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장관이 4·3 유족 장학기금 쾌척한 이유는?

입력 2020.05.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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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이 최근 제주 4·3 유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5천만 원을 맡겼습니다. 추 장관은 기탁증서를 전달하면서 “4·3 유족들은 연좌제 피해뿐만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고, 희생자 당대만이 아니라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중고를 겪었기에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4월 3일에는 현직 법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출신 추 장관은 제주 4·3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초선의원 신분으로 맺게 된 제주 4·3과의 인연

[사진 출처 : 추미애TV][사진 출처 : 추미애TV]

추 장관은 1995년 8월 판사로 재직 중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로부터 만찬에 초대받습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위원장은 2시간의 대화 끝에 추 장관을 영입하게 됩니다. 추 장관은 이듬해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다음 해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 부대변인 자격으로 전국을 누비게 됩니다.

제주 4·3을 접하게 된 것도 그때입니다. 제주 지지자들은 제주 4·3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달라고 요청했고, 김대중 후보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추 장관은 당시 제주 4·3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제주 4·3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죠. 결국,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당내 4·3 특위가 구성됐고, 추 장관은 초선 의원 신분으로 부위원장 직책을 맡게 되면서 제주4·3과의 인연을 시작합니다.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 발굴…70년 만에 무죄 이끌어


추 장관의 대표적인 성과로는 수형인 명부 발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99년 4·3 유족이 보내온 연좌제 관련 자료를 접하면서 제주 4·3 관련 공문서의 존재를 확인한 추 장관은 정부기록보존소를 찾게 됩니다.

제주 4·3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정부기록보존소를 질책하면서 제주4·3 관련 자료를 요청했는데, 그로부터 6개월 뒤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를 발굴하게 됩니다.

군법회의는 제주4·3 당시 민간인을 대상으로 열린 군사재판입니다.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 열렸는데,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재판이었습니다.

당시 군법회의를 거친 사람들은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된 뒤 6·25 전쟁 통에 대다수 행방불명됐는데, 유족들은 반세기 넘도록 부모 형제의 행방도 모른 채 한 맺힌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추 장관의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 발굴은 제주4·3 행방불명의 역사를 새로 기록하는 계기가 됐고, 2019년 생존 수형인 18명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4·3으로만 채운 대정부 질문…4·3 특별법 제정 일등공신

[사진 출처 : 추미애TV][사진 출처 : 추미애TV]

제주 4·3과의 인연 가운데 눈에 띄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1999년 10월 제208회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입니다. 이듬해 5월 총선을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였던 만큼 지역구 관련 질의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추 장관은 발표 제한시간 20분 모두를 제주 4·3에 대한 질의로 채웠습니다. 제주 4·3의 피해 현장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과 불법 계엄령 등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국무총리에게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을 건의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주 출신 국회의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추 장관이 했던 겁니다. 나아가 같은 해 말에는 4·3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고 끝내 통과시키면서 명예 제주도민으로 추대됐습니다. 4·3 공적으로 인한 최초의 명예 도민입니다.

미완의 4·3 해결…21대 국회에서는 어떻게?


추 장관이 대표 발의한 4·3 특별법이 통과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제주 4·3은 완전히 해결됐을까요?

20대 국회 임기 동안 4·3 유족들은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해 왔습니다. 2017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대표적인데,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물론 개정안 처리만으로 제주 4·3이 완전히 해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완전한 해결에 한 발짝 다가설 순 있겠죠.

하지만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받는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만 3차례 논의되는데 그쳤고,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보상 규모에 대한 재정 당국의 난색 등 정부 부처 간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것도 심사에 걸림돌이었습니다. 결국 4·3 특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됩니다.

