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쟁터’에 왜 예술이 필요합니까?

입력 2020.05.24 (07:02) 수정 2020.05.2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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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사회를, 전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요즘입니다. 말 그대로 코로나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죠.

우리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삶의 터전 자체를 잃은 분들이 많은데, 그동안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예술인들 역시 그렇습니다. 하루 아침에 무대 자체가 사라진 셈이니까요. '코로나와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우리 시대 예술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내가 설 무대가, 일하는 현장이 사라졌어요"

21년 차 싱어송라이터 이수진 씨를 만나 이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이수진 씨는 '프리다 수진'이란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면서 예술인들의 단체인 '뮤지션 유니온'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 있습니다.

"무대라고 얘기하는, 그런 공연을 통해서 저희는 예술을 펼쳐보여야 되는데 그 무대 자체가 없는 거죠. 일하는 현장이 사라져버린 거예요. 연습도 하고 창작도 해나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생계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수진/싱어송라이터)


이 씨는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 소소한 축제 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왔는데 코로나 여파로 무대에 설 일이 급격히 줄어 수입도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다른 예술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17년 차 연극배우 이종승 씨도 지난 1월 이후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한데, 어떻게 생활을 꾸려왔을까요?

"일단 공연은 잡혔던 것들이 다 취소가 됐으니까. 생활은 해야 되고 하니까 하루하루 아르바이트 구해가면서 살았죠. 택배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용직 노동 아르바이트도 하고 또 무대 제작이나 극장에 공연이 올라가게 되면 극장 셋업 아르바이트라든가 닥치는 대로 그냥 하고 있었습니다." (이종승/연극인)


예술인도 고용보험 첫발…"현실과 괴리있는 법"

이렇게 생계가 막막해진 예술인들도 앞으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에 예술인을 포함시킨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2년여 만에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를 받아 생계를 이어가죠. 일자리를 잃는 순간 곧바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안전망 역할을 해주는 건데요. 약 5만 명으로 추산되는 예술인들도 일하는 동안 보험료를 내고, 일자리를 잃게 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예술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예술인 고용보험'의 첫 발을 뗀 셈인데, 정작 예술인들 사이에선 이 법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이 조항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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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법 개정안>
제77조의3(예술인인 피보험자에 대한 구직급여)

① 예술인의 구직급여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지급한다. 다만 제6호는 최종 이직 당시 단기예술인이었던 자만 해당한다.
1. 이직일 이전 24개월 동안의 피보험 단위기간이 통산하여 9개월 이상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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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개월 보험료 납부? "무명 예술인들에겐 그림의 떡"

즉, 예술인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실직하기 직전 2년 동안 9개월 이상 일하며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술인들은 현실적으로 이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문화 예술 공연은 보통 두 달, 석 달씩 연습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거쳐도 실제 공연하는 날은 짧죠. 그런데 그동안 이 연습기간은 근로기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정작 생활이 어려운 무명배우, 음악인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또 계약이 여러 단계로 이뤄질 경우, 보험료 절반을 내야 하는 사업주가 누군지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이렇게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선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하고 기준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20대 국회는 일단 법만 통과시키고 구체적인 기준은 모두 시행령으로 미뤄놨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 방침에 따라 첫발은 겨우 뗐지만, '디테일'을 만드는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입니다.

■ "예술가가 내놓은 창작물, 사회 구성원들이 향유"

누군가는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 중인 데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예술이 왜 필요하고, 예술인 고용보험이 왜 필요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우문(愚問)을 던지는 이들에게 예술인들은 이런 현답(賢答)을 내놨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음악인이 자기 안에 축적된 사회의 관계 속에서 맺어진 그런 모든 것들을 창작물로 쏟아내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창작물을 내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거죠. 사회적 가치를 갖는 거고요." (이수진/싱어송라이터)

"예술가도 국민이고 주민입니다. 국민으로서 누려야 될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들입니다. 절대 어떤 특혜나 시혜를 달라고 하지 않아요. 다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이 예술가들도 사회 안전망 안에 들어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종승/연극인)

코로나19란 위기 속에도 예술인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사회, 더 아름답고 가치롭게 존재하는 것,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언젠가 서게 될 무대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러분들께 이 노래를 소개합니다.

<사라진다, 살아진다> 프리다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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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전쟁터’에 왜 예술이 필요합니까?
    • 입력 2020-05-24 07:02:00
    • 수정2020-05-24 07:27:11
    취재K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사회를, 전 세계를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요즘입니다. 말 그대로 코로나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죠.

