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길고양이’ 갈등…중성화·급식소 대책은 있지만

입력 2020.06.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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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캣맘'은 혐오의 대상?


광주에서 3년째 '캣맘'으로 활동 중인 김진영 씨. 매일 아침 동네 곳곳에 만들어 둔 길고양이 밥 자리를 돌며 먹이를 치우고 물을 갈아주는 게 하루의 시작입니다. 번거롭지만 먹이를 기다리는 길고양이를 생각하면 행복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견뎌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누군가 몰래 밥그릇을 치워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어떤 날에는 '왜 먹이를 줘서 길고양이를 들끓게 하느냐'는 주민의 원성에 쫓기듯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예전보다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부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은 겁니다.

또 다른 캣맘인 A 씨.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로부터 공지문을 받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입주자회의에서 단지 내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근절하기로 의결했다는 것입니다. 길고양이 문제가 캣맘과 입주민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자, 입주자회의가 공식 안건으로 올려 결정한 겁니다.

사실상 '캣맘' A 씨를 겨냥한 경고문인 셈입니다. 광주광역시에서 활동 중인 캣맘은 3,000여 명. 매일같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보다 주민들의 혐오를 견디는 게 더 큰 어려움입니다.

■ 늘어나는 민원, 대책은 중성화지만…


광주에서 발생하는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매달 300여 건. 발정기 때 내는 울음소리 소음, 배설물로 인한 악취나 미관 손상, 먹이를 찾아 쓰레기봉투를 찢고 헤집는 행위 등이 주를 이룹니다. 겨울철에는 덜하지만,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사람들이 소음이나 악취에 민감해져 민원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게 구청 담당자들의 얘깁니다.

각종 갈등과 민원을 줄일 유일한 방법은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광주는 물론 전국의 지자체가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TNR(Trap-Neuter-Return)이라고도 불리는 중성화 사업은 이름대로 일단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 방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광주시의 경우 지난 2015년 414마리, 2016년 416마리, 2017년 408마리, 2018년 732마리, 2019년 1,783마리를 중성화시켰고 올해는 1,895마리가 목표입니다.

중성화 사업은 민원이 제기된 곳부터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이나 다름없는 길고양이를 포획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길고양이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주인 없이 떠돌다 보니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막상 마주친다 해도 경계심이 강한 길고양이를 한 번에 포획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캣맘들과 공조가 없인 쉽지 않습니다. 매일 같은 시각 정해진 밥 자리에 찾아가 먹이를 채워주는 캣맘들은 길고양이에게 고맙고 친숙한 존재입니다. 지자체는 캣맘을 통해 권역별 길고양이 개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중성화 사업을 펼치는 데 도움을 구합니다. 실제로 광주시는 캣맘 단체와 협의해 중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시 전체 중성화 실적 중 절반 이상이 캣맘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사실 캣맘은 오히려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에 기여하고 있었던 겁니다.

■ 정책 있어도 주민 반감에 위축


그런데 길고양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은 민원 해소를 더디게 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길고양이 급식소'입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공간인데, 지난 2013년 서울시 강동구가 시작하면서 지금은 여러 지자체가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적이 드물어 비교적 민원이 덜 발생할 만한 지역에 급식소를 설치해 길고양이들을 유인하고 관리한다는 취지입니다.

급식소에서 배를 불리면 먹이를 찾아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의 쓰레기를 헤집는 일을 줄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민가로부터 격리돼 민원과 갈등도 함께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도심에서 민가와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을 찾기 어렵고, 지자체가 추진하다 보니 광주만 해도 주민센터와 같은 관공서에 급식소가 설치되는 실정입니다.

광주에는 현재 10곳의 급식소가 설치돼 있습니다. 면적이 20배 정도 작은 서울시 강동구에만 60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극히 적은 수지만, 이 조차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일단 반대 민원이 발생하면 폐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행정기관의 처지이다 보니 인근 캣맘들 정도만 인지하고 먹이를 채워주며 관리토록 하고 있습니다. 한때 급식소를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수년째 10곳을 근근이 운영 중입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급식소는 캣맘들이 개별적으로 만든 것보다 지속성이나 관리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지만 주민들의 반감 속에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 '공생' 위한 인식부터 절실


광주지역 시민모임 '쓰담쓰담'은 최근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공익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캣맘들이 먹이를 챙겨주며 빚어지는 갈등, 길고양이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이 결국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겁니다. 이들은 길고양이의 습성과 올바른 구조법, 중성화 사업을 알리는 워크숍을 열고, 직접 만든 길고양이 굿즈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홍보할 계획입니다.

쓰담쓰담 대표를 맡고 있는 육수진 씨는 "길고양이로 빚어지는 갈등이 개인 차원에서 풀어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말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추산되는 길고양이 개체 수는 100만여 마리. 늘어나는 민원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정부와 지자체까지 관련 정책을 세우고 있는 상황인 만큼 길고양이와 공생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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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끊이지 않는 ‘길고양이’ 갈등…중성화·급식소 대책은 있지만
    • 입력 2020-06-12 07:00:11
    취재K
■ 아직도 '캣맘'은 혐오의 대상?


