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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성추행이 아니라고?’…대법원이 뒤집은 그 판결은?
입력 2020.05.31 (09:02) 취재K
2016년 갓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A 씨에게 같은 팀을 이끄는 B 과장이 다가왔습니다.

B 과장은 10살 정도 어린 수습사원 A 씨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성적인 농담. B 과장은 A 씨에게 "볼이 발그레 발그레, 부끄한게 이 화장 마음에 들어요, 오늘 왜 이렇게 촉촉해요"라고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성행위를 암시하는 손짓을 A 씨에게 하는가 하면, 평소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여주는 비상식적인 행동까지 이어졌습니다.

■ 계속되는 상사의 성추행.. 견디지 못한 신입사원 '사표'

어느 날 B 과장은 피해자의 신체에까지 손을 댑니다. A 씨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고 말하는가 하면, A 씨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드린 뒤 놀란 A 씨 앞에서 자신의 혀로 입술을 핥거나 "앙, 앙"이라는 소리를 내며 추행했습니다.

A 씨는 여러 차례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B 과장은 반발하는 A 씨에게 자기 일을 떠넘기거나 야근을 시켰습니다.

이 같은 행위가 이어지자 A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모멸감과 성적 수치심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급기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B 과장의 추행은 그칠 줄 몰랐고, 이를 견디지 못한 A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 가해자에 '무죄'.. "피해자가 두려움·위축감 없었다고 판단"

피해자가 퇴사까지 선택하게 만든 상사의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희롱과 추행. 그런데 이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결은 다소 의아합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B 과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으로 피해자의 성적 자유의사를 제압해 추행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먼저 두 사람이 근무한 회사가 직원 10명의 소규모인 데다가, B 과장의 입사가 피해자보다 단 2개월 앞서 인사나 업무 수행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 B 과장이 평소 다른 직원들에게도 성적 농담이나 신체 접촉을 자주 했고, 피해를 입은 뒤 A씨가 싫다고 말하거나 본인도 성적 농담이나 장난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씨가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팀장에게 알리는 등, A씨가 B 과장에 대해 두려움이나 위축감을 갖고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 2심도 무죄 "위계질서 강한 조직 아냐.. 성적인 의도 약해"

2심의 판단도 비슷했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회사가 젊은 직원들로 구성돼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이 아니고, 사무실이 개방형 구조로 돼 있어 B 과장의 행동을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A 씨와 B 과장의 관계에도 주목했습니다. 피해자도 피고인에게 장난을 쳤고, 문제 행위 시 바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겁니다.

신체 접촉의 경우에도 머리카락 끝부분과 어깨 끝에만 이뤄졌고, 성적인 의도보다는 느낌이 나는지 확인을 하거나 상대방을 부를 목적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1,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들을 고려할 때 B 과장이 A 씨를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추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 대법원이 뒤집은 무죄 판결.. 대법 "추행 행위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대법원 제3부는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원심에서도 언급된 B 과장의 성희롱적 언동과 피해자 A 씨의 거부를 대법원은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A씨가 B 과장의 행동을 평소 수치스럽게 받아들였는데도, B 과장이 그 의사에 명백하게 반하여 행동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B 과장의 희롱과 추행은 2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인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 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대법은 판결했습니다.

나아가 두 사람의 관계, 추행 행위의 행태와 경위를 볼 때 B 과장이 업무상 보호·감독을 할 사람을 위력으로 추행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1, 2심의 무죄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대법은 판시했습니다.

■ 대법원, 지난 3월에도 성범죄 '무죄' 파기 환송

무죄 판결을 받았던 성범죄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대법원 제3부는 지난 3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남성은 2016년 노래방 회식 자리에서 직원 허벅지를 쓰다듬고, 볼에 입을 맞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 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지만, 2심은 이를 무죄로 뒤집었습니다.

해당 남성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지긴 했지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 행위라고 인정하기엔 어렵다고 판단한 겁니다. 또 당시 피해자가 가만히 있었다는 증인들의 진술과 회식 분위기 등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 잇따른 대법원의 성범죄 판결 뒤집기.. '성인지 감수성' 영향?

하지만 대법원은 "여성인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인 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이라고 판시했습니다.

또 피해자가 즉시 거부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회식 후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던 분위기였기에 피해자가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했다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성범죄 사건을 대법에서 다시 뒤집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법조계에 불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과거보다 성범죄에 대해 대법원이 엄격한 잣대로 죄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 ‘이게 성추행이 아니라고?’…대법원이 뒤집은 그 판결은?
    • 입력 2020-05-31 09:02:58
    취재K
2016년 갓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A 씨에게 같은 팀을 이끄는 B 과장이 다가왔습니다.

