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잘린 공익신고자, 정부 보상금 얼마가 적당할까?

입력 2020.06.14 (10:39) 수정 2020.06.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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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청와대, 대부분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국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특정 안건이 '보류'됐습니다. 국민권익위가 낸 '부패방지권익위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것입니다. 부패 신고자에 대한 정부 보상금의 상한액을 없애고, 보상금 지급 비율을 환수금의 4~30%에서 30%로 일원화하는 내용입니다. 신고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국무회의 결정에 참여연대가 즉각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탁상공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 "과도하다"…30% 일원화에 문 대통령 제동

부패방지권익위법 68조는 부패 신고로 인해 직접적인 공공기관 수입의 회복이나 증대 또는 비용의 절감을 가져오는 경우, 권익위원회에 보상금의 지급을 신청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조문에서 보듯이, 단순히 부패를 신고했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법적 절차를 거쳐 환수금이 확정돼야 합니다. 지급액은 환수금의 4%~30%입니다. 환수금이 클수록 지급 비율은 낮아집니다. 개정안대로 지급 비율을 30%로 일원화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보상금이 커집니다.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개정안에 먼저 문제를 제기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환수금이 천억이면 보상금이 3백억 원인데 너무 과도한 게 아니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어, 다른 국무위원도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다른 법에 의한 보상금과 형평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개정안은 보류됐고, 권익위가 재검토 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방위 산업의 경우에는 부패 신고로 백억 단위의 보상금이 지급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평균 보상금 2천여만 원…"신고 없이 환수 없어"

그러나 참여연대는 '환수금이 천억이면 보상금은 3백억'이라는 가정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부패 신고가 없이는 환수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국민권익위가 발간하는 '국민권익 백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부패 행위 신고로 인한 환수금은 총 2천억여 원이었습니다. 모두 757건이었는데, 건당 평균 보상금은 2천2백여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동안 지급된 총 보상금은 169억5천4백여만 원으로 환수금의 8.4%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2009년 제도 시행 이래, 역대 최대 보상금은 얼마였을까요? 찾아보니 11억여 원이었습니다. 신고자는 한국전력에 기계 장치를 납품하던 업체의 직원이었습니다. 권익위의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이 업체는 3년 넘게 수입 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원가를 부풀려왔는데, 이 직원의 신고로 263억 원을 환수할 수 있었습니다. 한전은 이 신고가 있기 전까지 문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환수액에 비하면 보상금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패 행위 신고는 일반 범죄 신고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신고 없이는 외부에서 파악하기 힘든 정보이죠.

■ 신고자 60% 해임…생계 어려움에 형사처벌 위험까지

권익위가 '보상금 지급 비율 30% 일원화'를 추진한 배경에는 신고자들이 부패 신고로 인해 최소한 생계가 어려워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호루라기 재단이 2013년 공익 신고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공익신고자 45명 중 25명이 조직에서 파면과 해임을 당했습니다. 60%입니다. 이 외에도 불이익이나 불안한 근무 환경 때문에 스스로 그만둔 경우가 5명, 좌천성 전보가 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고자들은 해고로 인한 생계 위험뿐 아니라 형사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신고 과정에서 기밀 자료를 반출해 형사고소를 당할 수 있고, 때로는 신고자가 원치 않게 불법행위에 가담한 뒤 이를 신고할 경우, 본인도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엔진 결함을 신고했던 김광호 씨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6년 8월 현대자동차의 품질 담당 부장이었던 김 씨는 엔진 결함 문제를 언론 등에 제보한 뒤 해고됐습니다. 이후 현대차는 김 부장을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고소했고, 수사 과정에서 김 씨는 자택을 압수수색 당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2017년 7월 검찰에서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참여연대는 "공익 제보자는 그 낙인으로 재취업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보상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으면, 각종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신고자들에게 보상도, 신고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도 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는 2017년 9월부터, 경기도는 2019년 1월부터 환수금의 30%를 보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 조례를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 재추진 계획은? 말 아끼는 권익위

권익위는 2019 국민권익 백서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부패·공익신고 보상금을 보상대상가액의 정률(30%)로 지급하고, 보상금 상한액(30억)을 폐지하는 등 신고자 보상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며…"

권익위가 오랜 검토를 거쳐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만큼 이번 보류 결정에 대한 입장과 향후 재추진 계획을 물었습니다. 권익위는 "검토 중"이라고만 할 뿐 말을 아꼈습니다. 권익위 스스로 밝혔듯, 현행 보상금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지급 비율을 크게 높여야 합니다. 참여연대는 "국가와 사회가 공익제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공익제보자들을 끝까지 보호ㆍ지원해야 부정부패가 근절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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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6-14 10:39:25
    • 수정2020-06-15 08:36:48
    취재K
지난 9일 청와대, 대부분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국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특정 안건이 '보류'됐습니다. 국민권익위가 낸 '부패방지권익위법 시행령 개정안'이 그것입니다. 부패 신고자에 대한 정부 보상금의 상한액을 없애고, 보상금 지급 비율을 환수금의 4~30%에서 30%로 일원화하는 내용입니다. 신고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자는 취지입니다. 국무회의 결정에 참여연대가 즉각 비판 성명을 냈습니다. "탁상공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이유가 뭘까요?

