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은 ‘나의 데이터(MyData)’를 내줄까?…‘데이터 이동권’ 보장이 숙제

입력 2020.06.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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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계좌, 몇 개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5개 은행에 7개 계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일일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돌아다녀야 계좌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스마트폰이 나온 뒤에는 개별 은행 앱을 깔아서 확인해야 했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입니다. 많은 앱이 개인의 계좌, 예·적금, 대출, 신용카드 등 대부분 금융정보를 대신해서 수집하고 한눈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앱들은 단순히 정보만 모아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지금 쓰는 신용카드보다 더 혜택이 많은 카드를 써보라고 제안해 주기도 합니다. 개인의 정보를 분석해서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정보들, 알고 싶은 정보들을 알아서 척척 제공해 주는 거죠. 정부가 지원하는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사업'은 이런 서비스를 제대로, 더 폭넓게 제공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마이데이터(MyData) 사업'은?


마이데이터(MyData, 본인 정보 활용 지원) 사업은 개인이 살면서 여기저기 남겨놓은, 혹은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낸 갖가지 정보를 모아서 다시 개인에게 돌려주고, 이걸 활용·분석하겠다는 업체에게 선별적으로 줘서 개인에게 맞춤형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업체들이 개인을 '대신해서' 정보를 긁어모았다면, 이제는 개인이 '스스로' 데이터를 받아서 보관하고 원하는 정보만 골라 원하는 곳에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게 특징입니다. 또, 그 영역을 금융뿐만 아니라 의료나 공공, 교통 등 여러 분야로 확장시키는 것도 새로운 시도입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지난해 처음 실증서비스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8개의 사업이 정부 지원을 받았는데, 의료와 금융, 에너지 관리, 소상공인·사업자 등 분야도 다양했습니다. 병원 검진 기록 등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원격으로 검침 되는 전기·가스·수도 등의 에너지 데이터를 분석해서 언제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보여줘 소비 절감을 유도하는 앱도 나왔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도 의료와 공공, 교통 등 6개 분야 8개 과제에 75억 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해 더 많은 실증서비스 제공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내 정보를 분석해서 나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 상상만 했을 때는 너무나도 이상적이지 않은가요?

■아직 모든 데이터는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사업의 면면을 보면 큰 구멍이 하나 보입니다. 올해 의료 분야에 선정된 사업 하나만 보겠습니다. 과기정통부가 배포한 자료에 이렇게 설명이 돼 있습니다.

"서울·인천 ○○병원, △△의료원 등이 보유한 건강검진결과 및 처방전 등의 데이터를 개인이 통합·관리하고, 자가 건강관리(맞춤형 운동·영양관리, 복약지도 등) 등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

대학병원 여러 곳이 참여하는 이 서비스가 만들어져도 이용자는 사업에 참여한 병원의 정보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정작 수없이 드나드는 동네 병원에 다닌 기록은 활용할 수 없고, 해당 병원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아예 서비스를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료 분야를 포함해 지난해 나왔던 대부분 서비스도 활용하는 데이터에 제한이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활용한다는 '마이데이터' 사업의 구상과는 달리, 정작 '나의 모든 데이터'가 아닌 반쪽짜리 정보를 활용하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데이터 이동권(전송요구권)이 없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포털 업체 등에 내 데이터를 달라고 요구한다고 해도 굳이 줄 이유가 없거든요. 데이터를 요청한다고 해도 '기계가독형(파일 형태)로 주십시오' 했을 때 '저희가 왜 드려야 하죠?' 이렇게 나오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없어요."(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관계자)

마이데이터 사업을 포함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각종 '데이터 경제' 관련 사업의 핵심은 정보가 '데이터' 형태로 존재할 때 이유가 있습니다. 문서 형태로는 아무리 많더라도 일종의 파일 형태로 데이터화하지 않으면 분석 자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보호법상 정보의 주체(개인)이 자기 정보를 '보여달라'고 할 수는 있는데, 이걸 '파일 형태로 달라'고 할 권리가 없습니다. '신용정보'는 파일 형태로 받을 수 있게 최근 법이 바뀐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여전히 내 정보가 필요하면 내가 일일이 뛰어다녀야 하다 보니, 실증서비스도 일종의 '반쪽짜리'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마이데이터' 적극 활용 위한 법적, 제도적 보완 필요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통해 이미 지난 2018년부터 개인정보의 전송과 관련한 '데이터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관련 국내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범부처 단위로 공공 행정정보나 의료 정보를 포함한 '공공 마이데이터'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정도입니다.

