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주소 이전 운동’의 그늘…재난지원금 더 받아

입력 2020.05.22 (15:43) 수정 2020.05.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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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강원도의 한 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 A 씨는 아내와 자녀 2명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A 씨는 자신이 남들보다 재난지원금을 수십만 원 더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주소를 기존에 살고 있던 도시지역에서 근무지인 군청 인근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주민등록상 주소만 옮긴 A 씨는 출퇴근을 여전히 가족이 사는 도시지역 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나홀로 공무원 위장전입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정부 재난지원금, '위장 전입자'가 일반인보다 더 받아

A 씨처럼 네 명으로 구성된 세대는 정부로부터 긴급재난지원금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 씨가 혼자 주소를 근무지 인근으로 옮기면서, A 씨 가족은 주민등록상 2개 세대를 구성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와 아내가 남은 도시지역 집은 3인 세대로 집계돼, 긴급재난지원금 80만 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다, 1인 세대를 구성한 A 씨는 40만 원을 따로 지원받습니다. 합치면 120만 원. 주소가 하나로 돼 있는 4인 가구보다 20만 원을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다른 지역 군청 직원 B 씨도 친척 집에 주소 이전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위장 전입을 통해 얻은 '차익'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결정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위장 전입에 도움을 준 지인에게 '용돈 드리는 셈 치고' 자신의 지원금을 넘겨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강원도 일부 지자체의 지역상품권강원도 일부 지자체의 지역상품권

위장전입 공무원, 지역별 재난지원금도 추가로 받아

도시지역에서 농촌 지역 군청으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누리는 재난지원금 혜택은 더 있습니다.

강원도의 상당수 기초자치단체는 지역별로 재난지원금을 따로 지급합니다. 대부분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 등 '지역 화폐'입니다. 물론 해당 지역에서는 현금처럼 쓸 수 있습니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세대별로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1인당 지급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A 씨의 경우 국가 재난지원금을 최대 20만 원 더 얻을 수 있는데, A씨가 근무하는 지역은 지역 상품권으로 1인당 20만 원을 지급합니다. 최대 40만 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인당 30만 원어치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도시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위장 전입 공무원은 일반인보다 50만 원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취재진은 강원도 내 군청 3곳에 대한 현황을 조사해 봤는데, 이런 도시지역 출퇴근 1인 전입자는 각 군청 전체 정원 대비 모두 10%를 훨씬 넘겼고, 많은 곳은 20% 가 넘기도 했습니다.

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될 지역상품권을 포장하는 모습.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될 지역상품권을 포장하는 모습.

농촌 인구 지키기 운동의 결과 .. 군청이 소속 공무원 위장전입 조장

취재가 진행되면서 만난 공무원들은 이런 얘기를 전합니다.

"어떤 공무원이 이런 사상 초유의 일을 예상한 뒤 몇십만 원을 벌기 위해 주소를 옮겼겠느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라고. 일리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위장 전입은 대대적인 주소 이전 운동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농촌의 작은 군 단위 지역에서는 '인구 지키기'가 가장 큰 과제가 됐습니다. 인구 유출과 감소는 장기적으로는 '지역 소멸', 당장은 국비 지원인 '교부금'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규모 지자체에서는 주소 이전 운동을 활발히 벌였고, 그 대상은 직장인을 비롯한 일반 주민과 함께 지역 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군인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중 선봉 역할을 한 것은 지역에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입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인사 불이익을 줄 정도로 강하게 직원들의 주소 이전을 압박했습니다. 한 간부 공무원은 "다섯 중 두 명을 승진시키는 상황이 생기면, 다른 지역 주소지인 직원이 배제 대상이 된다"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거주하지 않는 곳에 주민등록상 주소만 두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군청이 앞장서서 소속 공무원들의 위장전입을 조장한 겁니다.

"고의는 절대 아니다. 억울하다." .. 국민이 낸 세금이란 점 명심해야!

