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핵심가치 외우셨어요?” KT, ‘비전’ 암기 무작위 확인 전화까지

입력 2020.05.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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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에 근무하는 A 씨, 지난주에 사내 기업문화실에서 다소 황당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 핵심가치와 비전, 교육받으셨나요?"
"어떤 내용인가요? 잘 숙지하고 계신가요"
"교육은 누가 진행했나요?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나요?"

아무 예고 없이 걸려온 전화. 기업문화실에서는 A 씨에게 회사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숙지하고 있냐며, 무슨 내용인지 그 자리에서 즉시 말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암기하고 있는지 확인한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는 하얘지고, 떠오르는 건 "꼭 외워놔야 해!"라고 유난히 신신당부했던 부장님의 얼굴 뿐...! 결국 A씨는 이 '전화 테스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잘 외우라고 했던 게 이래서였다니...' 못내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KT가 비전과 핵심가치를 다소 '과하게' 사내에 전파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취임한 구현모 사장이 새롭게 발표한 것으로, 'KT는 혁신을 리딩해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좋지만, 직원들을 향한 전파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선 KT는 새로운 비전 홍보를 위해 수십 명 단위의 집체 교육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통미팅'이라는 이름의 교육입니다. 소통미팅은 원래 한 달에 한 번씩, 팀의 당면과제와 현황을 점검하고, 회사의 주요 이슈를 함께 논의하는, 말 그대로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돕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지난 4월까지는 '소규모 팀 단위'나 '화상회의' 등으로 대체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는 직원들이 실제 모여서 진행하는 집합 교육으로 다시 전환됐습니다. 담당별로, 지점별로, 적게는 20명에서부터 많게는 60명 이상이 한 자리에 모여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비전전파교육'이 진행됐습니다. 회사에서 배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사장이나 담당 상무보가 직접 직원들에게 교육했고, 부장급과 팀장급을 위한 교육은 따로 진행됐습니다. 교육 결과에 대한 보고도 필수였습니다.


홍보는 교육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작위 전화 테스트도 진행됐습니다. 15일자로 교육 기간이 끝나자, 지난주부터는 기업문화실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작위 전화를 걸어, 비전과 핵심가치를 숙지하고 있는지, 교육은 누가 진행했는지 등등을 확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 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핵심가치를 담은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였는지 확인하고,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꾸라는 등의 요구도 있었습니다.

다수의 직원들은 무작위로 확인전화를 받으면서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토로합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의 Kt 방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다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핵심가치로 수필 공모전도 할거 같다" "쌍팔년도로 돌아왔다" "암기 강요는 군대에서도 가혹 행위" "전화받고 귀를 의심했다" 등등입니다. 제대로 암기하지 못했다가 인사고과나 담당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우려하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KT 측은 "비전전파교육은 코로나 19가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된 이후, 마스크를 쓰고 진행됐다"며 수십명 단위의 집합교육이 이뤄졌음을 인정했습니다. 무작위 전화 암기 테스트에 대해서는 "순수한 확인 차원이었고, 관련해서 그 어떤 불이익도 없었다"며 고과 반영 평가는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몇명의 직원에게 전화를 돌렸는지, 굳이 직접 전화로 확인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KT 새노조의 이창수 사무국장은 "옛날에는 일상 다반사 였던 일인데, 한동안 안하다가 구현모 사장이 오면서 또 하고 있다"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1년만에 Kt 내부 출신으로 사장에 취임하며 기대를 불러모은 구 회장. 예스맨을 싫어하고 소통을 중시한다던 구 회장님의 '레트로' 소통법에 직원들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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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5-25 14:16:08
    취재K
KT에 근무하는 A 씨, 지난주에 사내 기업문화실에서 다소 황당한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사 핵심가치와 비전, 교육받으셨나요?"
"어떤 내용인가요? 잘 숙지하고 계신가요"
"교육은 누가 진행했나요?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받았나요?"

아무 예고 없이 걸려온 전화. 기업문화실에서는 A 씨에게 회사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숙지하고 있냐며, 무슨 내용인지 그 자리에서 즉시 말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암기하고 있는지 확인한 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머리는 하얘지고, 떠오르는 건 "꼭 외워놔야 해!"라고 유난히 신신당부했던 부장님의 얼굴 뿐...! 결국 A씨는 이 '전화 테스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잘 외우라고 했던 게 이래서였다니...' 못내 찜찜한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KT가 비전과 핵심가치를 다소 '과하게' 사내에 전파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올해 3월 취임한 구현모 사장이 새롭게 발표한 것으로, 'KT는 혁신을 리딩해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은 좋지만, 직원들을 향한 전파 방식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선 KT는 새로운 비전 홍보를 위해 수십 명 단위의 집체 교육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통미팅'이라는 이름의 교육입니다. 소통미팅은 원래 한 달에 한 번씩, 팀의 당면과제와 현황을 점검하고, 회사의 주요 이슈를 함께 논의하는, 말 그대로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돕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지난 4월까지는 '소규모 팀 단위'나 '화상회의' 등으로 대체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이번 달부터는 직원들이 실제 모여서 진행하는 집합 교육으로 다시 전환됐습니다. 담당별로, 지점별로, 적게는 20명에서부터 많게는 60명 이상이 한 자리에 모여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비전전파교육'이 진행됐습니다. 회사에서 배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사장이나 담당 상무보가 직접 직원들에게 교육했고, 부장급과 팀장급을 위한 교육은 따로 진행됐습니다. 교육 결과에 대한 보고도 필수였습니다.


홍보는 교육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작위 전화 테스트도 진행됐습니다. 15일자로 교육 기간이 끝나자, 지난주부터는 기업문화실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무작위 전화를 걸어, 비전과 핵심가치를 숙지하고 있는지, 교육은 누가 진행했는지 등등을 확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 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핵심가치를 담은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였는지 확인하고,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꾸라는 등의 요구도 있었습니다.

다수의 직원들은 무작위로 확인전화를 받으면서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토로합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의 Kt 방에서도 비슷한 의견을 다수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핵심가치로 수필 공모전도 할거 같다" "쌍팔년도로 돌아왔다" "암기 강요는 군대에서도 가혹 행위" "전화받고 귀를 의심했다" 등등입니다. 제대로 암기하지 못했다가 인사고과나 담당 평가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우려하는 직원들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KT 측은 "비전전파교육은 코로나 19가 생활방역 체제로 전환된 이후, 마스크를 쓰고 진행됐다"며 수십명 단위의 집합교육이 이뤄졌음을 인정했습니다. 무작위 전화 암기 테스트에 대해서는 "순수한 확인 차원이었고, 관련해서 그 어떤 불이익도 없었다"며 고과 반영 평가는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몇명의 직원에게 전화를 돌렸는지, 굳이 직접 전화로 확인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KT 새노조의 이창수 사무국장은 "옛날에는 일상 다반사 였던 일인데, 한동안 안하다가 구현모 사장이 오면서 또 하고 있다"며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11년만에 Kt 내부 출신으로 사장에 취임하며 기대를 불러모은 구 회장. 예스맨을 싫어하고 소통을 중시한다던 구 회장님의 '레트로' 소통법에 직원들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닌것 같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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