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앞에서, 과연 그들은 공정할 수 있을까

입력 2020.06.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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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11일) 서울중앙지검에선 시민들이 참여하는 부의심의위원회(시민위)가 열렸습니다. 무작위로 뽑힌 주부, 선생님, 회사원, 대학원생 등 15명은 오후 2시부터 서울중앙지검 13층 소회의실에 모였는데요.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일 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을 검찰이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판단했습니다. 3시간 40분 동안의 심의, 그 결과 시민들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부의하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검찰청은 시민위 결정을 받아들여,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했다고 어제(12일) 밝혔습니다. 짧으면 2주 안으로 이 부회장이 요청한 수사심의위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제 공은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에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로 넘어갔습니다.

■ "주택 복권 추첨하듯"…무작위로 뽑힐 수사심의위원

그렇다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일단 250명이 있는 위원 명부가 존재합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4조에는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실제 명부에는 변호사 등 법조인은 물론, 언론계·학계·시민단체 등에서 꽤 알려진 인물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사심의위를 꾸리기로 결정하면, 수사심의위원장을 필두로 시민위원 2명도 함께 모여 심의위에 참여할 15명의 위원을 추첨합니다. 250명을 법조계·학계 등 4개 그룹으로 나눈 뒤 뽑게 되는데요. 그룹을 나누지 않고 250명 전원 가운데 무작위로 선발하면, 오히려 특정 직업군에 편중될 우려도 있기 때문에 그룹을 나눠 추첨하는 겁니다. 추첨에 참여했던 인사는 "주택 복권 추첨하듯 4개 그룹에서 사람을 뽑게 된다"며 "그래서 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명부에 있다고 다 뽑힐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전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어야 하고, 수사심의위 당일 출석이 가능한 인물을 우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운영지침은 규정합니다. 만약 맡게 될 사안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위원이라면, 위원장에게 "심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선발된 위원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심의 당일에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 "질문 쏟아지기도"…재판 방불케 하는 수사심의위

수사심의위 당일, 위원장을 빼고 10명 미만이 모이게 되면 기일을 다시 정해 소집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수사심의위 당일 바로 심의와 의결이 진행되는데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은 이를 두고 "재판받는 느낌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에서 피고와 원고가 각자 변론하듯, 수사심의위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실제 검찰과 사건 관계인 측이 참석해 직접 구술 변론을 펼칠 수 있습니다. 각각 30분씩 기회가 주어지고, 원한다면 상대편이 없는 상태에서 의견 진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한쪽이 의견 진술을 원한다면, 다른 쪽에도 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운영지침은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심의위원들은 사건에 대해 궁금하거나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요. 질의 시간은 국정감사 때처럼 제한합니다. 수사심의위에 참석한 인사는 "하고 싶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의견진술도 모두 마치고 나면, 수사심의위장에는 위원장과 위원들만 남습니다. 공정한 표결을 위해 검찰과 사건 관계인 측이 모두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사심의위원들은 사전에 검찰과 사건 관계인 등이 제출한 의견서와 구두 진술 등을 토대로 표결 내용을 각자 결정한 뒤 심의의견서에 '기소', '불기소' 등 결과만 적어넣게 됩니다. 만약 위원 중 의견을 적어 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위원장에게 요청해 의견을 서면에 담아 별도로 첨부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검찰은 심의 결과를 존중할 뿐 꼭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껏 8차례 있었던 수사심의위 결정 의견은 검찰에서 모두 '존중'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의의견서(왼쪽)와 각 위원이 써야 하는 서약서(오른쪽)심의의견서(왼쪽)와 각 위원이 써야 하는 서약서(오른쪽)

■ '9 대 6'…꽤 팽팽했던 시민위

취재팀은 그제 시민위가 열리기 전, 수사심의위 제도에 대해 알고 있는 퇴직 검사 등에게 전화를 수차례 돌렸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심의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소집 의견이 만장일치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습니다. 워낙 복잡한 사안이라 시민위원들이 '수사심의위로 일단 보내보자'고 바로 결론 내릴 거라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달랐습니다. 의견은 9대 6으로 갈렸다고 합니다. 9명은 이 부회장 요청대로 수사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고 봤지만, 6명은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여부를 가릴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은 누구도 예측하거나 예단할 수 없다"던 과거 수사심의위 참여 인사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수사심의위 소집 결정 이후, 양창수 수사심의위원장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대법관 시절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에 대해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렸던 양창수 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맡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입니다. 실제 수사심의위 운영지침 제11조는 "현안위원이 수사, 재판에 관여한 공무원 등, 참여하는 게 부적절한 사람일 경우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양 위원장이 이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인데요.

규정상 위원장은 표결에 참여하진 않습니다. 또 위원장은 개별 위원들에게 "이 사안은 이렇다"고 말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양 위원장의 항변입니다. 이 부회장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은 "양 위원장이 과거 삼성 관련 판결을 했고, 이에 대해 일반적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기피 등에 대해 검토 등을 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사심의위는 계속 수사나 기소, 구속 여부 등에 대해 검찰 외부 위원들의 공정한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한 제도라는 게 양 위원장과 대검찰청의 입장입니다. 과연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지난 구속영장심사에 이은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의 두 번째 라운드', 결과가 어떨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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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앞에서, 과연 그들은 공정할 수 있을까
    • 입력 2020-06-13 07:01:17
    취재K
그제(11일) 서울중앙지검에선 시민들이 참여하는 부의심의위원회(시민위)가 열렸습니다. 무작위로 뽑힌 주부, 선생님, 회사원, 대학원생 등 15명은 오후 2시부터 서울중앙지검 13층 소회의실에 모였는데요. 이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일 낸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요청'을 검찰이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판단했습니다. 3시간 40분 동안의 심의, 그 결과 시민들은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부의하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대검찰청은 시민위 결정을 받아들여,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했다고 어제(12일) 밝혔습니다. 짧으면 2주 안으로 이 부회장이 요청한 수사심의위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제 공은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에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로 넘어갔습니다.

