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당신의 ○○○를 알고 있다

입력 2020.06.1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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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나 유튜브 쓰면서 연애한다는 걸 티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대학생 서민규 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서 씨의 여자친구 조세진 씨는 "미혼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4일 '시사기획 창' 취재진이 서울 신촌에서 시민 대상 '구글 계정 들여다보기'를 진행한 현장에서다. 취재진은 이 날부터 한 달간 60명의 시민 계정을 동의 하에 들여다봤다. 반응은 이구동성이었다. "이걸 어떻게 알았지?" 자신의 계정 안에 이런 페이지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60명 중 단 1명이었다.

기자의 구글 계정 화면과 타임라인. 연령대와 관심사는 물론 가계수입, 결혼 여부 등을 정확히 추정하고 있다. 수년 간의 위치이동 궤적과 당일 촬영한 사진도 고스란히 담겨있다.기자의 구글 계정 화면과 타임라인. 연령대와 관심사는 물론 가계수입, 결혼 여부 등을 정확히 추정하고 있다. 수년 간의 위치이동 궤적과 당일 촬영한 사진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누구나 자신의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글 또는 유튜브 창에서 계정 > 계정 관리 > 데이터 및 맞춤설정 관리로 들어간 다음 '광고설정으로 이동' 링크를 클릭하면 된다. 연령대와 성별, 관심사와 취미는 물론 '가계수입 중위' '주택소유자' '학사학위 소지자' '기혼' 등 민감한 내용까지 알아맞힌 내용이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글의 인공지능이 맞춤광고 서비스를 위해 당신의 신상을 추정한 결과다. 검색, 광고 클릭, 유튜브 시청, 구매 기록, 매장 방문, 위치 이동 등 우리의 거의 모든 활동이 인공지능의 원료다. 우리 몸에 스마트폰이 붙어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데이터가 돈이다
구글은 이에 대해 "로그인된 상태로 활동한 내역이 이러한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밝힌 다른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에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연애중'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무수한 이용자들과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면 해당 범주에 포함돼 맞춤광고에 노출된다는 얘기다. 광고주는 누구에게 광고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이 해당 분야에 관심있을 만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낸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이용자 데이터가 많이 수집될수록 추정 값은 정확해진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필요가 있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이용자 1명이 "○○호텔 방이 깨끗하다"는 후기를 남기면 믿을 만한 정보인지 의심스럽다. 10명이 긍정적 후기를 남겼다면 믿음이 가기 시작한다. 100명이 "깨끗하다"고 말한 호텔이 있다면 이제 우리의 손길은 예약 버튼으로 향한다. 주관이 모여 객관으로 향한다. 1천 명, 1만 명이 모일수록 객관에 가까워진다. 가보지도 않은 숙소의 청결 상태가 데이터 양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인지 능력 범위 내의 얘기다.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가보자.

국내 5천만 대 넘는 스마트폰이 두 건씩만 데이터를 내놔도 1억 건이다. 스마트폰은 전원이 켜져 있기만 해도 위치정보를 생산한다. 5천만 대가 생산하는 데이터 1년치가 모이면 그 양은 상상조차 어렵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IDC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데이터 총량은 40 제타바이트(ZB)를 넘었다. 1ZB는 1조 기가바이트(GB)를 뜻한다. 10GB짜리 초고화질 영화 1천억 편이 1ZB다. 구글은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용한다. 우리가 연애 중인지, 학사 학위 소지지인지를 인공지능이 '객관'에 가깝게 알아맞힐 수 있는 건 데이터의 양 덕분이다.

국내 모바일 쇼핑 거래액 추이국내 모바일 쇼핑 거래액 추이

호텔 예약 사이트는 다수의 이용후기를 밑천으로 예약 수수료를 받는다. 배달의민족은 국내 수만 곳의 외식업체 정보와 월 1천만 건에 달하는 이용자정보를 보유한 덕에 4조7천억 원에 매각됐다. 이용자 취향과 위치정보를 결합시켜 최적의 배송동선을 끌어내는 모바일 쇼핑은 2015년 국내 거래액 25조 원, 지난해 87조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온라인 책판매로 시작한 쇼핑몰 아마존은 단숨에 세계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구글의 지난해 매출은 우리 돈 192조 원, 해마다 매출의 70~80%는 광고에서 나온다. 데이터가 곧 돈이다.

