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카메라’ 올림푸스의 쓸쓸한 퇴장…디카 대신 폰카 시대?

입력 2020.05.21 (15:0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my digital story, olympus

21세기 시작 무렵 시대의 아이콘은 디지털카메라였습니다. 프리챌, 싸이월드에 예쁜 사진을 올리려면 '디카'가 필수였습니다.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전의 일입니다. 손바닥만 한 디카를 장만하는데 아르바이트비를 다 쏟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브랜드가 난립하던 어느 날, 청춘의 아이콘 전지현 씨가 올림푸스 디카를 들고 등장했습니다. '자전거를 탄 풍경' 등의 감미로운 노래가 깔리고 즐거웠던 시절의 사진들이 흘러갑니다. 셔터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애틋하게 울먹이는 전지현 씨가 등장합니다.

전지현 씨가 등장한 올림푸스 광고전지현 씨가 등장한 올림푸스 광고

"나와 올림푸스만 아는 이야기", "어떤 추억은 사랑보다 아름답다", "my digital story" 등의 멘트로 마무리되는 올림푸스 광고 시리즈. '전지현 디카'라는 수식어가 생기며 올림푸스는 우리나라 디카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2003년 7월 25일 KBS 뉴스는 "올림푸스가 올 상반기 국내 디지털카메라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최고급 모델 출시한 지 얼마나 됐다고...소비자 충격

이처럼 한때 잘나가던 올림푸스가 어제(20일) 돌연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올림푸스그룹의 한국법인인 올림푸스 한국은 홈페이지 안내문을 통해 "한국 카메라 시장이 급격히 축소됨에 따라 아쉽게도 국내 사업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30일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직영점과 이스토어의 영업이 종료되며 고객 마일리지와 쿠폰도 사라진다고 안내했습니다.

"다시 한 번 올림푸스를 아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한국과의 20년 인연을 청산했습니다.

올림푸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업 종료 안내문올림푸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업 종료 안내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최고급 기종 카메라인 'E-M1 Mark3'와 아이콘 모델인 PEN(E-PL10)을 출시한 게 불과 석 달 전입니다.

똑딱이 디카에서 렌즈교환식 카메라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도 올림푸스는 나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전성기 때처럼 점유율 1, 2위를 다투진 않았지만 꾸준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올림푸스를 믿었던 소비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국내 최대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사이트인 slrclub에는 아쉽고 안타깝다는 반응이 줄지어 올라왔습니다. 혹시나 AS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중고가격이 폭락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디지털카메라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감돌았습니다.

전성기의 1/8로 줄어든 시장....반등 기미 없어

올림푸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시장에서 디지털카메라 판매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만 살펴봐도 2019년 출하량은 2015년 출하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전성기였던 2010년에 비하면 1/8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국내 시장도 쪼그라들었습니다.


한때 큼직한 DSLR 카메라와 여러 가지 렌즈는 혼수품목이었습니다. 너도나도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불타오르는 예술혼 때문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사진작가인 시대였습니다.

다윗을 쓰러뜨린 골리앗, 손톱만 한 렌즈의 기교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꺾은 건 스마트폰입니다.

그 옛날 피처폰에도 카메라가 달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악한 이미지 품질 탓에 부가기능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달랐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기능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렌즈가 서너 개 달린 스마트폰, 1억 화소까지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AI가 아웃포커싱 효과까지 만들어 주는 스마트폰이 이미 소비자들 손안에 있습니다.

무게는 디카의 1/5 수준, 부피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대형인화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서 감상하거나 SNS에 올리는 용도로는 이미 기능이 차고 넘칩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손쉽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앞다퉈 신제품 내놓았지만...반응은 글쎄?

이제 DSLR 카메라와 여러 가지 렌즈를 들고 사진을 찍는 건 '취미'와 '취재'의 영역으로 축소되는 걸까요?

원래라면 올림픽이 열려야 할 올해, 업계 1, 2위 캐논과 니콘은 나란히 올림픽을 겨냥한 최고급 기종을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까지 겹친 이때, 일반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지갑을 열지는 의문입니다.

전통의 강호 니콘은 수년 전부터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부 업체들은 사업 다각화 등으로 시장 축소 충격을 분산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삼성은 아예 카메라 시장을 접고 이미지센서 생산으로 전환했습니다.

