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강압없이도 처벌…‘비동의 간음죄’가 뭐길래?

입력 2020.06.14 (08:01) 수정 2020.06.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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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가 막이 올랐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발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까지 약 400개의 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이 가운데 일부 법안은 발의 순간부터 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팩트체크K팀은 이 중 논란과 이슈의 중심이 된 법안들을 골라, 관련 법안 주요 내용과 관련 정보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강제적 간음은 유형력(폭행·협박 등 넒은 의미의 물리력) 유무와 상관없이 처벌돼야 하고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면 가중처벌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최근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주장한 말입니다. 비동의 간음죄의 개념은 2018년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대중에 알려졌습니다. 20대 국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진 못했죠. 그랬던 것을 21대 국회 문이 열리자마자 백 의원이 다시 발의한 겁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틀째인 지난달 31일 “20대 국회가 외면한 비동의 강간죄 입법을 가장 먼저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2018년 미투 이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재조명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여성인권운동의 숙원이기도 한데요. 살펴봐야 할 지점은 없을까요? 항간에 알려진 대로 다수의 선진국이 이미 도입하고 있으니 우리도 마땅히 따라가야 할 국제적 기준일까요? 이를 바라보는 찬반 입장은 무엇일까요? 그 맥락을 들여다봤습니다.

'비동의 간음죄’도입 주장…왜 나왔나?

비동의 간음죄의 핵심은 형법을 개정해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 등 ‘가해자의 유형력 행사’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강화하는 것입니다. 강압이 없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라면 처벌하자는 거죠.

현행법(형법 297조 등)에 따르면 강간죄란, 폭행·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상황에 해당해야 유죄로 인정됩니다. 이 밖에도 피해자가 심신상실·항거불능의 상태였거나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해 간음한 경우도 강간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성폭력 가해자의 폭행·협박의 수준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이른바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범죄 성립 여부를 따지고 있습니다. 적용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자칫 무고한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령 피해자가 공포심이나 수치심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가해자가 유형력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은 경우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 문제가 현행 성폭력법 체계의 한계로 지적돼왔습니다. 사실상 강간을 해놓고도 강간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죠.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인 강간 피해 상담 건 124건 중 최협의설에 따른 강간죄 요건을 충족한 경우가 15건으로 12.1%에 불과했습니다. 강간 피해사례 중 70% 이상이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발생했다는 분석결과도 있습니다.(2019.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분석)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국제적 추세인가?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추세는 어떨까요? 비동의 간음죄의 개념은 여러 국가가 시행하고 있고 국제기구가 도입을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는 피해자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EDAW)는 우리 정부에 “형법상 강간을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한정하지 말고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중점에 두도록 시정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4년 8월 발효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정폭력 방지 및 근절을 위한 유럽평의회 협약도 가입국의 성폭력법 체계를 피해자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바꾸도록 규정했습니다. 협약에는 유럽의 34개국이 비준하고 46개국이 서명했습니다.

영국은 2003년 동의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은 강간죄 조항을 개정했고 독일은 2016년에, 스웨덴은 2018년에 각각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했습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하와이·워싱턴 D.C·플로리다 등 11개 주(州)에서 법조문이나 판례상으로 피해자의 적극적 동의나 자유로운 동의가 없는 경우를 강간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1981년부터 강간을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성관계로 봤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참여하는 경우'만 동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1992년부터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을 규정했는데 피해자가 성행위 도중에 동의를 철회하는 경우도 비동의로 간주합니다.

2018년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스웨덴은 가해자가 심각한 부주의로 피해자의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에도 '과실에 의한 강간'으로 처벌하는 등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조속히 추진" vs "시기상조"…찬·반 핵심 논리는?

폭행·협박을 통한 강간이나 상대방이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이어간 경우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보기 힘든 경우가 문제가 되는 거죠.

찬반 양측이 대립하는 핵심 쟁점은 피해자의 동의와 가해자의 인식 여부를 사법부가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느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합의한 관계였지만 이후 동의가 없었다고 고소해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남용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넷 공간에선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법"이라거나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찬성 측에선 비동의 간음죄의 범죄성은 피해자의 속마음을 헤아려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신체적 표현이나 정황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거짓 진술이나 가해자의 오인만으로 처벌받을 확률이 낮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선 비동의 간음죄 개념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반대 측은 동의 여부를 표현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불분명한 요소가 생길 수밖에 없고, 사법부의 자의적인 해석 또한 끼어들 여지가 많다고 반박합니다. 특히 부부·연인 간에 발생하는 문제나 합의했다가 말을 바꾸는 경우 사법부가 시시비비를 따지기 어렵고, 성관계 시 사전 동의는 물론 행위가 종료될 때까지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지속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행법하에서 생기는 부작용 못지않게 비동의 간음죄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도 많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는 가운데 찬성 측에서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반대 측은 신중론을 앞세우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죠. 이런 이유로 20대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들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018년 9월 작성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대한 입법 취지와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문제, 해외사례, 학계 동향, 관계기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여야 의원들의 법안을 종합적으로 따져 작성된 것입니다.

