한 속 달래시라며 주먹밥 도시락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대구로 돌아 오던 길, 환자들은 주먹밥에 담긴 의미를 곱씹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년.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다시 주먹밥이 많은 이들 기억 속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친절한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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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그날의 기억…‘주먹밥’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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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눈에 비친 광주는 혼란 그 자쳅니다.

시위는 격렬했고,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학생들은 무장한 계엄군과 대치 중입니다.

숨가쁘게 도착한 광주역. 한 시민이 쫓아와 무언가를 건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디 쪼매 드쇼. (고맙습니다.)"]

["하나 잡숴, 나도 땡큐라 땡큐."]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시민이 건넨 건 다름 아닌 주먹밥입니다.

["전라도 음식이 최고라더니. 별 거 안넣었구만. 간이 딱 맞다."]

만섭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는, 촬영 중 가장 슬펐던 장면으로 음식점에서 주먹밥 먹던 이 장면을 꼽았습니다.

["맛있네...맛있어."]

관객 천2백만 명이 본 영화 '택시 운전사' 속의 주먹밥은 40년 전 광주 거리에 실제 등장했던, 역사의 단면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이 도로를 통제하며 광주를 고립시키자, 당장 먹을 게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금남로 주변 재래 시장 상인을 비롯해 주부들이 나섰습니다.

저마다 집에 있는 쌀을 들고 나왔습니다.

골목에 커다란 솥을 걸고 밥을 짓기 시작합니다.

흰 쌀밥에 소금 간, 손으로 꾹꾹 눌러 만든 주먹밥을 자식 같고 동생 같은 시민군에게 전했습니다.

한 톨 한 톨의 밥알이 모여 주먹밥이 되듯 주먹밥을 통한 나눔과 연대가 이뤄진 것입니다.

그 때 이후 주먹밥은 5월 광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됐습니다.

'5월 광주'를 다룬 벽화와 그림에 밥 짓는 모습이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주에는 조금 특별한 버스가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을 지나는 '518번' 버스입니다.

이 버스의 정차지 중 하나 광주 대인시장입니다.

시민군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상인들이 직접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던 그 때 그 현장입니다.

40년 간 채소 장사를 하는 하문순 씨, 하 씨 기억 저편엔 지금도 스러져가던 학생들 모습이 있습니다.

[하문순/72세/대인시장 상인 : "야야, 우리 학생들 다 죽는다, 최루탄만 먹고 쓰러진다, 얼른 돈 걷어라... 그래서 지금 돌아가신 노인들이 다니면서 3천 원도 걷고 2천 원도 걷고 5천 원도 걷고..."]

이렇게 광주의 기억은 5.18 당시 눈물 젖은 주먹밥과 맞닿아 있습니다.

올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행사 엠블럼은 '오월 주먹밥'입니다.

40년 전 광주의 주먹밥은 단순한 흰 쌀밥 덩어리의 형상이었지만, 지금은 맛도, 디자인도 다양해졌습니다.

광주 광산동의 이 주먹밥 전문 식당 메뉴 한 번 볼까요,

무등산 나물 주먹밥 돈가스 주먹밥 등 종류만 16가지인데, 가격은 5.18 의미를 담아 '5180원'으로 책정됐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주먹밥은 화사한 꽃으로 변신했네요.

시민공모전 대상 수상작 '오월의 꽃'입니다.

다섯까지 맛과 색깔로 광주의 오월을 표현했습니다.

5월 이맘 때면, 옛 '망월동' 가는 길엔 새하얀 이팝나무 꽃들이 흐드러지게 핍니다.

'이밥'(흰 쌀밥)이라고도 불리는 바로 그 나무죠,

꽃잎이 마치 뜸 잘든 하얀 밥알처럼 생겼다 해서 이팝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광주에서는 이 꽃을 보며 '주먹밥'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근엔 주먹밥이 아닌 주먹빵도 등장했습니다.

광주 광산구 주민들이 설립한 마을공동체에서 선보인 ‘오월의 주먹빵’입니다.

빵 포장지에는 40년 전 계엄군에 의해 봉쇄됐던 그날의 사연들이 새겨졌습니다.

'쫓아오는 공수 부대를 피해 건물 이층 미용실로 뛰어들었다. 미용실 주인은 "내 아들이다"라고 공수 부대를 쫓아내고 수협건물 앞까지 바래다 주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국군통합병원 원장이 산소를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산소를 구해 기동순찰대원과 함께 무장을 한 채 들어가 산소통을 넘겨주고 돌아왔다.'

광주의 주먹밥 심성은 이번 코로나19라는 재난 속에서 또 한번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병상이 부족해 애가 탈대로 타던 대구에 선뜻 병상을 내준 곳 광주였죠,

광주 시민들은 건강을 되찾은 환자들이 떠날 때 주먹밥을 지었습니다.

빨리 나으시라, 허한 속 달래시라며 주먹밥 도시락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대구로 돌아 오던 길, 환자들은 주먹밥에 담긴 의미를 곱씹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년.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다시 주먹밥이 많은 이들 기억 속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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