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살인의 전조 ‘스토킹’…처벌법은 21년째 ‘제자리’

입력 2020.06.0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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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 안 구워줘서?" … 알고 보니 '스토킹 살인'

지난달 초 경남 창원에서 '고기를 안 구워주고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손님이 고깃집 여성 사장을 살해했다. 애초에 우발적인 범행으로 알려졌지만 사건엔 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었다.

피의자인 40대 남성은 여성 사장을 10년 가까이 스토킹해왔다. 마음을 받아달라며 여성 사장을 찾아가고 전화를 걸며 괴롭혔다. 피해자 가족들이 피의자 집을 찾아가 말려달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불안 속에 살던 피해자는 결국 희생되고 말았다.

■ 여성 살인의 전조 '스토킹'

범죄 관련 논문에는 스토킹을 '살인의 전조 현상'으로 본다. 실제로 스토커들의 집착과 광기가 살인으로 이어진 무수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KBS는 2018년도 발생한 살인·살인 미수 사건 381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스토킹' 여부를 확인해 봤다. 한국에서 스토킹의 실제적인 위험성을 분석한 사실상 첫 시도였다. 그 결과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159건) 중 무려 30%(48건)에서 스토킹이나 스토킹 의심 정황이 확인됐다.


■ 막을 수 있는 '스토킹 살인'…현실은 경범죄

'스토킹 살인'은 스토킹을 제대로 막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범죄다. 하지만 한국에선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된다. 피해자가 아무리 공포에 질려 신고해도 가해자에겐 10만 원 미만의 범칙금만 부과된다.

법이 미흡하다 보니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피의자 안인득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한 사건의 경우, 피해자 가족들이 CCTV를 달고 수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 312건이었던 검거자는 2014년 297건, 2015년 363건, 2016년 557건, 2017년 438건, 2018년 544건, 2019년 583건 등 2017년을 제외하고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스토킹 신고 건수는 5,466건으로 검거율은 11%에 불과했다.

검찰은 지난달 "폭행·협박이 없는 단순 스토킹도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엄벌해야 하지만 경범죄로 처벌받는다"며, "엄중한 처벌과 피해자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한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처벌할 법이 없으니 국회에 얼른 법을 만들라고 요청한 것이다.

■ 스토킹 처벌법 21년째 제자리…"이번엔 통과해야"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스토킹 처벌법은 21년 전인 1999년부터 꾸준히 발의됐다. 하지만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의원들은 무관심했다. 결국 상임위 문턱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해왔다.


오늘(4일)도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여성의당 이경옥 경남도당 공동위원장은 창원 고깃집 살인 사건을 언급하며 "더 이상의 여성 살해를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남인순 의원은 지난 1일 21대 국회 문이 열리자마자 각각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다.

청년녹색당 김혜미 공동운영위원장은 "스토킹 처벌과 관련된 법안이 발의되고 폐기를 거듭해온 지 20년이 넘었다"면서 "300명 국회의원 중에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한 사람은 있었지만, 진심으로 피해자의 삶을 이해한 국회의원은 얼마나 있었던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21대 국회는 더는 희생이 없도록 스토킹 처벌법을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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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살인의 전조 ‘스토킹’…처벌법은 21년째 ‘제자리’
    • 입력 2020-06-04 16:55:17
    취재K
■ "고기 안 구워줘서?" … 알고 보니 '스토킹 살인'

지난달 초 경남 창원에서 '고기를 안 구워주고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손님이 고깃집 여성 사장을 살해했다. 애초에 우발적인 범행으로 알려졌지만 사건엔 더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었다.

피의자인 40대 남성은 여성 사장을 10년 가까이 스토킹해왔다. 마음을 받아달라며 여성 사장을 찾아가고 전화를 걸며 괴롭혔다. 피해자 가족들이 피의자 집을 찾아가 말려달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불안 속에 살던 피해자는 결국 희생되고 말았다.

■ 여성 살인의 전조 '스토킹'

범죄 관련 논문에는 스토킹을 '살인의 전조 현상'으로 본다. 실제로 스토커들의 집착과 광기가 살인으로 이어진 무수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KBS는 2018년도 발생한 살인·살인 미수 사건 381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스토킹' 여부를 확인해 봤다. 한국에서 스토킹의 실제적인 위험성을 분석한 사실상 첫 시도였다. 그 결과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159건) 중 무려 30%(48건)에서 스토킹이나 스토킹 의심 정황이 확인됐다.


■ 막을 수 있는 '스토킹 살인'…현실은 경범죄

'스토킹 살인'은 스토킹을 제대로 막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범죄다. 하지만 한국에선 스토킹은 '경범죄'로 분류된다. 피해자가 아무리 공포에 질려 신고해도 가해자에겐 10만 원 미만의 범칙금만 부과된다.

법이 미흡하다 보니 경찰에 신고해도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지난해 피의자 안인득이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살해한 사건의 경우, 피해자 가족들이 CCTV를 달고 수차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스토킹을 경범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2013년 312건이었던 검거자는 2014년 297건, 2015년 363건, 2016년 557건, 2017년 438건, 2018년 544건, 2019년 583건 등 2017년을 제외하고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스토킹 신고 건수는 5,466건으로 검거율은 11%에 불과했다.

검찰은 지난달 "폭행·협박이 없는 단순 스토킹도 피해자의 일상을 파괴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엄벌해야 하지만 경범죄로 처벌받는다"며, "엄중한 처벌과 피해자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한 '스토킹 범죄 처벌법'이 조속히 제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처벌할 법이 없으니 국회에 얼른 법을 만들라고 요청한 것이다.

■ 스토킹 처벌법 21년째 제자리…"이번엔 통과해야"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스토킹 처벌법은 21년 전인 1999년부터 꾸준히 발의됐다. 하지만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의원들은 무관심했다. 결국 상임위 문턱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와 재발의를 반복해왔다.


오늘(4일)도 국회에서 '스토킹 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여성의당 이경옥 경남도당 공동위원장은 창원 고깃집 살인 사건을 언급하며 "더 이상의 여성 살해를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남인순 의원은 지난 1일 21대 국회 문이 열리자마자 각각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다.

청년녹색당 김혜미 공동운영위원장은 "스토킹 처벌과 관련된 법안이 발의되고 폐기를 거듭해온 지 20년이 넘었다"면서 "300명 국회의원 중에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한 사람은 있었지만, 진심으로 피해자의 삶을 이해한 국회의원은 얼마나 있었던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21대 국회는 더는 희생이 없도록 스토킹 처벌법을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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