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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는 회사원, 시의원은 자영업자…의원실의 거짓말
입력 2020.05.28 (07:00) 탐사K
군수는 회사원, 시의원은 자영업자…의원실의 거짓말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기부해보신 분이라면 연말 정산에서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으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되, 정치자금을 매개로 각종 청탁과 비리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현행 정치자금법 도입 취지입니다.

특히 연간 3백만 원이 넘게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기부한 사람은 해당 정치인의 후원회 회계책임자가 선관위에 보고해야 합니다. 기부자가 누군지 이름 주소 직업 등을 알리고 선관위는 이를 공개하게 돼 있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섭니다.

이런 제도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리는 16대 대선자금 사건 이후 국회의원이 어떻게 정치자금을 확보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2004년 국회가 움직인 데 따른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유권자가 국회의원이 어떻게 정치자금을 모금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공개된 고액 기부자 명단. 기부자의 직업이 모호하게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공개된 고액 기부자 명단. 기부자의 직업이 모호하게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정치는 깨끗하고 투명해졌을까요? 적어도 고액 후원자들의 정확한 신원은 공개되는 자료를 통해서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20대 국회의원의 임기인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고액 후원금을 기부한 기부자 전수를 검토해 봤습니다. 그 결과 구체적인 소속 단체명과 직위 등을 명시하지 않고 직업란에 '직장인' '일반인' '회사원'등으로 얼버무린 경우가 전체의 80% 가까이 됐습니다.

한 국회의원은 2018년 치른 지방선거 직후 현직 군수로부터 5백만 원을 기부받았는데, 선관위에 보고할 때는 직업란에 '회사원'으로 회계책임자가 기재했습니다.

해당 군수는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온라인으로 바로 송금해 (직업란이 회사원으로 적힌 지) 몰랐다" 며 "직업을 기재한 사실도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원실에서 기부자의 신원을 엉터리로 적어 보고해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10년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던 한 전직 보좌관은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지난해 후원자들에게 영수증을 발행하기 때문에 직업이나 주소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원들이 후원자들을 정확히 공개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정확히 공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부실한 정보조차도 일반 유권자들로서는 자유롭게 볼 수도 없습니다. 현행법상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은 해당 연도 3개월 동안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정치인들이 낸 정치후원금 수입 지출 내역은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영수증 등 구체적인 증빙 서류는 모두 제거한 수입 지출 항목별 내역만 공개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대 국회에서도 정치자금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18년 9월에 우원식 의원, 2018년 11월엔 심상정 의원, 2019년 3월에는 박주민 의원이 후원금 등 정치자금의 모금액과 사용 내용을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정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도대체 누가 입금했는지 알 수 없어 받는 사람(의원)들도 걱정된다"며 "정확한 정보를 넣고 후원을 하게 되면 문제를 점검해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법안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세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한 채 폐기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기초 의원·단체장 예비후보자 등이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후원하는 관행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경북도당위원장을 맡은 김석기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2017년 9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지방의회 의원 출마를 희망하는 9명이 12차례에 걸쳐 5백만 원씩 고액후원금 6천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김 의원은 "예비후보등록일 전에 후원한 분들은 누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공천은 고액후원금 기부 여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2018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읍·고창 지역위원장을 맡았던 이수혁 전 의원에게도 지방선거 전후로 기초 단체장·의원 등 출마를 희망하는 4명이 후원금을 냈습니다.

이 전 의원 역시 적법하게 이뤄진 후원으로 공천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초 의원 출마자들의 후원은 의원들 입장에서도 달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포항 남 울릉 당협 위원장을 맡았던 박명재 의원은 "시도의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게 되는 경우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논란의 소지도 있고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해관계가 있는 의원들로부터는 후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제도 자체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당시에는 1인당 연간 120만 원 이상이 고액후원금 기부자 공개 기준이었습니다.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10만 원을 1년 12달로 계산해 한 해 120만 원 이상을 고액 후원으로 본 겁니다. 또 후원회에 들어온 기부금 역시 상시 보고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4년 뒤인 2008년, 국회는 슬그머니 고액 후원의 기준을 300만 원으로 높이고 기부금 보고 기간도 제한했습니다. 정치 자금 모금과 집행 투명성을 명백히 후퇴시킨 것입니다.

영상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지만, 취재팀은 당시 국회회의록을 입수했습니다. 고액후원금 기부자 공개 기준을 연간 12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높이자는 개정안 통과는 별다른 이견도, 논의도, 토론도 없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뤄졌습니다.

그 사이 정당 보조금은 2001년 267억 원에서 2019년 432억 원으로 늘었고, 수당과 활동비를 포함한 국회의원의 연간 보수는 1억 5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정치자금 내역 인터넷 공개' 법안을 과연 21대 국회에서는 통과시킬 수 있을까요? 정당보조금을 올리고 세비를 올리면서도 정치자금 공개는 미적댄다는 비난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떳떳한 국회 모습을 보여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합니다.

[연관 기사]
[탐사K]① 국회의원 68명, 지방선거 후보자 후원금 5억8천 모금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6362
[탐사K]② ‘지방선거 국회의원이 쥐락펴락’…원인은 정당공천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6363
[탐사K]③ ‘군수를 회사원으로?’…고액후원금 신분 은닉 횡행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6364
  • 군수는 회사원, 시의원은 자영업자…의원실의 거짓말
    • 입력 2020.05.28 (07:00)
    탐사K
군수는 회사원, 시의원은 자영업자…의원실의 거짓말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기부해보신 분이라면 연말 정산에서 기부금 세액공제를 받으신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되, 정치자금을 매개로 각종 청탁과 비리에 빠져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현행 정치자금법 도입 취지입니다.