■자본주의 작동 방식이 바뀐다
2010년대 들어 학계를 중심으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많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다수 대중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정당한 세금을 부과받고 있는가…. 산업화 시대 기업이 생산을 하려면 '토지' '자본' '노동'이 반드시 필요했다. 구글, 아마존 등 지능화 시대를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들은 '인터넷망' '데이터' '노동력'을 생산 요소 삼아 막대한 가치를 창출한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이 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봐야 한다"며 "공공재 성격이 짙은 인터넷망, 이용자 모두가 참여해 만들어지는 데이터를 이용해 창출되는 부에 대해 이를 어떻게 정당하게 나눌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은 시작 단계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18년부터 '유럽에서 발생한 데이터는 유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일반데이터보호규칙'(GDPR)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글로벌IT 기업에 매출액의 3%를, 영국은 4월부터 매출액의 2%를 과세하고 있다. G20 회원국들은 2월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매출액 일정 규모 디지털 기업에 '디지털세' 부과 원칙을 합의했다. 이르면 다음달 OECD 회의에서 구체적 과세 방안이 나올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관련 부처들로 구성된 TF를 꾸려 G20 디지털세 부과 방안에 대응하고 있다. 2015년 전세계 스마트폰 가입자가 랜선 가입자 수를 넘어서며 본격적인 지능화 시대가 도래한 것을 생각하면 각국 정부의 움직임은 속도가 늦는 편이다.

이같은 논의의 한 축에서는 기본소득 도입론 등 기존의 복지 제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막대한 부가 특정 소수 기업에만 돌아가고 일자리 지각변동이 어느 시대보다 강한 충격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민에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놓고 국내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잇따라 법안 발의를 서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면서 과거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복지제도가 유럽 각국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국민 개인이 안정감을 갖는 동시에 사회에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투자로서 진지하게 논의할 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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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글은 당신의 ○○○를 알고 있다
    • 입력 2020-06-14 08:01:58
    취재K
"구글이나 유튜브 쓰면서 연애한다는 걸 티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대학생 서민규 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서 씨의 여자친구 조세진 씨는 "미혼이라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4일 '시사기획 창' 취재진이 서울 신촌에서 시민 대상 '구글 계정 들여다보기'를 진행한 현장에서다. 취재진은 이 날부터 한 달간 60명의 시민 계정을 동의 하에 들여다봤다. 반응은 이구동성이었다. "이걸 어떻게 알았지?" 자신의 계정 안에 이런 페이지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60명 중 단 1명이었다.

기자의 구글 계정 화면과 타임라인. 연령대와 관심사는 물론 가계수입, 결혼 여부 등을 정확히 추정하고 있다. 수년 간의 위치이동 궤적과 당일 촬영한 사진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누구나 자신의 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글 또는 유튜브 창에서 계정 > 계정 관리 > 데이터 및 맞춤설정 관리로 들어간 다음 '광고설정으로 이동' 링크를 클릭하면 된다. 연령대와 성별, 관심사와 취미는 물론 '가계수입 중위' '주택소유자' '학사학위 소지자' '기혼' 등 민감한 내용까지 알아맞힌 내용이 나온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글의 인공지능이 맞춤광고 서비스를 위해 당신의 신상을 추정한 결과다. 검색, 광고 클릭, 유튜브 시청, 구매 기록, 매장 방문, 위치 이동 등 우리의 거의 모든 활동이 인공지능의 원료다. 우리 몸에 스마트폰이 붙어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데이터가 돈이다
구글은 이에 대해 "로그인된 상태로 활동한 내역이 이러한 카테고리에 속한다고 밝힌 다른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에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연애중'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무수한 이용자들과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면 해당 범주에 포함돼 맞춤광고에 노출된다는 얘기다. 광고주는 누구에게 광고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이 해당 분야에 관심있을 만한 사람을 알아서 찾아낸다. 이용자가 많을수록, 이용자 데이터가 많이 수집될수록 추정 값은 정확해진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필요가 있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이용자 1명이 "○○호텔 방이 깨끗하다"는 후기를 남기면 믿을 만한 정보인지 의심스럽다. 10명이 긍정적 후기를 남겼다면 믿음이 가기 시작한다. 100명이 "깨끗하다"고 말한 호텔이 있다면 이제 우리의 손길은 예약 버튼으로 향한다. 주관이 모여 객관으로 향한다. 1천 명, 1만 명이 모일수록 객관에 가까워진다. 가보지도 않은 숙소의 청결 상태가 데이터 양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인지 능력 범위 내의 얘기다.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가보자.

