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고문실 데려간다!”…21세기 국정원 맞나?

입력 2020.06.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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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중앙합동신문센터'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합신센터라고도 부르던 이곳은 탈북자가 한국에 들어온 뒤 2~6개월 정도 조사를 받는 곳입니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이곳에서는 탈북자에게 다양한 걸 물어봅니다. 진짜 탈북자가 맞는지, 위장 간첩은 아닌지, 화교 여부도 가려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무슨 일이 구체적으로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조사 방법 등이 알려지고, 인권침해 논란이 많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합신센터 시절, 이곳에는 '유가려'라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의 당사자 유우성 씨의 여동생인데요. 유가려 씨는 2012년 11월부터 합신센터에서 조사받으며 했던 진술이 폭행과 협박으로 내놓은 '허위진술'이었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내 오빠는 간첩'이라는 유가려 씨의 허위진술을 받아낸 국정원 조사관의 조사 방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3월 검찰이 허위진술을 받아낸 국정원 조사관 유 모 씨와 박 모 씨를 국정원법상 직권남용과 형법상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공소장에 관련 내용이 담긴 건데요. 조사관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으로 당시 허위자백을 받아낸 조사관들의 조사방법을 들여다봅니다.

■"전기고문실 데려간다"는 협박까지...21세기 맞나요?

공소장에 따르면,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는 2012년 10월 30일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라고 주장하며 11월부터 합신센터에 수용됐습니다.

국정원에서는 유가려 씨가 화교라는 의심 속에 유 씨를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2012년 11월 5일쯤 조사관 유 씨와 박 씨는 "너 한번 혼나볼래, 혼나봐야 정신 차릴래, XX" 등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유 씨를 조사합니다. 그러더니 주먹으로 유 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더니 머리를 벽에 부딪히게 하는 등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사관들은 "전기고문 시키겠다, 전기고문을 시켜야 정신 번쩍 들겠나"라고 말하면서 전기고문을 할 것처럼 위협했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을 일삼자 결국 유가려 씨는 "아버지가 화교이고, 나도 화교다"고 자백했습니다.

이후 조사관들은 매일 유 씨를 불러 '오빠 유우성'에 대해 캐묻습니다. 유우성 씨가 밀입북한 사실이 있느냐고 따진 겁니다.

여기서도 조사관들은 플라스틱 물병으로 유가려 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다리를 발로 차는 등 폭행하는 방법으로 조사했습니다. 이런 폭행이 반복된 끝에 유가려 씨는 결국 '오빠 유우성이 2012년 10월까지 15차례에 걸쳐 밀입북했고, 북한 보위부 반탐부부장에게 노트북을 전달하기도 했다"는 진술을 내놨습니다. "유우성이 국가훈장도 받고, 조선노동당 입당증을 갖고 있는 걸 봤다"는 진술도 있었습니다.

이 같은 허위 진술을 취소했더니 유가려 씨는 또 맞았습니다. "조사에 혼란을 초래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 거짓말할 경우 한국법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라고 반성문도 썼습니다.

유가려 씨는 나중에 2013년 1심 재판 도중에 이 과정을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조사관들을 '대머리 수사관'·'아줌마 수사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유 씨는 '대머리 수사관'·'아줌마 수사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기회를 폭로 7년 만에 갖게 된 겁니다.

■수사한 검사는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

유가려 씨를 조사한 조사관들 외에 허위진술을 토대로 유우성 씨를 기소한 검사들에 대한 처분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혐의없음'이었습니다.

이 전·현직 검사들을 향한 고소장에 담긴 혐의는 국가보안법의 무고·날조죄였습니다. 사형·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한 중범죄입니다.

폭행과 위협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조사관들에게는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그 자백을 기반으로 수사한 검사에게는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검찰이 내린 겁니다. 그 이유를 보겠습니다. 두 명의 검사에 대한 '불기소 이유서'에서입니다.

앞서 봤듯이 유가려 씨의 진술은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오락가락했습니다. 폭행과 위협 뒤에야 결국 '허위자백'을 했다고 검찰 조사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유우성 씨 측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유가려 씨의 진술이 번복된 과정을 검사들이 알면서도 재판부에 세세히 증거로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 겁니다. 그 탓에 재판부에서 허위자백이나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릴 기회를 없애려는 은닉 시도 아녔느냐는 주장입니다.

유가려 씨의 진술 번복 과정은 검찰의 수사보고서에도 첨부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재판 당시 유가려 씨가 쓴 모든 진술서 자체를 법정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팀 검사는 '진술서가 더 있다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이 진술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검사들의 주장이 적극적으로 수용된 겁니다.

