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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부부 이야기’
입력 2020.05.31 (08:07) 취재K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부부 이야기’
이 황새 부부는 조금 특별합니다.

일단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황새라는 점에서 그렇고, 둥지를 틀고 살림을 차린 곳이 충남 태안의 송전탑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부부.. 대체 왜?
황새 부부가 있는 송전탑을 찾아가는 길은 드문드문 민가가 보이는 비포장 도로가 15분 가량 이어졌습니다. 승용차가 아닌 마차를 탄 듯 덜컹거리는 농로가 계속되자 취재진 중 누군가가 황새가 왜 여기 정착했는지 벌써 알 것 같다, 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드디어 찾은 송전탑은 논과 밭, 야트막한 언덕 사이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황새 가족에게 송전탑 꼭대기는 최상의 조망권을 갖춘 펜트하우스나 다름 없어 보였습니다.

황새는 날개 길이가 2m나 될 정도로 몸집이 큰 새입니다. 당연히 둥지도 다른 새들보다 커야 하죠. 그러다보니 과거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자리잡았던 시절에는 아름드리 크기의 소나무나 은행나무에 둥지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드리 나무를 찾기 어려워진 요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에 꼭대기가 평평한 송전탑은 더 없이 좋은 서식처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많고 많은 송전탑 중에 왜 하필 충남 태안군 남면의 이 곳이었을까요?
김수경 예산황새공원 선임연구원은 먹이를 구하기 쉬운 주변 환경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황새는 갯벌이나 평야지대에 살며 주로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나 개구리 등을 잡아 먹는데, 이 송전탑 주변엔 논이 많은데다 실개천이 흐르고 조금만 더 나가면 갯벌도 있습니다.

취재하는 동안 지켜본 황새는 논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끊임없이 먹이활동을 했는데, 송전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풍부한 먹이 덕인지 지난 3월에 황새 부부가 낳은 알 4개는 모두 성공적으로 부화했고 새끼들은 말 그대로 '폭풍성장'중입니다. 바깥 세상이 궁금한지 새끼 4마리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국내서는 처음 확인
황새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971년 충북 음성에서 마지막 황새 한 쌍이 발견된 이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지난 1996년부터 문화재청과 교원대가 러시아에서 황새 한 쌍을 들여와 번식을 하며 텃새화를 위해 노력해왔는데요.

지난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방사된 황새 50마리 가운데 짝을 이룬 황새가 이들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방사된 충남 예산지역 주변에 있는 인공둥지탑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예산에서 50km 가량 떨어진 태안에, 그것도 인공둥지탑이 아닌 송전탑에 둥지를 튼 건 이들이 처음입니다.


잠깐!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볼까요?
지난 2015년 황새 복원사업이 추진된 이후 처음으로 야생에 황새를 방사했는데, 이 때 가장 처음으로 새장을 열고 방사된 황새가 지금의 수컷 대황입니다.
하지만 방사된 이후 대황이는 짝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러시아에서 온 암컷 황새 한 마리를 만났는데요. 황새는 수컷이 먼저 나뭇가지를 물어와 둥지를 짓기 시작하는 것으로 구애를 한답니다. 하지만 하필 그 무렵에 강풍이 많이 불었고, 둥지는 번번이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암컷 황새도 둥지 짓는 것을 도왔지만 날이 풀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한 달도 안돼 짧은 썸(?)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상심에 빠져있을 무렵 만난 게 지금의 암컷 화평이입니다. 이번엔 이미 둥지의 기틀을 갖춰둔 상태라 수월하게 짝을 이룰 수 있었고, 알 4개를 낳았습니다.

육아와 먹이활동은 공평하게!
취재를 하는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황새가 평생 한 마리의 암컷이나 수컷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공동육아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알을 낳으면 번갈아가며 알을 품고, 새끼가 태어나도 한 마리가 둥지를 지키는 동안 또 다른 한마리가 1~2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먹이를 물어 오는 방식입니다. 간혹 암컷이든 수컷이든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상대를 부리로 쪼거나 토라지는 듯한 모습도 관찰된다고 하니 신기하지요.


새끼 떠난 빈 둥지는 어떻게 될까?
지난 5월 3일 부화한 새끼들은 이제 7월 중순 무렵이면 둥지 떠나 비행하고 사냥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죠.
예산황새공원과 한전, 태안군은 새끼들이 떠나면 송전탑 주변에 인공둥지탑을 지어 황새 부부가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기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송전탑의 전기장치에 배설물이 묻으면 정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황새가 전깃줄에 걸려 날개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에는 방사된 황새 가운데 두 마리가 두 달 간격으로 잇따라 감전사한 일도 있었습니다.

독립했던 새끼들은 짧게는 남해안, 멀게는 러시아나 일본까지 여행을 떠났다가 내년이면 태어난 곳 주변으로 다시 돌아와 서식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골에 갔다가 유독 크고 흰 몸통에 꼬리 부분이 검은 새를 보셨다고요? 혹시 황새가 아니었을까요?
인공 번식을 통해 방사된 이후 현재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황새는 60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부부 이야기’
    • 입력 2020.05.31 (08:07)
    취재K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부부 이야기’
이 황새 부부는 조금 특별합니다.