다만 제주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공약했던 만큼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다시 발의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20년 전 그랬던 것처럼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요? 제주 4·3희생자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에 정치권이 화답해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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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장관이 4·3 유족 장학기금 쾌척한 이유는?
    • 입력 2020-05-28 16:54:11
    취재K
추미애 법무장관이 최근 제주 4·3 유족을 위한 장학기금으로 5천만 원을 맡겼습니다. 추 장관은 기탁증서를 전달하면서 “4·3 유족들은 연좌제 피해뿐만 아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고, 희생자 당대만이 아니라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중고를 겪었기에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4월 3일에는 현직 법무장관으로는 처음으로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대구 출신 추 장관은 제주 4·3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초선의원 신분으로 맺게 된 제주 4·3과의 인연

[사진 출처 : 추미애TV]
추 장관은 1995년 8월 판사로 재직 중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로부터 만찬에 초대받습니다.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대중 위원장은 2시간의 대화 끝에 추 장관을 영입하게 됩니다. 추 장관은 이듬해 총선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다음 해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 부대변인 자격으로 전국을 누비게 됩니다.

제주 4·3을 접하게 된 것도 그때입니다. 제주 지지자들은 제주 4·3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달라고 요청했고, 김대중 후보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추 장관은 당시 제주 4·3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는데, 스스로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제주 4·3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죠. 결국, 김대중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당내 4·3 특위가 구성됐고, 추 장관은 초선 의원 신분으로 부위원장 직책을 맡게 되면서 제주4·3과의 인연을 시작합니다.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 발굴…70년 만에 무죄 이끌어


추 장관의 대표적인 성과로는 수형인 명부 발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99년 4·3 유족이 보내온 연좌제 관련 자료를 접하면서 제주 4·3 관련 공문서의 존재를 확인한 추 장관은 정부기록보존소를 찾게 됩니다.

제주 4·3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정부기록보존소를 질책하면서 제주4·3 관련 자료를 요청했는데, 그로부터 6개월 뒤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를 발굴하게 됩니다.

군법회의는 제주4·3 당시 민간인을 대상으로 열린 군사재판입니다. 1948년과 1949년 두 차례 열렸는데, 법률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재판이었습니다.

당시 군법회의를 거친 사람들은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된 뒤 6·25 전쟁 통에 대다수 행방불명됐는데, 유족들은 반세기 넘도록 부모 형제의 행방도 모른 채 한 맺힌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추 장관의 '군법회의 수형인 명부' 발굴은 제주4·3 행방불명의 역사를 새로 기록하는 계기가 됐고, 2019년 생존 수형인 18명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게 됩니다.

4·3으로만 채운 대정부 질문…4·3 특별법 제정 일등공신

[사진 출처 : 추미애TV]
제주 4·3과의 인연 가운데 눈에 띄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1999년 10월 제208회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입니다. 이듬해 5월 총선을 앞둔 마지막 정기국회였던 만큼 지역구 관련 질의를 위한 국회의원들의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추 장관은 발표 제한시간 20분 모두를 제주 4·3에 대한 질의로 채웠습니다. 제주 4·3의 피해 현장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무자비한 초토화 작전과 불법 계엄령 등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국무총리에게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와 대통령의 공개 사과 등을 건의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주 출신 국회의원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추 장관이 했던 겁니다. 나아가 같은 해 말에는 4·3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고 끝내 통과시키면서 명예 제주도민으로 추대됐습니다. 4·3 공적으로 인한 최초의 명예 도민입니다.

미완의 4·3 해결…21대 국회에서는 어떻게?


추 장관이 대표 발의한 4·3 특별법이 통과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제주 4·3은 완전히 해결됐을까요?

20대 국회 임기 동안 4·3 유족들은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해 왔습니다. 2017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대표적인데, 희생자에 대한 보상과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물론 개정안 처리만으로 제주 4·3이 완전히 해결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완전한 해결에 한 발짝 다가설 순 있겠죠.

하지만 '식물국회'라는 오명을 받는 20대 국회에서는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만 3차례 논의되는데 그쳤고,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보상 규모에 대한 재정 당국의 난색 등 정부 부처 간의 의견이 조율되지 않은 것도 심사에 걸림돌이었습니다. 결국 4·3 특별법 개정안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됩니다.

다만 제주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4·3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공약했던 만큼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다시 발의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20년 전 그랬던 것처럼 제주도민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을까요? 제주 4·3희생자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에 정치권이 화답해주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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