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시사] “수요집회, 피해자 중심에서 탈피해 평화운동으로 가야”

입력 2020.06.01 (10:10) 수정 2020.06.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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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연 사태, 억장 무너져
-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정치권행에 배신감 느꼈을 것이나 의견표출 방식 서운하고 아쉬워
- 30년 정대협 운동 자체 폄훼 손상은 안돼
- 수요집회, 피해자 없는 집회로 거듭나야
- 향후 운동방향, 피해자 중심에서 탈피해 여성 인권회복, 평화운동으로 가야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6월 1일(월) 07:20-08:57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 출연 : 김혜원 여성인권운동가 (정대협 설립멤버)



▷ 김경래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두 차례 기자회견이 있었죠. 그 이후에 윤미향 의원 기자회견이 있었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상황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활동, 정대협 활동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 폄훼되는 상황이 오느냐? 이런 우려가 좀 있습니다. 1990년 정대협 설립 당시에 창립 멤버셨죠. 여성인권운동가 김혜원 선생님과 함께, 답답하실 것 같아요, 이번 상황 어떻게 보고 계신지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혜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혜원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청취자분들이 들으시기에 좀 뭐라고 할까, 연세가 올해로 여든다섯이신가요?

▶ 김혜원 : 우리 나이로 86세입니다.

▷ 김경래 : 그러시군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 김혜원 : 네, 괜찮습니다.

▷ 김경래 : 이번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이나 윤미향 의원의 기자회견, 이 이야기는 조금 이따 하고요. 옛날 이야기부터 조금 여쭤보겠습니다. 1990년까지 위안부 관련된 활동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전혀 없다가 사실은 그게 불가능하다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을 하면서 시작이 된 것으로 많이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정대협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었고 김혜원 선생님도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김혜원 : 그러니까요. 90년도에 그런 활동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됐는데, 그 이전에 이미 그런 활동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었죠. 그래서 저는 88년도에 기초작업인 정신대 조사, 연구 이런 것들이 교회여성연합회라는 단체에 의해서 진행이 됐고 그때 그 조사단에 최초로 그러니까 우리 여성단체가 최초의 행동을 개시했던 그 발걸음인데, 그때 조사단에 참여를 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 김경래 : 그때 초창기에는 가장 어려웠던 점이 어떤 점이세요? 국민적인 여론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그렇게 높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김혜원 : 지지는커녕 따가운 시선이었죠. 왜 창피한 일을 이렇게 다 묻혀 있는데 왜 이걸 들춰서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느냐? 또는 제가 교회 여성인데, 교회 안에서도 조용히 기도나 하지, 왜 저렇게 저 사람은 설치고 다닐까? 뭐 이런 등 뒤에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로 이 묻힌 인권 사각지대를 파헤쳐야겠다고 하는 그런 결의로 일어선 겁니다.

▷ 김경래 : 그런데 활동을 하시려면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가잖아요, 활동비가 들어갈 텐데, 그때 재정은 어떻게 운용을 하셨습니까? 굉장히 힘들었다는 말씀만 들었습니다.

▶ 김혜원 : 그렇죠. 처음에 사무실이 없어서 달랑 신고 전화 하나 가지고 있는데, 하도 딱하니까 저희 남편이 변호사였어요. 그래서 저희 남편 사무실 한 귀퉁이를 내주면서 여기서 활동해라. 그래서 그 변호사 사무실에 책상, 전화, 팩스 다 무료로 사용하면서 한동안 거기서 우리가 신고 전화를 받고 이렇게 활동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거든요. 우리가 무슨 조직을 가지고 예산을 마련하고 해서 시작했던 운동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다 뜻을 가진 소수의 우리 독지가들이 다 주머닛돈 털어서 일본 오키나와를 비롯해서 저 삿포로까지 장장 15일 동안 일본 여행을 했을 때도 다 자비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어렵게 정말 뜻 하나로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 정글과 같은 그런 길 더구나 거대한 일본이라는 그런 상대방을 향해서 우리가 항의의 목소리를 외쳐대는 이런 길은 너무나 험난하고 가보지 않은 정말 깜깜한 길었죠. 그 길을 헤쳐왔을 때 활동가들이나 인권운동가들의 그 결의와 또 다짐이 얼마나 단단했겠습니까? 그런 것들로 미뤄서 재정이 얼마나 취약했고 그리고 윤미향 간사가 정말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정말 자기 몸을 불 태울 듯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 김경래 : 초창기에 김혜원 선생님이 정대협을 만들어가실 때 윤미향 지금 의원은 당시에 간사였군요.

