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상담 요청 병사는 ‘암(癌)’이라는 대대장님

입력 2020.05.20 (17:21) 수정 2020.05.2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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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XX빵', '목을 쳐버린다'… 군기확립 위한 폭언?

"일 못 하면 목을 쳐버리겠다. 죽여 버린다. (..) XX야. 일 똑바로 못 하면 내가 어딜 가든지 얘기해서 반드시 장기(장기복무선발)가 못 되도록 손 쓴다."

"(고충 상담 요청하는 병사를 일컬어) '암' 들이 다른 부서로 옮겨 가면서 암을 옮긴다. 암을 옮기지 않도록 관리 잘해라."

올해 초, 공군 제10전투비행단(10비행단)에서는 살벌한 폭언과 욕설이 오갔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중령, 그것도 군사경찰대대의 대대장이 쏟아낸 말입니다. 올해 2월까지 '헌병'이라고 불렸던 군사경찰은 군대 안에서의 질서 유지나 군기 확립을 담당하는 곳이죠.

'군기 확립'을 위해서 욕설과 폭언을 했다고 이해하기에는, 김모 대대장 발언의 수위가 너무 높았습니다. 지난 3월 동료 군인들과의 단체 대화방에서 김 대대장은 건강검진 과정이 마치 'XX빵' 같다고 표현했는데요, 'XX빵'은 성범죄를 뜻하는 속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방에는 여군 3명도 있었습니다. 군사경찰대대 지휘관이라면 성범죄 수사도 책임지는데, 성인지 감수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김모 중령이 부대 단체 대화방에 남긴 글”“공군 제10전투비행단 김모 중령이 부대 단체 대화방에 남긴 글”

■ 초소 경계 실패 은폐 의혹도

김 대대장의 '망언'을 고발한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김 대대장이 '초소 경계 실패'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10비행단에서는 올해 1~2월 중에 경계 실패 사례가 2번 발생했습니다. 초병이 근무를 서다 무단으로 초소를 이탈했는데, 알고 보니 간식을 사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 이를 적발하고 보고했지만, 김 대대장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당 병사는 얼마 뒤 만기 전역했다고 합니다.

군형법은 초병이 근무 중 초소에서 무단으로 이탈하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 2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네가 쓴 내용이 맞냐"… 제보자도 색출

김 대대장의 이 같은 비위 신고가 접수되자 10비행단은 지난 5월 감찰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공군본부에서 나온 조사관들은 군사경찰대대 간부들과 면담 조사를 하면서 "사사건건 그렇게 다 적지 마라. 그런 의도가 아니지 않겠느냐"며 진술서 작성에 간섭하고, "대대장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대대장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대대장은 조사에 참여한 간부들을 불러내서 "네가 쓴 내용이 맞냐?"며 진술자를 색출했고, 이후 감찰 과정에서도 설문지 작성을 감찰과장이 일일이 감독하고 진술서를 기명으로 제출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이에 대해 "공군본부 감찰실에서 대대장에게 진술 내용을 흘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대대장의 인권침해와 비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설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 공군본부 "폭언 일부 사실… 투명하게 감찰 조사할 것"

공군본부는 이에 대해 "폭언한 게 일부 사실이 확인됐고 거기에 대해선 감찰 조사를 하고 있다"며 "투명하게 감찰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초소 경계에 실패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해당 병사는 초병이 아니라 면회안내 병사로, 1~2m 앞에 있는 매점에 잠깐 들렀지만, 근무지 이탈로 보기는 어려워 조사를 마무리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 조치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폭행과 폭언 등 군대 내 가혹 행위는 잊을 만 하면 터집니다. 올해 1월에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선임 상병이 '너 같은 녀석만 보면 화가 난다'라는 등 폭언을 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고, 지난해에는 19살 육군 병사가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황당한 감찰로 용기를 내 신고를 했음에도 도리어 대대장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이라며 "최근 군 기강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많은데 애꿎은 장병들 탓을 할 게 아니라 저열한 인권 감수성을 돌이켜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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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충상담 요청 병사는 ‘암(癌)’이라는 대대장님
    • 입력 2020-05-20 17:21:00
    • 수정2020-05-22 14:15:29
    취재K
■ '암', 'XX빵', '목을 쳐버린다'… 군기확립 위한 폭언?

