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그만 괴롭혀”…22살 공장 여직원의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20.05.22 (08:28) 수정 2020.05.22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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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두 달 전 전북 익산에서 한 제과 공장에 다니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엔 그만 괴롭히라며 직장 내 괴롭힘을 암시하는 글들이 적혀있었는데요.

그런데 최근 성추행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진상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2살 꽃다운 나이의 그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뉴스따라잡기에서 사건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어제 아침, 전북 익산의 한 공장 앞입니다.

‘직장 괴롭힘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하라’ 이런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이 눈에 띄는데요.

이곳에선 지난주 금요일부터 조용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준상/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부장 : "청년 노동자가 직장 괴롭힘을 호소하면서 사망했는데 회사에서는 사과는커녕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회사 측에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에 다니던 20대 노동자 서 모 씨가 숨진 건 지난 3월 17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1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음성변조 : "9시 조금 넘은 거 같은데 밤에 그랬어요. 15층에서 떨어진 거 같더라고요. 입주민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와서 응급차로 (이송했어요)."]

끝내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서 씨.

집안에선, 고인이 남긴 유서 넉 장이 발견됐는데요.

22살 꽃 다운 나이.. 딸을 잃고 가슴이 무너졌던 어머니는 유서를 보고 또한번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지난 2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딸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하은숙/故 서 모 씨 어머니 : "회사 다닐 곳이 아니다, 그만두고 싶다, 그만 좀 괴롭혀라. 두 명의 이름이 지목됐었어요. 유서 상에."]

서 씨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부푼 마음으로 다녔던 회사.

하지만 서 씨의 회사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특정 간부와 동료의 갑질과 뒷담화가 서 씨를 괴롭혔다는 건데요.

[직장 동료 A/음성변조 : "쟤 막 꼬리 친다. 연애질하려고 다닌다. 막 이렇게 이상한 소문도 내고 그래서 되게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규모가 작은 공장이란 특성상 사내 소문이 빨리 퍼지는데다, 실수 하나에도 인신 공격이 가해졌다고 합니다.

[직장 동료 B/음성변조 : "000들아, XXX야. 막 이러면서 이런 식으로 욕하고…."]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의 서 씨는 참고 견디는 쪽을 택했는데요.

[하은숙/故 서 모 씨 어머니 : "주말에 오면 ‘엄마, 나 힘들어’ 하고 말했는데 입사를 같이한 친구들은 거의 다 그만뒀었어요. 그러면 너도 그만두고 대학교 들어가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엄마, 조금만 참아볼게’ 그러더라고요."]

유서에는 서 씨를 괴롭혔던 사람들 이름까지 언급됐지만, 회사 측은 사실무근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동료 직원에 대한 뒷담화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희도 조사를 진행했는데 직장 괴롭힘이라고 할 만큼의 그런 사안들은 없었거든요."]

사측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유족들, 시민단체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정광수/정의당 전북도당 사무처장/지난달 17일 : "고인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며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종합적이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 유족의 가슴이 또 다시 무너진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4일 서 씨가 직장 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유족과 시민단체 측 요청으로 동료 직원이 작성한 이 문건.

여기에는 서 씨가 지난 1년 7개월 전 당했던 성추행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직장동료 C/음성변조 : "XX이는 가만히 서 있는데 말 걸면서 오셔가지고 브래지어 끈 뒤쪽 막 쓰다듬기도 하고요.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그랬대요?) 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서 씨의 어머니. 터져 나오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는데요.

[하은숙/故 서 모 씨 어머니 :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성희롱까지…. 저는 그게 XXX 회사에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회사 측은 새롭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진상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

하지만 유족 측은 직장내 괴롭힘 의혹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는데, 성추행 의혹 조사 역시 제대로 되겠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영민/유족 측 노무사 : "회사 내부에 있는 분이 아니라 밖에 계신 분들을 사회단체에서나 이렇게 해서 공정하게 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하는 게 어떻겠냐 했는데 그분들 (회사 측)은 그걸 거부하셨어요."]

어제 오전, 한 시민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을 묵인 방조했다며 서 씨가 몸담았던 회사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제 공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간 상황.

고용노동부가 현재 조사에 착수했는데 결론은 이달 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어제, 서 씨의 죽음이 회사와 관련 없다는 기존 입장엔 변함에 없다고 거듭 밝혔는데요.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회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될 거고요. 저희가 밝히지 못했던 부분들이 드러나거나 그 해당 직원들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나타난다면 법과 규정에 따라서 엄격하게 처분을 해야 되는 거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내딛은 첫 일터에서 스물두살 어린 서 씨가 겪어야 했던 일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아무쪼록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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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그만 괴롭혀”…22살 공장 여직원의 안타까운 죽음
    • 입력 2020-05-22 08:29:31
    • 수정2020-05-22 0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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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두 달 전 전북 익산에서 한 제과 공장에 다니던 20대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엔 그만 괴롭히라며 직장 내 괴롭힘을 암시하는 글들이 적혀있었는데요.