■ "주택 복권 추첨하듯"…무작위로 뽑힐 수사심의위원

그렇다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는 어떻게 구성될까요. 일단 250명이 있는 위원 명부가 존재합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4조에는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서 덕망과 식견이 풍부한 사회 각계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실제 명부에는 변호사 등 법조인은 물론, 언론계·학계·시민단체 등에서 꽤 알려진 인물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사심의위를 꾸리기로 결정하면, 수사심의위원장을 필두로 시민위원 2명도 함께 모여 심의위에 참여할 15명의 위원을 추첨합니다. 250명을 법조계·학계 등 4개 그룹으로 나눈 뒤 뽑게 되는데요. 그룹을 나누지 않고 250명 전원 가운데 무작위로 선발하면, 오히려 특정 직업군에 편중될 우려도 있기 때문에 그룹을 나눠 추첨하는 겁니다. 추첨에 참여했던 인사는 "주택 복권 추첨하듯 4개 그룹에서 사람을 뽑게 된다"며 "그래서 공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명부에 있다고 다 뽑힐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이전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어야 하고, 수사심의위 당일 출석이 가능한 인물을 우선으로 뽑아야 한다고 운영지침은 규정합니다. 만약 맡게 될 사안에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위원이라면, 위원장에게 "심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스스로 회피 신청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선발된 위원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심의 당일에야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 "질문 쏟아지기도"…재판 방불케 하는 수사심의위

수사심의위 당일, 위원장을 빼고 10명 미만이 모이게 되면 기일을 다시 정해 소집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수사심의위 당일 바로 심의와 의결이 진행되는데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은 이를 두고 "재판받는 느낌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재판에서 피고와 원고가 각자 변론하듯, 수사심의위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실제 검찰과 사건 관계인 측이 참석해 직접 구술 변론을 펼칠 수 있습니다. 각각 30분씩 기회가 주어지고, 원한다면 상대편이 없는 상태에서 의견 진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한쪽이 의견 진술을 원한다면, 다른 쪽에도 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운영지침은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심의위원들은 사건에 대해 궁금하거나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가감 없이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요. 질의 시간은 국정감사 때처럼 제한합니다. 수사심의위에 참석한 인사는 "하고 싶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의견진술도 모두 마치고 나면, 수사심의위장에는 위원장과 위원들만 남습니다. 공정한 표결을 위해 검찰과 사건 관계인 측이 모두 자리를 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사심의위원들은 사전에 검찰과 사건 관계인 등이 제출한 의견서와 구두 진술 등을 토대로 표결 내용을 각자 결정한 뒤 심의의견서에 '기소', '불기소' 등 결과만 적어넣게 됩니다. 만약 위원 중 의견을 적어 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위원장에게 요청해 의견을 서면에 담아 별도로 첨부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검찰은 심의 결과를 존중할 뿐 꼭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껏 8차례 있었던 수사심의위 결정 의견은 검찰에서 모두 '존중'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심의의견서(왼쪽)와 각 위원이 써야 하는 서약서(오른쪽)
■ '9 대 6'…꽤 팽팽했던 시민위

취재팀은 그제 시민위가 열리기 전, 수사심의위 제도에 대해 알고 있는 퇴직 검사 등에게 전화를 수차례 돌렸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심의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소집 의견이 만장일치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습니다. 워낙 복잡한 사안이라 시민위원들이 '수사심의위로 일단 보내보자'고 바로 결론 내릴 거라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달랐습니다. 의견은 9대 6으로 갈렸다고 합니다. 9명은 이 부회장 요청대로 수사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고 봤지만, 6명은 '수사심의위에서 기소 여부를 가릴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은 누구도 예측하거나 예단할 수 없다"던 과거 수사심의위 참여 인사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수사심의위 소집 결정 이후, 양창수 수사심의위원장을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대법관 시절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사건'에 대해 이 부회장의 입장에서 판단을 내렸던 양창수 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맡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입니다. 실제 수사심의위 운영지침 제11조는 "현안위원이 수사, 재판에 관여한 공무원 등, 참여하는 게 부적절한 사람일 경우 기피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양 위원장이 이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인데요.

규정상 위원장은 표결에 참여하진 않습니다. 또 위원장은 개별 위원들에게 "이 사안은 이렇다"고 말할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 양 위원장의 항변입니다. 이 부회장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은 "양 위원장이 과거 삼성 관련 판결을 했고, 이에 대해 일반적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기피 등에 대해 검토 등을 한 바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사심의위는 계속 수사나 기소, 구속 여부 등에 대해 검찰 외부 위원들의 공정한 판단을 받아볼 수 있게 한 제도라는 게 양 위원장과 대검찰청의 입장입니다. 과연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지난 구속영장심사에 이은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의 두 번째 라운드', 결과가 어떨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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