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충남 태안 해변 밀입국 사건…그곳에서 무슨 일이?

입력 2020.06.05 (19: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충남 태안에서 발견된 3대의 보트. 이중 맨 위쪽 보트와 가운데 보트는 밀입국 목적으로 쓰인 것이 확인됐다.

충남 태안에서 발견된 3대의 보트. 이중 맨 위쪽 보트와 가운데 보트는 밀입국 목적으로 쓰인 것이 확인됐다.

'충남 태안에서 잇따라 발생한 밀입국 사건'...
밀입국한 중국인들은 중국 웨이하이에서 모터보트나 고무보트를 타고 충남 태안까지 320km의 망망대해를 건너 몰래 들어왔습니다.
지난 5월 21일 태안군 소원면 일리포 해변에 1.5톤급 모터보트를 타고 8명이 밀입국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에 앞서 한 달 전인 지난 4월 19일 5백 미터 떨어진 같은 해변에서 검은 보트를 타고 5명이 밀입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또, 지난 4일 태안해경 전용부두와 군부대가 인접한 마도방파제에서도 흰색 고무보트가 발견돼 군과 해경은 '밀입국'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뻥뚫린 해경 해상 감시망 .. 뒷북 대처에 부실 수사

그런데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방치된 지 수 일이 지난 뒤에야 주민 신고로 알려졌고 그때야 군과 해경이 알게 됐다는 겁니다. 군의 해안 경비초소도 해경의 해상 감시망도 모두 뻥 뚫렸습니다.
3번째 보트까지 밀입국 관련 정체불명의 보트가 잇따라 발견된 태안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지난달 23일 태안군 일리포 해변에서 발견된 모터보트. 내부에는 중국어로 적힌 물건이 무더기로 나왔다.지난달 23일 태안군 일리포 해변에서 발견된 모터보트. 내부에는 중국어로 적힌 물건이 무더기로 나왔다.

정체불명의 모터보트에 '중국어'가 적혀있었다.

지난달 23일 오전 10시 59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일리포 해변에서 정체불명의 모터보트가 발견됐습니다.
길이 4m에 좌석이 6개가 달린 1.5톤급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모터보트 내부에는 중국어가 적힌 빵과 물, 옷가지가 있었습니다.
모터보트의 정체를 처음 신고한 해당 마을 어촌계장은 군 초소에 신고했고, 군 당국은 태안해경 모항파출소에 연락해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해당 보트가 사흘 이상 방치됐었다고 설명했는데, 어촌계장의 신고 전까지 군과 해경은 아무런 움직임조차 없었습니다.
이후 보트 내부에서 중국제품이 무더기로 쏟아지자 해경은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고, 인근 CCTV 영상을 확인했더니 지난달 21일 보트 주변에서 6명의 사람이 있는 모습과 이들이 마을 도로를 지나가는 모습이 각각 포착됐습니다.

충남 태안을 거쳐 전남 목포로 도주한 밀입국자 왕모 씨가 검거돼 태안해경으로 압송되고 있다.충남 태안을 거쳐 전남 목포로 도주한 밀입국자 왕모 씨가 검거돼 태안해경으로 압송되고 있다.

밀입국 용의자는 '2명'을 왜 숨겼나?

정체불명의 모터보트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내린 지 닷새가 흐른 지난달 26일 전남 목포에서 밀입국 용의자인 중국 국적의 43살 왕모 씨가 검거됐습니다.
당시 해경은 중국인 왕 씨가 5월 20일 밤 8시쯤 동반 밀입국자 5명과 함께 중국 웨이하이에서 출발해 320km 거리를 항해한 뒤 다음날인 21일 태안군 해변 갯바위에 도착한 것을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밀입국자들이 자수하거나 속속 검거됐고, 이들을 국내에서 목포까지 승합차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국 국적의 불법체류자 운송책 2명, 취업 조력자 등도 잇따라 검거되면서 중국인 밀입국자가 모두 8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초로 검거된 왕 씨는 초기 진술에서 밀입국자는 모두 6명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모터보트에 타고 있던 밀입국자는 8명이었던 겁니다. 왜 2명을 숨기려 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또 보트에 타고 있던 8명의 밀입국자 중 4명은 아직도 당국의 눈을 피해 도주 중인 상태입니다.