결국, 유가려 씨의 조사를 맡은 국정원 조사관들은 불구속 기소, 사건 전체를 맡은 검사들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검찰은 유우성 씨에 대한 출·입경 기록 위조 과정에도 검사가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봤습니다. 이로써 당시 수사팀 검사들은 모든 혐의를 벗게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에 대해 유우성 씨의 변호인단을 맡은 김진형 변호사는 "검찰 과거사위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 자체를 외면한 결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불기소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재정신청도 기한이 지나 쉽지 않다고 합니다. 대법원이 2015년 10월 29일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확정한 지는 5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도 검찰 수사에 대해 지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유우성 씨와 유가려 씨는 지금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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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고문실 데려간다!”…21세기 국정원 맞나?
    • 입력 2020-06-03 16:21:36
    취재K
과거 '중앙합동신문센터'라고 불렸던 곳입니다. 합신센터라고도 부르던 이곳은 탈북자가 한국에 들어온 뒤 2~6개월 정도 조사를 받는 곳입니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이곳에서는 탈북자에게 다양한 걸 물어봅니다. 진짜 탈북자가 맞는지, 위장 간첩은 아닌지, 화교 여부도 가려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 무슨 일이 구체적으로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조사 방법 등이 알려지고, 인권침해 논란이 많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합신센터 시절, 이곳에는 '유가려'라는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의 당사자 유우성 씨의 여동생인데요. 유가려 씨는 2012년 11월부터 합신센터에서 조사받으며 했던 진술이 폭행과 협박으로 내놓은 '허위진술'이었다고 폭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내 오빠는 간첩'이라는 유가려 씨의 허위진술을 받아낸 국정원 조사관의 조사 방법이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3월 검찰이 허위진술을 받아낸 국정원 조사관 유 모 씨와 박 모 씨를 국정원법상 직권남용과 형법상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공소장에 관련 내용이 담긴 건데요. 조사관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으로 당시 허위자백을 받아낸 조사관들의 조사방법을 들여다봅니다.

■"전기고문실 데려간다"는 협박까지...21세기 맞나요?

공소장에 따르면,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는 2012년 10월 30일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라고 주장하며 11월부터 합신센터에 수용됐습니다.

국정원에서는 유가려 씨가 화교라는 의심 속에 유 씨를 추궁하기 시작합니다.

2012년 11월 5일쯤 조사관 유 씨와 박 씨는 "너 한번 혼나볼래, 혼나봐야 정신 차릴래, XX" 등 심한 욕설을 섞어가며 유 씨를 조사합니다. 그러더니 주먹으로 유 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더니 머리를 벽에 부딪히게 하는 등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사관들은 "전기고문 시키겠다, 전기고문을 시켜야 정신 번쩍 들겠나"라고 말하면서 전기고문을 할 것처럼 위협했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을 일삼자 결국 유가려 씨는 "아버지가 화교이고, 나도 화교다"고 자백했습니다.

이후 조사관들은 매일 유 씨를 불러 '오빠 유우성'에 대해 캐묻습니다. 유우성 씨가 밀입북한 사실이 있느냐고 따진 겁니다.

여기서도 조사관들은 플라스틱 물병으로 유가려 씨의 머리를 수차례 때리고 다리를 발로 차는 등 폭행하는 방법으로 조사했습니다. 이런 폭행이 반복된 끝에 유가려 씨는 결국 '오빠 유우성이 2012년 10월까지 15차례에 걸쳐 밀입북했고, 북한 보위부 반탐부부장에게 노트북을 전달하기도 했다"는 진술을 내놨습니다. "유우성이 국가훈장도 받고, 조선노동당 입당증을 갖고 있는 걸 봤다"는 진술도 있었습니다.

이 같은 허위 진술을 취소했더니 유가려 씨는 또 맞았습니다. "조사에 혼란을 초래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 거짓말할 경우 한국법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라고 반성문도 썼습니다.

유가려 씨는 나중에 2013년 1심 재판 도중에 이 과정을 폭로했습니다. 그리고 조사관들을 '대머리 수사관'·'아줌마 수사관'이라고 불렀습니다. 유 씨는 '대머리 수사관'·'아줌마 수사관'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기회를 폭로 7년 만에 갖게 된 겁니다.

■수사한 검사는 '혐의 없음'..."증거 불충분"

유가려 씨를 조사한 조사관들 외에 허위진술을 토대로 유우성 씨를 기소한 검사들에 대한 처분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혐의없음'이었습니다.

이 전·현직 검사들을 향한 고소장에 담긴 혐의는 국가보안법의 무고·날조죄였습니다. 사형·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이 가능한 중범죄입니다.

폭행과 위협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조사관들에게는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했지만, 그 자백을 기반으로 수사한 검사에게는 혐의가 없다는 판단을 검찰이 내린 겁니다. 그 이유를 보겠습니다. 두 명의 검사에 대한 '불기소 이유서'에서입니다.

앞서 봤듯이 유가려 씨의 진술은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오락가락했습니다. 폭행과 위협 뒤에야 결국 '허위자백'을 했다고 검찰 조사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유우성 씨 측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유가려 씨의 진술이 번복된 과정을 검사들이 알면서도 재판부에 세세히 증거로는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 겁니다. 그 탓에 재판부에서 허위자백이나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을 내릴 기회를 없애려는 은닉 시도 아녔느냐는 주장입니다.

유가려 씨의 진술 번복 과정은 검찰의 수사보고서에도 첨부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재판 당시 유가려 씨가 쓴 모든 진술서 자체를 법정에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팀 검사는 '진술서가 더 있다는 걸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이 진술은 받아들여졌습니다. 검사들의 주장이 적극적으로 수용된 겁니다.

결국, 유가려 씨의 조사를 맡은 국정원 조사관들은 불구속 기소, 사건 전체를 맡은 검사들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검찰은 유우성 씨에 대한 출·입경 기록 위조 과정에도 검사가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봤습니다. 이로써 당시 수사팀 검사들은 모든 혐의를 벗게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에 대해 유우성 씨의 변호인단을 맡은 김진형 변호사는 "검찰 과거사위에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조사 자체를 외면한 결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불기소 처분에 대해 불복하는 재정신청도 기한이 지나 쉽지 않다고 합니다. 대법원이 2015년 10월 29일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확정한 지는 5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도 검찰 수사에 대해 지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유우성 씨와 유가려 씨는 지금도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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