그런데 최근 성추행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진상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22살 꽃다운 나이의 그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뉴스따라잡기에서 사건을 따라가봤습니다.

[리포트]

어제 아침, 전북 익산의 한 공장 앞입니다.

‘직장 괴롭힘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하라’ 이런 글귀가 새겨진 현수막이 눈에 띄는데요.

이곳에선 지난주 금요일부터 조용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준상/민주노총 전북본부 조직부장 : "청년 노동자가 직장 괴롭힘을 호소하면서 사망했는데 회사에서는 사과는커녕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해서 회사 측에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에 다니던 20대 노동자 서 모 씨가 숨진 건 지난 3월 17일.

자신이 살던 아파트 15층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음성변조 : "9시 조금 넘은 거 같은데 밤에 그랬어요. 15층에서 떨어진 거 같더라고요. 입주민 신고가 들어와서 경찰이 와서 응급차로 (이송했어요)."]

끝내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서 씨.

집안에선, 고인이 남긴 유서 넉 장이 발견됐는데요.

22살 꽃 다운 나이.. 딸을 잃고 가슴이 무너졌던 어머니는 유서를 보고 또한번 가슴이 찢어졌습니다.

지난 2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딸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하은숙/故 서 모 씨 어머니 : "회사 다닐 곳이 아니다, 그만두고 싶다, 그만 좀 괴롭혀라. 두 명의 이름이 지목됐었어요. 유서 상에."]

서 씨에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부푼 마음으로 다녔던 회사.

하지만 서 씨의 회사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특정 간부와 동료의 갑질과 뒷담화가 서 씨를 괴롭혔다는 건데요.

[직장 동료 A/음성변조 : "쟤 막 꼬리 친다. 연애질하려고 다닌다. 막 이렇게 이상한 소문도 내고 그래서 되게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규모가 작은 공장이란 특성상 사내 소문이 빨리 퍼지는데다, 실수 하나에도 인신 공격이 가해졌다고 합니다.

[직장 동료 B/음성변조 : "000들아, XXX야. 막 이러면서 이런 식으로 욕하고…."]

하루하루가 지옥같았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의 서 씨는 참고 견디는 쪽을 택했는데요.

[하은숙/故 서 모 씨 어머니 : "주말에 오면 ‘엄마, 나 힘들어’ 하고 말했는데 입사를 같이한 친구들은 거의 다 그만뒀었어요. 그러면 너도 그만두고 대학교 들어가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엄마, 조금만 참아볼게’ 그러더라고요."]

유서에는 서 씨를 괴롭혔던 사람들 이름까지 언급됐지만, 회사 측은 사실무근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동료 직원에 대한 뒷담화라든지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저희도 조사를 진행했는데 직장 괴롭힘이라고 할 만큼의 그런 사안들은 없었거든요."]

사측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는 유족들, 시민단체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정광수/정의당 전북도당 사무처장/지난달 17일 : "고인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며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종합적이고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런데, 유족의 가슴이 또 다시 무너진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 14일 서 씨가 직장 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유족과 시민단체 측 요청으로 동료 직원이 작성한 이 문건.

여기에는 서 씨가 지난 1년 7개월 전 당했던 성추행 정황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직장동료 C/음성변조 : "XX이는 가만히 서 있는데 말 걸면서 오셔가지고 브래지어 끈 뒤쪽 막 쓰다듬기도 하고요.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그랬대요?) 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서 씨의 어머니. 터져 나오는 눈물에 말을 잇지 못했는데요.

[하은숙/故 서 모 씨 어머니 :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성희롱까지…. 저는 그게 XXX 회사에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회사 측은 새롭게 제기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진상 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상황.

하지만 유족 측은 직장내 괴롭힘 의혹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는데, 성추행 의혹 조사 역시 제대로 되겠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영민/유족 측 노무사 : "회사 내부에 있는 분이 아니라 밖에 계신 분들을 사회단체에서나 이렇게 해서 공정하게 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사하는 게 어떻겠냐 했는데 그분들 (회사 측)은 그걸 거부하셨어요."]

어제 오전, 한 시민단체는 직장 내 괴롭힘을 묵인 방조했다며 서 씨가 몸담았던 회사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이제 공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간 상황.

고용노동부가 현재 조사에 착수했는데 결론은 이달 말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회사 측은 어제, 서 씨의 죽음이 회사와 관련 없다는 기존 입장엔 변함에 없다고 거듭 밝혔는데요.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회사 관계자/음성변조 : "회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될 거고요. 저희가 밝히지 못했던 부분들이 드러나거나 그 해당 직원들에 대해서도 문제점이 나타난다면 법과 규정에 따라서 엄격하게 처분을 해야 되는 거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내딛은 첫 일터에서 스물두살 어린 서 씨가 겪어야 했던 일들.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지 아무쪼록 꼭 밝혀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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