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톡] 한익스프레스 참사 한 달…언론이 산재를 잊는 법

입력 2020.05.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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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은 김 군이 홀로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다 숨진 지 4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구의역 참사 4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제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며 "우리 용균이가, 구의역 김군이 살아와서 똑같은 일을 한대도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김용균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경기도 용인의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는 30대 노동자가 9m 아래로 떨어져 숨졌고, 광주 목재공장에선 20대 노동자가 목재 파쇄기에 빨려들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13일에는 삼척 삼표시멘트 공장 사업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작업 중에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습니다.

삼표시멘트 사망 사고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2인 1조를 지키지 않고 홀로 작업하던 중에 사고가 났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사고와 무척 닮았지만,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부터 일주일 동안 10대 일간지와 3대 경제지의 지면 보도를 분석해 보니 고 김용균 씨 사고 보도는 84건이었는데 삼표시멘트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 하루가 멀다 하고 제2의 김용균과 제2의 구의역 김 군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들의 죽음은 조용히 묻히고 있습니다.


J 고정 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언론이 보도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잘 없다"면서 "산재 기획 보도를 여러 언론사가 연달아서 하면 관심이 높아지고 국회가 움직이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잊어버리셨나요? 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 한 달

한 달 전인 지난달 29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직후 가장 먼저 나온 보도는 사고 원인에 대한 추정. 주요 언론들은 <건설 공사장 안전 불감증...또 일어난 대형참사(국민일보)>, <이번에도 샌드위치 패널...전수조사까지 해놓고 참사 되풀이(조선일보)>, <우레탄폼 유독 가스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 잃어...대피 못 한 듯(동아일보)> 등 성급하게 원인을 추정하는 보도들을 내놨습니다.

언론 보도는 12년 전 사고도 소환했습니다.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8년 1월 7일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판박이'라는 언론 보도들이 이어졌습니다. 언론들은 '폴리우레탄 발포 작업이 발화 원인이다', '샌드위치 패널이 피해 키웠다'는 분석들을 내놓으면서 12년 전 참사와 판박이라는 보도들을 쏟아냈습니다.

그 와중에 담배꽁초가 화재 원인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참사 2주만인 12일, SBS와 YTN은 각각 단독보도라면서 소방청의 국회 보고서를 인용해서 현장에서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김효범 소방청 화재조사계장은 J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담배꽁초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이 확인된 사항을 나열한 것이지, 그게 화재의 원인이라는 내용은 아니었다"면서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 추정 상의 원인이 보도되다 보니까 억울한 피해자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추정만으로 이뤄지는 사고 원인 보도.

J가 팩터뷰(팩트+인터뷰)에서 만난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되풀이되는 오보가 판박이라고 말했습니다. 강태선 교수는 "폴리우레탄 발포 작업 자체가 발화점으로 작용하기 어렵고 샌드위치 패널에 미처 불이 붙기 전에 많은 사람이 이미 대피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린다"면서 이런 원인 분석은 화재 초기의 급격한 화염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기-승-전-샌드위치 패널로 이어지고 마는 언론 보도의 문제를 꼬집은 것입니다.


게다가 언론들은 이런 참사가 발생하면 '근로자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하지만 강 교수는 이같은 표현들은 근로자가 주의하지 않아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몰아가 결국 사업주의 책임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고 지적합니다. 언론들의 관행적인 보도, 성급한 원인 추정 보도들은 참사의 진실을 감추고 사업주의 책임 문제를 희석하는 것입니다.

윤미향과 정의연 보도, 무엇을 가리는가?

J는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언론이 어떻게 다뤘는지도 짚었습니다. 김복동 장학금, 안성 쉼터 등 의혹들을 제대로 취재, 검증하지 않은 채 의혹만 계속 던지고 마는 언론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또 할머니들의 주거 공간까지 침해하며 과도하게 취재 경쟁을 벌이는 언론들의 모습, BTS 팬클럽 '아미'가 기부한 패딩이 할머니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오보를 삭제하지 않고 수정하면서 책임을 피하는 행태도 짚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문제를 제기한 기부금 투명성 등 구체적인 문제를 짚는 게 아니라 위안부 운동 자체를 문제 삼거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14일 동아일보 [정의와 기억을 독점할 수 있나]라는 칼럼은 정의연에 대해 "반일민족주의에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좌파 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국정 교과서처럼 정의와 기억을 독점한 형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패널로 참석한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증언의 신뢰성을 따지는 것은 2016년 일본이 UN에서 '위안부 문제가 조작돼 있다'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이 칼럼은 대단히 문제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J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비판이나 검증 없이 보도했던 주요 언론들의 태도가 달라진 점도 들여다봤습니다. 위안부 합의 다음 날 중앙일보는 보도 12건을 쏟아내며 '새로운 관계 열어나가자', '아베 위안부 사죄, 일본 책임 통감' 등 위안부 합의가 잘 된 것처럼 보도했던 걸 기억하고 있을까요?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92회는 <정의연 보도와 진흙탕 언론...산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라는 주제로 오는 31일(일요일) 밤 9시 5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한승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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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리톡] 한익스프레스 참사 한 달…언론이 산재를 잊는 법
    • 입력 2020-05-30 10:08:52
    저널리즘 토크쇼 J
지난 28일은 김 군이 홀로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을 하다 숨진 지 4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구의역 참사 4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제에서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며 "우리 용균이가, 구의역 김군이 살아와서 똑같은 일을 한대도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김용균법 시행 이후에도 산업현장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경기도 용인의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는 30대 노동자가 9m 아래로 떨어져 숨졌고, 광주 목재공장에선 20대 노동자가 목재 파쇄기에 빨려들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 13일에는 삼척 삼표시멘트 공장 사업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작업 중에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습니다.

