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고용보험, 정말 ‘전 국민’이 가입대상일까?

입력 2020.05.25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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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

코로나19 사태는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고용한파 속에서 국민에게 실질적인 방패가 되어줄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단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제도 밖의 노동자들을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연관기사] "재난이 가져온 불평등, 복지 확대 이끄나”(2020.05.22. KBS1TV 뉴스9)

아직은 낯선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KBS 취재진은 세 명의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한국 사회의 사회 안전망과 노동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온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을 각각 만나 현 고용보험 제도의 한계와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에 대한 의견,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제언을 들었습니다.

■"전 국민이라는 말은 오해"…노동자 개념 확장 필요

Q. 전 국민 고용보험, 정말 전 국민이 가입하게 되는 건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 국민들이 가끔 '전 국민 고용보험' 이러니까 우리 집의 아버님, 어머님, 은퇴해서 쉬고 계신 분들까지도 보험에 가입되는 것으로 오해하신다. 그건 아니다. 쉽게 말해 일하는 자,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개념에 대해선 오해를 풀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Q. 기존 고용보험과 비교해서 가입대상을 설명해달라.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현재의 고용보험 제도는 사실상 임금노동자(employee)를 위한 고용보험이다. 그걸 취업자(worker)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으로 바꾼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김종진 부소장 : 고용보험 설계 초기엔, 고용된 사람과 고용주의 짝이 잘 맞았다. 일하려고 하는 자와 이를 고용한 사람이 명확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하다가 해직 혹은 해고가 됐을 경우에 일정 기간은 재취업 과정에서 필요한 구직 비용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겠다는 취지에서 고용보험이 설계됐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짝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고용보험이 적용됐던 안정적인 일자리가 10명 중에 7명 가까이 됐었다면, 지금은 1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 고용보험이 초기에 설계됐을 당시,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을 점진적으로 편입시키는 게 개편되는 고용보험제도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Q. 고용보험 개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 한국은 '노동자'라는 개념을 굉장히 좁게 설정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사실은 노동자 개념 밖에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 60%에 육박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노동자 개념을 고용보험 제도 개혁을 통해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시민이 노동자임을 체감할 수 있게, 제도를 통해 인식을 바꾸자는 얘기다. 그래야 노동에 대한 감수성도 생기고 노동자 인권도 보장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논의…"사회보험은 저축 아냐"

Q. 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 논의가 본격화 됐나.


김종진 부소장 : 코로나19는 사회적 안전망에 포함되지 않는 일자리,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실업급여를 주고 재취업을 위한 교육 훈련을 해주는 제도가 고용보험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건,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메워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의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전 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지지도가 10명 중의 한 6~7명 가까이 됐다. 국민들도 경험을 했기 때문에, 사회적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장지연 위원 : 고용보험 논의가 본격화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의는 이제야 시작단계다. 그동안 특수형태 종사자들까지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법안이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돼 있었는데도 사회에서 그쪽을 쳐다봐주지 않았다. 국회나 사회에서 미리 논의를 했다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고용위기에 여러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고용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Q. 건강보험 도입 때와 비슷한 점이 있나.

장지연 위원
: 전 국민 건강보험도 처음에 대규모 사업장에 속한 임금노동자부터 출발했다. 또 지역가입자 그룹이 따로 있었는데 이 두 그룹을 합치는 과정에서 '누가 손해를 더 많이 보나'를 놓고 굉장히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그런 갈등 측면에서 볼 때,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보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보험제도를 확장해서 적용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소모적인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성주 대표 : 반발을 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처음에 전 국민 건강보험 할 때 얼마나 반대가 심했나? 그건 액수도 더 많이 떼가서 반발도 심했다. 그런데 체감해 보니까 어떤가? 외국에 사는 사람들도, 한국의 건강보험 때문에 입국해서 수술받을 정도다. 체감 효과가 크다.

Q.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선 자영업자나 예술인, 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보다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확률이 낮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반발이 나오는 것 아닌가.

