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사망자 숫자 너머에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을 기억합니다”

입력 2020.06.09 (07:01) 수정 2020.06.0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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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99

어제(8일)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기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의 숫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아픈 것은 기억 때문입니다.

기억에는 남아 있지만, 더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추모는 그래서 기억을 되새겨보는 데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코로나19 사망자 숫자에 우리는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면 달라집니다.


이탈리아 언론 라 리퍼블리카는 코로나19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바로가기] https://www.memorie.it/

이 사이트의 이름은 바로 '기억'입니다.

이름과 사진이 있는 경우엔 사진, 그리고 태어난 날과 숨진 날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을 적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알레산드로 마르체티(Alessandro Marchetti)(58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살펴봅니다.

"내 동생은 장애가 있지만, 항상 즐겁고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간호사의 덕분으로 그와 마지막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내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누나인 나디아 마르체티가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동생을 기억하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 동생은 강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병원에 있었지만, 가족에게 오히려 힘내라고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리고 답글처럼 추모의 글이 덧붙여 있습니다.

오르넬라라는 간호사입니다.

"나는 소아과 간호사로 내 세상은 당신과 같이 2월 21일에 멈춰버렸습니다. 나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마음으로나마 곁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큼 외롭지 않은 일이 있을까요.

또 다른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글을 보겠습니다.


일흔한 살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네임 제벨리(Naim Zebeli).

알바니아 출신으로 파가니코 지역에서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을 남겼고, 모두 파가니코 지역에서 태어난 다섯 명의 손자도 있습니다.

감정적인 문구 없이 적어 내려간 추모의 글을 읽다 보니 성경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한참을 적어 내려간 부분 말입니다.

한때는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를 왜 이렇게 길게 적어놨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추모의 글을 읽어보니 새삼 '관계'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결국, 한 사람을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그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족 관계가 모든 사회관계로 나가는 출발점이자, 결국 되돌아오는 종점이기 때문입니다.

네임 제벨리 씨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여기 추모글에 적힌 가족들과 하루라도 더 빛나는 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한 방식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 페이지에 10명씩 지금까지 166페이지 즉 1,660명의 코로나19 희생자가 이 공간에 기록돼 있습니다.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치명률은 14%가 넘습니다.

전 세계 평균(5.7%)의 3배에 육박합니다.

노년층 감염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탈리아의 80세 이상의 치명률은 30% 안팎입니다.

이 추모 공간 첫 페이지 10명의 나이를 봐도 알레산드로 마르체티 58세를 시작으로 75세, 93세, 99세, 88세, 93세, 80세, 73세, 90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임 제빌리 씨 71세로 고령층이 대부분입니다

코로나19는 약한 사람에게 더 독한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AFP=연합뉴스][사진 출처 :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4일 일요판 1면을 코로나19 사망자 1천 명의 이름과 부고로 채웠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였다"고 추모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이 추모사이트 '기억'에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는 곳'이라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로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부재는 나와 우리의 부재입니다.

그리고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만이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최신 기사 보기
http://news.kbs.co.kr/news/listIssue.html?icd=1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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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0-06-09 07: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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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8일)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 기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의 숫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아픈 것은 기억 때문입니다.

기억에는 남아 있지만, 더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추모는 그래서 기억을 되새겨보는 데 그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코로나19 사망자 숫자에 우리는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가 아닌 사람을 보면 달라집니다.


이탈리아 언론 라 리퍼블리카는 코로나19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바로가기] https://www.memorie.it/

이 사이트의 이름은 바로 '기억'입니다.

이름과 사진이 있는 경우엔 사진, 그리고 태어난 날과 숨진 날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을 적은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알레산드로 마르체티(Alessandro Marchetti)(58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살펴봅니다.

"내 동생은 장애가 있지만, 항상 즐겁고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순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간호사의 덕분으로 그와 마지막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내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누나인 나디아 마르체티가 남긴 글의 일부입니다.

동생을 기억하는 사랑이 느껴집니다. 그 동생은 강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병원에 있었지만, 가족에게 오히려 힘내라고 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리고 답글처럼 추모의 글이 덧붙여 있습니다.

오르넬라라는 간호사입니다.

"나는 소아과 간호사로 내 세상은 당신과 같이 2월 21일에 멈춰버렸습니다. 나는 당신 곁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가 마음으로나마 곁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큼 외롭지 않은 일이 있을까요.

또 다른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글을 보겠습니다.


일흔한 살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네임 제벨리(Naim Zebeli).

알바니아 출신으로 파가니코 지역에서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아내와 딸 그리고 아들을 남겼고, 모두 파가니코 지역에서 태어난 다섯 명의 손자도 있습니다.

감정적인 문구 없이 적어 내려간 추모의 글을 읽다 보니 성경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았다고 한참을 적어 내려간 부분 말입니다.

한때는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를 왜 이렇게 길게 적어놨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추모의 글을 읽어보니 새삼 '관계'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결국, 한 사람을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은 그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족 관계가 모든 사회관계로 나가는 출발점이자, 결국 되돌아오는 종점이기 때문입니다.

네임 제벨리 씨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여기 추모글에 적힌 가족들과 하루라도 더 빛나는 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행복한 방식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 페이지에 10명씩 지금까지 166페이지 즉 1,660명의 코로나19 희생자가 이 공간에 기록돼 있습니다.

[사진 출처 : AP=연합뉴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치명률은 14%가 넘습니다.

전 세계 평균(5.7%)의 3배에 육박합니다.

노년층 감염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이탈리아의 80세 이상의 치명률은 30% 안팎입니다.

이 추모 공간 첫 페이지 10명의 나이를 봐도 알레산드로 마르체티 58세를 시작으로 75세, 93세, 99세, 88세, 93세, 80세, 73세, 90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임 제빌리 씨 71세로 고령층이 대부분입니다

코로나19는 약한 사람에게 더 독한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4일 일요판 1면을 코로나19 사망자 1천 명의 이름과 부고로 채웠습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였다"고 추모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이 추모사이트 '기억'에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기억하는 곳'이라는 부제가 달렸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로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이들의 부재는 나와 우리의 부재입니다.

그리고 희생자를 기억하는 것만이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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