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집 전현직 활동가 증언 “할머니, 늘 숨막힌다고 말씀”

입력 2020.05.24 (13:43) 수정 2020.05.24 (15:1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숨이 막혀."

자원봉사자 양진아 씨가 '나눔의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들께 들었던 말입니다. 할머니들은 "문밖으로라도 나가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보조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할머니들은 그저 종일 TV를 보는 것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 조계종 나눔의집'이 후원금만 72억 원을 쌓아두고도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습니다. 나눔의집을 수년째 드나들며 할머니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자원봉사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할머니 위한 '나눔의집'...할머니는 늘 배가 고팠다

할머니들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었지만 할머니를 위한 '투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식사만 해도 그랬습니다. 나눔의집에선 할머니들께 세끼 밥을 제공했지만, 할머니들이 늘 배고파 하셨다고 자원봉사자들은 말합니다.

자원봉사자 김 모 씨는 "틀니를 끼시거나 치아가 거의 없는 할머니들이 많으신데 일반인들이 먹는 집밥이 주로 나오다 보니 식사를 잘 못 하시더라"라며 "어떤 할머니들은 억지로라도 끼니를 때우시려고 물이나 국에 밥을 말아 드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선미 전 여가부 장관이 방문했을 때 할머니가 발언한 "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공간이지만 나눔의집은 후원금을 사용하지 않고 '무료양로시설'로 나오는 지원금으로만 시설을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허정아 나눔의집 사회복지사는 "정부가 무료양로시설에 제공하는 입소자 기본 생계비와 인력 지원이 있다"라며 "그 돈과 인력으로만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할머니들 개개인을 고려할 여력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나눔의집 식사를 담당하는 직원은 시에서 인건비를 받는 조리사 1명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인력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하기에는 늘 인력도 예산도 부족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남대문 시장에 가서 옷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도 나눔의집 직원들도 할머니께 선뜻 나들이를 가자고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원봉사자 이슬기 씨는 "나눔의 집의 업무량에 비해 상주하는 직원들이 너무 적었다"라며 "할머니 한 분과 나들이를 가려면 최소 3명 이상이 필요한데 3명이 비우면 사실상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었지만 나가서 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사다 줘야 했습니다. 양 씨는 "할머니가 작은 동전 지갑을 갖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2주 뒤에 찾아뵈었을 때도 동전지갑 이야기를 하시더라"라며 "그래서 조그마한 동전지갑을 사다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할머니께 필요한 걸 사다 드리고 챙겨드리는 건 돌봄 업무인데 그걸 담당할 인력이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후원금 쏟아져도..."늘 여력 없다" 반복


후원금이 들어오면 나아질까요. 자원봉사자들이 나눔의집을 오가는 사이에도 후원금은 쏟아졌습니다. 연예인들이 거액을 후원했다는 뉴스도 여럿 접했습니다. 실제 4월 기준 법인에 쌓인 후원금만 72억 원입니다. 하지만 돈은 들어와도 할머니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작 할머니들이 자주 '동원'된 곳은 행사였다는 게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슬기 씨는 "그동안 보도자료 나갔던 걸 정리한 게 있었는데 위안부 피해와 무관해 보이는 행사에 많이 가셨다"라며 "나들이 가려고 할 때도 그 날은 행사가 있다, 국회의원이 온다, 유명인이 온다 등으로 안 된다고 했던 적이 많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자원봉사자 김 모씨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 유명인 등이 나눔의집에 오면 할머니들은 아파도 거실로 나와 인사해야 했다"라며 "할머니들은 봉사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와서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셨지, 단체로 조끼 입은 사람들이 방문해 사진 찍고 가버리는 건 허탈해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내가 기생이 된 것 같아', '맨날 가서 접대를 해야 돼'라는 말씀도 하셨다"라며 "할머니 입에서 그런 말씀이 나오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는 남대문시장에 가고 싶다"


자원봉사자들은 지난해 5월 할머니와의 나들이를 잊지 못 합니다. 나눔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나갔을 뿐인데도 할머니는 흥이 오르셨는지 노래도 맛깔나게 부르시며 좋아하셨기 때문이죠. 나눔의집 안에서 '숨 막힌다', '답답하다'며 힘들어하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습니다.

양 씨의 소원은 소박합니다. 그저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셨던 남대문시장에 가서 옷을 사는 겁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나눔의집 전현직 활동가 증언 “할머니, 늘 숨막힌다고 말씀”
    • 입력 2020-05-24 13:43:26
    • 수정2020-05-24 15:16:58
    취재K
"숨이 막혀."