이듬해인 2019년 3월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에 관련 법안이 안건으로 올랐지만,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2018년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대한 상반된 내용의 연구보고서와 논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형법상 성폭력범죄의 판단기준 및 개선방안」연구보고서에서 연구진은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동의 없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범죄화에 대해 우리 형법 체계에 부합하는 개선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요. 다른 연구진은「비동의 간음죄 입법론의 비판적 검토」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비동의 간음죄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 강간죄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선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해드린 것과 같습니다.


'Me too' 이후 관심, 20대에 좌절…21대에 필요한 건? 사회적 공론!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성폭력 범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작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그런 만큼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면서도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는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2018년 법사위 검토 당시 법안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성폭력법 체계 전체에 대해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같은 입장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와 논문에서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연구진의 의견이 같았습니다.

일부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 없이 사법부가 현행 강간죄 규정을 좀 더 확대해 적용하거나 아예 해당 규정을 더 넓은 개념으로 개정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죠.

이런 다양한 의견들을 포함해서 기존 체계 자체를 바꿔야만 할지, 아니면 운용을 통해 틈을 메울 수 있을지 등에 대해 21대에서 더 폭넓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취재지원: 노수아 / 팩트체크 인턴 기자(xooah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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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체크K] 강압없이도 처벌…‘비동의 간음죄’가 뭐길래?
    • 입력 2020-06-14 08:01:58
    • 수정2020-06-15 10:54:58
    팩트체크K
21대 국회가 막이 올랐습니다. 국회의원들의 발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1일까지 약 400개의 법안이 계류 중입니다. 이 가운데 일부 법안은 발의 순간부터 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팩트체크K팀은 이 중 논란과 이슈의 중심이 된 법안들을 골라, 관련 법안 주요 내용과 관련 정보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강제적 간음은 유형력(폭행·협박 등 넒은 의미의 물리력) 유무와 상관없이 처벌돼야 하고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면 가중처벌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최근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주장한 말입니다. 비동의 간음죄의 개념은 2018년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대중에 알려졌습니다. 20대 국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진 못했죠. 그랬던 것을 21대 국회 문이 열리자마자 백 의원이 다시 발의한 겁니다.

정의당은 21대 국회 개원 이틀째인 지난달 31일 “20대 국회가 외면한 비동의 강간죄 입법을 가장 먼저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2018년 미투 이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이 재조명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은 여성인권운동의 숙원이기도 한데요. 살펴봐야 할 지점은 없을까요? 항간에 알려진 대로 다수의 선진국이 이미 도입하고 있으니 우리도 마땅히 따라가야 할 국제적 기준일까요? 이를 바라보는 찬반 입장은 무엇일까요? 그 맥락을 들여다봤습니다.

'비동의 간음죄’도입 주장…왜 나왔나?

비동의 간음죄의 핵심은 형법을 개정해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 등 ‘가해자의 유형력 행사’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강화하는 것입니다. 강압이 없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라면 처벌하자는 거죠.

현행법(형법 297조 등)에 따르면 강간죄란, 폭행·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상황에 해당해야 유죄로 인정됩니다. 이 밖에도 피해자가 심신상실·항거불능의 상태였거나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해 간음한 경우도 강간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성폭력 가해자의 폭행·협박의 수준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이른바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범죄 성립 여부를 따지고 있습니다. 적용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자칫 무고한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가령 피해자가 공포심이나 수치심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가해자가 유형력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은 경우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 문제가 현행 성폭력법 체계의 한계로 지적돼왔습니다. 사실상 강간을 해놓고도 강간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죠.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성인 강간 피해 상담 건 124건 중 최협의설에 따른 강간죄 요건을 충족한 경우가 15건으로 12.1%에 불과했습니다. 강간 피해사례 중 70% 이상이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발생했다는 분석결과도 있습니다.(2019.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분석)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국제적 추세인가?