태안해경이 의항해수욕장에 붙여놓은 안내문. 지난 4월 20일 발견된 검은 보트의 주인을 찾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태안해경이 의항해수욕장에 붙여놓은 안내문. 지난 4월 20일 발견된 검은 보트의 주인을 찾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정체불명 '검은 보트' 또 있었는데… 해경 "밀입국 가능성 없다" 정정보도 요구

지난달 태안에서 중국인 밀입국 사건이 발생하자 인근 마을 주민들은 밀입국 사건이 벌어지기 한 달 전에도 '정체불명의 검은 보트'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4월 20일 밀입국 보트가 발견된 지점인 일리포 해변에서 500m 떨어진 의항해수욕장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보트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던 겁니다.
KBS 취재진은 정체불명의 검은 보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난달 25일 해경 측에 질의했는데, 당시 해경은 "검정고무보트에 대한 주민 신고가 있었지만, 군경 합동으로 현장을 확인한 결과 대공 용의점과 밀입국 가능성은 없다"라며 "해상 불법잠수기 또는 양식장 절도범으로 추정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해경 측은 해당 검은 보트가 누군가 잃어버린 유류품이라며 해수욕장에 안내문까지 붙여놨습니다.
정체불명의 검은 보트, 밀입국과는 무관하다는 겁니다.
KBS는 밀입국 사건을 취재하며 마을 주민의 증언을 모아 검은 보트도 수상하다며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밀입국 의혹을 재차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경은 CCTV에 찍힌 남성 2명이 고무보트에서 기름을 넣고 다시 육지로 돌아갔고, 연료통도 중국제품이지만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반박하며 '정정 보도'까지 요구했습니다.

검은 보트에 부착된 중국제 PARSUN사 40마력 선외기. 국내에선 정식 유통되지 않는 제품으로 확인됐다.검은 보트에 부착된 중국제 PARSUN사 40마력 선외기. 국내에선 정식 유통되지 않는 제품으로 확인됐다.

'중국제' 선외기부터 '중국말' 적힌 봉지까지... 수상한 '검은 보트'

해경은 지난 4월 20일 발견된 검은 보트가 밀입국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검은 고무보트를 하나씩 짚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보트에 달려있던 '엔진'인 선외기가 이상했습니다.
검은 보트에 달려있던 선외기는 40마력의 PARSUN사 제품인데 옆면에는 '中国制造(중국제조)'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중국제 선외기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태안 일대의 선외기 업체 측에 물어봤습니다.
업체 대표들은 입을 모아 해당 중국제 선외기는 국내에서 정식 유통되지 않은 제품이고 구하기도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중국 온라인 매장에서 직구를 하거나 중국에서 타고 오지 않는 한 국내에선 살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제품이라는 겁니다.
또 다른 선외기 업체 관계자도 "국내에서 레저 이용객들이 사용하는 보트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제품을 취급했던 총판에도 물어봤더니 마찬가지로 40마력 선외기는 취급하지 않았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또 통상적으로 40마력의 선외기는 너무 크고 높은 마력의 제품이라 고무보트에는 부적합하고, 대부분 10마력 수준의 선외기를 부착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검은 보트에서 발견된 20ℓ 용량의 철제 연료통 2개도 중국에서 생산된 건데 국내에선 잘 쓰이지 않는 제품이었습니다.
보트 크기에 맞지 않는 중국제 고 마력 선외기, 많은 연료를 싣기 위한 중국산 철제 연료통까지 나온 상황에서 목격한 마을 주민은 "해경으로부터 해당 보트에서 중국말로 적힌 봉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최초 신고자인 주민 또한 "해삼 도둑질은 이런 보트로 안 한다. 다른 배로 한다"며 "4월에는 해삼이 나올 시기도 아니고 바닷속이 흐려서 잠수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4일 태안 마도방파제 인근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세 번째 고무보트. 지난 4월 발견된 검은 보트와 마찬가지로 중국제 40마력 선외기가 부착돼 있다.지난 4일 태안 마도방파제 인근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세 번째 고무보트. 지난 4월 발견된 검은 보트와 마찬가지로 중국제 40마력 선외기가 부착돼 있다.