우리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동안 삶의 터전 자체를 잃은 분들이 많은데, 그동안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예술인들 역시 그렇습니다. 하루 아침에 무대 자체가 사라진 셈이니까요. '코로나와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우리 시대 예술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내가 설 무대가, 일하는 현장이 사라졌어요"

21년 차 싱어송라이터 이수진 씨를 만나 이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이수진 씨는 '프리다 수진'이란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면서 예술인들의 단체인 '뮤지션 유니온' 사무국장도 맡고 있고 있습니다.

"무대라고 얘기하는, 그런 공연을 통해서 저희는 예술을 펼쳐보여야 되는데 그 무대 자체가 없는 거죠. 일하는 현장이 사라져버린 거예요. 연습도 하고 창작도 해나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생계가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이수진/싱어송라이터)


이 씨는 그동안 크고 작은 행사, 소소한 축제 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왔는데 코로나 여파로 무대에 설 일이 급격히 줄어 수입도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다른 예술인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17년 차 연극배우 이종승 씨도 지난 1월 이후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한데, 어떻게 생활을 꾸려왔을까요?

"일단 공연은 잡혔던 것들이 다 취소가 됐으니까. 생활은 해야 되고 하니까 하루하루 아르바이트 구해가면서 살았죠. 택배 아르바이트도 하고 일용직 노동 아르바이트도 하고 또 무대 제작이나 극장에 공연이 올라가게 되면 극장 셋업 아르바이트라든가 닥치는 대로 그냥 하고 있었습니다." (이종승/연극인)


예술인도 고용보험 첫발…"현실과 괴리있는 법"

이렇게 생계가 막막해진 예술인들도 앞으론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용보험 의무 가입 대상에 예술인을 포함시킨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2년여 만에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직장인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를 받아 생계를 이어가죠. 일자리를 잃는 순간 곧바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안전망 역할을 해주는 건데요. 약 5만 명으로 추산되는 예술인들도 일하는 동안 보험료를 내고, 일자리를 잃게 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예술인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예술인 고용보험'의 첫 발을 뗀 셈인데, 정작 예술인들 사이에선 이 법이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이 조항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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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법 개정안>
제77조의3(예술인인 피보험자에 대한 구직급여)

① 예술인의 구직급여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지급한다. 다만 제6호는 최종 이직 당시 단기예술인이었던 자만 해당한다.
1. 이직일 이전 24개월 동안의 피보험 단위기간이 통산하여 9개월 이상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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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개월 보험료 납부? "무명 예술인들에겐 그림의 떡"

즉, 예술인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때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실직하기 직전 2년 동안 9개월 이상 일하며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술인들은 현실적으로 이 조건을 채울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문화 예술 공연은 보통 두 달, 석 달씩 연습하고 준비하는 기간을 거쳐도 실제 공연하는 날은 짧죠. 그런데 그동안 이 연습기간은 근로기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정작 생활이 어려운 무명배우, 음악인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또 계약이 여러 단계로 이뤄질 경우, 보험료 절반을 내야 하는 사업주가 누군지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이렇게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선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하고 기준을 마련했어야 했는데, 20대 국회는 일단 법만 통과시키고 구체적인 기준은 모두 시행령으로 미뤄놨습니다. '전국민 고용보험' 추진 방침에 따라 첫발은 겨우 뗐지만, '디테일'을 만드는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입니다.

■ "예술가가 내놓은 창작물, 사회 구성원들이 향유"

누군가는 "지금 코로나와의 전쟁 중인 데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예술이 왜 필요하고, 예술인 고용보험이 왜 필요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우문(愚問)을 던지는 이들에게 예술인들은 이런 현답(賢答)을 내놨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창작물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음악인이 자기 안에 축적된 사회의 관계 속에서 맺어진 그런 모든 것들을 창작물로 쏟아내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 창작물을 내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향유하지 않습니까? 그럼 이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거죠. 사회적 가치를 갖는 거고요." (이수진/싱어송라이터)

"예술가도 국민이고 주민입니다. 국민으로서 누려야 될 당연한 기본적인 권리들입니다. 절대 어떤 특혜나 시혜를 달라고 하지 않아요. 다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이 예술가들도 사회 안전망 안에 들어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이종승/연극인)

코로나19란 위기 속에도 예술인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사회, 더 아름답고 가치롭게 존재하는 것,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언젠가 서게 될 무대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여러분들께 이 노래를 소개합니다.

<사라진다, 살아진다> 프리다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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