B 과장은 10살 정도 어린 수습사원 A 씨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성적인 농담. B 과장은 A 씨에게 "볼이 발그레 발그레, 부끄한게 이 화장 마음에 들어요, 오늘 왜 이렇게 촉촉해요"라고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성행위를 암시하는 손짓을 A 씨에게 하는가 하면, 평소 컴퓨터로 음란물을 보여주는 비상식적인 행동까지 이어졌습니다.

■ 계속되는 상사의 성추행.. 견디지 못한 신입사원 '사표'

어느 날 B 과장은 피해자의 신체에까지 손을 댑니다. A 씨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여기를 만져도 느낌이 오냐"고 말하는가 하면, A 씨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두드린 뒤 놀란 A 씨 앞에서 자신의 혀로 입술을 핥거나 "앙, 앙"이라는 소리를 내며 추행했습니다.

A 씨는 여러 차례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오히려 B 과장은 반발하는 A 씨에게 자기 일을 떠넘기거나 야근을 시켰습니다.

이 같은 행위가 이어지자 A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모멸감과 성적 수치심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급기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B 과장의 추행은 그칠 줄 몰랐고, 이를 견디지 못한 A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 가해자에 '무죄'.. "피해자가 두려움·위축감 없었다고 판단"

피해자가 퇴사까지 선택하게 만든 상사의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희롱과 추행. 그런데 이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결은 다소 의아합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B 과장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위력으로 피해자의 성적 자유의사를 제압해 추행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먼저 두 사람이 근무한 회사가 직원 10명의 소규모인 데다가, B 과장의 입사가 피해자보다 단 2개월 앞서 인사나 업무 수행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는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또 B 과장이 평소 다른 직원들에게도 성적 농담이나 신체 접촉을 자주 했고, 피해를 입은 뒤 A씨가 싫다고 말하거나 본인도 성적 농담이나 장난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A씨가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팀장에게 알리는 등, A씨가 B 과장에 대해 두려움이나 위축감을 갖고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 2심도 무죄 "위계질서 강한 조직 아냐.. 성적인 의도 약해"

2심의 판단도 비슷했습니다.

재판부는 해당 회사가 젊은 직원들로 구성돼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이 아니고, 사무실이 개방형 구조로 돼 있어 B 과장의 행동을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A 씨와 B 과장의 관계에도 주목했습니다. 피해자도 피고인에게 장난을 쳤고, 문제 행위 시 바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겁니다.

신체 접촉의 경우에도 머리카락 끝부분과 어깨 끝에만 이뤄졌고, 성적인 의도보다는 느낌이 나는지 확인을 하거나 상대방을 부를 목적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1, 2심 재판부는 이 같은 사실들을 고려할 때 B 과장이 A 씨를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추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 대법원이 뒤집은 무죄 판결.. 대법 "추행 행위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대법원 제3부는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원심에서도 언급된 B 과장의 성희롱적 언동과 피해자 A 씨의 거부를 대법원은 다른 시각으로 봤습니다. A씨가 B 과장의 행동을 평소 수치스럽게 받아들였는데도, B 과장이 그 의사에 명백하게 반하여 행동했다는 겁니다.

따라서 B 과장의 희롱과 추행은 20대 중반의 미혼 여성인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비난을 넘어 추행 행위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대법은 판결했습니다.

나아가 두 사람의 관계, 추행 행위의 행태와 경위를 볼 때 B 과장이 업무상 보호·감독을 할 사람을 위력으로 추행했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1, 2심의 무죄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대법은 판시했습니다.

■ 대법원, 지난 3월에도 성범죄 '무죄' 파기 환송

무죄 판결을 받았던 성범죄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대법원 제3부는 지난 3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50대 남성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남성은 2016년 노래방 회식 자리에서 직원 허벅지를 쓰다듬고, 볼에 입을 맞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은 피고인에게 벌금 500만 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령했지만, 2심은 이를 무죄로 뒤집었습니다.

해당 남성이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지긴 했지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 행위라고 인정하기엔 어렵다고 판단한 겁니다. 또 당시 피해자가 가만히 있었다는 증인들의 진술과 회식 분위기 등도 이 같은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 잇따른 대법원의 성범죄 판결 뒤집기.. '성인지 감수성' 영향?

하지만 대법원은 "여성인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인 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이라고 판시했습니다.

또 피해자가 즉시 거부하지 않았다는 부분도 "회식 후 노래방에서 여흥을 즐기던 분위기였기에 피해자가 즉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했다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성범죄 사건을 대법에서 다시 뒤집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법조계에 불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과거보다 성범죄에 대해 대법원이 엄격한 잣대로 죄의 범위를 넓게 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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