특히 연간 3백만 원이 넘게 특정 정치인에게 후원금을 기부한 사람은 해당 정치인의 후원회 회계책임자가 선관위에 보고해야 합니다. 기부자가 누군지 이름 주소 직업 등을 알리고 선관위는 이를 공개하게 돼 있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섭니다.

이런 제도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불리는 16대 대선자금 사건 이후 국회의원이 어떻게 정치자금을 확보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면서, 2004년 국회가 움직인 데 따른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유권자가 국회의원이 어떻게 정치자금을 모금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공개된 고액 기부자 명단. 기부자의 직업이 모호하게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공개된 고액 기부자 명단. 기부자의 직업이 모호하게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정치는 깨끗하고 투명해졌을까요? 적어도 고액 후원자들의 정확한 신원은 공개되는 자료를 통해서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KBS 탐사보도부는 20대 국회의원의 임기인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고액 후원금을 기부한 기부자 전수를 검토해 봤습니다. 그 결과 구체적인 소속 단체명과 직위 등을 명시하지 않고 직업란에 '직장인' '일반인' '회사원'등으로 얼버무린 경우가 전체의 80% 가까이 됐습니다.

한 국회의원은 2018년 치른 지방선거 직후 현직 군수로부터 5백만 원을 기부받았는데, 선관위에 보고할 때는 직업란에 '회사원'으로 회계책임자가 기재했습니다.

해당 군수는 K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온라인으로 바로 송금해 (직업란이 회사원으로 적힌 지) 몰랐다" 며 "직업을 기재한 사실도 없고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원실에서 기부자의 신원을 엉터리로 적어 보고해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어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10년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던 한 전직 보좌관은 "연말정산 시즌이 되면, 지난해 후원자들에게 영수증을 발행하기 때문에 직업이나 주소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의원들이 후원자들을 정확히 공개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정확히 공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부실한 정보조차도 일반 유권자들로서는 자유롭게 볼 수도 없습니다. 현행법상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은 해당 연도 3개월 동안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정치인들이 낸 정치후원금 수입 지출 내역은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도 영수증 등 구체적인 증빙 서류는 모두 제거한 수입 지출 항목별 내역만 공개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대 국회에서도 정치자금을 더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2018년 9월에 우원식 의원, 2018년 11월엔 심상정 의원, 2019년 3월에는 박주민 의원이 후원금 등 정치자금의 모금액과 사용 내용을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정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도대체 누가 입금했는지 알 수 없어 받는 사람(의원)들도 걱정된다"며 "정확한 정보를 넣고 후원을 하게 되면 문제를 점검해 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법안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의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세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못 한 채 폐기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기초 의원·단체장 예비후보자 등이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후원하는 관행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경북도당위원장을 맡은 김석기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2017년 9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지방의회 의원 출마를 희망하는 9명이 12차례에 걸쳐 5백만 원씩 고액후원금 6천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김 의원은 "예비후보등록일 전에 후원한 분들은 누가 지방선거에 출마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공천은 고액후원금 기부 여부와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2018 지방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읍·고창 지역위원장을 맡았던 이수혁 전 의원에게도 지방선거 전후로 기초 단체장·의원 등 출마를 희망하는 4명이 후원금을 냈습니다.

이 전 의원 역시 적법하게 이뤄진 후원으로 공천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기초 의원 출마자들의 후원은 의원들 입장에서도 달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포항 남 울릉 당협 위원장을 맡았던 박명재 의원은 "시도의원들로부터 후원금을 받게 되는 경우 (국회의원 입장에서도) 논란의 소지도 있고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해관계가 있는 의원들로부터는 후원금을 받지 못하도록 제도 자체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당시에는 1인당 연간 120만 원 이상이 고액후원금 기부자 공개 기준이었습니다.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10만 원을 1년 12달로 계산해 한 해 120만 원 이상을 고액 후원으로 본 겁니다. 또 후원회에 들어온 기부금 역시 상시 보고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4년 뒤인 2008년, 국회는 슬그머니 고액 후원의 기준을 300만 원으로 높이고 기부금 보고 기간도 제한했습니다. 정치 자금 모금과 집행 투명성을 명백히 후퇴시킨 것입니다.

영상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지만, 취재팀은 당시 국회회의록을 입수했습니다. 고액후원금 기부자 공개 기준을 연간 12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높이자는 개정안 통과는 별다른 이견도, 논의도, 토론도 없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뤄졌습니다.

그 사이 정당 보조금은 2001년 267억 원에서 2019년 432억 원으로 늘었고, 수당과 활동비를 포함한 국회의원의 연간 보수는 1억 5천만 원을 넘어섰습니다.

20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정치자금 내역 인터넷 공개' 법안을 과연 21대 국회에서는 통과시킬 수 있을까요? 정당보조금을 올리고 세비를 올리면서도 정치자금 공개는 미적댄다는 비난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떳떳한 국회 모습을 보여주기를 국민들은 기대합니다.

[연관 기사]
[탐사K]① 국회의원 68명, 지방선거 후보자 후원금 5억8천 모금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6362
[탐사K]② ‘지방선거 국회의원이 쥐락펴락’…원인은 정당공천제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6363
[탐사K]③ ‘군수를 회사원으로?’…고액후원금 신분 은닉 횡행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45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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