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갓’! K-패션 원조는 갓?

입력 2020.05.25 (16:34) 수정 2020.05.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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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행사를 보러 가지 않는 이상, 옛사람들의 모자인 '갓'을 쓴 사람을 직접 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유일하게 갓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시대극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죠. 그래서인지 '갓' 하면 근엄한 표정의 양반이 쓰던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정작 19세기 조선을 찾았던 외국인들은 일찌감치 갓의 멋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갓의 멋, 갓이 보여준 시대상을 알아봅니다.

빛과 바람이 통과하는 '여백의 멋'

19세기 외국인들이 주목한 우리 갓의 특성은 속이 비친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모자는 불투명한 천으로 만들어 머리를 감추는 형태인데 반해, 갓은 대나무나 말총(말꼬리 털)을 매우 가늘게 엮어 만들어 은은하게 비치는 반투명함이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남성들은 상투를 튼 위에 탕건을 쓰고 그 위에 갓을 썼는데, 이런 갓의 반투명함 때문에 탕건과 갓이 오묘하게 겹쳐 보인 거죠. 외국인들은 이를 "빛과 바람이 통과하는 신기한 모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모자는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문화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형태였습니다.

아래 사진을 볼까요? '흑립'이라 불리는 갓의 한 종류입니다. 머리 부분은 말총으로 만들고, '양태'라고 하는, 머리를 둘러싸는 창 부분은 대나무로 만든 틀에 가느다란 명주실을 한올 한올 얹어 만든 겁니다.

조선시대 후기 가장 일반적이었던 형태의 갓 '흑립'이다.조선시대 후기 가장 일반적이었던 형태의 갓 '흑립'이다.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빛이 통과하면서 갓 아래 안쪽에 동그라미 문양 여러 개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정수리가 닿는 갓의 위쪽 안쪽에 붙여둔 꽃문양 장식, '정꽃'이 그림자로 비친 겁니다. 서양의 모자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을 강조했다면, 갓은 장식을 최소화하는 대신 쓰는 사람밖에 알 수 없는 내밀한 부분에 은은한 장식을 넣어뒀던 거죠.

바로 이런 반전의 멋, 여백의 멋에 외국인들이 반했다는데요. 당시 조선을 찾았던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는 "파리 사람들이 조선의 모자 패션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며 극찬했고요. 영국 작가 콘스탄스 쿨슨과 엘리자베스 키스, 미국 여행가 버튼 홈즈 등은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내면서, 특히 갓을 '피라미드 같은 모자', '접시 위에 놓인 화분', '놀라울 만큼 예술적인 작품'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영국 작가 콘스탄스 쿨슨이 1910년 쓴 한국 문화 소개서. 갓을 쓴 청년의 모습이 표지로 쓰였다. 영국 작가 콘스탄스 쿨슨이 1910년 쓴 한국 문화 소개서. 갓을 쓴 청년의 모습이 표지로 쓰였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갓 역사…시대별 유행도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갓 형태는 조선시대에 자리 잡은 겁니다. 고대 문헌에는 삼국시대부터 갓을 착용했고, 고려시대 관리들의 관모로 제정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때부터 갓은 단순히 장신구로서의 의미를 넘어, 신분을 나타내는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 거죠.

갓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내내 갓의 형태는 꾸준히 변화합니다. 초기 패랭이 형태였던 갓은 이후 풀로 머리 부분과 양태(모자의 창 부분) 구분 없이 짠 '초립'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가 됐습니다.

사진에서 왼쪽 뒤쪽이 '패랭이', 왼쪽 앞쪽이 '초립' 사진에서 왼쪽 뒤쪽이 '패랭이', 왼쪽 앞쪽이 '초립'

시대별 유행도 있었습니다. 17세기에는 양태(모자의 창 부분)를 상당히 넓게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는데요. 양태의 폭이 65~70cm로 일반 남성들의 어깨보다 넓어, 문을 통과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문헌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토록 넓었던 양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착용자들은 또 갓끈으로 본인 만의 개성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천이 아닌 대나무나 호박 등으로 만든 화려한 갓끈을 바꿔 달기도 했고요. 갓끈을 유난히 길게 해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리기도 했다는데요. 18세기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바로 그 '갓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볼까요?

신윤복의 풍속화 〈청금상련〉. 가운데 서 있는 남성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갓끈이 달린 갓을 쓰고 있다. (자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신윤복의 풍속화 〈청금상련〉. 가운데 서 있는 남성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갓끈이 달린 갓을 쓰고 있다. (자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사대부 향유물에서 누구나 쓰는 대중 모자로

갓은 조선시대 사대부만 누릴 수 있는 장신구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갓 하나를 만드는 데 40일 이상이 걸릴 만큼 요즘 말로 '명품'이었다고 하니,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평민들에겐 거들떠볼 수도 없는 사치품이었겠죠.