'3번째' 고무보트도 주민 신고로 발견… 대규모 밀입국 가능성 커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보트와 밀입국 모터보트에 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보트가 지난 4일 오전 8시 50분쯤 태안군 근흥면 마도 방파제 인근에서 또 발견됐습니다.
세 번째로 발견된 보트 또한 "5~6일 전부터 정체불명의 고무보트가 있다"는 주민 신고로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이미 지난달 중국 밀입국 모터보트가 발견돼 군 당국과 해경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수상한 보트가 닷새가 넘도록 방치되고 있었지만 군과 해경은 또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세 번째로 발견된 보트의 선외기 또한 PARSUN사에서 제조한 중국제 40마력 선외기, 4월 발견된 검은 보트와 같은 선외기가 부착돼 있었습니다.

해경 경비정 본거지 앞에서 정체 불명 보트 닷새 방치

더욱이 발견 지점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소형 접안용 방파제인데, 태안해경 소속의 경비정이 정박해 있는 태안해경 전용부두와는 1.5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해경 경비정의 본거지 앞에서 정체불명의 보트가 닷새가량 방치됐던 겁니다.

황준현 중부지방해경청 수사정보과장이 5일 태안해양경찰서에서 ‘태안 밀입국 사건 브리핑’을 하고 있다.황준현 중부지방해경청 수사정보과장이 5일 태안해양경찰서에서 ‘태안 밀입국 사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검은 보트도 결국 '밀입국'… 무너진 초동 대응.. 해경서장 '직위 해제'

태안군 일대가 중국인의 밀입국 경로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중부지방해경청은 오늘(5일) 태안해양경찰서에서 '태안 밀입국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황준현 중부지방해경청 수사정보과장은 "4월 19일에도 다른 밀입국 사건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KBS가 제기한 검은 보트 밀입국 의혹이 실제 밀입국 용도로 쓰였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해경은 4월 19일에도 5명의 중국인이 한국 시각 4월 18일 오후 5시쯤 중국 웨이하이에서 해당 검은 보트를 타고 출발해 다음 날인 19일 오전 10시쯤 의항해수욕장에 밀입국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모터보트 밀입국 사건 이후 해경 측이 벌인 탐문수사에서 입국기록이 없는 2명의 중국인을 체포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검은 보트를 이용한 것이 밝혀진 겁니다.
이들 일당은 밀항 모집책에게 1인당 1만 5천 위안, 한화 약 260만 원씩을 건네고, 한국으로 밀입국했으며, 과거 한국에서 불법체류로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또 해경은 공개수사를 검토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두 보트를 타고 밀입국한 13명 가운데 달아난 7명의 행방을 쫓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경은 태안 밀입국 사건과 관련해 초동 대응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하만식 태안해양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상급기관인 오윤용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를 내렸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잇따른 충남 태안 해변 밀입국 사건…그곳에서 무슨 일이?
    • 입력 2020-06-05 19:45:54
    취재K

충남 태안에서 발견된 3대의 보트. 이중 맨 위쪽 보트와 가운데 보트는 밀입국 목적으로 쓰인 것이 확인됐다.

'충남 태안에서 잇따라 발생한 밀입국 사건'...
밀입국한 중국인들은 중국 웨이하이에서 모터보트나 고무보트를 타고 충남 태안까지 320km의 망망대해를 건너 몰래 들어왔습니다.
지난 5월 21일 태안군 소원면 일리포 해변에 1.5톤급 모터보트를 타고 8명이 밀입국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에 앞서 한 달 전인 지난 4월 19일 5백 미터 떨어진 같은 해변에서 검은 보트를 타고 5명이 밀입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또, 지난 4일 태안해경 전용부두와 군부대가 인접한 마도방파제에서도 흰색 고무보트가 발견돼 군과 해경은 '밀입국'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뻥뚫린 해경 해상 감시망 .. 뒷북 대처에 부실 수사

그런데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방치된 지 수 일이 지난 뒤에야 주민 신고로 알려졌고 그때야 군과 해경이 알게 됐다는 겁니다. 군의 해안 경비초소도 해경의 해상 감시망도 모두 뻥 뚫렸습니다.
3번째 보트까지 밀입국 관련 정체불명의 보트가 잇따라 발견된 태안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지난달 23일 태안군 일리포 해변에서 발견된 모터보트. 내부에는 중국어로 적힌 물건이 무더기로 나왔다.
정체불명의 모터보트에 '중국어'가 적혀있었다.

