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G7 초청장…‘독 든 성배’ 받을까 말까?

입력 2020.06.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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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9월쯤으로 연기하고 한국과 호주, 러시아, 인도를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청와대는 해당 제안에 대해 미리 들은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또 아직 공식 요청이 오지 않았다며, 앞으로 미국과 협의해 나가겠다고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 정부 관계자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G7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이렇게 7개 국가를 일컫습니다. G7의 역사는 1973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에는 소수의 '선진국' 정상끼리 모여 주로 세계 경제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한국이 소위 최고의 선진국 클럽으로 꼽히는 모임에 초대를 받았으니 어깨가 으쓱할 만큼 자랑스러워 할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 사드가 남긴 '경제 보복 트라우마'...트럼프의 '반(反)중 전선' 참여해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의 주제를 '반(反)중국 전선'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논의하려고 다른 나라를 추가하고 싶어 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초대를 받은 나라만 봐도 트럼프의 구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중국에 맞선 '인도-태평양' 구상을 언급해왔습니다. 미국부터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까지 4자 동맹을 결성해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겠다는 개념입니다. 일부 언론은 이런 점을 포착해 한국 등 4개 국가가 '반(反)중 동맹 초대장'을 받았다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중국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분석도 제시했습니다.

앞서 우리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한한령'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의 피해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데, 여전히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 비율은 25.1%로 중국이 전체 교역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2위인 대미(對美) 수출 비율 13.5%의 2배에 가깝습니다. G7 회의 초청이 자못 '독 든 성배'가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일단은 가는 게 좋다"..."협상력 키울 기회·외교 원칙 정할 때"

그러나 KBS가 접촉한 복수의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회의에는 '참석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미국에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대단히 드문 기회가 왔는데, 주요 정상국 회의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일단은 미국의 전략에 발을 맞추면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키울 경우 중국에 대한 협상력도 커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이번 제안을 '국가 위상을 높일 기회'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의 반발이 우려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회의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면서 '오히려 참여하지 않는 게 중국의 무시를 부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회의에서 반(反)중 동맹에 참여하라는 압박이 과하게 주어지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존중받을 기회로 활용하라는 뜻입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역시 "G11(G7+4) 회의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중국이 한국을 더욱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도, 압박할 수도 있다"면서 "참석 여부보다는 참석해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습니다. 또 그간 채택해 온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원칙을 세울 시기가 왔다며, 여러 국가가 한국의 역할과 행동에 관심을 쏟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미국의 'G11' 제안이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앞서 G7은 1998년 러시아를 받아들이면서 G8으로 확대됐지만,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러시아를 제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작년에도 러시아를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더욱 심해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강대국 간 갈등이 우리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늘(1일) 발언처럼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국익을 고려한 현명한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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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의 G7 초청장…‘독 든 성배’ 받을까 말까?
    • 입력 2020-06-01 18:12:56
    취재K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9월쯤으로 연기하고 한국과 호주, 러시아, 인도를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백악관으로 돌아오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청와대는 해당 제안에 대해 미리 들은 바가 없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또 아직 공식 요청이 오지 않았다며, 앞으로 미국과 협의해 나가겠다고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 정부 관계자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독배가 될 수도 있다"는 반응을 내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G7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 이렇게 7개 국가를 일컫습니다. G7의 역사는 1973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기에는 소수의 '선진국' 정상끼리 모여 주로 세계 경제가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한국이 소위 최고의 선진국 클럽으로 꼽히는 모임에 초대를 받았으니 어깨가 으쓱할 만큼 자랑스러워 할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 사드가 남긴 '경제 보복 트라우마'...트럼프의 '반(反)중 전선' 참여해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의 주제를 '반(反)중국 전선'으로 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논의하려고 다른 나라를 추가하고 싶어 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초대를 받은 나라만 봐도 트럼프의 구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중국에 맞선 '인도-태평양' 구상을 언급해왔습니다. 미국부터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까지 4자 동맹을 결성해 중국을 포위하고 견제하겠다는 개념입니다. 일부 언론은 이런 점을 포착해 한국 등 4개 국가가 '반(反)중 동맹 초대장'을 받았다고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중국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분석도 제시했습니다.

앞서 우리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이후 '한한령'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의 피해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데, 여전히 중국은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 비율은 25.1%로 중국이 전체 교역국 중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2위인 대미(對美) 수출 비율 13.5%의 2배에 가깝습니다. G7 회의 초청이 자못 '독 든 성배'가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 "일단은 가는 게 좋다"..."협상력 키울 기회·외교 원칙 정할 때"

그러나 KBS가 접촉한 복수의 전문가들은 일단 이번 회의에는 '참석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미국에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대단히 드문 기회가 왔는데, 주요 정상국 회의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건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일단은 미국의 전략에 발을 맞추면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키울 경우 중국에 대한 협상력도 커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이번 제안을 '국가 위상을 높일 기회'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의 반발이 우려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회의에서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다면서 '오히려 참여하지 않는 게 중국의 무시를 부르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회의에서 반(反)중 동맹에 참여하라는 압박이 과하게 주어지면 한 발 뒤로 물러서는 등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존중받을 기회로 활용하라는 뜻입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역시 "G11(G7+4) 회의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중국이 한국을 더욱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도, 압박할 수도 있다"면서 "참석 여부보다는 참석해서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습니다. 또 그간 채택해 온 '전략적 모호성'보다는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원칙을 세울 시기가 왔다며, 여러 국가가 한국의 역할과 행동에 관심을 쏟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미국의 'G11' 제안이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려울 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앞서 G7은 1998년 러시아를 받아들이면서 G8으로 확대됐지만,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자 러시아를 제명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작년에도 러시아를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반대 입장을 냈습니다. "더욱 심해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강대국 간 갈등이 우리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늘(1일) 발언처럼 격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국익을 고려한 현명한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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