자원봉사자 양진아 씨가 '나눔의집'에 갈 때마다 할머니들께 들었던 말입니다. 할머니들은 "문밖으로라도 나가고 싶다"고 자주 말씀하셨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보조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습니다. 할머니들은 그저 종일 TV를 보는 것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 조계종 나눔의집'이 후원금만 72억 원을 쌓아두고도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습니다. 나눔의집을 수년째 드나들며 할머니들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자원봉사자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였습니다.

할머니 위한 '나눔의집'...할머니는 늘 배가 고팠다

할머니들을 위해 조성된 공간이었지만 할머니를 위한 '투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식사만 해도 그랬습니다. 나눔의집에선 할머니들께 세끼 밥을 제공했지만, 할머니들이 늘 배고파 하셨다고 자원봉사자들은 말합니다.

자원봉사자 김 모 씨는 "틀니를 끼시거나 치아가 거의 없는 할머니들이 많으신데 일반인들이 먹는 집밥이 주로 나오다 보니 식사를 잘 못 하시더라"라며 "어떤 할머니들은 억지로라도 끼니를 때우시려고 물이나 국에 밥을 말아 드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선미 전 여가부 장관이 방문했을 때 할머니가 발언한 "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전·현직 관계자들에 따르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한 공간이지만 나눔의집은 후원금을 사용하지 않고 '무료양로시설'로 나오는 지원금으로만 시설을 운영했기 때문입니다.

허정아 나눔의집 사회복지사는 "정부가 무료양로시설에 제공하는 입소자 기본 생계비와 인력 지원이 있다"라며 "그 돈과 인력으로만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할머니들 개개인을 고려할 여력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나눔의집 식사를 담당하는 직원은 시에서 인건비를 받는 조리사 1명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인력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하기에는 늘 인력도 예산도 부족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남대문 시장에 가서 옷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도 나눔의집 직원들도 할머니께 선뜻 나들이를 가자고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원봉사자 이슬기 씨는 "나눔의 집의 업무량에 비해 상주하는 직원들이 너무 적었다"라며 "할머니 한 분과 나들이를 가려면 최소 3명 이상이 필요한데 3명이 비우면 사실상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가 필요로 하는 물건이 있었지만 나가서 살 수 없었습니다. 대신 자원봉사자들이 사다 줘야 했습니다. 양 씨는 "할머니가 작은 동전 지갑을 갖고 싶다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2주 뒤에 찾아뵈었을 때도 동전지갑 이야기를 하시더라"라며 "그래서 조그마한 동전지갑을 사다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할머니께 필요한 걸 사다 드리고 챙겨드리는 건 돌봄 업무인데 그걸 담당할 인력이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후원금 쏟아져도..."늘 여력 없다" 반복


후원금이 들어오면 나아질까요. 자원봉사자들이 나눔의집을 오가는 사이에도 후원금은 쏟아졌습니다. 연예인들이 거액을 후원했다는 뉴스도 여럿 접했습니다. 실제 4월 기준 법인에 쌓인 후원금만 72억 원입니다. 하지만 돈은 들어와도 할머니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작 할머니들이 자주 '동원'된 곳은 행사였다는 게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슬기 씨는 "그동안 보도자료 나갔던 걸 정리한 게 있었는데 위안부 피해와 무관해 보이는 행사에 많이 가셨다"라며 "나들이 가려고 할 때도 그 날은 행사가 있다, 국회의원이 온다, 유명인이 온다 등으로 안 된다고 했던 적이 많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자원봉사자 김 모씨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 유명인 등이 나눔의집에 오면 할머니들은 아파도 거실로 나와 인사해야 했다"라며 "할머니들은 봉사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 와서 대화 나누는 걸 좋아하셨지, 단체로 조끼 입은 사람들이 방문해 사진 찍고 가버리는 건 허탈해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내가 기생이 된 것 같아', '맨날 가서 접대를 해야 돼'라는 말씀도 하셨다"라며 "할머니 입에서 그런 말씀이 나오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 "할머니가 그렇게 원하는 남대문시장에 가고 싶다"


자원봉사자들은 지난해 5월 할머니와의 나들이를 잊지 못 합니다. 나눔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나갔을 뿐인데도 할머니는 흥이 오르셨는지 노래도 맛깔나게 부르시며 좋아하셨기 때문이죠. 나눔의집 안에서 '숨 막힌다', '답답하다'며 힘들어하시던 할머니의 표정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습니다.

양 씨의 소원은 소박합니다. 그저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셨던 남대문시장에 가서 옷을 사는 겁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