장지연 위원
: 사회보험이라는 개념은 저축이 아니다. 내가 이바지할 수 있을 때, 돈 낼 수 있을 때 내고 못 낼 때 받는 게 고용보험 제도고, 실업급여다. '사회'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강제적으로 모두 가입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가입하고 내가 못 받을 것 같으니 가입하지 않고 이런 차원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가입하게 한 뒤 '연대'에 기반을 둬 나누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실업 위험이 큰 사람들만 가입하게 될 경우, 그 보험은 성립하지 않는다. 보험료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낼 수 없는 지경이 될 거다. 그렇게 될 경우, 사회연대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각자도생할 수 없듯,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끼리 살고 없는 사람은 따로 보험을 들게 할 수는 없다. 사회보험을 그렇게 작동시키는 나라도 당연히 없다.

■"단기적으론 프랑스, 장기적으론 덴마크 모델 이상적"

Q. 사회안전망 확대에 따른 재정 지출이 상당할 것 같은데.

김종진 부소장
: 코로나 사태 이후에 여러 논문이 나왔는데 '헬리콥터 머니'를 많이 인용한다. 지금은 돈을 막 살포할 때라는 것이다. 경제 위기에 적극적으로 재정 투여를 하고, 고용을 유지하고, 해고를 막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몇조 원을 아끼려고 하다가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메르스를 겪은 게 5년 전이었다. 코로나가 5년 뒤에 발병된 거다. 이 주기는 더 짧아질 수도 있다. 이런 고용 위기 사태를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Q. 증세 얘기도 따라온다.

조성주 대표
: 정치권이 증세에 대해서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다. 세금 더 부담해야 한다. 이번에 경험하지 않았나. 언제든 순식간에 실업의 위기, 고용의 위기, 매출의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위험은 개인이 극복할 수 없다.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하는 위기다. 사회 전체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회 전체가 같이 부담해야 한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Q. 참고할만한 해외사례는?

장지연 위원
: 덴마크 모델이 제일 좋아 보인다. 그곳에선 소득 활동하는 모든 사람, 즉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등을 따로 나누지 않고 소득을 기반으로 일정 비율 보험료를 부과한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도 똑같이 발생하게 된다. 또 실업 보험으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금액의 지원을 하는 부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보험 프로그램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제일 이상적으로 설계돼 있다고 본다.

김종진 부소장 : 덴마크나 스웨덴은 이상적이지만 100년에 가까운 역사 동안 꾸준히 복지 제도를 논의해왔다. 앞으로의 50년을 보고 설계하기엔, 이들 국가는 우리에겐 다소 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프랑스처럼 조세에 기반을 둬서 누구나 다 사회안전망에 들어오게 하고, 별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구를 만드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 이후에 덴마크나 스웨덴처럼 보편적 사회보험으로 가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Q. 제도개편,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김종진 부소장 :
고용보험료를 누가 징수하고, 소득 증빙은 어떻게 할 지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고용보험 모델은 월급과 근로소득에 기반을 둘 게 아니라, 모든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득에 기반을 둬서 고용보험료를 징수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의 징수는 국세청이 담당하니 소득을 확인하고 징수하는 기관을 사회보험 공단이 아니라 국세청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또 사회보험제도 운용의 주체도 통합하면 좋겠다. 이번에 질병관리본부가 더 승격해서 포괄적 권한과 역할을 갖게 됐듯이, 여러 공단을 통합한 '사회보험청'이 신설되면 어떨까 싶다. 중장기적으로 효율성과 효과성이 커질 것이다.

Q.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안 국회 통과됐는데, 한계는?

조성주 대표
: 특수고용직을 제외하고 통과된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 쉬운 것만 하겠다는 거다. 특수고용직은 대표적으로 대리운전사, 보험설계사 등이 해당한다. 하나씩 따져보면 보험설계사는 생명보험 회사들과 관계가 있고, 대리운전 기사는 대리운전 플랫폼 회사들과 관계가 있다. 사용자의 기여가 어느 정도 되는지 더 따져봐야 하고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므로 제외된 거다.

쉬운 것만 가려고 하면 안 된다. 물론 20대 국회 끝나기 전까지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거란 현실적 판단은 이해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특수고용직을 뺀 건 잘못된 방식이다. 21대 국회에 훨씬 넓은 의미의 법안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특고직 포함해, 자발적 퇴직자 등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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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국민 고용보험, 정말 ‘전 국민’이 가입대상일까?
    • 입력 2020-05-25 13:34:10
    취재K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연설)

코로나19 사태는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고용한파 속에서 국민에게 실질적인 방패가 되어줄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단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제도 밖의 노동자들을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연관기사] "재난이 가져온 불평등, 복지 확대 이끄나”(2020.05.22. KBS1TV 뉴스9)

아직은 낯선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해 KBS 취재진은 세 명의 전문가를 만났습니다. 한국 사회의 사회 안전망과 노동 문제에 대해 연구해 온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을 각각 만나 현 고용보험 제도의 한계와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에 대한 의견,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제언을 들었습니다.