광주에서 3년째 '캣맘'으로 활동 중인 김진영 씨. 매일 아침 동네 곳곳에 만들어 둔 길고양이 밥 자리를 돌며 먹이를 치우고 물을 갈아주는 게 하루의 시작입니다. 번거롭지만 먹이를 기다리는 길고양이를 생각하면 행복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견뎌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입니다. 누군가 몰래 밥그릇을 치워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고, 어떤 날에는 '왜 먹이를 줘서 길고양이를 들끓게 하느냐'는 주민의 원성에 쫓기듯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예전보다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일부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은 겁니다.

또 다른 캣맘인 A 씨.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로부터 공지문을 받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입주자회의에서 단지 내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근절하기로 의결했다는 것입니다. 길고양이 문제가 캣맘과 입주민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자, 입주자회의가 공식 안건으로 올려 결정한 겁니다.

사실상 '캣맘' A 씨를 겨냥한 경고문인 셈입니다. 광주광역시에서 활동 중인 캣맘은 3,000여 명. 매일같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것보다 주민들의 혐오를 견디는 게 더 큰 어려움입니다.

■ 늘어나는 민원, 대책은 중성화지만…


광주에서 발생하는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매달 300여 건. 발정기 때 내는 울음소리 소음, 배설물로 인한 악취나 미관 손상, 먹이를 찾아 쓰레기봉투를 찢고 헤집는 행위 등이 주를 이룹니다. 겨울철에는 덜하지만,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사람들이 소음이나 악취에 민감해져 민원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는 게 구청 담당자들의 얘깁니다.

각종 갈등과 민원을 줄일 유일한 방법은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는 것입니다. 광주는 물론 전국의 지자체가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TNR(Trap-Neuter-Return)이라고도 불리는 중성화 사업은 이름대로 일단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시킨 뒤 방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광주시의 경우 지난 2015년 414마리, 2016년 416마리, 2017년 408마리, 2018년 732마리, 2019년 1,783마리를 중성화시켰고 올해는 1,895마리가 목표입니다.

중성화 사업은 민원이 제기된 곳부터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생동물이나 다름없는 길고양이를 포획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된 길고양이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주인 없이 떠돌다 보니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없습니다. 막상 마주친다 해도 경계심이 강한 길고양이를 한 번에 포획하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캣맘들과 공조가 없인 쉽지 않습니다. 매일 같은 시각 정해진 밥 자리에 찾아가 먹이를 채워주는 캣맘들은 길고양이에게 고맙고 친숙한 존재입니다. 지자체는 캣맘을 통해 권역별 길고양이 개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중성화 사업을 펼치는 데 도움을 구합니다. 실제로 광주시는 캣맘 단체와 협의해 중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시 전체 중성화 실적 중 절반 이상이 캣맘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사실 캣맘은 오히려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에 기여하고 있었던 겁니다.

■ 정책 있어도 주민 반감에 위축


그런데 길고양이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은 민원 해소를 더디게 하고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길고양이 급식소'입니다.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공간인데, 지난 2013년 서울시 강동구가 시작하면서 지금은 여러 지자체가 비슷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인적이 드물어 비교적 민원이 덜 발생할 만한 지역에 급식소를 설치해 길고양이들을 유인하고 관리한다는 취지입니다.

급식소에서 배를 불리면 먹이를 찾아 아파트 단지나 주택가의 쓰레기를 헤집는 일을 줄일 수 있고, 자연스럽게 민가로부터 격리돼 민원과 갈등도 함께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나 도심에서 민가와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을 찾기 어렵고, 지자체가 추진하다 보니 광주만 해도 주민센터와 같은 관공서에 급식소가 설치되는 실정입니다.

광주에는 현재 10곳의 급식소가 설치돼 있습니다. 면적이 20배 정도 작은 서울시 강동구에만 60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극히 적은 수지만, 이 조차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일단 반대 민원이 발생하면 폐쇄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행정기관의 처지이다 보니 인근 캣맘들 정도만 인지하고 먹이를 채워주며 관리토록 하고 있습니다. 한때 급식소를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수년째 10곳을 근근이 운영 중입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급식소는 캣맘들이 개별적으로 만든 것보다 지속성이나 관리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지만 주민들의 반감 속에 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겁니다.

■ '공생' 위한 인식부터 절실


광주지역 시민모임 '쓰담쓰담'은 최근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공익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캣맘들이 먹이를 챙겨주며 빚어지는 갈등, 길고양이에 대한 주민들의 민원이 결국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겁니다. 이들은 길고양이의 습성과 올바른 구조법, 중성화 사업을 알리는 워크숍을 열고, 직접 만든 길고양이 굿즈를 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홍보할 계획입니다.

쓰담쓰담 대표를 맡고 있는 육수진 씨는 "길고양이로 빚어지는 갈등이 개인 차원에서 풀어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캠페인을 기획했다"고 말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추산되는 길고양이 개체 수는 100만여 마리. 늘어나는 민원과 갈등을 해소하고자 정부와 지자체까지 관련 정책을 세우고 있는 상황인 만큼 길고양이와 공생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모색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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