■ "과도하다"…30% 일원화에 문 대통령 제동

부패방지권익위법 68조는 부패 신고로 인해 직접적인 공공기관 수입의 회복이나 증대 또는 비용의 절감을 가져오는 경우, 권익위원회에 보상금의 지급을 신청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조문에서 보듯이, 단순히 부패를 신고했다고 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법적 절차를 거쳐 환수금이 확정돼야 합니다. 지급액은 환수금의 4%~30%입니다. 환수금이 클수록 지급 비율은 낮아집니다. 개정안대로 지급 비율을 30%로 일원화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보상금이 커집니다.

당시 국무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개정안에 먼저 문제를 제기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환수금이 천억이면 보상금이 3백억 원인데 너무 과도한 게 아니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이어, 다른 국무위원도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다른 법에 의한 보상금과 형평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개정안은 보류됐고, 권익위가 재검토 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방위 산업의 경우에는 부패 신고로 백억 단위의 보상금이 지급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평균 보상금 2천여만 원…"신고 없이 환수 없어"

그러나 참여연대는 '환수금이 천억이면 보상금은 3백억'이라는 가정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 부패 신고가 없이는 환수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국민권익위가 발간하는 '국민권익 백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부패 행위 신고로 인한 환수금은 총 2천억여 원이었습니다. 모두 757건이었는데, 건당 평균 보상금은 2천2백여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동안 지급된 총 보상금은 169억5천4백여만 원으로 환수금의 8.4%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2009년 제도 시행 이래, 역대 최대 보상금은 얼마였을까요? 찾아보니 11억여 원이었습니다. 신고자는 한국전력에 기계 장치를 납품하던 업체의 직원이었습니다. 권익위의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이 업체는 3년 넘게 수입 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원가를 부풀려왔는데, 이 직원의 신고로 263억 원을 환수할 수 있었습니다. 한전은 이 신고가 있기 전까지 문제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환수액에 비하면 보상금은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패 행위 신고는 일반 범죄 신고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신고 없이는 외부에서 파악하기 힘든 정보이죠.

■ 신고자 60% 해임…생계 어려움에 형사처벌 위험까지

권익위가 '보상금 지급 비율 30% 일원화'를 추진한 배경에는 신고자들이 부패 신고로 인해 최소한 생계가 어려워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있습니다.

호루라기 재단이 2013년 공익 신고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보고서를 보면, 공익신고자 45명 중 25명이 조직에서 파면과 해임을 당했습니다. 60%입니다. 이 외에도 불이익이나 불안한 근무 환경 때문에 스스로 그만둔 경우가 5명, 좌천성 전보가 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고자들은 해고로 인한 생계 위험뿐 아니라 형사처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합니다. 신고 과정에서 기밀 자료를 반출해 형사고소를 당할 수 있고, 때로는 신고자가 원치 않게 불법행위에 가담한 뒤 이를 신고할 경우, 본인도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엔진 결함을 신고했던 김광호 씨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6년 8월 현대자동차의 품질 담당 부장이었던 김 씨는 엔진 결함 문제를 언론 등에 제보한 뒤 해고됐습니다. 이후 현대차는 김 부장을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고소했고, 수사 과정에서 김 씨는 자택을 압수수색 당하기도 했습니다. 김 씨는 2017년 7월 검찰에서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혐의 처분을 받기는 했지만,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참여연대는 "공익 제보자는 그 낙인으로 재취업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보상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으면, 각종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신고자들에게 보상도, 신고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도 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서울시는 2017년 9월부터, 경기도는 2019년 1월부터 환수금의 30%를 보상금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 조례를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 재추진 계획은? 말 아끼는 권익위

권익위는 2019 국민권익 백서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부패·공익신고 보상금을 보상대상가액의 정률(30%)로 지급하고, 보상금 상한액(30억)을 폐지하는 등 신고자 보상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며…"

권익위가 오랜 검토를 거쳐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만큼 이번 보류 결정에 대한 입장과 향후 재추진 계획을 물었습니다. 권익위는 "검토 중"이라고만 할 뿐 말을 아꼈습니다. 권익위 스스로 밝혔듯, 현행 보상금 제도의 취지를 살리려면 지급 비율을 크게 높여야 합니다. 참여연대는 "국가와 사회가 공익제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공익제보자들을 끝까지 보호ㆍ지원해야 부정부패가 근절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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