국내 5천만 대 넘는 스마트폰이 두 건씩만 데이터를 내놔도 1억 건이다. 스마트폰은 전원이 켜져 있기만 해도 위치정보를 생산한다. 5천만 대가 생산하는 데이터 1년치가 모이면 그 양은 상상조차 어렵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IDC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 데이터 총량은 40 제타바이트(ZB)를 넘었다. 1ZB는 1조 기가바이트(GB)를 뜻한다. 10GB짜리 초고화질 영화 1천억 편이 1ZB다. 구글은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용한다. 우리가 연애 중인지, 학사 학위 소지지인지를 인공지능이 '객관'에 가깝게 알아맞힐 수 있는 건 데이터의 양 덕분이다.

국내 모바일 쇼핑 거래액 추이
호텔 예약 사이트는 다수의 이용후기를 밑천으로 예약 수수료를 받는다. 배달의민족은 국내 수만 곳의 외식업체 정보와 월 1천만 건에 달하는 이용자정보를 보유한 덕에 4조7천억 원에 매각됐다. 이용자 취향과 위치정보를 결합시켜 최적의 배송동선을 끌어내는 모바일 쇼핑은 2015년 국내 거래액 25조 원, 지난해 87조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온라인 책판매로 시작한 쇼핑몰 아마존은 단숨에 세계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구글의 지난해 매출은 우리 돈 192조 원, 해마다 매출의 70~80%는 광고에서 나온다. 데이터가 곧 돈이다.

■자본주의 작동 방식이 바뀐다
2010년대 들어 학계를 중심으로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많은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다수 대중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정당한 세금을 부과받고 있는가…. 산업화 시대 기업이 생산을 하려면 '토지' '자본' '노동'이 반드시 필요했다. 구글, 아마존 등 지능화 시대를 움직이는 글로벌 기업들은 '인터넷망' '데이터' '노동력'을 생산 요소 삼아 막대한 가치를 창출한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이 질적으로 변화했다고 봐야 한다"며 "공공재 성격이 짙은 인터넷망, 이용자 모두가 참여해 만들어지는 데이터를 이용해 창출되는 부에 대해 이를 어떻게 정당하게 나눌 것인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각국 정부의 대응은 시작 단계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18년부터 '유럽에서 발생한 데이터는 유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일반데이터보호규칙'(GDPR)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부터 글로벌IT 기업에 매출액의 3%를, 영국은 4월부터 매출액의 2%를 과세하고 있다. G20 회원국들은 2월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매출액 일정 규모 디지털 기업에 '디지털세' 부과 원칙을 합의했다. 이르면 다음달 OECD 회의에서 구체적 과세 방안이 나올 예정이다. 한국 정부도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관련 부처들로 구성된 TF를 꾸려 G20 디지털세 부과 방안에 대응하고 있다. 2015년 전세계 스마트폰 가입자가 랜선 가입자 수를 넘어서며 본격적인 지능화 시대가 도래한 것을 생각하면 각국 정부의 움직임은 속도가 늦는 편이다.

이같은 논의의 한 축에서는 기본소득 도입론 등 기존의 복지 제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막대한 부가 특정 소수 기업에만 돌아가고 일자리 지각변동이 어느 시대보다 강한 충격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민에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놓고 국내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잇따라 법안 발의를 서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면서 과거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복지제도가 유럽 각국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국민 개인이 안정감을 갖는 동시에 사회에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투자로서 진지하게 논의할 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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