▶ 김혜원 : 그렇죠, 달랑 간사 하나였죠. 그런데 간사 사례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 재정이 워낙 열악하니까. 내가 달랑달랑 할 때는 어디인가 또 우리도 예상치 못했는데 또 조금 후원금이 들어오거든요. 그리고 또 우리 윤정옥 선생님이라든지 일본에서 강사 요청이 많았던 그 시기였어요. 그러면 가서 다 강연하고 강사비 받아오시면 전부 그걸 다 정대협 재정에다 넣어서 한 사람도 우리는 그런 개인의 이런 이득을 취하지 않고 다 오로지 정신대 운동에 이렇게 헌신했던 것입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와도 김혜원 선생님께서는 인연이 깊으시죠?

▶ 김혜원 : 그렇습니다. 95년도던가? 이용수 할머니를 모시고 제가 일주일 동안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증언 집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 정말 상처받을까 봐, 행여나. 그리고 또 할머니는 그런 공적 발언을 하는 기회가 처음이니까 또 행여라도 주절주절하실까 봐, 이런 것들을 굉장히 배려하면서 정말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도 꽤 쌓였죠.

▷ 김경래 : 그렇게 윤미향 의원도 간사 시절부터 옆에서 직접 보셨던 분이고 이용수 할머니와도 개인적인 인연도 깊으시고 신뢰도 많이 쌓으셨던 분, 양쪽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김혜원 선생님한테 이걸 여쭤보는 게 참 죄송스러운 부분이기도 한데, 양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각종 의혹들이 터지고 이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게 왜 일어났다고 보세요?

▶ 김혜원 : 억장이 무너지죠. 그렇게 우리가 정말 짓밟힌 여성 인권을 회복하고 그분들에게 명예회복을 시켜드리고 그리고 또 왜곡되고 묻힌 역사를 바로 잡자고 일어났던 그런 아주 대의명분이 투철한 그런 운동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운동이 할머니들이 속 시원할 만큼 어떤 해결의 결말을 못 봤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도 그냥 나이도 들어서 당신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그런 마당에 해결은 안 되고 막막하고 있는데, 그동안 함께 동거동락했던 그 윤미향이 우리를 버리고 저렇게 정치군으로 들어간다, 얼핏 생각하면 자기의 영리를 추구해서 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 수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데서 오는 어떤 배신감, 그런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결방법을 꼭 할머니식으로 그렇게 했어야 옳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참 서운하고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운동 자체를 폄훼하거나 또는 손상시키거나 그래서 우리가 이 운동을 없애버린다, 한다면 결국은 우리 인권 문제에 있어서 크게 후퇴하는 것이 될 것이며 결국은 인권을 짓밟힌 그런 아주 소왜된 그런 계층들의 비빌 언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잘못된 점은 이걸 고쳐가면서 이 운동의 핵심은 정의사회 구현과 그리고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를 받는 이 원칙은 흔들리지 않게 지켜가야 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국민들에게 정말 이때야말로 다른 판단력을 가지고 임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합니다. 정의연 같은 경우에는 규모가 많이 커지고 후원금도 많이 늘고 했는데 너무 단체 운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 아니냐, 이런 비판도 있더라고요.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선생님께서는?