다시 21세기 시작 무렵을 돌아봅니다. 또 다른 시대의 아이콘은 MP3 플레이어였습니다.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에 흡수됐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디지털카메라도 과연 상상하지 못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전지현 카메라’ 올림푸스의 쓸쓸한 퇴장…디카 대신 폰카 시대?
    • 입력 2020-05-21 15:08:04
    취재K
my digital story, olympus

21세기 시작 무렵 시대의 아이콘은 디지털카메라였습니다. 프리챌, 싸이월드에 예쁜 사진을 올리려면 '디카'가 필수였습니다. 핸드폰에 카메라가 달리기 전의 일입니다. 손바닥만 한 디카를 장만하는데 아르바이트비를 다 쏟는 대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브랜드가 난립하던 어느 날, 청춘의 아이콘 전지현 씨가 올림푸스 디카를 들고 등장했습니다. '자전거를 탄 풍경' 등의 감미로운 노래가 깔리고 즐거웠던 시절의 사진들이 흘러갑니다. 셔터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애틋하게 울먹이는 전지현 씨가 등장합니다.

전지현 씨가 등장한 올림푸스 광고
"나와 올림푸스만 아는 이야기", "어떤 추억은 사랑보다 아름답다", "my digital story" 등의 멘트로 마무리되는 올림푸스 광고 시리즈. '전지현 디카'라는 수식어가 생기며 올림푸스는 우리나라 디카 시장을 석권했습니다.

2003년 7월 25일 KBS 뉴스는 "올림푸스가 올 상반기 국내 디지털카메라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최고급 모델 출시한 지 얼마나 됐다고...소비자 충격

이처럼 한때 잘나가던 올림푸스가 어제(20일) 돌연 한국시장 철수를 선언했습니다.

올림푸스그룹의 한국법인인 올림푸스 한국은 홈페이지 안내문을 통해 "한국 카메라 시장이 급격히 축소됨에 따라 아쉽게도 국내 사업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다음 달 30일 오후 6시를 기점으로 직영점과 이스토어의 영업이 종료되며 고객 마일리지와 쿠폰도 사라진다고 안내했습니다.

"다시 한 번 올림푸스를 아껴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한국과의 20년 인연을 청산했습니다.

올림푸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업 종료 안내문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최고급 기종 카메라인 'E-M1 Mark3'와 아이콘 모델인 PEN(E-PL10)을 출시한 게 불과 석 달 전입니다.

똑딱이 디카에서 렌즈교환식 카메라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고도 올림푸스는 나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전성기 때처럼 점유율 1, 2위를 다투진 않았지만 꾸준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올림푸스를 믿었던 소비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국내 최대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사이트인 slrclub에는 아쉽고 안타깝다는 반응이 줄지어 올라왔습니다. 혹시나 AS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중고가격이 폭락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디지털카메라 시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감돌았습니다.

전성기의 1/8로 줄어든 시장....반등 기미 없어

올림푸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시장에서 디지털카메라 판매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만 살펴봐도 2019년 출하량은 2015년 출하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전성기였던 2010년에 비하면 1/8 수준입니다.


같은 기간 국내 시장도 쪼그라들었습니다.


한때 큼직한 DSLR 카메라와 여러 가지 렌즈는 혼수품목이었습니다. 너도나도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불타오르는 예술혼 때문에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사진작가인 시대였습니다.

다윗을 쓰러뜨린 골리앗, 손톱만 한 렌즈의 기교

디지털카메라 시장을 꺾은 건 스마트폰입니다.

그 옛날 피처폰에도 카메라가 달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악한 이미지 품질 탓에 부가기능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달랐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기능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렌즈가 서너 개 달린 스마트폰, 1억 화소까지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AI가 아웃포커싱 효과까지 만들어 주는 스마트폰이 이미 소비자들 손안에 있습니다.

무게는 디카의 1/5 수준, 부피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대형인화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서 감상하거나 SNS에 올리는 용도로는 이미 기능이 차고 넘칩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손쉽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앞다퉈 신제품 내놓았지만...반응은 글쎄?

이제 DSLR 카메라와 여러 가지 렌즈를 들고 사진을 찍는 건 '취미'와 '취재'의 영역으로 축소되는 걸까요?

원래라면 올림픽이 열려야 할 올해, 업계 1, 2위 캐논과 니콘은 나란히 올림픽을 겨냥한 최고급 기종을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까지 겹친 이때, 일반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지갑을 열지는 의문입니다.

전통의 강호 니콘은 수년 전부터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부 업체들은 사업 다각화 등으로 시장 축소 충격을 분산시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삼성은 아예 카메라 시장을 접고 이미지센서 생산으로 전환했습니다.

다시 21세기 시작 무렵을 돌아봅니다. 또 다른 시대의 아이콘은 MP3 플레이어였습니다. 지금은 모두 스마트폰에 흡수됐습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디지털카메라도 과연 상상하지 못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요?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