■"전 국민이라는 말은 오해"…노동자 개념 확장 필요

Q. 전 국민 고용보험, 정말 전 국민이 가입하게 되는 건가?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 국민들이 가끔 '전 국민 고용보험' 이러니까 우리 집의 아버님, 어머님, 은퇴해서 쉬고 계신 분들까지도 보험에 가입되는 것으로 오해하신다. 그건 아니다. 쉽게 말해 일하는 자,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개념에 대해선 오해를 풀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Q. 기존 고용보험과 비교해서 가입대상을 설명해달라.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현재의 고용보험 제도는 사실상 임금노동자(employee)를 위한 고용보험이다. 그걸 취업자(worker)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으로 바꾼다는 의미로 생각하면 된다.

김종진 부소장 : 고용보험 설계 초기엔, 고용된 사람과 고용주의 짝이 잘 맞았다. 일하려고 하는 자와 이를 고용한 사람이 명확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하다가 해직 혹은 해고가 됐을 경우에 일정 기간은 재취업 과정에서 필요한 구직 비용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겠다는 취지에서 고용보험이 설계됐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짝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고용보험이 적용됐던 안정적인 일자리가 10명 중에 7명 가까이 됐었다면, 지금은 10명 중 2~3명에 불과하다. 고용보험이 초기에 설계됐을 당시,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을 점진적으로 편입시키는 게 개편되는 고용보험제도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Q. 고용보험 개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 한국은 '노동자'라는 개념을 굉장히 좁게 설정하고 있는 나라다. 그러다 보니 사실은 노동자 개념 밖에 있는 사람이 전 국민의 절반 이상, 60%에 육박하는 문제가 있다. 이런 노동자 개념을 고용보험 제도 개혁을 통해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수의 시민이 노동자임을 체감할 수 있게, 제도를 통해 인식을 바꾸자는 얘기다. 그래야 노동에 대한 감수성도 생기고 노동자 인권도 보장된다.

■코로나19가 촉발한 논의…"사회보험은 저축 아냐"

Q. 왜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 논의가 본격화 됐나.


김종진 부소장 : 코로나19는 사회적 안전망에 포함되지 않는 일자리,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상실한 사람들에게 실업급여를 주고 재취업을 위한 교육 훈련을 해주는 제도가 고용보험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건,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메워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의 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전 국민 고용보험에 대한 지지도가 10명 중의 한 6~7명 가까이 됐다. 국민들도 경험을 했기 때문에, 사회적 필요성을 인식한 것이다.

장지연 위원 : 고용보험 논의가 본격화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논의는 이제야 시작단계다. 그동안 특수형태 종사자들까지 고용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법안이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돼 있었는데도 사회에서 그쪽을 쳐다봐주지 않았다. 국회나 사회에서 미리 논의를 했다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고용위기에 여러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고용보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Q. 건강보험 도입 때와 비슷한 점이 있나.

장지연 위원
: 전 국민 건강보험도 처음에 대규모 사업장에 속한 임금노동자부터 출발했다. 또 지역가입자 그룹이 따로 있었는데 이 두 그룹을 합치는 과정에서 '누가 손해를 더 많이 보나'를 놓고 굉장히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그런 갈등 측면에서 볼 때,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보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보험제도를 확장해서 적용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소모적인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성주 대표 : 반발을 보면 비슷한 점이 있다. 처음에 전 국민 건강보험 할 때 얼마나 반대가 심했나? 그건 액수도 더 많이 떼가서 반발도 심했다. 그런데 체감해 보니까 어떤가? 외국에 사는 사람들도, 한국의 건강보험 때문에 입국해서 수술받을 정도다. 체감 효과가 크다.

Q.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입장에선 자영업자나 예술인, 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보다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확률이 낮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반발이 나오는 것 아닌가.

장지연 위원
: 사회보험이라는 개념은 저축이 아니다. 내가 이바지할 수 있을 때, 돈 낼 수 있을 때 내고 못 낼 때 받는 게 고용보험 제도고, 실업급여다. '사회'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강제적으로 모두 가입하기 때문이다. 내가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가입하고 내가 못 받을 것 같으니 가입하지 않고 이런 차원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가입하게 한 뒤 '연대'에 기반을 둬 나누는 개념이다.