갓은 계급뿐 아니라 모양과 색에 따라 착용자가 처한 상황을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관리들이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거나, 특별한 의식이 있을 때는 일반적인 갓과 다른 형태의 갓을 썼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을 비교해보시면 머리 부분이 원통이 아닌,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띠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사신들이 외국에 나갈 때 쓰는 갓. (오른쪽)평소 외출용 갓(왼쪽)사신들이 외국에 나갈 때 쓰는 갓. (오른쪽)평소 외출용 갓

또 '주립'이라고 하는 붉은 갓은 사대부들이 전쟁 시 군복 위에 쓰던 겁니다.

사대부들이 전쟁 시 쓰던 갓, '주립'이다.사대부들이 전쟁 시 쓰던 갓, '주립'이다.

이처럼 사대부의 특권으로 여겨지던 갓도 차츰 대중화하기 시작합니다. 흥선대원군 시절 의복 간소화 정책 영향이 컸고, 이후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누구나 갓을 쓸 수 있게 된 거죠. 이때부터는 갓의 크기도 작아지고, 모양도 기성품처럼 비슷해지는데요.

1900년대 초 조선의 모습이 담긴 엽서나 사진을 보면 길거리에 나온 남성들 대부분이 모양이 비슷한 갓을 쓰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엽서. 시장에서 갓을 쓰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담겼다.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엽서. 시장에서 갓을 쓰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오마이 '갓'…21세기 다시 주목받는 갓

근대화와 현대화를 거치며 어느 순간부터 갓은 박물관 한 쪽에 전시될 운명에 처한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갓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조선시대 좀비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쓰고 나오는 '갓'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갓의 매력을 호평한 글들이 SNS에 올라오는가 하면, 해외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에서 갓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

미국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에서 갓이 판매되고 있다.미국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에서 갓이 판매되고 있다.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는 갓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우리 전통 복식에 대한 문의 글들도 올라오고 있는데요. 여기에 답을 하려면 우리가 먼저 갓의 매력에 빠져봐야겠죠.

K-뷰티의 원조라고도 할 갓 관련 유물 7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습니다. 갓 전시회 <시시각갓(時時刻갓)> 전은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서 오는 7월 18일까지 열립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무형문화재인 박창영 갓일 보유자와 박형박 갓일 이수자의 전통 공예 작품을 비롯해 노일훈, 이규열, 홍순명 작가가 갓의 멋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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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마이 ‘갓’! K-패션 원조는 갓?
    • 입력 2020-05-25 16:34:49
    • 수정2020-05-25 16:40:32
    취재K
민속 행사를 보러 가지 않는 이상, 옛사람들의 모자인 '갓'을 쓴 사람을 직접 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유일하게 갓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시대극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죠. 그래서인지 '갓' 하면 근엄한 표정의 양반이 쓰던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정작 19세기 조선을 찾았던 외국인들은 일찌감치 갓의 멋에 매료됐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갓의 멋, 갓이 보여준 시대상을 알아봅니다.

빛과 바람이 통과하는 '여백의 멋'

19세기 외국인들이 주목한 우리 갓의 특성은 속이 비친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모자는 불투명한 천으로 만들어 머리를 감추는 형태인데 반해, 갓은 대나무나 말총(말꼬리 털)을 매우 가늘게 엮어 만들어 은은하게 비치는 반투명함이 특징입니다.

조선시대 남성들은 상투를 튼 위에 탕건을 쓰고 그 위에 갓을 썼는데, 이런 갓의 반투명함 때문에 탕건과 갓이 오묘하게 겹쳐 보인 거죠. 외국인들은 이를 "빛과 바람이 통과하는 신기한 모자"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런 모자는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아시아 문화에서도 볼 수 없는 유일한 형태였습니다.

아래 사진을 볼까요? '흑립'이라 불리는 갓의 한 종류입니다. 머리 부분은 말총으로 만들고, '양태'라고 하는, 머리를 둘러싸는 창 부분은 대나무로 만든 틀에 가느다란 명주실을 한올 한올 얹어 만든 겁니다.

조선시대 후기 가장 일반적이었던 형태의 갓 '흑립'이다.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빛이 통과하면서 갓 아래 안쪽에 동그라미 문양 여러 개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정수리가 닿는 갓의 위쪽 안쪽에 붙여둔 꽃문양 장식, '정꽃'이 그림자로 비친 겁니다. 서양의 모자가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을 강조했다면, 갓은 장식을 최소화하는 대신 쓰는 사람밖에 알 수 없는 내밀한 부분에 은은한 장식을 넣어뒀던 거죠.