삼표시멘트 사망 사고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2인 1조를 지키지 않고 홀로 작업하던 중에 사고가 났습니다. 고 김용균 씨의 사고와 무척 닮았지만, 언론들은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발생부터 일주일 동안 10대 일간지와 3대 경제지의 지면 보도를 분석해 보니 고 김용균 씨 사고 보도는 84건이었는데 삼표시멘트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 하루가 멀다 하고 제2의 김용균과 제2의 구의역 김 군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들의 죽음은 조용히 묻히고 있습니다.


J 고정 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는 "언론이 보도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잘 없다"면서 "산재 기획 보도를 여러 언론사가 연달아서 하면 관심이 높아지고 국회가 움직이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도 잊어버리셨나요? 이천 한익스프레스 화재 한 달

한 달 전인 지난달 29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직후 가장 먼저 나온 보도는 사고 원인에 대한 추정. 주요 언론들은 <건설 공사장 안전 불감증...또 일어난 대형참사(국민일보)>, <이번에도 샌드위치 패널...전수조사까지 해놓고 참사 되풀이(조선일보)>, <우레탄폼 유독 가스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 잃어...대피 못 한 듯(동아일보)> 등 성급하게 원인을 추정하는 보도들을 내놨습니다.

언론 보도는 12년 전 사고도 소환했습니다.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8년 1월 7일 이천 냉동창고 화재와 '판박이'라는 언론 보도들이 이어졌습니다. 언론들은 '폴리우레탄 발포 작업이 발화 원인이다', '샌드위치 패널이 피해 키웠다'는 분석들을 내놓으면서 12년 전 참사와 판박이라는 보도들을 쏟아냈습니다.

그 와중에 담배꽁초가 화재 원인으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참사 2주만인 12일, SBS와 YTN은 각각 단독보도라면서 소방청의 국회 보고서를 인용해서 현장에서 담배꽁초와 담뱃갑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김효범 소방청 화재조사계장은 J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담배꽁초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이 확인된 사항을 나열한 것이지, 그게 화재의 원인이라는 내용은 아니었다"면서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는데 추정 상의 원인이 보도되다 보니까 억울한 피해자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추정만으로 이뤄지는 사고 원인 보도.

J가 팩터뷰(팩트+인터뷰)에서 만난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되풀이되는 오보가 판박이라고 말했습니다. 강태선 교수는 "폴리우레탄 발포 작업 자체가 발화점으로 작용하기 어렵고 샌드위치 패널에 미처 불이 붙기 전에 많은 사람이 이미 대피할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린다"면서 이런 원인 분석은 화재 초기의 급격한 화염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기-승-전-샌드위치 패널로 이어지고 마는 언론 보도의 문제를 꼬집은 것입니다.


게다가 언론들은 이런 참사가 발생하면 '근로자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하지만 강 교수는 이같은 표현들은 근로자가 주의하지 않아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식으로 몰아가 결국 사업주의 책임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고 지적합니다. 언론들의 관행적인 보도, 성급한 원인 추정 보도들은 참사의 진실을 감추고 사업주의 책임 문제를 희석하는 것입니다.

윤미향과 정의연 보도, 무엇을 가리는가?

J는 지난 7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언론이 어떻게 다뤘는지도 짚었습니다. 김복동 장학금, 안성 쉼터 등 의혹들을 제대로 취재, 검증하지 않은 채 의혹만 계속 던지고 마는 언론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또 할머니들의 주거 공간까지 침해하며 과도하게 취재 경쟁을 벌이는 언론들의 모습, BTS 팬클럽 '아미'가 기부한 패딩이 할머니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는 오보를 삭제하지 않고 수정하면서 책임을 피하는 행태도 짚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문제를 제기한 기부금 투명성 등 구체적인 문제를 짚는 게 아니라 위안부 운동 자체를 문제 삼거나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보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14일 동아일보 [정의와 기억을 독점할 수 있나]라는 칼럼은 정의연에 대해 "반일민족주의에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좌파 진영에 속해 있으면서 국정 교과서처럼 정의와 기억을 독점한 형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패널로 참석한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증언의 신뢰성을 따지는 것은 2016년 일본이 UN에서 '위안부 문제가 조작돼 있다'는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이 칼럼은 대단히 문제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J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비판이나 검증 없이 보도했던 주요 언론들의 태도가 달라진 점도 들여다봤습니다. 위안부 합의 다음 날 중앙일보는 보도 12건을 쏟아내며 '새로운 관계 열어나가자', '아베 위안부 사죄, 일본 책임 통감' 등 위안부 합의가 잘 된 것처럼 보도했던 걸 기억하고 있을까요?

'저널리즘토크쇼 J'는 KBS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토크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신개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입니다. J 92회는 <정의연 보도와 진흙탕 언론...산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라는 주제로 오는 31일(일요일) 밤 9시 50분, KBS 1TV와 유튜브를 통해 방송됩니다. 이상호 KBS 아나운서, 팟캐스트 MC 최욱,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자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활동가 겸 변호사,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 한승연 KBS 기자가 출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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