일단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황새라는 점에서 그렇고, 둥지를 틀고 살림을 차린 곳이 충남 태안의 송전탑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부부.. 대체 왜?
황새 부부가 있는 송전탑을 찾아가는 길은 드문드문 민가가 보이는 비포장 도로가 15분 가량 이어졌습니다. 승용차가 아닌 마차를 탄 듯 덜컹거리는 농로가 계속되자 취재진 중 누군가가 황새가 왜 여기 정착했는지 벌써 알 것 같다, 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드디어 찾은 송전탑은 논과 밭, 야트막한 언덕 사이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황새 가족에게 송전탑 꼭대기는 최상의 조망권을 갖춘 펜트하우스나 다름 없어 보였습니다.

황새는 날개 길이가 2m나 될 정도로 몸집이 큰 새입니다. 당연히 둥지도 다른 새들보다 커야 하죠. 그러다보니 과거 우리나라에서 텃새로 자리잡았던 시절에는 아름드리 크기의 소나무나 은행나무에 둥지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아름드리 나무를 찾기 어려워진 요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에 꼭대기가 평평한 송전탑은 더 없이 좋은 서식처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많고 많은 송전탑 중에 왜 하필 충남 태안군 남면의 이 곳이었을까요?
김수경 예산황새공원 선임연구원은 먹이를 구하기 쉬운 주변 환경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황새는 갯벌이나 평야지대에 살며 주로 미꾸라지 같은 물고기나 개구리 등을 잡아 먹는데, 이 송전탑 주변엔 논이 많은데다 실개천이 흐르고 조금만 더 나가면 갯벌도 있습니다.

취재하는 동안 지켜본 황새는 논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 다니며 끊임없이 먹이활동을 했는데, 송전탑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풍부한 먹이 덕인지 지난 3월에 황새 부부가 낳은 알 4개는 모두 성공적으로 부화했고 새끼들은 말 그대로 '폭풍성장'중입니다. 바깥 세상이 궁금한지 새끼 4마리가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송전탑에 둥지 튼 황새.. 국내서는 처음 확인
황새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971년 충북 음성에서 마지막 황새 한 쌍이 발견된 이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지난 1996년부터 문화재청과 교원대가 러시아에서 황새 한 쌍을 들여와 번식을 하며 텃새화를 위해 노력해왔는데요.

지난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방사된 황새 50마리 가운데 짝을 이룬 황새가 이들이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방사된 충남 예산지역 주변에 있는 인공둥지탑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예산에서 50km 가량 떨어진 태안에, 그것도 인공둥지탑이 아닌 송전탑에 둥지를 튼 건 이들이 처음입니다.


잠깐!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볼까요?
지난 2015년 황새 복원사업이 추진된 이후 처음으로 야생에 황새를 방사했는데, 이 때 가장 처음으로 새장을 열고 방사된 황새가 지금의 수컷 대황입니다.
하지만 방사된 이후 대황이는 짝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월 러시아에서 온 암컷 황새 한 마리를 만났는데요. 황새는 수컷이 먼저 나뭇가지를 물어와 둥지를 짓기 시작하는 것으로 구애를 한답니다. 하지만 하필 그 무렵에 강풍이 많이 불었고, 둥지는 번번이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러시아에서 온 암컷 황새도 둥지 짓는 것을 도왔지만 날이 풀리고 상황이 여의치 않자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한 달도 안돼 짧은 썸(?)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상심에 빠져있을 무렵 만난 게 지금의 암컷 화평이입니다. 이번엔 이미 둥지의 기틀을 갖춰둔 상태라 수월하게 짝을 이룰 수 있었고, 알 4개를 낳았습니다.

육아와 먹이활동은 공평하게!
취재를 하는 동안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황새가 평생 한 마리의 암컷이나 수컷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공동육아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알을 낳으면 번갈아가며 알을 품고, 새끼가 태어나도 한 마리가 둥지를 지키는 동안 또 다른 한마리가 1~2시간 간격으로 교대하며 먹이를 물어 오는 방식입니다. 간혹 암컷이든 수컷이든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상대를 부리로 쪼거나 토라지는 듯한 모습도 관찰된다고 하니 신기하지요.


새끼 떠난 빈 둥지는 어떻게 될까?
지난 5월 3일 부화한 새끼들은 이제 7월 중순 무렵이면 둥지 떠나 비행하고 사냥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게 되죠.
예산황새공원과 한전, 태안군은 새끼들이 떠나면 송전탑 주변에 인공둥지탑을 지어 황새 부부가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기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송전탑의 전기장치에 배설물이 묻으면 정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황새가 전깃줄에 걸려 날개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16년에는 방사된 황새 가운데 두 마리가 두 달 간격으로 잇따라 감전사한 일도 있었습니다.

독립했던 새끼들은 짧게는 남해안, 멀게는 러시아나 일본까지 여행을 떠났다가 내년이면 태어난 곳 주변으로 다시 돌아와 서식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골에 갔다가 유독 크고 흰 몸통에 꼬리 부분이 검은 새를 보셨다고요? 혹시 황새가 아니었을까요?
인공 번식을 통해 방사된 이후 현재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황새는 60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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