바로 이런 반전의 멋, 여백의 멋에 외국인들이 반했다는데요. 당시 조선을 찾았던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바라'는 "파리 사람들이 조선의 모자 패션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며 극찬했고요. 영국 작가 콘스탄스 쿨슨과 엘리자베스 키스, 미국 여행가 버튼 홈즈 등은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내면서, 특히 갓을 '피라미드 같은 모자', '접시 위에 놓인 화분', '놀라울 만큼 예술적인 작품'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영국 작가 콘스탄스 쿨슨이 1910년 쓴 한국 문화 소개서. 갓을 쓴 청년의 모습이 표지로 쓰였다.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갓 역사…시대별 유행도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갓 형태는 조선시대에 자리 잡은 겁니다. 고대 문헌에는 삼국시대부터 갓을 착용했고, 고려시대 관리들의 관모로 제정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이때부터 갓은 단순히 장신구로서의 의미를 넘어, 신분을 나타내는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 거죠.

갓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내내 갓의 형태는 꾸준히 변화합니다. 초기 패랭이 형태였던 갓은 이후 풀로 머리 부분과 양태(모자의 창 부분) 구분 없이 짠 '초립'을 거쳐,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가 됐습니다.

사진에서 왼쪽 뒤쪽이 '패랭이', 왼쪽 앞쪽이 '초립'
시대별 유행도 있었습니다. 17세기에는 양태(모자의 창 부분)를 상당히 넓게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는데요. 양태의 폭이 65~70cm로 일반 남성들의 어깨보다 넓어, 문을 통과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문헌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이토록 넓었던 양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가면서 점점 좁아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착용자들은 또 갓끈으로 본인 만의 개성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천이 아닌 대나무나 호박 등으로 만든 화려한 갓끈을 바꿔 달기도 했고요. 갓끈을 유난히 길게 해 허리 아래까지 늘어뜨리기도 했다는데요. 18세기 신윤복의 풍속화에서 바로 그 '갓끈'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볼까요?

신윤복의 풍속화 〈청금상련〉. 가운데 서 있는 남성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갓끈이 달린 갓을 쓰고 있다. (자료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사대부 향유물에서 누구나 쓰는 대중 모자로

갓은 조선시대 사대부만 누릴 수 있는 장신구로,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갓 하나를 만드는 데 40일 이상이 걸릴 만큼 요즘 말로 '명품'이었다고 하니,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평민들에겐 거들떠볼 수도 없는 사치품이었겠죠.

갓은 계급뿐 아니라 모양과 색에 따라 착용자가 처한 상황을 나타내기도 했는데요. 관리들이 외국에 사신으로 나가거나, 특별한 의식이 있을 때는 일반적인 갓과 다른 형태의 갓을 썼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을 비교해보시면 머리 부분이 원통이 아닌,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띠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왼쪽)사신들이 외국에 나갈 때 쓰는 갓. (오른쪽)평소 외출용 갓
또 '주립'이라고 하는 붉은 갓은 사대부들이 전쟁 시 군복 위에 쓰던 겁니다.

사대부들이 전쟁 시 쓰던 갓, '주립'이다.
이처럼 사대부의 특권으로 여겨지던 갓도 차츰 대중화하기 시작합니다. 흥선대원군 시절 의복 간소화 정책 영향이 컸고, 이후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누구나 갓을 쓸 수 있게 된 거죠. 이때부터는 갓의 크기도 작아지고, 모양도 기성품처럼 비슷해지는데요.

1900년대 초 조선의 모습이 담긴 엽서나 사진을 보면 길거리에 나온 남성들 대부분이 모양이 비슷한 갓을 쓰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엽서. 시장에서 갓을 쓰고 있는 상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오마이 '갓'…21세기 다시 주목받는 갓

근대화와 현대화를 거치며 어느 순간부터 갓은 박물관 한 쪽에 전시될 운명에 처한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갓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조선시대 좀비 드라마 <킹덤>이 전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쓰고 나오는 '갓'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겁니다.

갓의 매력을 호평한 글들이 SNS에 올라오는가 하면, 해외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에서 갓 판매량이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도 있습니다.

미국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에서 갓이 판매되고 있다.
해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는 갓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우리 전통 복식에 대한 문의 글들도 올라오고 있는데요. 여기에 답을 하려면 우리가 먼저 갓의 매력에 빠져봐야겠죠.

K-뷰티의 원조라고도 할 갓 관련 유물 70여 점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습니다. 갓 전시회 <시시각갓(時時刻갓)> 전은 코리아나 화장박물관에서 오는 7월 18일까지 열립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무형문화재인 박창영 갓일 보유자와 박형박 갓일 이수자의 전통 공예 작품을 비롯해 노일훈, 이규열, 홍순명 작가가 갓의 멋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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