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집 도착한 길원옥 할머니…텅빈 ‘마포 쉼터’

입력 2020.06.11 (17:06) 수정 2020.06.1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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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집'. 서울 마포구에 위치해 '마포 쉼터'라고도 불립니다.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최근 입길에 오르내렸지만, 그 이전에 할머니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인 곳입니다. 이곳을 홀로 마지막까지 지키던 길원옥 할머니가 오늘(11일) 쉼터를 떠났습니다.

오전 8시쯤 도착해 있던 수양아들의 손을 잡고 나선 할머니는 거동이 조금 불편한 듯했지만 건강해 보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함께하던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배웅과 함께 차 뒷자리에 탄 할머니는 차가 출발할 때까지도 계속 손을 흔들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차가 떠날 때까지 "할머니를 잘 부탁드린다", "자주 연락 달라"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 8년간 지내던 쉼터… 아들 집에서 새로운 시작

길 할머니는 함께 생활하던 故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돌아가신 뒤, 요양보호사, 활동가와 함께 홀로 이 집을 지켰습니다. 자신을 십수 년간 돌보던 손 모 소장마저 지난 6일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의 수양아들이 할머니를 자택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30대이던 길 할머니가 갓난아기 때부터 거둬 기른 수양아들 황선희 목사는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 황 목사는 "친딸처럼 어머니를 모시던 손 소장님이 떠났으니 제가 자식 된 도리를 다해야겠다 싶었다"며 "다시 어머니와 살게 된 게 꿈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할머니의 물건과 가구들은 그대로 옮겼습니다. KBS 취재진과 만난 길 할머니는 "기분이 어떠시냐"라는 질문에 "한데 와서 식구들과 같이 있으니까 좋죠"라며 웃으셨습니다. 그동안 같이 지내던 쉼터 가족들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다 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수양아들의 인천 집으로 돌아온 길원옥 할머니는 “가족들이 한데 다시 모여 사니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수양아들의 인천 집으로 돌아온 길원옥 할머니는 “가족들이 한데 다시 모여 사니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 할머니들 희로애락 담긴 공간, 역사 속으로?

할머니가 떠난 뒤 이제 마포 쉼터는 한동안 비어 있게 됐습니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2012년 명성교회의 지원을 받아 마포 쉼터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할머니들은 미술치료와 원예치료 등을 받으며 생활했고, 이곳을 방문하는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도 피웠습니다.

할머니들에겐 단순한 생활 공간 이상이었습니다. '2015년 한·일 합의'에 대한 날선 비판도, 故 김복동 할머니가 유언처럼 남긴 재일학교 학생들의 장학금도 이 쉼터에서 시작됐습니다. 할머니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공간이자, 위안부 운동이 진행됐던 곳이자, 역사가 묻어 있는 공간인 셈입니다.

쉼터에서 생활하던 할머니들 과거 모습쉼터에서 생활하던 할머니들 과거 모습

길원옥 할머니가 나가고 나면, 마포 쉼터는 당초 할머니들이 살아 계신 동안에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운영 목적이었던 만큼 정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8년간 쉼터를 무상으로 제공해 왔던 명성교회 측과 정의연 측도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쉼터의 향후 운영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는 할머니 5분이 머무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집 한 곳만 남았습니다.

※ '마포 쉼터'는 위안부 운동에서 의미가 적지 않은 공간이고 길원옥 할머니는 이 사안과 관련해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입니다. 때문에 길원옥 할머니의 쉼터 퇴소는 의미가 크다고 KBS 취재진은 판단했습니다. KBS는 정의연 측과 길 할머니의 수양아들 측에 취재 목적과 범위를 미리 전달하고 사전 양해를 얻은 뒤 할머니가 쉼터를 떠나시는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할머니와의 인터뷰 역시 할머니 가족분들에의 사전 협조와 동의를 구하고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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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 집 도착한 길원옥 할머니…텅빈 ‘마포 쉼터’
    • 입력 2020-06-11 17:06:33
    • 수정2020-06-11 17:06:55
    취재K
정의기억연대가 운영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집'. 서울 마포구에 위치해 '마포 쉼터'라고도 불립니다. 정의연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최근 입길에 오르내렸지만, 그 이전에 할머니들의 소중한 보금자리인 곳입니다. 이곳을 홀로 마지막까지 지키던 길원옥 할머니가 오늘(11일) 쉼터를 떠났습니다.

