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는 엄청난 ‘차별주의자’?

입력 2020.05.28 (10:53) 수정 2020.05.28 (10:5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카메룬 출신의 은덴 송고 바틀레미 씨,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 헨닝스도로프 난민수용소에 거주하는 난민 신청자다. 바틀레미 씨는 지난 달, 같은 수용소에 있는 다른 난민 60여 명과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확진자들은 이후 따로 격리되지 않았다. 수용소에 계속 머물러야 했고 외출은 금지됐다. 의사도 오지 않고 소독제도 없었으며, 나흘이 지나서야 마스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모두 400여 명이 거주하는 수용소 내 확진자는 급증했다. 지난달 18일 3명이었던 확진자는 한 달여가 지난 이 달 24일엔 210여 명으로 증가했다.

수용소 거주자의 절반 이상이 감염에 노출된 건 확진자와 비감염자를 서로 분리하지 않고 같은 건물에서 계속 생활하게 한 탓이 크다. 확진자가 나온 건물의 모든 거주자에 대해 14일 격리 뒤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 때 확진자가 또 나오면 다시 14일 간 그 건물의 거주자 전원은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이른바 '연쇄 격리'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확진자가 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는 엄청난 차별주의자"…소외계층에 더 큰 타격

"코로나19는 엄청난 차별주의자". 독일 일간 디 차이트(Die Zeit)의 25일자 온라인판 사설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사설을 쓴 마틴 클링스트의 주장은 이렇다. 초기에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 백인과 흑인, 다수계층과 소수 소외계층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병이어서 엄청난 무차별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클링스트는 많은 곳에서 가난한 자와 소외계층 희생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 사회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조금씩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추진하고 있는 독일에서 최근 집단 감염이 잇따르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난민수용소와 도축장이다.

독일 도축장독일 도축장

독일 곳곳에 있는 난민수용소에서 지금까지 1,400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도축장 여러 곳에서도 천 명 이상이 감염됐다.

[특파원리포트] 독일 ‘코로나 핫스팟’ 도축장·난민수용소…“비좁고 과밀”

난민수용소와 도축장의 특징은 '비좁고 과밀'하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위생 규칙을 준수하기 어렵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기에는 더욱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집단 감염 시설의 특징은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지라는 점이다. 정치적·경제적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온 난민들, 더 나은 밥벌이를 위해 힘든 노동을 선택한 외국인 노동자들. 카메룬 출신 난민 바틀레미 씨와 같은 소외계층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말그대로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다.

아시아계 인종차별도 극성

코로나19의 또 다른 차별적 측면은 인종과 관련돼 있는데, 특히 아시아계가 타깃이 되고 있다.

지난 달 27일 자정 무렵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던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성희롱과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성 3명과 여성 2명으로 이뤄진 상대 무리는 "해피 코로나, 코로나 파티, 섹시하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고, 이에 항의하는 유학생 부부를 밀치고 침을 뱉기도 했다.

베를린 경찰 사건 접수 서류베를린 경찰 사건 접수 서류

이 사건은 베를린 경찰에 정식으로 접수돼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피해자인 한국인 여성 김현음 씨는 범죄혐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김 씨가 자신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불렀다며, 상대 여성 2명이 김 씨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이런 발언은 모욕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 부부는 사건 당일 현장에 출동한 독일 경찰관이 "코로나라고 부르는 건 인종차별이 아니다"라고 한 발언을 잊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독일 한국대사관엔 16건의 차별 피해 사례가 접수돼 있다.

다음은 독일 언론이 전하는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 사례들이다(쥐트도이체 차이퉁, 5.22).


5월 중순까지 독일 연방 반차별기구에 200여 건의 인종차별 피해가 신고됐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적 공격과 모욕 등을 당했다는 내용이 주요 내용이었다.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차별적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 그리고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 이 같은 차별은 바이러스가 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엄청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 이 같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가 엄청난 차별주의자인 것이다.

비좁은 주거지와 직장에서 쉽게 감염에 노출되지만, 감염된 이후에도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한다.