지난달 23일 오전 10시 59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일리포 해변에서 정체불명의 모터보트가 발견됐습니다.
길이 4m에 좌석이 6개가 달린 1.5톤급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모터보트 내부에는 중국어가 적힌 빵과 물, 옷가지가 있었습니다.
모터보트의 정체를 처음 신고한 해당 마을 어촌계장은 군 초소에 신고했고, 군 당국은 태안해경 모항파출소에 연락해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해당 보트가 사흘 이상 방치됐었다고 설명했는데, 어촌계장의 신고 전까지 군과 해경은 아무런 움직임조차 없었습니다.
이후 보트 내부에서 중국제품이 무더기로 쏟아지자 해경은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고, 인근 CCTV 영상을 확인했더니 지난달 21일 보트 주변에서 6명의 사람이 있는 모습과 이들이 마을 도로를 지나가는 모습이 각각 포착됐습니다.

충남 태안을 거쳐 전남 목포로 도주한 밀입국자 왕모 씨가 검거돼 태안해경으로 압송되고 있다.
밀입국 용의자는 '2명'을 왜 숨겼나?

정체불명의 모터보트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내린 지 닷새가 흐른 지난달 26일 전남 목포에서 밀입국 용의자인 중국 국적의 43살 왕모 씨가 검거됐습니다.
당시 해경은 중국인 왕 씨가 5월 20일 밤 8시쯤 동반 밀입국자 5명과 함께 중국 웨이하이에서 출발해 320km 거리를 항해한 뒤 다음날인 21일 태안군 해변 갯바위에 도착한 것을 진술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수사망이 좁혀지면서 밀입국자들이 자수하거나 속속 검거됐고, 이들을 국내에서 목포까지 승합차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 중국 국적의 불법체류자 운송책 2명, 취업 조력자 등도 잇따라 검거되면서 중국인 밀입국자가 모두 8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초로 검거된 왕 씨는 초기 진술에서 밀입국자는 모두 6명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모터보트에 타고 있던 밀입국자는 8명이었던 겁니다. 왜 2명을 숨기려 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또 보트에 타고 있던 8명의 밀입국자 중 4명은 아직도 당국의 눈을 피해 도주 중인 상태입니다.

태안해경이 의항해수욕장에 붙여놓은 안내문. 지난 4월 20일 발견된 검은 보트의 주인을 찾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정체불명 '검은 보트' 또 있었는데… 해경 "밀입국 가능성 없다" 정정보도 요구

지난달 태안에서 중국인 밀입국 사건이 발생하자 인근 마을 주민들은 밀입국 사건이 벌어지기 한 달 전에도 '정체불명의 검은 보트'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4월 20일 밀입국 보트가 발견된 지점인 일리포 해변에서 500m 떨어진 의항해수욕장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보트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던 겁니다.
KBS 취재진은 정체불명의 검은 보트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난달 25일 해경 측에 질의했는데, 당시 해경은 "검정고무보트에 대한 주민 신고가 있었지만, 군경 합동으로 현장을 확인한 결과 대공 용의점과 밀입국 가능성은 없다"라며 "해상 불법잠수기 또는 양식장 절도범으로 추정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해경 측은 해당 검은 보트가 누군가 잃어버린 유류품이라며 해수욕장에 안내문까지 붙여놨습니다.
정체불명의 검은 보트, 밀입국과는 무관하다는 겁니다.
KBS는 밀입국 사건을 취재하며 마을 주민의 증언을 모아 검은 보트도 수상하다며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밀입국 의혹을 재차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해경은 CCTV에 찍힌 남성 2명이 고무보트에서 기름을 넣고 다시 육지로 돌아갔고, 연료통도 중국제품이지만 국내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반박하며 '정정 보도'까지 요구했습니다.

검은 보트에 부착된 중국제 PARSUN사 40마력 선외기. 국내에선 정식 유통되지 않는 제품으로 확인됐다.
'중국제' 선외기부터 '중국말' 적힌 봉지까지... 수상한 '검은 보트'