오전 8시쯤 도착해 있던 수양아들의 손을 잡고 나선 할머니는 거동이 조금 불편한 듯했지만 건강해 보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함께하던 정의기억연대 활동가들의 배웅과 함께 차 뒷자리에 탄 할머니는 차가 출발할 때까지도 계속 손을 흔들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차가 떠날 때까지 "할머니를 잘 부탁드린다", "자주 연락 달라"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 8년간 지내던 쉼터… 아들 집에서 새로운 시작

길 할머니는 함께 생활하던 故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해 1월 돌아가신 뒤, 요양보호사, 활동가와 함께 홀로 이 집을 지켰습니다. 자신을 십수 년간 돌보던 손 모 소장마저 지난 6일 세상을 떠나자, 할머니의 수양아들이 할머니를 자택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30대이던 길 할머니가 갓난아기 때부터 거둬 기른 수양아들 황선희 목사는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 황 목사는 "친딸처럼 어머니를 모시던 손 소장님이 떠났으니 제가 자식 된 도리를 다해야겠다 싶었다"며 "다시 어머니와 살게 된 게 꿈만 같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할머니의 물건과 가구들은 그대로 옮겼습니다. KBS 취재진과 만난 길 할머니는 "기분이 어떠시냐"라는 질문에 "한데 와서 식구들과 같이 있으니까 좋죠"라며 웃으셨습니다. 그동안 같이 지내던 쉼터 가족들이 그립지 않으냐는 질문에는 "다 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수양아들의 인천 집으로 돌아온 길원옥 할머니는 “가족들이 한데 다시 모여 사니까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 할머니들 희로애락 담긴 공간, 역사 속으로?

할머니가 떠난 뒤 이제 마포 쉼터는 한동안 비어 있게 됐습니다. 정의연의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2012년 명성교회의 지원을 받아 마포 쉼터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할머니들은 미술치료와 원예치료 등을 받으며 생활했고, 이곳을 방문하는 학생들과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도 피웠습니다.

할머니들에겐 단순한 생활 공간 이상이었습니다. '2015년 한·일 합의'에 대한 날선 비판도, 故 김복동 할머니가 유언처럼 남긴 재일학교 학생들의 장학금도 이 쉼터에서 시작됐습니다. 할머니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공간이자, 위안부 운동이 진행됐던 곳이자, 역사가 묻어 있는 공간인 셈입니다.

쉼터에서 생활하던 할머니들 과거 모습
길원옥 할머니가 나가고 나면, 마포 쉼터는 당초 할머니들이 살아 계신 동안에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운영 목적이었던 만큼 정리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8년간 쉼터를 무상으로 제공해 왔던 명성교회 측과 정의연 측도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쉼터의 향후 운영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는 할머니 5분이 머무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집 한 곳만 남았습니다.

※ '마포 쉼터'는 위안부 운동에서 의미가 적지 않은 공간이고 길원옥 할머니는 이 사안과 관련해 대표적인 인권운동가입니다. 때문에 길원옥 할머니의 쉼터 퇴소는 의미가 크다고 KBS 취재진은 판단했습니다. KBS는 정의연 측과 길 할머니의 수양아들 측에 취재 목적과 범위를 미리 전달하고 사전 양해를 얻은 뒤 할머니가 쉼터를 떠나시는 모습을 취재했습니다. 할머니와의 인터뷰 역시 할머니 가족분들에의 사전 협조와 동의를 구하고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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