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징계권’ 삭제…일본은 못하고, 우리는?

입력 2020.06.15 (07: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아동학대 사망에 들끓었던 일본

2019년 1월 일본 지바현의 한 주택 욕실에서 10살짜리 소녀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름은 미아, 온몸에 멍투성이었다. 범인은 아버지. 숨진 당일 오전부터 가정교육을 한다며 아이를 세워놓고 폭행했고, 숨지기 전에는 한겨울임에도 찬물로 샤워까지 시켰다.

특히 이 사건은 미아 양이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하고 있다는 점을 학교에 알린 적이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보호에 나서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었다.

하지만 불행한 일본 아이들의 비극은 이 한건 뿐만이 아니었다.

2018년 3월엔 도쿄 메구로구에서 5세 여자 어린이가 아빠에게 학대를 받은 끝에 숨졌다. 도쿄로 이사 오기 전에도 학대받은 사실이 있어 일시 보호 조치까지 됐던 아이였지만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어 5월에는 기타큐슈에서 아빠가 4세 남자 어린이를 TV를 놓는 장식장 서랍에 감금해 저산소증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게 했다.

이어 2019년 1월에는 미아 양이 숨졌다. 또 2019년 6월에는 삿포로에서 2살 자녀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이 2018년 한 해 동안에 아동학대로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어린이는 모두 35명에 이른다.

■ 1년의 시차...한국에서도

그리고 2020년 6월 한국은 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 부모로부터 갖은 학대를 당하다 탈출한 9살 소녀의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또 이 사건 불과 얼마 전에는 9살 아이를 훈육하겠다며 여행용 가방에 수 시간 동안 가뒀다 숨지는 일도 일어났다.

1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나라의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들. 우리와 일본의 대응도 비슷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대책은 역시 체벌을 금지하는 쪽이었다. 지난해부터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올해 4월부터는 '체벌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원칙에 따라 금지하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논의진행이 비슷하다.

■ '징계권' 삭제...일본의 멈춤

체벌 금지와 함께 일본에서 논의된 사항 중에 하나가 민법에 규정된 '징계권'의 삭제 문제였다.

일본 민법 제822조는 '친권을 행하는 자는 양육 및 교육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그 자식을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 이후 이 징계권을 없애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끝내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이미 2011년에도 한 차례 민법상 징계권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 에다 사쓰키 법무상이 "징계라는 말이 없어지면 예절교육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등 결국 좌절됐고, 지난해에도 징계권 자체에 대한 폐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국제 NGO인 ‘세이브더칠드런 재팬’의 조사에서 일본 성인의 60%가 체벌을 용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각한 수준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랐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32%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게 좋다는 답을 내놓았다.

심각한 아동 학대에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기에는 이르렀지만, 보수적 사회 분위기가 '징계권'의 폐지까지는 막은 셈이다. 특히 자민당 내에서는 징계권에 손대는 것 자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 강한 편이다.

■ '징계권' 삭제...한국의 실행

우리 민법 915조도 '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라며 징계권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법체계를 그대로 들여오면서 현재까지 자리 잡고 있는 법 조항이다.

지난 12일 이 '징계권' 삭제 문제를 놓고 법무부에서 전문가 간담회를 가졌다. 세이브더칠드런 등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의견을 구한 결과 일본과 달리 '징계권' 삭제에 대한 이견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5월 법제개선위원회가 징계권 삭제, 체벌금지 명시를 권고했는데, 이를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법제개선위에서 체벌 금지를 명시하고 '필요한 훈육'이라는 정도의 문구를 대신 넣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대목을 놓고, '훈육'이라는 단어 자체가 줄 수 있는 오해의 소지에 대한 의견 제시가 있었다.
굳이 법 체계 안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훈육'이라는 말을 넣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법무부는 '징계권' 삭제에 대한 법학자들의 의견도 구한 뒤 TF를 구성해 본격적인 관련 법 개정 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더는 학대받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단 한걸음의 나아감이라도 있어야 할 때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자녀 ‘징계권’ 삭제…일본은 못하고, 우리는?
    • 입력 2020-06-15 07:00:12
    취재K
■ 아동학대 사망에 들끓었던 일본

2019년 1월 일본 지바현의 한 주택 욕실에서 10살짜리 소녀가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름은 미아, 온몸에 멍투성이었다. 범인은 아버지. 숨진 당일 오전부터 가정교육을 한다며 아이를 세워놓고 폭행했고, 숨지기 전에는 한겨울임에도 찬물로 샤워까지 시켰다.

