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이유요?…“현금이죠. 현금.”

입력 2020.05.21 (16:09) 수정 2020.05.2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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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와 신용불량자들의 곤궁한 삶을 소재로 한 소설 '이유'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선의 주 수입원은 '상품권깡'입니다.

카드로 상품권을 많이 구입한 뒤 원래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현금을 받아 일부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밀린 카드값을 그때그때 겨우 갚아 나가는 방식인데, 프리랜서 대역 작가이자 자폐아를 키우는 여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비록 소설이었지만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IMF 당시 경제불황 속에 많은 사람이 '깡'을 통해 생활비에 보태 썼던 것은 사실입니다.

23년이 지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깡'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 선불카드 등을 현금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단순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현금'이기 때문입니다.

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

저소득층에게 쿠폰?.."지금 필요한 건 현금"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던 4월 초.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 방식의 소비쿠폰을 지급했습니다.

물론 소비쿠폰은 취약계층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소비쿠폰이 지급되기 시작하자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를 판매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일부는 적지 않은 수수료를 떼이면서까지 상품권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깡'을 했습니다.

A 씨는 "애들이 3명인데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어 놀고 있다"며, "애들 용돈이라도 주려면 현금이 필요해 상품권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주변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며,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힘든 취약계층에게는 사용처와 기간이 정해져 있는 쿠폰보다는 현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원금을 '깡'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도 적발 시 관련자 처벌 및 지원금 전액 회수 방침을 밝히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고, 제주도는 제주형 긴급생활지원금을 쿠폰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된 선불카드.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된 선불카드.

단속 불구 긴급재난지원금도 현금화 시도…"사용처 확대해야!"

지난 11일부터 정부가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재난지원금은 일부 취약계층에게만 현금으로 지급되고, 대부분의 경우 신용카드에 포인트를 충전하거나 선불카드, 지역화폐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모든 사람에게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못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우선,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생계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금으로 지급된다면 그 돈이 부정한 곳에 사용될 수도 있고, 사용 기간이 한정돼 있지 않다 보니 소비 진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미흡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 가게에서는 이익 취득을 위해 상품과 음식값 등을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초기이지만 벌써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관련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는가 하면, 상품권 교환소를 통해 20%가량의 수수료를 떼이더라도 현금화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B 씨는 "선불카드로 생활용품을 사도 되지만 공과금이나 카드값을 낼 수는 없지 않느냐"며, "몇만 원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이 필요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불법 현금화할 경우 전액 또는 일부 환수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단속 강화에 나섰습니다. 오늘(21일)부터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와 합동 단속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단속만이 능사일까요?

김동욱 제주대 교수는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공과금도 내기 어렵고 신용카드로 생활을 하다 보니 매월 카드값 내는 것도 벅차다"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재난지원금 포인트로 공과금이나 카드값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용처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 마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요해 보입니다.

기사 다시 보기: 코로나19 지원 저소득층 소비 쿠폰, 온라인 거래에도 속수무책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21745&ref=D

기사 다시 보기: 저소득층 쿠폰 '현금화' 성행 "쓸 곳 많아"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24040&ref=D

기사 다시 보기: 정부 재난지원금 선불카드도 불법 현금화…대책 필요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1021&re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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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깡’ 이유요?…“현금이죠. 현금.”
    • 입력 2020-05-21 16:09:48
    • 수정2020-05-21 16:13:20
    취재K
IMF 외환위기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와 신용불량자들의 곤궁한 삶을 소재로 한 소설 '이유'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선의 주 수입원은 '상품권깡'입니다.

카드로 상품권을 많이 구입한 뒤 원래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현금을 받아 일부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밀린 카드값을 그때그때 겨우 갚아 나가는 방식인데, 프리랜서 대역 작가이자 자폐아를 키우는 여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비록 소설이었지만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IMF 당시 경제불황 속에 많은 사람이 '깡'을 통해 생활비에 보태 썼던 것은 사실입니다.

23년이 지난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깡'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 선불카드 등을 현금화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단순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현금'이기 때문입니다.

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
저소득층에게 쿠폰?.."지금 필요한 건 현금"

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던 4월 초.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취약계층에게 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 방식의 소비쿠폰을 지급했습니다.

물론 소비쿠폰은 취약계층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소비쿠폰이 지급되기 시작하자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온누리상품권과 선불카드를 판매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일부는 적지 않은 수수료를 떼이면서까지 상품권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깡'을 했습니다.

A 씨는 "애들이 3명인데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어 놀고 있다"며, "애들 용돈이라도 주려면 현금이 필요해 상품권 교환소에서 현금으로 바꿨다"고 말했습니다.

A 씨는 이어 "주변에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며, "대부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힘든 취약계층에게는 사용처와 기간이 정해져 있는 쿠폰보다는 현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지원금을 '깡'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도 적발 시 관련자 처벌 및 지원금 전액 회수 방침을 밝히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고, 제주도는 제주형 긴급생활지원금을 쿠폰이 아닌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된 선불카드.
단속 불구 긴급재난지원금도 현금화 시도…"사용처 확대해야!"

지난 11일부터 정부가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재난지원금은 일부 취약계층에게만 현금으로 지급되고, 대부분의 경우 신용카드에 포인트를 충전하거나 선불카드, 지역화폐로 지원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모든 사람에게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지 못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우선,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생계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현금으로 지급된다면 그 돈이 부정한 곳에 사용될 수도 있고, 사용 기간이 한정돼 있지 않다 보니 소비 진작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미흡할 수 있습니다.

또 일부 가게에서는 이익 취득을 위해 상품과 음식값 등을 올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초기이지만 벌써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 관련 글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는가 하면, 상품권 교환소를 통해 20%가량의 수수료를 떼이더라도 현금화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B 씨는 "선불카드로 생활용품을 사도 되지만 공과금이나 카드값을 낼 수는 없지 않느냐"며, "몇만 원 손해를 보더라도 현금이 필요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불법 현금화할 경우 전액 또는 일부 환수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단속 강화에 나섰습니다. 오늘(21일)부터 행정안전부는 각 지자체와 합동 단속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단속만이 능사일까요?

김동욱 제주대 교수는 "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사람들은 공과금도 내기 어렵고 신용카드로 생활을 하다 보니 매월 카드값 내는 것도 벅차다"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재난지원금 포인트로 공과금이나 카드값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용처를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건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 마련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요해 보입니다.

기사 다시 보기: 코로나19 지원 저소득층 소비 쿠폰, 온라인 거래에도 속수무책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21745&ref=D

기사 다시 보기: 저소득층 쿠폰 '현금화' 성행 "쓸 곳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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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다시 보기: 정부 재난지원금 선불카드도 불법 현금화…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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