비단 독일만이 아니다. 미국의 아프리카계 시민들, 남미의 빈민가 거주민들, 중동 산유국의 외국인 노동자들…모두 차별적 상황에 노출돼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소외계층과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 또 이 같은 차별에 무관심한 사회에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 ‘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코로나19는 엄청난 ‘차별주의자’?
    • 입력 2020-05-28 10:53:21
    • 수정2020-05-28 10:54:41
    특파원 리포트
카메룬 출신의 은덴 송고 바틀레미 씨,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 헨닝스도로프 난민수용소에 거주하는 난민 신청자다. 바틀레미 씨는 지난 달, 같은 수용소에 있는 다른 난민 60여 명과 함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확진자들은 이후 따로 격리되지 않았다. 수용소에 계속 머물러야 했고 외출은 금지됐다. 의사도 오지 않고 소독제도 없었으며, 나흘이 지나서야 마스크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모두 400여 명이 거주하는 수용소 내 확진자는 급증했다. 지난달 18일 3명이었던 확진자는 한 달여가 지난 이 달 24일엔 210여 명으로 증가했다.

수용소 거주자의 절반 이상이 감염에 노출된 건 확진자와 비감염자를 서로 분리하지 않고 같은 건물에서 계속 생활하게 한 탓이 크다. 확진자가 나온 건물의 모든 거주자에 대해 14일 격리 뒤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는데, 이 때 확진자가 또 나오면 다시 14일 간 그 건물의 거주자 전원은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이른바 '연쇄 격리'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확진자가 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는 엄청난 차별주의자"…소외계층에 더 큰 타격

"코로나19는 엄청난 차별주의자". 독일 일간 디 차이트(Die Zeit)의 25일자 온라인판 사설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사설을 쓴 마틴 클링스트의 주장은 이렇다. 초기에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 백인과 흑인, 다수계층과 소수 소외계층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병이어서 엄청난 무차별주의자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클링스트는 많은 곳에서 가난한 자와 소외계층 희생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 사회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조금씩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추진하고 있는 독일에서 최근 집단 감염이 잇따르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난민수용소와 도축장이다.

독일 도축장
독일 곳곳에 있는 난민수용소에서 지금까지 1,400여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도축장 여러 곳에서도 천 명 이상이 감염됐다.

[특파원리포트] 독일 ‘코로나 핫스팟’ 도축장·난민수용소…“비좁고 과밀”

난민수용소와 도축장의 특징은 '비좁고 과밀'하다는 데 있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위생 규칙을 준수하기 어렵고,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기에는 더욱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집단 감염 시설의 특징은 사회적 약자들의 거주지라는 점이다. 정치적·경제적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온 난민들, 더 나은 밥벌이를 위해 힘든 노동을 선택한 외국인 노동자들. 카메룬 출신 난민 바틀레미 씨와 같은 소외계층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말그대로 '엄청난 차별'을 받고 있다.

아시아계 인종차별도 극성

코로나19의 또 다른 차별적 측면은 인종과 관련돼 있는데, 특히 아시아계가 타깃이 되고 있다.

지난 달 27일 자정 무렵 베를린에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던 한국인 유학생 부부가 성희롱과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성 3명과 여성 2명으로 이뤄진 상대 무리는 "해피 코로나, 코로나 파티, 섹시하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고, 이에 항의하는 유학생 부부를 밀치고 침을 뱉기도 했다.

베를린 경찰 사건 접수 서류
이 사건은 베를린 경찰에 정식으로 접수돼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피해자인 한국인 여성 김현음 씨는 범죄혐의자 신분이기도 하다. 김 씨가 자신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불렀다며, 상대 여성 2명이 김 씨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이런 발언은 모욕 행위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 부부는 사건 당일 현장에 출동한 독일 경찰관이 "코로나라고 부르는 건 인종차별이 아니다"라고 한 발언을 잊지 못하고 있다. 현재 주독일 한국대사관엔 16건의 차별 피해 사례가 접수돼 있다.

다음은 독일 언론이 전하는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 사례들이다(쥐트도이체 차이퉁, 5.22).


5월 중순까지 독일 연방 반차별기구에 200여 건의 인종차별 피해가 신고됐다.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적 공격과 모욕 등을 당했다는 내용이 주요 내용이었다.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차별적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차별, 그리고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 이 같은 차별은 바이러스가 하는 게 아니라 그 사회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엄청난 차별주의자가 아니라, 이 같은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가 엄청난 차별주의자인 것이다.

비좁은 주거지와 직장에서 쉽게 감염에 노출되지만, 감염된 이후에도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특정 인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시와 모욕을 당하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한다.

비단 독일만이 아니다. 미국의 아프리카계 시민들, 남미의 빈민가 거주민들, 중동 산유국의 외국인 노동자들…모두 차별적 상황에 노출돼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소외계층과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 또 이 같은 차별에 무관심한 사회에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 ‘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do?icd=19588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