"일 못 하면 목을 쳐버리겠다. 죽여 버린다. (..) XX야. 일 똑바로 못 하면 내가 어딜 가든지 얘기해서 반드시 장기(장기복무선발)가 못 되도록 손 쓴다."

"(고충 상담 요청하는 병사를 일컬어) '암' 들이 다른 부서로 옮겨 가면서 암을 옮긴다. 암을 옮기지 않도록 관리 잘해라."

올해 초, 공군 제10전투비행단(10비행단)에서는 살벌한 폭언과 욕설이 오갔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중령, 그것도 군사경찰대대의 대대장이 쏟아낸 말입니다. 올해 2월까지 '헌병'이라고 불렸던 군사경찰은 군대 안에서의 질서 유지나 군기 확립을 담당하는 곳이죠.

'군기 확립'을 위해서 욕설과 폭언을 했다고 이해하기에는, 김모 대대장 발언의 수위가 너무 높았습니다. 지난 3월 동료 군인들과의 단체 대화방에서 김 대대장은 건강검진 과정이 마치 'XX빵' 같다고 표현했는데요, 'XX빵'은 성범죄를 뜻하는 속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화방에는 여군 3명도 있었습니다. 군사경찰대대 지휘관이라면 성범죄 수사도 책임지는데, 성인지 감수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 김모 중령이 부대 단체 대화방에 남긴 글”
■ 초소 경계 실패 은폐 의혹도

김 대대장의 '망언'을 고발한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김 대대장이 '초소 경계 실패'를 은폐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습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10비행단에서는 올해 1~2월 중에 경계 실패 사례가 2번 발생했습니다. 초병이 근무를 서다 무단으로 초소를 이탈했는데, 알고 보니 간식을 사러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 이를 적발하고 보고했지만, 김 대대장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당 병사는 얼마 뒤 만기 전역했다고 합니다.

군형법은 초병이 근무 중 초소에서 무단으로 이탈하는 행위를 저질렀을 때 2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 "네가 쓴 내용이 맞냐"… 제보자도 색출

김 대대장의 이 같은 비위 신고가 접수되자 10비행단은 지난 5월 감찰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공군본부에서 나온 조사관들은 군사경찰대대 간부들과 면담 조사를 하면서 "사사건건 그렇게 다 적지 마라. 그런 의도가 아니지 않겠느냐"며 진술서 작성에 간섭하고, "대대장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대대장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후 대대장은 조사에 참여한 간부들을 불러내서 "네가 쓴 내용이 맞냐?"며 진술자를 색출했고, 이후 감찰 과정에서도 설문지 작성을 감찰과장이 일일이 감독하고 진술서를 기명으로 제출받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군인권센터는 이에 대해 "공군본부 감찰실에서 대대장에게 진술 내용을 흘린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대대장의 인권침해와 비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설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 공군본부 "폭언 일부 사실… 투명하게 감찰 조사할 것"

공군본부는 이에 대해 "폭언한 게 일부 사실이 확인됐고 거기에 대해선 감찰 조사를 하고 있다"며 "투명하게 감찰 조사하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초소 경계에 실패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해당 병사는 초병이 아니라 면회안내 병사로, 1~2m 앞에 있는 매점에 잠깐 들렀지만, 근무지 이탈로 보기는 어려워 조사를 마무리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주의 조치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폭행과 폭언 등 군대 내 가혹 행위는 잊을 만 하면 터집니다. 올해 1월에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선임 상병이 '너 같은 녀석만 보면 화가 난다'라는 등 폭언을 하고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고, 지난해에는 19살 육군 병사가 괴롭힘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습니다.

군인권센터는 "황당한 감찰로 용기를 내 신고를 했음에도 도리어 대대장의 보복을 두려워해야 하는 지경"이라며 "최근 군 기강이 무너졌다는 지적이 많은데 애꿎은 장병들 탓을 할 게 아니라 저열한 인권 감수성을 돌이켜 봐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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