그렇다면 국제사회의 추세는 어떨까요? 비동의 간음죄의 개념은 여러 국가가 시행하고 있고 국제기구가 도입을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는 피해자 동의 없는 성적 행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EDAW)는 우리 정부에 “형법상 강간을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한정하지 말고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중점에 두도록 시정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4년 8월 발효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정폭력 방지 및 근절을 위한 유럽평의회 협약도 가입국의 성폭력법 체계를 피해자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바꾸도록 규정했습니다. 협약에는 유럽의 34개국이 비준하고 46개국이 서명했습니다.

영국은 2003년 동의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삼은 강간죄 조항을 개정했고 독일은 2016년에, 스웨덴은 2018년에 각각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했습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하와이·워싱턴 D.C·플로리다 등 11개 주(州)에서 법조문이나 판례상으로 피해자의 적극적 동의나 자유로운 동의가 없는 경우를 강간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1981년부터 강간을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성관계로 봤고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참여하는 경우'만 동의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1992년부터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여부에 따라 강간을 규정했는데 피해자가 성행위 도중에 동의를 철회하는 경우도 비동의로 간주합니다.

2018년 비동의 간음죄를 도입한 스웨덴은 가해자가 심각한 부주의로 피해자의 동의를 확인하지 못한 경우에도 '과실에 의한 강간'으로 처벌하는 등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조속히 추진" vs "시기상조"…찬·반 핵심 논리는?

폭행·협박을 통한 강간이나 상대방이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강제로 성관계를 이어간 경우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게 보기 힘든 경우가 문제가 되는 거죠.

찬반 양측이 대립하는 핵심 쟁점은 피해자의 동의와 가해자의 인식 여부를 사법부가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느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합의한 관계였지만 이후 동의가 없었다고 고소해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남용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인터넷 공간에선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법"이라거나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찬성 측에선 비동의 간음죄의 범죄성은 피해자의 속마음을 헤아려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신체적 표현이나 정황을 종합적으로 따져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거짓 진술이나 가해자의 오인만으로 처벌받을 확률이 낮다고 주장합니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선 비동의 간음죄 개념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반대 측은 동의 여부를 표현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불분명한 요소가 생길 수밖에 없고, 사법부의 자의적인 해석 또한 끼어들 여지가 많다고 반박합니다. 특히 부부·연인 간에 발생하는 문제나 합의했다가 말을 바꾸는 경우 사법부가 시시비비를 따지기 어렵고, 성관계 시 사전 동의는 물론 행위가 종료될 때까지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지속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행법하에서 생기는 부작용 못지않게 비동의 간음죄 도입으로 인한 부작용도 많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는 가운데 찬성 측에서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반대 측은 신중론을 앞세우며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죠. 이런 이유로 20대 국회에 제출된 관련 법들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018년 9월 작성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대한 입법 취지와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문제, 해외사례, 학계 동향, 관계기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여야 의원들의 법안을 종합적으로 따져 작성된 것입니다.

이듬해인 2019년 3월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에 관련 법안이 안건으로 올랐지만,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2018년에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대한 상반된 내용의 연구보고서와 논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형법상 성폭력범죄의 판단기준 및 개선방안」연구보고서에서 연구진은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동의 없는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의 범죄화에 대해 우리 형법 체계에 부합하는 개선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비동의 간음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요. 다른 연구진은「비동의 간음죄 입법론의 비판적 검토」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비동의 간음죄 규정을 도입하는 것이 강간죄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지에 대해선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해드린 것과 같습니다.


'Me too' 이후 관심, 20대에 좌절…21대에 필요한 건? 사회적 공론!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성폭력 범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작지 않은 문제입니다.

이미 늦었기 때문에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그런 만큼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반대하는 측에서 '신중한 접근'을 강조하면서도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는 시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2018년 법사위 검토 당시 법안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성폭력법 체계 전체에 대해 사회 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같은 입장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최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동의 간음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와 논문에서도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연구진의 의견이 같았습니다.

일부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 없이 사법부가 현행 강간죄 규정을 좀 더 확대해 적용하거나 아예 해당 규정을 더 넓은 개념으로 개정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죠.

이런 다양한 의견들을 포함해서 기존 체계 자체를 바꿔야만 할지, 아니면 운용을 통해 틈을 메울 수 있을지 등에 대해 21대에서 더 폭넓은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취재지원: 노수아 / 팩트체크 인턴 기자(xooah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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