해당 시군청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위장 전입을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시군청도 지역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공무원들이 대거 위장전입을 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들이 몇십만 원씩 더 받게 되는 돈은 모두 국민의 땀과 눈물이 밴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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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 ‘주소 이전 운동’의 그늘…재난지원금 더 받아
    • 입력 2020-05-22 15:43:07
    • 수정2020-05-23 00:38:38
    취재K
2000년대 초반 지방공무원으로 임용된 뒤 강원도의 한 군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 A 씨는 아내와 자녀 2명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A 씨는 자신이 남들보다 재난지원금을 수십만 원 더 받을 수 있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주소를 기존에 살고 있던 도시지역에서 근무지인 군청 인근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주민등록상 주소만 옮긴 A 씨는 출퇴근을 여전히 가족이 사는 도시지역 집에서 하고 있습니다. '나홀로 공무원 위장전입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정부 재난지원금, '위장 전입자'가 일반인보다 더 받아

A 씨처럼 네 명으로 구성된 세대는 정부로부터 긴급재난지원금 10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 씨가 혼자 주소를 근무지 인근으로 옮기면서, A 씨 가족은 주민등록상 2개 세대를 구성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와 아내가 남은 도시지역 집은 3인 세대로 집계돼, 긴급재난지원금 80만 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다, 1인 세대를 구성한 A 씨는 40만 원을 따로 지원받습니다. 합치면 120만 원. 주소가 하나로 돼 있는 4인 가구보다 20만 원을 더 받게 되는 것입니다.

취재진이 만난 다른 지역 군청 직원 B 씨도 친척 집에 주소 이전을 했습니다. 아직까지 위장 전입을 통해 얻은 '차익'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결정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위장 전입에 도움을 준 지인에게 '용돈 드리는 셈 치고' 자신의 지원금을 넘겨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강원도 일부 지자체의 지역상품권
위장전입 공무원, 지역별 재난지원금도 추가로 받아

도시지역에서 농촌 지역 군청으로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누리는 재난지원금 혜택은 더 있습니다.

강원도의 상당수 기초자치단체는 지역별로 재난지원금을 따로 지급합니다. 대부분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 등 '지역 화폐'입니다. 물론 해당 지역에서는 현금처럼 쓸 수 있습니다.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세대별로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1인당 지급하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앞서 살펴본 A 씨의 경우 국가 재난지원금을 최대 20만 원 더 얻을 수 있는데, A씨가 근무하는 지역은 지역 상품권으로 1인당 20만 원을 지급합니다. 최대 40만 원의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인당 30만 원어치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하는 곳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도시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위장 전입 공무원은 일반인보다 50만 원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취재진은 강원도 내 군청 3곳에 대한 현황을 조사해 봤는데, 이런 도시지역 출퇴근 1인 전입자는 각 군청 전체 정원 대비 모두 10%를 훨씬 넘겼고, 많은 곳은 20% 가 넘기도 했습니다.

재난지원금으로 지급될 지역상품권을 포장하는 모습.
농촌 인구 지키기 운동의 결과 .. 군청이 소속 공무원 위장전입 조장

취재가 진행되면서 만난 공무원들은 이런 얘기를 전합니다.

"어떤 공무원이 이런 사상 초유의 일을 예상한 뒤 몇십만 원을 벌기 위해 주소를 옮겼겠느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라고. 일리 있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위장 전입은 대대적인 주소 이전 운동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십수 년 전부터 농촌의 작은 군 단위 지역에서는 '인구 지키기'가 가장 큰 과제가 됐습니다. 인구 유출과 감소는 장기적으로는 '지역 소멸', 당장은 국비 지원인 '교부금'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규모 지자체에서는 주소 이전 운동을 활발히 벌였고, 그 대상은 직장인을 비롯한 일반 주민과 함께 지역 소재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 군인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중 선봉 역할을 한 것은 지역에 근무하고 있는 '공무원'입니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인사 불이익을 줄 정도로 강하게 직원들의 주소 이전을 압박했습니다. 한 간부 공무원은 "다섯 중 두 명을 승진시키는 상황이 생기면, 다른 지역 주소지인 직원이 배제 대상이 된다"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거주하지 않는 곳에 주민등록상 주소만 두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군청이 앞장서서 소속 공무원들의 위장전입을 조장한 겁니다.

"고의는 절대 아니다. 억울하다." .. 국민이 낸 세금이란 점 명심해야!

해당 시군청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위장 전입을 한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시군청도 지역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공무원들이 대거 위장전입을 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들이 몇십만 원씩 더 받게 되는 돈은 모두 국민의 땀과 눈물이 밴 세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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