해경은 지난 4월 20일 발견된 검은 보트가 밀입국과 무관하다고 했지만,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취재진은 해당 검은 고무보트를 하나씩 짚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보트에 달려있던 '엔진'인 선외기가 이상했습니다.
검은 보트에 달려있던 선외기는 40마력의 PARSUN사 제품인데 옆면에는 '中国制造(중국제조)'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중국제 선외기가 어떻게 유통되는지 태안 일대의 선외기 업체 측에 물어봤습니다.
업체 대표들은 입을 모아 해당 중국제 선외기는 국내에서 정식 유통되지 않은 제품이고 구하기도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중국 온라인 매장에서 직구를 하거나 중국에서 타고 오지 않는 한 국내에선 살 수도 고칠 수도 없는 제품이라는 겁니다.
또 다른 선외기 업체 관계자도 "국내에서 레저 이용객들이 사용하는 보트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제품을 취급했던 총판에도 물어봤더니 마찬가지로 40마력 선외기는 취급하지 않았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또 통상적으로 40마력의 선외기는 너무 크고 높은 마력의 제품이라 고무보트에는 부적합하고, 대부분 10마력 수준의 선외기를 부착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검은 보트에서 발견된 20ℓ 용량의 철제 연료통 2개도 중국에서 생산된 건데 국내에선 잘 쓰이지 않는 제품이었습니다.
보트 크기에 맞지 않는 중국제 고 마력 선외기, 많은 연료를 싣기 위한 중국산 철제 연료통까지 나온 상황에서 목격한 마을 주민은 "해경으로부터 해당 보트에서 중국말로 적힌 봉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최초 신고자인 주민 또한 "해삼 도둑질은 이런 보트로 안 한다. 다른 배로 한다"며 "4월에는 해삼이 나올 시기도 아니고 바닷속이 흐려서 잠수도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4일 태안 마도방파제 인근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세 번째 고무보트. 지난 4월 발견된 검은 보트와 마찬가지로 중국제 40마력 선외기가 부착돼 있다.
'3번째' 고무보트도 주민 신고로 발견… 대규모 밀입국 가능성 커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보트와 밀입국 모터보트에 이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보트가 지난 4일 오전 8시 50분쯤 태안군 근흥면 마도 방파제 인근에서 또 발견됐습니다.
세 번째로 발견된 보트 또한 "5~6일 전부터 정체불명의 고무보트가 있다"는 주민 신고로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이미 지난달 중국 밀입국 모터보트가 발견돼 군 당국과 해경에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수상한 보트가 닷새가 넘도록 방치되고 있었지만 군과 해경은 또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세 번째로 발견된 보트의 선외기 또한 PARSUN사에서 제조한 중국제 40마력 선외기, 4월 발견된 검은 보트와 같은 선외기가 부착돼 있었습니다.

해경 경비정 본거지 앞에서 정체 불명 보트 닷새 방치

더욱이 발견 지점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소형 접안용 방파제인데, 태안해경 소속의 경비정이 정박해 있는 태안해경 전용부두와는 1.5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해경 경비정의 본거지 앞에서 정체불명의 보트가 닷새가량 방치됐던 겁니다.

황준현 중부지방해경청 수사정보과장이 5일 태안해양경찰서에서 ‘태안 밀입국 사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검은 보트도 결국 '밀입국'… 무너진 초동 대응.. 해경서장 '직위 해제'

태안군 일대가 중국인의 밀입국 경로로 광범위하게 활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중부지방해경청은 오늘(5일) 태안해양경찰서에서 '태안 밀입국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황준현 중부지방해경청 수사정보과장은 "4월 19일에도 다른 밀입국 사건이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KBS가 제기한 검은 보트 밀입국 의혹이 실제 밀입국 용도로 쓰였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해경은 4월 19일에도 5명의 중국인이 한국 시각 4월 18일 오후 5시쯤 중국 웨이하이에서 해당 검은 보트를 타고 출발해 다음 날인 19일 오전 10시쯤 의항해수욕장에 밀입국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달 모터보트 밀입국 사건 이후 해경 측이 벌인 탐문수사에서 입국기록이 없는 2명의 중국인을 체포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검은 보트를 이용한 것이 밝혀진 겁니다.
이들 일당은 밀항 모집책에게 1인당 1만 5천 위안, 한화 약 260만 원씩을 건네고, 한국으로 밀입국했으며, 과거 한국에서 불법체류로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었습니다.
또 해경은 공개수사를 검토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두 보트를 타고 밀입국한 13명 가운데 달아난 7명의 행방을 쫓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경은 태안 밀입국 사건과 관련해 초동 대응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하만식 태안해양경찰서장을 직위 해제하고, 상급기관인 오윤용 중부지방해양경찰청장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를 내렸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