▶ 김혜원 : 저는 2000년도에 실행위원직을 사퇴했기 때문에 제가 그 이후에 어떤 운영을 하고 있는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 처음부터 사실 딱 예산을 짜고 그리고 정말 그 예산에 맞도록 집행하고 그게 부족할 때는 추경 예산을 짠다든지 이렇게 일반 회계들을 운영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정말로 초기에는 그렇게 긴급 수혈을 받으면서 이렇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의 지지와 후원도 많아지고 정부의 지원도 있고 그래서 방대한 규모가 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의 그런 법인에 대해서 감사를 해대는 그런 기준은 저는 달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정부에게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은 앞으로는 이런 비영리시민민간단체에 대해서는 그 실정에 맞는 표준 회계 기준을 만들어서 지원해야 되지 않나. 그런 것을 방지했기 때문에 이런 선의의 단체가 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제 이야기가 회계상에 무슨 잘못이 있다면 그걸 다 면제해라, 저는 그런 뜻은 아니고 그런 부정이 발견됐다면 그건 응분의 책임을 져야겠죠. 그러나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 더구나 공유를 위한 단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기준으로 이걸 들이댈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일부 야당에서는 그리고 일부에서는 윤미향 의원 보고 사퇴해라, 이런 주장도 나오고 있고요. 정의연도 좀 쇄신을 해야 된다, 이런 의견들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수요집회 그만해야 된다는 이용수 선생님 의견도 있고요. 앞으로 종합적으로 어떻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될지, 선생님 의견 들으면서 마무리를 할게요.

▶ 김혜원 :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2000년도에 실무선에서 떠났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정의연이 어떤 변신을 기했고 그다음에 또 어떻게 확대가 됐는지 그런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단지 처음에 창립했던 그 취지를 잘 살려서 이 시점에서 다시 성찰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 냉혹한 자기성찰 그리고 또 앞으로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들이고는 수요집회가 피해자 없는 집회로 거듭나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중심의 이런 운동도 탈피해서 여성 인권 회복에서 더 나아가서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 운동으로 나가야 된다.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누누이 주장했던 대로 이러한 것이 발생하는 것은 결국은 전쟁 때문이니까, 이런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꿈과 결의를 다지는 시민교육에 역점을 둬야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김혜원 선생님 오늘 아침 일찍 고맙습니다.

▶ 김혜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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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강시사] “수요집회, 피해자 중심에서 탈피해 평화운동으로 가야”
    • 입력 2020-06-01 10:10:55
    • 수정2020-06-01 16:01:24
    최강시사
- 정의연 사태, 억장 무너져
- 이용수 할머니, 윤미향 정치권행에 배신감 느꼈을 것이나 의견표출 방식 서운하고 아쉬워
- 30년 정대협 운동 자체 폄훼 손상은 안돼
- 수요집회, 피해자 없는 집회로 거듭나야
- 향후 운동방향, 피해자 중심에서 탈피해 여성 인권회복, 평화운동으로 가야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 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김경래의 최강시사
■ 방송시간 : 6월 1일(월) 07:20-08:57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경래 (뉴스타파 기자)
■ 출연 : 김혜원 여성인권운동가 (정대협 설립멤버)



▷ 김경래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두 차례 기자회견이 있었죠. 그 이후에 윤미향 의원 기자회견이 있었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려되는 상황은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활동, 정대협 활동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 폄훼되는 상황이 오느냐? 이런 우려가 좀 있습니다. 1990년 정대협 설립 당시에 창립 멤버셨죠. 여성인권운동가 김혜원 선생님과 함께, 답답하실 것 같아요, 이번 상황 어떻게 보고 계신지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혜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 김혜원 : 안녕하세요?

▷ 김경래 : 청취자분들이 들으시기에 좀 뭐라고 할까, 연세가 올해로 여든다섯이신가요?

▶ 김혜원 : 우리 나이로 86세입니다.

▷ 김경래 : 그러시군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 김혜원 : 네, 괜찮습니다.

▷ 김경래 : 이번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이나 윤미향 의원의 기자회견, 이 이야기는 조금 이따 하고요. 옛날 이야기부터 조금 여쭤보겠습니다. 1990년까지 위안부 관련된 활동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전혀 없다가 사실은 그게 불가능하다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을 하면서 시작이 된 것으로 많이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정대협 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었고 김혜원 선생님도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김혜원 : 그러니까요. 90년도에 그런 활동이 구체적으로 가시화됐는데, 그 이전에 이미 그런 활동의 토대가 마련되고 있었죠. 그래서 저는 88년도에 기초작업인 정신대 조사, 연구 이런 것들이 교회여성연합회라는 단체에 의해서 진행이 됐고 그때 그 조사단에 최초로 그러니까 우리 여성단체가 최초의 행동을 개시했던 그 발걸음인데, 그때 조사단에 참여를 하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 김경래 : 그때 초창기에는 가장 어려웠던 점이 어떤 점이세요? 국민적인 여론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그렇게 높지 않았을 것 같은데.