물론, 법·제도적 준비가 덜 됐다고 해서 마이데이터 사업 자체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개인정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실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관계자도 "신용정보, 금융정보를 넘어서 개인정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데이터 이동권이 보장돼야 개인 정보 주체의 자기 결정권이 더 확산되고, 서비스도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창출된다면, 그 자체로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예산 지원과 기업의 투자, 정보 보안 강화 방안 등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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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털은 ‘나의 데이터(MyData)’를 내줄까?…‘데이터 이동권’ 보장이 숙제
    • 입력 2020-06-11 17:01:03
    취재K
은행 계좌, 몇 개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5개 은행에 7개 계좌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일일이 통장을 들고 은행을 돌아다녀야 계좌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스마트폰이 나온 뒤에는 개별 은행 앱을 깔아서 확인해야 했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입니다. 많은 앱이 개인의 계좌, 예·적금, 대출, 신용카드 등 대부분 금융정보를 대신해서 수집하고 한눈에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앱들은 단순히 정보만 모아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지금 쓰는 신용카드보다 더 혜택이 많은 카드를 써보라고 제안해 주기도 합니다. 개인의 정보를 분석해서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정보들, 알고 싶은 정보들을 알아서 척척 제공해 주는 거죠. 정부가 지원하는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사업'은 이런 서비스를 제대로, 더 폭넓게 제공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마이데이터(MyData) 사업'은?


마이데이터(MyData, 본인 정보 활용 지원) 사업은 개인이 살면서 여기저기 남겨놓은, 혹은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낸 갖가지 정보를 모아서 다시 개인에게 돌려주고, 이걸 활용·분석하겠다는 업체에게 선별적으로 줘서 개인에게 맞춤형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업체들이 개인을 '대신해서' 정보를 긁어모았다면, 이제는 개인이 '스스로' 데이터를 받아서 보관하고 원하는 정보만 골라 원하는 곳에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게 특징입니다. 또, 그 영역을 금융뿐만 아니라 의료나 공공, 교통 등 여러 분야로 확장시키는 것도 새로운 시도입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지난해 처음 실증서비스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8개의 사업이 정부 지원을 받았는데, 의료와 금융, 에너지 관리, 소상공인·사업자 등 분야도 다양했습니다. 병원 검진 기록 등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원격으로 검침 되는 전기·가스·수도 등의 에너지 데이터를 분석해서 언제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소비했는지 보여줘 소비 절감을 유도하는 앱도 나왔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도 의료와 공공, 교통 등 6개 분야 8개 과제에 75억 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해 더 많은 실증서비스 제공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내 정보를 분석해서 나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 상상만 했을 때는 너무나도 이상적이지 않은가요?

■아직 모든 데이터는 아니라고요?

그런데 이 마이데이터 실증서비스 사업의 면면을 보면 큰 구멍이 하나 보입니다. 올해 의료 분야에 선정된 사업 하나만 보겠습니다. 과기정통부가 배포한 자료에 이렇게 설명이 돼 있습니다.

"서울·인천 ○○병원, △△의료원 등이 보유한 건강검진결과 및 처방전 등의 데이터를 개인이 통합·관리하고, 자가 건강관리(맞춤형 운동·영양관리, 복약지도 등) 등 다양한 서비스와 연계..."

대학병원 여러 곳이 참여하는 이 서비스가 만들어져도 이용자는 사업에 참여한 병원의 정보만 가져올 수 있습니다. 정작 수없이 드나드는 동네 병원에 다닌 기록은 활용할 수 없고, 해당 병원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아예 서비스를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료 분야를 포함해 지난해 나왔던 대부분 서비스도 활용하는 데이터에 제한이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의 데이터를 수집해서 활용한다는 '마이데이터' 사업의 구상과는 달리, 정작 '나의 모든 데이터'가 아닌 반쪽짜리 정보를 활용하게 되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데이터 이동권(전송요구권)이 없다!

마이데이터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에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포털 업체 등에 내 데이터를 달라고 요구한다고 해도 굳이 줄 이유가 없거든요. 데이터를 요청한다고 해도 '기계가독형(파일 형태)로 주십시오' 했을 때 '저희가 왜 드려야 하죠?' 이렇게 나오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없어요."(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관계자)

마이데이터 사업을 포함해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각종 '데이터 경제' 관련 사업의 핵심은 정보가 '데이터' 형태로 존재할 때 이유가 있습니다. 문서 형태로는 아무리 많더라도 일종의 파일 형태로 데이터화하지 않으면 분석 자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인정보 보호법상 정보의 주체(개인)이 자기 정보를 '보여달라'고 할 수는 있는데, 이걸 '파일 형태로 달라'고 할 권리가 없습니다. '신용정보'는 파일 형태로 받을 수 있게 최근 법이 바뀐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여전히 내 정보가 필요하면 내가 일일이 뛰어다녀야 하다 보니, 실증서비스도 일종의 '반쪽짜리'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마이데이터' 적극 활용 위한 법적, 제도적 보완 필요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통해 이미 지난 2018년부터 개인정보의 전송과 관련한 '데이터 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관련 국내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정부 차원에서는 범부처 단위로 공공 행정정보나 의료 정보를 포함한 '공공 마이데이터'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정도입니다.

물론, 법·제도적 준비가 덜 됐다고 해서 마이데이터 사업 자체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개인정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점을 '실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관계자도 "신용정보, 금융정보를 넘어서 개인정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데이터 이동권이 보장돼야 개인 정보 주체의 자기 결정권이 더 확산되고, 서비스도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가서비스가 창출된다면, 그 자체로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예산 지원과 기업의 투자, 정보 보안 강화 방안 등이 뒤따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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