특히 이 사건은 미아 양이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하고 있다는 점을 학교에 알린 적이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보호에 나서지 않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었다.

하지만 불행한 일본 아이들의 비극은 이 한건 뿐만이 아니었다.

2018년 3월엔 도쿄 메구로구에서 5세 여자 어린이가 아빠에게 학대를 받은 끝에 숨졌다. 도쿄로 이사 오기 전에도 학대받은 사실이 있어 일시 보호 조치까지 됐던 아이였지만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 이어 5월에는 기타큐슈에서 아빠가 4세 남자 어린이를 TV를 놓는 장식장 서랍에 감금해 저산소증으로 소중한 생명을 잃게 했다.

이어 2019년 1월에는 미아 양이 숨졌다. 또 2019년 6월에는 삿포로에서 2살 자녀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아 굶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이 2018년 한 해 동안에 아동학대로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어린이는 모두 35명에 이른다.

■ 1년의 시차...한국에서도

그리고 2020년 6월 한국은 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 부모로부터 갖은 학대를 당하다 탈출한 9살 소녀의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또 이 사건 불과 얼마 전에는 9살 아이를 훈육하겠다며 여행용 가방에 수 시간 동안 가뒀다 숨지는 일도 일어났다.

1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두 나라의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들. 우리와 일본의 대응도 비슷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대책은 역시 체벌을 금지하는 쪽이었다. 지난해부터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올해 4월부터는 '체벌은 아동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원칙에 따라 금지하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우리와 논의진행이 비슷하다.

■ '징계권' 삭제...일본의 멈춤

체벌 금지와 함께 일본에서 논의된 사항 중에 하나가 민법에 규정된 '징계권'의 삭제 문제였다.

일본 민법 제822조는 '친권을 행하는 자는 양육 및 교육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그 자식을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 이후 이 징계권을 없애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끝내 실행에는 옮기지 못했다.

이미 2011년에도 한 차례 민법상 징계권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 에다 사쓰키 법무상이 "징계라는 말이 없어지면 예절교육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등 결국 좌절됐고, 지난해에도 징계권 자체에 대한 폐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국제 NGO인 ‘세이브더칠드런 재팬’의 조사에서 일본 성인의 60%가 체벌을 용인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심각한 수준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랐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는 32%가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 게 좋다는 답을 내놓았다.

심각한 아동 학대에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기에는 이르렀지만, 보수적 사회 분위기가 '징계권'의 폐지까지는 막은 셈이다. 특히 자민당 내에서는 징계권에 손대는 것 자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 강한 편이다.

■ '징계권' 삭제...한국의 실행

우리 민법 915조도 '친권자는 그 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라며 징계권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법체계를 그대로 들여오면서 현재까지 자리 잡고 있는 법 조항이다.

지난 12일 이 '징계권' 삭제 문제를 놓고 법무부에서 전문가 간담회를 가졌다. 세이브더칠드런 등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의견을 구한 결과 일본과 달리 '징계권' 삭제에 대한 이견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5월 법제개선위원회가 징계권 삭제, 체벌금지 명시를 권고했는데, 이를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법제개선위에서 체벌 금지를 명시하고 '필요한 훈육'이라는 정도의 문구를 대신 넣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한 대목을 놓고, '훈육'이라는 단어 자체가 줄 수 있는 오해의 소지에 대한 의견 제시가 있었다.
굳이 법 체계 안에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훈육'이라는 말을 넣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게 사실이다.

법무부는 '징계권' 삭제에 대한 법학자들의 의견도 구한 뒤 TF를 구성해 본격적인 관련 법 개정 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더는 학대받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단 한걸음의 나아감이라도 있어야 할 때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