▶ 김혜원 : 지지는커녕 따가운 시선이었죠. 왜 창피한 일을 이렇게 다 묻혀 있는데 왜 이걸 들춰서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느냐? 또는 제가 교회 여성인데, 교회 안에서도 조용히 기도나 하지, 왜 저렇게 저 사람은 설치고 다닐까? 뭐 이런 등 뒤에 따가운 시선을 느끼면서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로 이 묻힌 인권 사각지대를 파헤쳐야겠다고 하는 그런 결의로 일어선 겁니다.

▷ 김경래 : 그런데 활동을 하시려면 어느 정도 돈이 들어가잖아요, 활동비가 들어갈 텐데, 그때 재정은 어떻게 운용을 하셨습니까? 굉장히 힘들었다는 말씀만 들었습니다.

▶ 김혜원 : 그렇죠. 처음에 사무실이 없어서 달랑 신고 전화 하나 가지고 있는데, 하도 딱하니까 저희 남편이 변호사였어요. 그래서 저희 남편 사무실 한 귀퉁이를 내주면서 여기서 활동해라. 그래서 그 변호사 사무실에 책상, 전화, 팩스 다 무료로 사용하면서 한동안 거기서 우리가 신고 전화를 받고 이렇게 활동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거든요. 우리가 무슨 조직을 가지고 예산을 마련하고 해서 시작했던 운동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다 뜻을 가진 소수의 우리 독지가들이 다 주머닛돈 털어서 일본 오키나와를 비롯해서 저 삿포로까지 장장 15일 동안 일본 여행을 했을 때도 다 자비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어렵게 정말 뜻 하나로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 정글과 같은 그런 길 더구나 거대한 일본이라는 그런 상대방을 향해서 우리가 항의의 목소리를 외쳐대는 이런 길은 너무나 험난하고 가보지 않은 정말 깜깜한 길었죠. 그 길을 헤쳐왔을 때 활동가들이나 인권운동가들의 그 결의와 또 다짐이 얼마나 단단했겠습니까? 그런 것들로 미뤄서 재정이 얼마나 취약했고 그리고 윤미향 간사가 정말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면서 정말 자기 몸을 불 태울 듯이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 김경래 : 초창기에 김혜원 선생님이 정대협을 만들어가실 때 윤미향 지금 의원은 당시에 간사였군요.

▶ 김혜원 : 그렇죠, 달랑 간사 하나였죠. 그런데 간사 사례도 제대로 못하고 우리 재정이 워낙 열악하니까. 내가 달랑달랑 할 때는 어디인가 또 우리도 예상치 못했는데 또 조금 후원금이 들어오거든요. 그리고 또 우리 윤정옥 선생님이라든지 일본에서 강사 요청이 많았던 그 시기였어요. 그러면 가서 다 강연하고 강사비 받아오시면 전부 그걸 다 정대협 재정에다 넣어서 한 사람도 우리는 그런 개인의 이런 이득을 취하지 않고 다 오로지 정신대 운동에 이렇게 헌신했던 것입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이용수 할머니와도 김혜원 선생님께서는 인연이 깊으시죠?

▶ 김혜원 : 그렇습니다. 95년도던가? 이용수 할머니를 모시고 제가 일주일 동안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증언 집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들 정말 상처받을까 봐, 행여나. 그리고 또 할머니는 그런 공적 발언을 하는 기회가 처음이니까 또 행여라도 주절주절하실까 봐, 이런 것들을 굉장히 배려하면서 정말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도 꽤 쌓였죠.

▷ 김경래 : 그렇게 윤미향 의원도 간사 시절부터 옆에서 직접 보셨던 분이고 이용수 할머니와도 개인적인 인연도 깊으시고 신뢰도 많이 쌓으셨던 분, 양쪽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김혜원 선생님한테 이걸 여쭤보는 게 참 죄송스러운 부분이기도 한데, 양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각종 의혹들이 터지고 이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게 왜 일어났다고 보세요?