이를테면 실업 위험이 큰 사람들만 가입하게 될 경우, 그 보험은 성립하지 않는다. 보험료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기 때문이다. 낼 수 없는 지경이 될 거다. 그렇게 될 경우, 사회연대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각자도생할 수 없듯,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끼리 살고 없는 사람은 따로 보험을 들게 할 수는 없다. 사회보험을 그렇게 작동시키는 나라도 당연히 없다.

■"단기적으론 프랑스, 장기적으론 덴마크 모델 이상적"

Q. 사회안전망 확대에 따른 재정 지출이 상당할 것 같은데.

김종진 부소장
: 코로나 사태 이후에 여러 논문이 나왔는데 '헬리콥터 머니'를 많이 인용한다. 지금은 돈을 막 살포할 때라는 것이다. 경제 위기에 적극적으로 재정 투여를 하고, 고용을 유지하고, 해고를 막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몇조 원을 아끼려고 하다가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 메르스를 겪은 게 5년 전이었다. 코로나가 5년 뒤에 발병된 거다. 이 주기는 더 짧아질 수도 있다. 이런 고용 위기 사태를 또 반복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Q. 증세 얘기도 따라온다.

조성주 대표
: 정치권이 증세에 대해서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다. 세금 더 부담해야 한다. 이번에 경험하지 않았나. 언제든 순식간에 실업의 위기, 고용의 위기, 매출의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위험은 개인이 극복할 수 없다. 사회 전체가 대응해야 하는 위기다. 사회 전체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회 전체가 같이 부담해야 한다.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
Q. 참고할만한 해외사례는?

장지연 위원
: 덴마크 모델이 제일 좋아 보인다. 그곳에선 소득 활동하는 모든 사람, 즉 임금노동자와 자영업자 등을 따로 나누지 않고 소득을 기반으로 일정 비율 보험료를 부과한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도 똑같이 발생하게 된다. 또 실업 보험으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정 금액의 지원을 하는 부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보험 프로그램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제일 이상적으로 설계돼 있다고 본다.

김종진 부소장 : 덴마크나 스웨덴은 이상적이지만 100년에 가까운 역사 동안 꾸준히 복지 제도를 논의해왔다. 앞으로의 50년을 보고 설계하기엔, 이들 국가는 우리에겐 다소 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프랑스처럼 조세에 기반을 둬서 누구나 다 사회안전망에 들어오게 하고, 별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구를 만드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 이후에 덴마크나 스웨덴처럼 보편적 사회보험으로 가는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

Q. 제도개편,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김종진 부소장 :
고용보험료를 누가 징수하고, 소득 증빙은 어떻게 할 지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나는 고용보험 모델은 월급과 근로소득에 기반을 둘 게 아니라, 모든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득에 기반을 둬서 고용보험료를 징수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의 징수는 국세청이 담당하니 소득을 확인하고 징수하는 기관을 사회보험 공단이 아니라 국세청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또 사회보험제도 운용의 주체도 통합하면 좋겠다. 이번에 질병관리본부가 더 승격해서 포괄적 권한과 역할을 갖게 됐듯이, 여러 공단을 통합한 '사회보험청'이 신설되면 어떨까 싶다. 중장기적으로 효율성과 효과성이 커질 것이다.

Q.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안 국회 통과됐는데, 한계는?

조성주 대표
: 특수고용직을 제외하고 통과된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 쉬운 것만 하겠다는 거다. 특수고용직은 대표적으로 대리운전사, 보험설계사 등이 해당한다. 하나씩 따져보면 보험설계사는 생명보험 회사들과 관계가 있고, 대리운전 기사는 대리운전 플랫폼 회사들과 관계가 있다. 사용자의 기여가 어느 정도 되는지 더 따져봐야 하고 논의가 더 많이 필요하므로 제외된 거다.

쉬운 것만 가려고 하면 안 된다. 물론 20대 국회 끝나기 전까지 모든 결정을 내릴 수 없었을 거란 현실적 판단은 이해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특수고용직을 뺀 건 잘못된 방식이다. 21대 국회에 훨씬 넓은 의미의 법안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특고직 포함해, 자발적 퇴직자 등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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