▶ 김혜원 : 억장이 무너지죠. 그렇게 우리가 정말 짓밟힌 여성 인권을 회복하고 그분들에게 명예회복을 시켜드리고 그리고 또 왜곡되고 묻힌 역사를 바로 잡자고 일어났던 그런 아주 대의명분이 투철한 그런 운동이었잖아요. 그런데 그 운동이 할머니들이 속 시원할 만큼 어떤 해결의 결말을 못 봤잖아요. 그러니까 할머니도 그냥 나이도 들어서 당신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그런 마당에 해결은 안 되고 막막하고 있는데, 그동안 함께 동거동락했던 그 윤미향이 우리를 버리고 저렇게 정치군으로 들어간다, 얼핏 생각하면 자기의 영리를 추구해서 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 수 있겠죠. 그러니까 그런 데서 오는 어떤 배신감, 그런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결방법을 꼭 할머니식으로 그렇게 했어야 옳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참 서운하고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운동 자체를 폄훼하거나 또는 손상시키거나 그래서 우리가 이 운동을 없애버린다, 한다면 결국은 우리 인권 문제에 있어서 크게 후퇴하는 것이 될 것이며 결국은 인권을 짓밟힌 그런 아주 소왜된 그런 계층들의 비빌 언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잘못된 점은 이걸 고쳐가면서 이 운동의 핵심은 정의사회 구현과 그리고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를 받는 이 원칙은 흔들리지 않게 지켜가야 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국민들에게 정말 이때야말로 다른 판단력을 가지고 임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김경래 :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합니다. 정의연 같은 경우에는 규모가 많이 커지고 후원금도 많이 늘고 했는데 너무 단체 운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한 것 아니냐, 이런 비판도 있더라고요.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선생님께서는?

▶ 김혜원 : 저는 2000년도에 실행위원직을 사퇴했기 때문에 제가 그 이후에 어떤 운영을 하고 있는지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왈가왈부할 수 없어요. 그러나 우리 처음부터 사실 딱 예산을 짜고 그리고 정말 그 예산에 맞도록 집행하고 그게 부족할 때는 추경 예산을 짠다든지 이렇게 일반 회계들을 운영하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 정말로 초기에는 그렇게 긴급 수혈을 받으면서 이렇게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들의 지지와 후원도 많아지고 정부의 지원도 있고 그래서 방대한 규모가 된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의 그런 법인에 대해서 감사를 해대는 그런 기준은 저는 달라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정부에게 간절하게 부탁하는 것은 앞으로는 이런 비영리시민민간단체에 대해서는 그 실정에 맞는 표준 회계 기준을 만들어서 지원해야 되지 않나. 그런 것을 방지했기 때문에 이런 선의의 단체가 의혹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제 이야기가 회계상에 무슨 잘못이 있다면 그걸 다 면제해라, 저는 그런 뜻은 아니고 그런 부정이 발견됐다면 그건 응분의 책임을 져야겠죠. 그러나 영리단체와 비영리단체 더구나 공유를 위한 단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기준으로 이걸 들이댈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일부 야당에서는 그리고 일부에서는 윤미향 의원 보고 사퇴해라, 이런 주장도 나오고 있고요. 정의연도 좀 쇄신을 해야 된다, 이런 의견들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수요집회 그만해야 된다는 이용수 선생님 의견도 있고요. 앞으로 종합적으로 어떻게 해결책을 모색해야 될지, 선생님 의견 들으면서 마무리를 할게요.

▶ 김혜원 :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2000년도에 실무선에서 떠났기 때문에 제가 그동안 정의연이 어떤 변신을 기했고 그다음에 또 어떻게 확대가 됐는지 그런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단지 처음에 창립했던 그 취지를 잘 살려서 이 시점에서 다시 성찰하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더 냉혹한 자기성찰 그리고 또 앞으로는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들이고는 수요집회가 피해자 없는 집회로 거듭나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해자 중심의 이런 운동도 탈피해서 여성 인권 회복에서 더 나아가서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 운동으로 나가야 된다.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누누이 주장했던 대로 이러한 것이 발생하는 것은 결국은 전쟁 때문이니까, 이런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꿈과 결의를 다지는 시민교육에 역점을 둬야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경래 : 알겠습니다. 김혜원 선생님 오늘 아침 일찍 고맙습니다.

▶ 김혜원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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